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힐 권리’ 송명빈 대표가 건넨 책 한권 “이게 때린 이유인가요?”

입력 2019.01.04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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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제공 : 경향신문


영상 속에는 건장한 남성 두 명이 서 있습니다. 그런데 둘의 관계가 이상합니다. 한 사람은 때리고, 다른 한 사람은 맞기만 합니다.

함께 공개된 녹음 자료는 더 이상합니다. 폭행을 당하는 사람이 계속 비명을 지르는데도 이 남성은 욕설까지 합니다.

남성 두 명 중, 때리는 사람은 온라인상의 '잊힐 권리'를 주장한 마커그룹 대표 송명빈. 맞는 사람은 송 대표의 직원이었던 양 모 씨 입니다.


결국 송 대표는 1월 3일에 경찰에 소환됐습니다. 굳은 얼굴로 포토라인에 선 그에게 물어봤습니다.

(기자)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때리신 건가요?"

미동도 하지 않는 송 대표. 준비한 답변을 쏟아냅니다.

(송 대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조사 성실히 받고 오겠습니다."

송 대표는 이 말을 마친 뒤 자신의 할 일을 다했다는 듯 경찰서로 들어가버렸습니다. '피해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습니다.

송 대표가 경찰서를 나선 시간은 15시간 넘게 조사를 받은 뒤인 오늘(4일) 새벽 1시 30분.

KBS는 다시 송 대표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기자) 폭행은 왜 하신 거예요?

"죄송하다"는 말만 남기고 서둘러 경찰서를 떠나려던 송 대표. 질문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않더니 기자에게 책 한권을 건넸습니다.

4일 새벽, 경찰서를 나오는 송 대표가 KBS 기자에게 책을 건네는 모습4일 새벽, 경찰서를 나오는 송 대표가 KBS 기자에게 책을 건네는 모습

무슨 책인가 봤더니 송 대표가 저자로 돼있는 책이었습니다. 책은 왜 주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역시 침묵으로 대신했습니다. 송 대표가 준 책을 열자마자 소제목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대표이사의 달콤한 유혹, 배임과 횡령>. 꼭 보라는듯 푸른 펜으로 밑 줄과 별 표까지 쳐 있었습니다. 그리고, 친절하게(?)해당 페이지를 곱게 접어 놓았습니다. 차마 안 펴볼 수 없어 읽어 봤습니다. 모두 4페이지로 이뤄진 해당 목차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들어있습니다.

송 대표가 경찰 조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KBS기자에게 건넨 책송 대표가 경찰 조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KBS기자에게 건넨 책

대표이사는 배임과 횡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직업이다. '횡령'은 회사 돈을 훔쳐 먹은 것을 말하고, '배임'은 남이 이득을 보게하는 과정에서 회사에 손해를 입힌 것을 말한다.

그러니 대표이사가 잘못 마음 먹으면 그 법인 망하는 것은 한순간이다. 통장 들고 튀면 끝이다. 엉터리로 계약해서 우발채권 만들어 놓으면 며느리도 모른다.

횡령은 자기와 회사를 망치지만, 배임은 자기와 회사와 거래처와 자사주주를 모두 망친다는 점에서 범사회적 중대 범죄라 하겠다.


횡령과 배임은 자신과 회사를 망치는 것이라고 적어 놓은 책 내용을 기자에게 왜 읽어보라 한 것일까요? 송 대표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시 경찰 출석 시점으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송 대표가 경찰에 출석하자마자 송 대표측 변호사는 언론 보도자료 하나를 배포했습니다. 지난달 28일 송 대표가 폭행 피해자인 양 모 씨를 횡령과 배임 혐의로 형사 고발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양 씨가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송 대표의 단점을 수집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는 내용도 들어있습니다. 양 씨는 회사에서 전임 대표이사를 맡았었고, 양 씨측은 단지 이름만 빌려준 '바지 사장'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왜 폭행했냐는 질문에 답처럼 내놓은 한 권의 책. 그리고 그 책에 적힌 내용, 만약에 책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면,

"횡령과 배임은 자신과 회사 모두를 망치는 죄인데, 양 씨가 이를 저질렀고, 그럼에도 죄를 뉘우치지 않고 있다, 나도 피해자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경찰은 송 대표가 양 씨를 횡령과 배임 혐의로 고소한 건에 대해서도 수사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 해외에서 체류 중인 양 씨에게 어렵게 연락이 닿았습니다. 양 씨는 KBS와의 통화에서 송 씨의 폭행과 협박에 대해 털어놓았습니다.

"초반에는 그냥 머리를 때리고 발로 때리고 하다가 어느 정도 시점이 지난 후부터는 둔기를 사용 많이 했고요. 협박은 그냥 때리면서 동시에 일어나는 거예요. 뭐 가족을 죽이겠다 이런 것도 했고. 판사가 누굴 믿어주겠냐, 너를 감옥 보내겠다 이런 말도.."

그리고 송 씨와 함께 보낸 시간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저에게는 제일 중요한 시기잖아요. 사회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20대 후반과 30대 초반. 그 시기가 되게 이상하게 끝나버렸고, 저는 사실 한국에서 재기하기 힘들다고 생각하거든요. 잃어버린 6년이었죠. 그래서 지금까지보다도 앞으로가 조금 더 막막하고. 또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고."

송 대표와 양 씨 사이에 일어난 일들은 현재 경찰 조사 중입니다. 폭행 뿐만 아니라 확인해야 할 정황들이 많습니다. 송 대표 측의 주장도 분명 그 중 하나일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송 대표측이 주장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건 따로 풀어야할 문제이지, 폭력이 정당화 될 수는 없습니다.


송 대표가 준 책의 서문에는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우리 회사 사훈은 '심청이 동냥젖'이다. 처음에는 '심학규의 동냥젖'이라고 하려 하였으나, 많은 이들이 알아먹지 못했다. 심학규가 누구냐는 것이었다. 심학규는 효녀 심청전의 주인공 청이의 부친, 즉 심청이 아버지의 이름이다"

"나는 사업을 하면서 문득, 내가 심학규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빠지곤한다. (중략) 내 한 몸도 추스르기 어려운 상황에 나는 내가 먹여 살려야 할 식솔들, 직원들이 있다. 나에게 이들은 심청이와 같은 존재다. 나는 우리 직원들도 이러한 심학규의 절박함을 깨닫길 바란다."


송 대표는 창업자로서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한 자신을 눈도 안보이는 상황에서 어린 자식을 먹이기 위해 젖동냥을 다닌 심학규와 같다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심청이가 아버지로부터 상습적으로 폭행과 협박을 받았다면 아버지를 위해 그렇게 인당수에 스스로 빠질 수 있었을까요?

'심청전'을 다시 읽으며 송명빈 대표 본인이 스스로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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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잊힐 권리’ 송명빈 대표가 건넨 책 한권 “이게 때린 이유인가요?”
    • 입력 2019-01-04 21:55:19
    취재K
▲화면제공 : 경향신문


영상 속에는 건장한 남성 두 명이 서 있습니다. 그런데 둘의 관계가 이상합니다. 한 사람은 때리고, 다른 한 사람은 맞기만 합니다.

함께 공개된 녹음 자료는 더 이상합니다. 폭행을 당하는 사람이 계속 비명을 지르는데도 이 남성은 욕설까지 합니다.

남성 두 명 중, 때리는 사람은 온라인상의 '잊힐 권리'를 주장한 마커그룹 대표 송명빈. 맞는 사람은 송 대표의 직원이었던 양 모 씨 입니다.


결국 송 대표는 1월 3일에 경찰에 소환됐습니다. 굳은 얼굴로 포토라인에 선 그에게 물어봤습니다.

(기자)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때리신 건가요?"

미동도 하지 않는 송 대표. 준비한 답변을 쏟아냅니다.

(송 대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조사 성실히 받고 오겠습니다."

송 대표는 이 말을 마친 뒤 자신의 할 일을 다했다는 듯 경찰서로 들어가버렸습니다. '피해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습니다.

송 대표가 경찰서를 나선 시간은 15시간 넘게 조사를 받은 뒤인 오늘(4일) 새벽 1시 30분.

KBS는 다시 송 대표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기자) 폭행은 왜 하신 거예요?

"죄송하다"는 말만 남기고 서둘러 경찰서를 떠나려던 송 대표. 질문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않더니 기자에게 책 한권을 건넸습니다.

4일 새벽, 경찰서를 나오는 송 대표가 KBS 기자에게 책을 건네는 모습
무슨 책인가 봤더니 송 대표가 저자로 돼있는 책이었습니다. 책은 왜 주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역시 침묵으로 대신했습니다. 송 대표가 준 책을 열자마자 소제목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대표이사의 달콤한 유혹, 배임과 횡령>. 꼭 보라는듯 푸른 펜으로 밑 줄과 별 표까지 쳐 있었습니다. 그리고, 친절하게(?)해당 페이지를 곱게 접어 놓았습니다. 차마 안 펴볼 수 없어 읽어 봤습니다. 모두 4페이지로 이뤄진 해당 목차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들어있습니다.

송 대표가 경찰 조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KBS기자에게 건넨 책
대표이사는 배임과 횡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직업이다. '횡령'은 회사 돈을 훔쳐 먹은 것을 말하고, '배임'은 남이 이득을 보게하는 과정에서 회사에 손해를 입힌 것을 말한다.

그러니 대표이사가 잘못 마음 먹으면 그 법인 망하는 것은 한순간이다. 통장 들고 튀면 끝이다. 엉터리로 계약해서 우발채권 만들어 놓으면 며느리도 모른다.

횡령은 자기와 회사를 망치지만, 배임은 자기와 회사와 거래처와 자사주주를 모두 망친다는 점에서 범사회적 중대 범죄라 하겠다.


횡령과 배임은 자신과 회사를 망치는 것이라고 적어 놓은 책 내용을 기자에게 왜 읽어보라 한 것일까요? 송 대표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시 경찰 출석 시점으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송 대표가 경찰에 출석하자마자 송 대표측 변호사는 언론 보도자료 하나를 배포했습니다. 지난달 28일 송 대표가 폭행 피해자인 양 모 씨를 횡령과 배임 혐의로 형사 고발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양 씨가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송 대표의 단점을 수집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는 내용도 들어있습니다. 양 씨는 회사에서 전임 대표이사를 맡았었고, 양 씨측은 단지 이름만 빌려준 '바지 사장'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왜 폭행했냐는 질문에 답처럼 내놓은 한 권의 책. 그리고 그 책에 적힌 내용, 만약에 책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면,

"횡령과 배임은 자신과 회사 모두를 망치는 죄인데, 양 씨가 이를 저질렀고, 그럼에도 죄를 뉘우치지 않고 있다, 나도 피해자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경찰은 송 대표가 양 씨를 횡령과 배임 혐의로 고소한 건에 대해서도 수사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 해외에서 체류 중인 양 씨에게 어렵게 연락이 닿았습니다. 양 씨는 KBS와의 통화에서 송 씨의 폭행과 협박에 대해 털어놓았습니다.

"초반에는 그냥 머리를 때리고 발로 때리고 하다가 어느 정도 시점이 지난 후부터는 둔기를 사용 많이 했고요. 협박은 그냥 때리면서 동시에 일어나는 거예요. 뭐 가족을 죽이겠다 이런 것도 했고. 판사가 누굴 믿어주겠냐, 너를 감옥 보내겠다 이런 말도.."

그리고 송 씨와 함께 보낸 시간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저에게는 제일 중요한 시기잖아요. 사회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20대 후반과 30대 초반. 그 시기가 되게 이상하게 끝나버렸고, 저는 사실 한국에서 재기하기 힘들다고 생각하거든요. 잃어버린 6년이었죠. 그래서 지금까지보다도 앞으로가 조금 더 막막하고. 또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고."

송 대표와 양 씨 사이에 일어난 일들은 현재 경찰 조사 중입니다. 폭행 뿐만 아니라 확인해야 할 정황들이 많습니다. 송 대표 측의 주장도 분명 그 중 하나일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송 대표측이 주장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건 따로 풀어야할 문제이지, 폭력이 정당화 될 수는 없습니다.


송 대표가 준 책의 서문에는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우리 회사 사훈은 '심청이 동냥젖'이다. 처음에는 '심학규의 동냥젖'이라고 하려 하였으나, 많은 이들이 알아먹지 못했다. 심학규가 누구냐는 것이었다. 심학규는 효녀 심청전의 주인공 청이의 부친, 즉 심청이 아버지의 이름이다"

"나는 사업을 하면서 문득, 내가 심학규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빠지곤한다. (중략) 내 한 몸도 추스르기 어려운 상황에 나는 내가 먹여 살려야 할 식솔들, 직원들이 있다. 나에게 이들은 심청이와 같은 존재다. 나는 우리 직원들도 이러한 심학규의 절박함을 깨닫길 바란다."


송 대표는 창업자로서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한 자신을 눈도 안보이는 상황에서 어린 자식을 먹이기 위해 젖동냥을 다닌 심학규와 같다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심청이가 아버지로부터 상습적으로 폭행과 협박을 받았다면 아버지를 위해 그렇게 인당수에 스스로 빠질 수 있었을까요?

'심청전'을 다시 읽으며 송명빈 대표 본인이 스스로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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