‘나’의 압승…한국당 의원들의 관전평

입력 2018.12.12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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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내대표 선거, 뚜껑 열기 전엔 아무도 몰라

"'나'가 될까, '김'이 될까."
"정치판 들어와서 선거를 50번 넘게 치렀는데, 제일 맞추기 어려운 게 원내대표 선거더라고요."
적게는 수천, 많게는 수백만 유권자를 상대로 표의 흐름을 분석해가는 자칭 '선거의 달인'들이 한 말입니다. 처음엔 다소 의아했습니다. 단 '103명'의 표심을 읽어내는 게 어렵다면 얼마나 어려울까. 그러나 '103명' 유권자가 모두 국회의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럴 만도 했습니다. 선거 결과나 득표수가 향후 당내 주도권을 가늠할 지표가 되는 원내대표 선거, 국회의원 동료들의 마음을 읽기란 후보자 본인에게도 총선보다 어려울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1년 전 원내대표 선거에서 김성태 원내대표가 당선될 당시 얻은 표는 108표 중 55표. 35표를 얻은 홍문종 의원, 17표를 받은 한선교 의원을 누르고 당선됐습니다. '친박계'인 홍 의원과 한 의원의 표를 더하면 52표로, 당선자였던 '비박계' 김 원내대표와 3표 차밖에 나지 않은 것을 보면 쉽지 않은 선거였습니다. 이번에도 직전까지 아무도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51:49로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지 모른다"는 말만 돌 뿐, 박빙 승부가 예상됐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나'의 압도적 승리. 싱겁게 끝났습니다. 나경원 후보가 전체 103표 중 68표를 얻었습니다. 김학용 후보가 얻은 35표의 2배에 이르는 압도적 표차였습니다. 결과 발표 순간, 현장에서 개표를 지켜보던 의원들 표정을 살펴봤습니다. 웅성웅성하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내심 놀랐단 표정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 정도로 차이 날 줄은 몰랐네?"라며 자리를 뜨는 분위기였습니다.


초-재선 74명의 표심 … 누가 '나경원'을 선택했나

이번 경선은 '친박-잔류파'와 '비박-복당파'간 1대1 구도였습니다. 당초 출마를 선언했던 의원들이 러닝메이트인 정책위의장 후보를 구하지 못해 2파전으로 굳어지면서 양쪽 색깔은 더 뚜렷해졌습니다. 선거 내내 나 원내대표는 중립을 표방했습니다. 판사 출신으로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표의 대선후보 특보로 정계와 인연을 맺은 뒤, '친이계'로 분류돼 '친박계'와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여러 논란이 있지만 박 전 대통령이 한평생을 감옥에 계실 정도로 잘못을 했는지 모르겠다, 지금 형사재판중이나 거기에 공감할 국민은 없을 것"이라는 등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우호적 발언을 내놓아, 따로 후보를 내지 않은 친박계의 지지를 굳혔습니다. 상대 후보인 김학용 의원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때 탈당했다 돌아온 복당파 인사입니다. 그러나 결집도가 예전 같지 않다는 분위기 속에 계파색이 확실한 의원을 분류해보면 양측 다 10명 남짓에 불과합니다. 결국 '캐스팅보트' 역할은 초-재선의원(초선 42명, 재선 32명)들이었습니다. 당내 3분의 2를 차지하는 '그룹'으로 분류되면서 '특정 계파가 주도권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를 내며 계파색이 옅은 중립지대를 표방해왔습니다. 결과를 놓고 보니, 이들 중 상당수가 나 원내대표를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복당파' 견제심리에 '친박계'는 똘똘 뭉쳤다"

유권자였던 한국당 의원들의 이야기를 모아보면 이렇습니다. 지난 1년간 몸을 사리던 '친박'의 결집 효과에 더해, '비박-복당파'에 대한 견제 심리가 더해지면서 너도나도 나 의원에게 표를 던졌다는 겁니다. 1년 전 원내대표 경선에서는 친박계가 홍문종-한선교 의원으로 분열하고, 복당파인 김성태 의원이 사실상 단일후보로 나서 당선되면서 '비박-복당파'가 당내 신주류가 됐습니다. 그런데 지방선거 참패 이후 당 위기 수습과정에서 복당파 의원들이 대거 주류로 편입됐고, 중립지대 의원들로서는 '특정 계파만 계속 주도권을 쥐게 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전임 원내지도부에 대한 반발이, 초·재선 의원들의 표심으로 확인된 것이기도 합니다.


복당파에 대한 '불편한 심기'는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무대'에 대한 견제이기도 했다는 게 중론입니다. ('무대'는 김무성 전 대표를 부르는 별칭입니다) '중립'에 속하는 모 의원은 "'김무성계' 김학용 후보가 아니라 다른 후보였다면, 굳이 나 의원에게 표를 던지지 않았을 것이지만..."이라고 의미심장한 답변을 남겼습니다. 또 다른 의원도 "뒤에서 다른 사람 있는 걸 알면서 꼭두각시를 뽑으면 안 되니까"라고 강한 어조로 답했습니다. 나 의원이 투표 직전 의원총회에서 김 의원에게 "김 의원은 특정 계파 핵심세력이 아니냐"고 응수한 배경이기도 합니다.

'무대'의 전폭적 지지받은 '진돗개' 그러나…

김학용 의원은 계파와 상관없는 원만한 대인관계로 정평이 나 있지만, '김무성계'에 속한다는 점이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했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무대'의 비서실장을 지낸 김 의원은 '들개 리더십'을 넘어 '진돗개 리더십'으로 가겠다는 '강한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이 역시 김성태 전 원내대표와 비슷한 '무대 그림자'를 더 짙게 만들 뿐이었다는 후문입니다. '비박-복당파' 좌장격인 김무성 의원이 전당대회 불출마 선언까지 했지만, 특정 계파 색깔이 지속해 '도로 계파싸움' 국면으로 접어드는 것을 경계한 의원들 의중은 결국 표로 반영됐습니다.

이런 의중을 파고든 나 원내대표의 '메시지'도 꽤 큰 역할을 했다는 평도 나옵니다. 나 원내대표는 선거 과정에서 "어떤 계파에도 속하지 않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친박계'의 확실한 지지를 받는 것에 더해, 중립 의원들의 표를 얻는 데에 주력했던 전략이 주효했던 겁니다.

권력구도 변화… ''친박'이 돌아왔다?'

나 원내대표의 승리로 친박계는 새 주류로 올라서게 됐습니다. 당분간 '친박 신당설'은 잦아들 걸로 보입니다. 이번 경선에서 결집력을 보여준 만큼, 탈당을 감행하는 것보단 당에서 활동 재개를 하겠다는 분위깁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친박계가 일대 반격을 노린다면 당장 내년 초 당권 탈환을 목표로 전면에 등장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반면, '비박계'는 좌장격인 김무성 의원의 지원을 받은 김학용 의원이 완패하면서 당장 당내 입지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분위깁니다.

일각에서는 나 신임 원내대표가 겉으로는 통합을 외쳐도 친박계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합니다. 모 의원은 "나경원 원내대표에게는 정치인생에서 위기이자 기회가 찾아왔다"고 말했습니다. 나 원내대표의 선언대로 '계파 정치를 종식하고 수권정당으로 거듭나느냐', '해묵은 계파 갈등 속에 좌조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조만간 발표될 당협위원장 교체와 내년 2월로 예정된 전당대회 등 계파 갈등이 재현될 사안들이 코앞에 닥쳤습니다. 어려운 숙제를 어떤 방식으로 헤쳐나갈지, 보수정당 최초의 여성 원내사령탑이 풀어낼 '통합방정식'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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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압승…한국당 의원들의 관전평
    • 입력 2018-12-12 16:59:40
    취재K
원내대표 선거, 뚜껑 열기 전엔 아무도 몰라

"'나'가 될까, '김'이 될까."
"정치판 들어와서 선거를 50번 넘게 치렀는데, 제일 맞추기 어려운 게 원내대표 선거더라고요."
적게는 수천, 많게는 수백만 유권자를 상대로 표의 흐름을 분석해가는 자칭 '선거의 달인'들이 한 말입니다. 처음엔 다소 의아했습니다. 단 '103명'의 표심을 읽어내는 게 어렵다면 얼마나 어려울까. 그러나 '103명' 유권자가 모두 국회의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럴 만도 했습니다. 선거 결과나 득표수가 향후 당내 주도권을 가늠할 지표가 되는 원내대표 선거, 국회의원 동료들의 마음을 읽기란 후보자 본인에게도 총선보다 어려울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1년 전 원내대표 선거에서 김성태 원내대표가 당선될 당시 얻은 표는 108표 중 55표. 35표를 얻은 홍문종 의원, 17표를 받은 한선교 의원을 누르고 당선됐습니다. '친박계'인 홍 의원과 한 의원의 표를 더하면 52표로, 당선자였던 '비박계' 김 원내대표와 3표 차밖에 나지 않은 것을 보면 쉽지 않은 선거였습니다. 이번에도 직전까지 아무도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51:49로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지 모른다"는 말만 돌 뿐, 박빙 승부가 예상됐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나'의 압도적 승리. 싱겁게 끝났습니다. 나경원 후보가 전체 103표 중 68표를 얻었습니다. 김학용 후보가 얻은 35표의 2배에 이르는 압도적 표차였습니다. 결과 발표 순간, 현장에서 개표를 지켜보던 의원들 표정을 살펴봤습니다. 웅성웅성하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내심 놀랐단 표정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 정도로 차이 날 줄은 몰랐네?"라며 자리를 뜨는 분위기였습니다.


초-재선 74명의 표심 … 누가 '나경원'을 선택했나

이번 경선은 '친박-잔류파'와 '비박-복당파'간 1대1 구도였습니다. 당초 출마를 선언했던 의원들이 러닝메이트인 정책위의장 후보를 구하지 못해 2파전으로 굳어지면서 양쪽 색깔은 더 뚜렷해졌습니다. 선거 내내 나 원내대표는 중립을 표방했습니다. 판사 출신으로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표의 대선후보 특보로 정계와 인연을 맺은 뒤, '친이계'로 분류돼 '친박계'와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여러 논란이 있지만 박 전 대통령이 한평생을 감옥에 계실 정도로 잘못을 했는지 모르겠다, 지금 형사재판중이나 거기에 공감할 국민은 없을 것"이라는 등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우호적 발언을 내놓아, 따로 후보를 내지 않은 친박계의 지지를 굳혔습니다. 상대 후보인 김학용 의원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때 탈당했다 돌아온 복당파 인사입니다. 그러나 결집도가 예전 같지 않다는 분위기 속에 계파색이 확실한 의원을 분류해보면 양측 다 10명 남짓에 불과합니다. 결국 '캐스팅보트' 역할은 초-재선의원(초선 42명, 재선 32명)들이었습니다. 당내 3분의 2를 차지하는 '그룹'으로 분류되면서 '특정 계파가 주도권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를 내며 계파색이 옅은 중립지대를 표방해왔습니다. 결과를 놓고 보니, 이들 중 상당수가 나 원내대표를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복당파' 견제심리에 '친박계'는 똘똘 뭉쳤다"

유권자였던 한국당 의원들의 이야기를 모아보면 이렇습니다. 지난 1년간 몸을 사리던 '친박'의 결집 효과에 더해, '비박-복당파'에 대한 견제 심리가 더해지면서 너도나도 나 의원에게 표를 던졌다는 겁니다. 1년 전 원내대표 경선에서는 친박계가 홍문종-한선교 의원으로 분열하고, 복당파인 김성태 의원이 사실상 단일후보로 나서 당선되면서 '비박-복당파'가 당내 신주류가 됐습니다. 그런데 지방선거 참패 이후 당 위기 수습과정에서 복당파 의원들이 대거 주류로 편입됐고, 중립지대 의원들로서는 '특정 계파만 계속 주도권을 쥐게 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전임 원내지도부에 대한 반발이, 초·재선 의원들의 표심으로 확인된 것이기도 합니다.


복당파에 대한 '불편한 심기'는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무대'에 대한 견제이기도 했다는 게 중론입니다. ('무대'는 김무성 전 대표를 부르는 별칭입니다) '중립'에 속하는 모 의원은 "'김무성계' 김학용 후보가 아니라 다른 후보였다면, 굳이 나 의원에게 표를 던지지 않았을 것이지만..."이라고 의미심장한 답변을 남겼습니다. 또 다른 의원도 "뒤에서 다른 사람 있는 걸 알면서 꼭두각시를 뽑으면 안 되니까"라고 강한 어조로 답했습니다. 나 의원이 투표 직전 의원총회에서 김 의원에게 "김 의원은 특정 계파 핵심세력이 아니냐"고 응수한 배경이기도 합니다.

'무대'의 전폭적 지지받은 '진돗개' 그러나…

김학용 의원은 계파와 상관없는 원만한 대인관계로 정평이 나 있지만, '김무성계'에 속한다는 점이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했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무대'의 비서실장을 지낸 김 의원은 '들개 리더십'을 넘어 '진돗개 리더십'으로 가겠다는 '강한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이 역시 김성태 전 원내대표와 비슷한 '무대 그림자'를 더 짙게 만들 뿐이었다는 후문입니다. '비박-복당파' 좌장격인 김무성 의원이 전당대회 불출마 선언까지 했지만, 특정 계파 색깔이 지속해 '도로 계파싸움' 국면으로 접어드는 것을 경계한 의원들 의중은 결국 표로 반영됐습니다.

이런 의중을 파고든 나 원내대표의 '메시지'도 꽤 큰 역할을 했다는 평도 나옵니다. 나 원내대표는 선거 과정에서 "어떤 계파에도 속하지 않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친박계'의 확실한 지지를 받는 것에 더해, 중립 의원들의 표를 얻는 데에 주력했던 전략이 주효했던 겁니다.

권력구도 변화… ''친박'이 돌아왔다?'

나 원내대표의 승리로 친박계는 새 주류로 올라서게 됐습니다. 당분간 '친박 신당설'은 잦아들 걸로 보입니다. 이번 경선에서 결집력을 보여준 만큼, 탈당을 감행하는 것보단 당에서 활동 재개를 하겠다는 분위깁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친박계가 일대 반격을 노린다면 당장 내년 초 당권 탈환을 목표로 전면에 등장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반면, '비박계'는 좌장격인 김무성 의원의 지원을 받은 김학용 의원이 완패하면서 당장 당내 입지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분위깁니다.

일각에서는 나 신임 원내대표가 겉으로는 통합을 외쳐도 친박계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합니다. 모 의원은 "나경원 원내대표에게는 정치인생에서 위기이자 기회가 찾아왔다"고 말했습니다. 나 원내대표의 선언대로 '계파 정치를 종식하고 수권정당으로 거듭나느냐', '해묵은 계파 갈등 속에 좌조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조만간 발표될 당협위원장 교체와 내년 2월로 예정된 전당대회 등 계파 갈등이 재현될 사안들이 코앞에 닥쳤습니다. 어려운 숙제를 어떤 방식으로 헤쳐나갈지, 보수정당 최초의 여성 원내사령탑이 풀어낼 '통합방정식'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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