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스모, 다시 ‘몽골’ 천하로…일본인 ‘천하장사’ 불명예 퇴진

입력 2019.01.1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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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스모계가 다시 몽골 천하로 돌아갔다.

유일한 일본 출신 요코즈나(천하장사)였던 기세노사토(稀勢の里)가 성적 부진 끝에 은퇴를 선언하면서 일본의 국기라는 '스모'의 천하장사에는 이제 몽골 출신의 하쿠호(白鵬)와 가쿠류(鶴龍)만 남게 됐다.

NHK가 은퇴 기자회견을 실시간 속보로 전하고 일본 언론들이 매시간 주요 뉴스로 다루는 등 일본인 요코즈나의 퇴진을 전하며 충격과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19년 만의 일본인 천하장사

전 요코즈나 ‘기세노사토’전 요코즈나 ‘기세노사토’

일본 사회가 기세노사토의 은퇴에 충격을 받은 이유는 그가 19년 만에 탄생한 소중한(?) 일본인 요코즈나이기 때문이다.

일본 스모에서 외국 출신 스모 선수가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다. 1993년 하와이 출신의 '아케보노'가 처음 외국인 요코즈나가 되면서 일본 스모는 외국 출신 선수들에게 점령당하기 시작했다.

아케보노 이후 탄생한 스모의 천하장사 요코즈나는 모두 9명. 하지만 그 가운데 6명은 외국 출신이었고, 특히 2003년 이후로는 몽골 출신 4명이 잇따라 요코즈나에 올랐다.

몽골도 '몽골 씨름'의 전통이 있는 곳. 일본의 스모 도장(스모 선수가 소속돼 기량을 닦고 출전하는 팀)들은 10대의 어린 몽골 소년들을 데려와 몸집을 키우고 훈련을 시켜 스모 선수로 길러냈다. 유목 민족 특유의 강골에, 성공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몽골 출신들을 강하게 만들었고, 일본의 역사들은 맥을 추지 못했다.

그러던 중에 혜성처럼 나타난 것이 기세노사토다.

18세에 본격 성인 스모 무대에 등장해, 2011년 규슈 대회에서 당시 63연승을 달리던 절대 강자 요코즈나 하쿠호를 꺾으면서 일본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마침내 2017년 1월 요코즈나에 오르면서 일본 스모계의 비원이었던, 일본인 출신 천하장사를 배출하기에 이른다.


따라주지 않았던 성적...결국 불명예 퇴진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였다.

2017년 봄 대회에서 당시 요코즈나였던 하루마후지와 겨루던 중 상체가 먼저 떨어지면서 왼쪽 가슴과 팔을 다쳤다. 이후 가을 대회에 부상을 무릅쓰고 출전해 우승했지만, 이후에는 부진을 면치 못했다.

1년에 6차례 열리는 대회에 출전하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졌고 8개 대회 연속 경기에 나서지 못하다가 지난해 9월 경기에 다시 복귀했지만 10승 5패로 성적은 좋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규슈 경기에 다시 나섰지만, 요코즈나로서는 87년 만에 4연패를 당한 후 오른쪽 무릎 부상을 이유로 중도에 경기 출장을 포기했고, 심기일전해 올해 첫 봄 대회에 나섰지만 첫날부터 내리 3연패를 당하면서 결국 은퇴에 이르게 됐다.

지난 대회 부진 후 일본 요코즈나 심의위원회로부터 좀 더 분발하라는 '격려' 결의를 받았는데, 단어는 '격려'지만 사실상 질책성 결정이어서 이번 대회의 성적이 좋지 않을 경우 '요코즈나'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전망이 우세했다. 결국, 성적이 따라주지 못하면서 사실상 강제 은퇴 수순에 들어간 셈이다.

일본 언론들은 불과 2년 만에 일본인 요코즈나의 자리가 사라졌다며 연신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몽골의 스모 평정, 일본 국민의 자존심을 꺾다.

현재 일본 스모계의 최강자는 '하쿠호'다. 2007년 요코즈나에 오른 뒤 41회 우승, 63연승, 승률 84%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워가고 있다. 우승 횟수, 연승 횟수, 승률 등 모든 면에서 일본 스모계의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괴력의 사나이다.

몽골 출신 요코즈나 ‘하쿠호’몽골 출신 요코즈나 ‘하쿠호’

여기에 가쿠류가 통상 우승 5회로 요코즈나를 유지하고 있어 당분간 몽골 요코즈나 쌍두 체제가 될 전망이다. 후배를 맥주병으로 때려 2017년 스모계를 떠난 전 요코즈나 하르마후지가 당시 9회 우승을 차지하며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음을 볼 때 불상사 없었다면 현재 일본 스모는 3명의 몽골인 요코즈나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을 것이다.

몽골 출신 요코즈나 ‘가쿠류’몽골 출신 요코즈나 ‘가쿠류’

몽골 출신 전 요코즈나 ‘하르마후지’몽골 출신 전 요코즈나 ‘하르마후지’


이 같은 몽골 스모 강세에 일본 스포츠 신문 등에서는 몽골 국적의 하쿠호가 일본에 귀화할지도 모른다는 희망(?) 섞인 보도를 심심치 않게 내보내는 실정이니, 이것만 봐도 일본이 자국 천하장사에 얼마나 목말라 있는지 보여준다.

일본 스모협회는 외국인 선수들이 강세를 보이자 1992년 한 도장에 외국인 2명으로 숫자를 제한했고, 이를 2002년에는 한 도장에 원칙적으로 외국인 선수 1명으로 강화하며 일본 출신 선수를 키우기 위해 애쓰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지난해 9월 대회를 보면 몽골 출신 22명이 빼어난 실력을 보여주고 있어, 절대적으로 적은 숫자에도 불구하고 일본 세를 압도하는 실정이다. 이 밖에도 그루지야, 이집트, 브라질, 헝가리 등 몽골을 포함해 모두 33명의 일본 국적 외 선수들이 스모에서 활약 중이다.

2011년 승부조작 사건 후 본 경기의 입장권이 절반도 팔리지 않는 혹독한 시절을 겪었던 일본 스모계는 일본인 요코즈나의 탄생으로 다시금 부흥기를 맞았지만, 이번 기세노사토의 불명예 퇴진으로 어떤 파문이 생겨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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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스모, 다시 ‘몽골’ 천하로…일본인 ‘천하장사’ 불명예 퇴진
    • 입력 2019-01-17 07:00:16
    특파원 리포트
일본 스모계가 다시 몽골 천하로 돌아갔다.

유일한 일본 출신 요코즈나(천하장사)였던 기세노사토(稀勢の里)가 성적 부진 끝에 은퇴를 선언하면서 일본의 국기라는 '스모'의 천하장사에는 이제 몽골 출신의 하쿠호(白鵬)와 가쿠류(鶴龍)만 남게 됐다.

NHK가 은퇴 기자회견을 실시간 속보로 전하고 일본 언론들이 매시간 주요 뉴스로 다루는 등 일본인 요코즈나의 퇴진을 전하며 충격과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19년 만의 일본인 천하장사

전 요코즈나 ‘기세노사토’
일본 사회가 기세노사토의 은퇴에 충격을 받은 이유는 그가 19년 만에 탄생한 소중한(?) 일본인 요코즈나이기 때문이다.

일본 스모에서 외국 출신 스모 선수가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다. 1993년 하와이 출신의 '아케보노'가 처음 외국인 요코즈나가 되면서 일본 스모는 외국 출신 선수들에게 점령당하기 시작했다.

아케보노 이후 탄생한 스모의 천하장사 요코즈나는 모두 9명. 하지만 그 가운데 6명은 외국 출신이었고, 특히 2003년 이후로는 몽골 출신 4명이 잇따라 요코즈나에 올랐다.

몽골도 '몽골 씨름'의 전통이 있는 곳. 일본의 스모 도장(스모 선수가 소속돼 기량을 닦고 출전하는 팀)들은 10대의 어린 몽골 소년들을 데려와 몸집을 키우고 훈련을 시켜 스모 선수로 길러냈다. 유목 민족 특유의 강골에, 성공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몽골 출신들을 강하게 만들었고, 일본의 역사들은 맥을 추지 못했다.

그러던 중에 혜성처럼 나타난 것이 기세노사토다.

18세에 본격 성인 스모 무대에 등장해, 2011년 규슈 대회에서 당시 63연승을 달리던 절대 강자 요코즈나 하쿠호를 꺾으면서 일본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마침내 2017년 1월 요코즈나에 오르면서 일본 스모계의 비원이었던, 일본인 출신 천하장사를 배출하기에 이른다.


따라주지 않았던 성적...결국 불명예 퇴진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였다.

2017년 봄 대회에서 당시 요코즈나였던 하루마후지와 겨루던 중 상체가 먼저 떨어지면서 왼쪽 가슴과 팔을 다쳤다. 이후 가을 대회에 부상을 무릅쓰고 출전해 우승했지만, 이후에는 부진을 면치 못했다.

1년에 6차례 열리는 대회에 출전하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졌고 8개 대회 연속 경기에 나서지 못하다가 지난해 9월 경기에 다시 복귀했지만 10승 5패로 성적은 좋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규슈 경기에 다시 나섰지만, 요코즈나로서는 87년 만에 4연패를 당한 후 오른쪽 무릎 부상을 이유로 중도에 경기 출장을 포기했고, 심기일전해 올해 첫 봄 대회에 나섰지만 첫날부터 내리 3연패를 당하면서 결국 은퇴에 이르게 됐다.

지난 대회 부진 후 일본 요코즈나 심의위원회로부터 좀 더 분발하라는 '격려' 결의를 받았는데, 단어는 '격려'지만 사실상 질책성 결정이어서 이번 대회의 성적이 좋지 않을 경우 '요코즈나'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전망이 우세했다. 결국, 성적이 따라주지 못하면서 사실상 강제 은퇴 수순에 들어간 셈이다.

일본 언론들은 불과 2년 만에 일본인 요코즈나의 자리가 사라졌다며 연신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몽골의 스모 평정, 일본 국민의 자존심을 꺾다.

현재 일본 스모계의 최강자는 '하쿠호'다. 2007년 요코즈나에 오른 뒤 41회 우승, 63연승, 승률 84%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워가고 있다. 우승 횟수, 연승 횟수, 승률 등 모든 면에서 일본 스모계의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괴력의 사나이다.

몽골 출신 요코즈나 ‘하쿠호’
여기에 가쿠류가 통상 우승 5회로 요코즈나를 유지하고 있어 당분간 몽골 요코즈나 쌍두 체제가 될 전망이다. 후배를 맥주병으로 때려 2017년 스모계를 떠난 전 요코즈나 하르마후지가 당시 9회 우승을 차지하며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음을 볼 때 불상사 없었다면 현재 일본 스모는 3명의 몽골인 요코즈나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을 것이다.

몽골 출신 요코즈나 ‘가쿠류’
몽골 출신 전 요코즈나 ‘하르마후지’

이 같은 몽골 스모 강세에 일본 스포츠 신문 등에서는 몽골 국적의 하쿠호가 일본에 귀화할지도 모른다는 희망(?) 섞인 보도를 심심치 않게 내보내는 실정이니, 이것만 봐도 일본이 자국 천하장사에 얼마나 목말라 있는지 보여준다.

일본 스모협회는 외국인 선수들이 강세를 보이자 1992년 한 도장에 외국인 2명으로 숫자를 제한했고, 이를 2002년에는 한 도장에 원칙적으로 외국인 선수 1명으로 강화하며 일본 출신 선수를 키우기 위해 애쓰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지난해 9월 대회를 보면 몽골 출신 22명이 빼어난 실력을 보여주고 있어, 절대적으로 적은 숫자에도 불구하고 일본 세를 압도하는 실정이다. 이 밖에도 그루지야, 이집트, 브라질, 헝가리 등 몽골을 포함해 모두 33명의 일본 국적 외 선수들이 스모에서 활약 중이다.

2011년 승부조작 사건 후 본 경기의 입장권이 절반도 팔리지 않는 혹독한 시절을 겪었던 일본 스모계는 일본인 요코즈나의 탄생으로 다시금 부흥기를 맞았지만, 이번 기세노사토의 불명예 퇴진으로 어떤 파문이 생겨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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