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격차 확대]⑦ 비정규직, 20년간 바뀐 건 더 벌어진 임금 격차

입력 2019.04.18 (08:00) 수정 2019.05.2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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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고성, 강릉 등 강원도 일대에서 동시에 발생한 산불은 모든 국민들을 긴장시켰다. 화재 당시 빠른 정부의 대처로 진화 작업이 신속하게 이뤄지면서 화재 진압 뒤에 숨은 주역이었던 산불재난 특수진화대에 국민들의 관심이 쏠렸다. 불길이 번지는 산에 직접 무거운 소방 호스를 들고 들어가 불을 끄는 이들은 산림청 소속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위험을 감수하고 불을 끈 뒤 하루 받는 돈은 일당 10만 원. 그나마 10개월 단기계약직으로, 이런 비정규직 특수진화대원은 산림청에 330명이 일하고 있다.

IMF 요구로 1998년 곧바로 시행된 비정규직 관련 노동법

소득격차 확대의 주요인으로 작용한 비정규직이 크게 늘어난 시기는 IMF 외환위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6년 12월 26일 김영삼 정권 당시 날치기로 통과시킨 노동법이 노동계의 강력한 반발로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는 2년 유예로 재정리됐지만, IMF 요구에 따라 1998년 곧바로 시행에 들어갔다. 기업들은 정규직 노동자를 정리해고하고 그 자리에 ‘비정규직’노동자를 밀어 넣었다. 쉽게 노동자를 자르고, 적은 임금으로 비정규직을 고용해 짧게 쓰고 또 다른 비정규직을 썼다. 기업들은 적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수익이 늘었고, 비정규직 노동자는 불안한 삶을 이어가게 됐다.

■ 10명 중 3~4명은 비정규직

정부 기준으로 비정규직은 2003년 462만 2천 명에서 2018년 661만 명으로 1.4배 늘어났다. 전체 임금노동자 중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2년 27.4%에서 2017년 32.9%, 2018년엔 33%를 기록했다. 하지만 노동계가 파악하는 비정규직 숫자는 크게 차이가 난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조사 결과 IMF 이후 2002년 772만 명까지 늘어났던 비정규직 숫자는 2004년 8백만 명대로 올라간 뒤 2016년 873만 7천 명까지 올라갔다가 2018년 820만 명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임금노동자 중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2년 56.6% 최고를 찍은 뒤 2018년 40.9%로 비중은 줄어들었지만, 정부 조사와 큰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정부 통계이든 노동계 통계이든 임금노동자 10명 중 3~4명은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얘기다.

2007년부터 비정규직 보호법이 시행됐지만, 법 취지와 달리 계약직 노동자 대부분은 고용 기간 2년을 초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되기보다는 2년 뒤 잘리는 역효과가 발생했다. 비정규직 보호법은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것은 막았지만 줄이는 데는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

■ 비정규직 근속 기간, 정규직의 1/3

비정규직 노동자는 고용의 안정성과 임금 모두에서 차별을 받는다. 우선 안정성 측면에서는 언제 잘릴지 모르고 근속기간 자체가 짧다. 통계청 조사 결과 2018년 기준 정규직의 평균 근속기간은 7년 9개월이며, 비정규직은 2년 7개월로 정규직의 3분의 1수준이다. 또 비정규직 가운데 기간제는 2년 5개월, 비정규직 시간제는 1년 9개월로 비정규직 노동자가 2년을 주기로 직장을 옮겨다니고 있다는 얘기다.


앞선 기사에서도 전했지만, 근속기간이 짧으면 근속에 따른 임금 상승의 여력이 작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가뜩이나 적은 임금으로 시작해서 임금이 조금 올라가다 말고 다시 다른 직장으로 옮겨다니다보면 박봉의 삶만 반복되는 것이다. 메뚜기처럼 직장을 옮겨 다녀야 하니 직업의 불안정성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 비정규직 임금, 정규직의 절반…20년간 임금 격차 더 벌어졌다

통계청 통계로 보면 정규직 임금을 100으로 했을 때 비정규직 임금 수준은 2018년 54.6%를 기록했다. 2002년 임금수준이 67.1%였던 점을 비교하면 16년 사이 12.5%p 격차가 더 벌어진 것이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기록했지만, 비정규직들에겐 오히려 박탈감만 안겨준 지난 세월이었다. 그나마 정부 통계가 이 정도이고, 노동계 통계는 훨씬 더 격차가 크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조사 결과 지난해 정규직 평균 임금은 월 321만 원, 비정규직은 월 163만 원이었다. 비중으로 보면 비정규직 임금이 정규직의 50.7%로 정규직의 절반 임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나마 2000년 정규직의 53.7% 임금 수준에서 18년 사이 격차가 더 벌어졌으며, IMF 때 통계가 없을 뿐이지 20년간 임금 격차도 비슷한 수준으로 벌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1998년 IMF의 노동시장 유연화 요구사항으로 확산된 '비정규직 일자리 양산'은 지난 세월 불안정한 일자리에 정규직의 절반 수준인 값싼 임금으로 노동자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여론조사한 결과에서도 우리 국민들은 '20년 전 IMF 외환위기가 비정규직 문제를 확산시켰다(88.8%)'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정규직 문제는 IMF 이후 오히려 더 커지면 커졌지 줄어들지 않았다.

비정규직이 반드시 해결돼야 할 문제라는 걸 알지만, 어느 정권도 속시원하게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 해왔다. 아니 오히려 이를 양산하는 정권도 있었다. 문재인 정부도 노동시장의 핵심적인 정책과제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기치로 내걸고 공공부문부터 정규직전환을 추진하고 있지만, 곳곳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다음 편에선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실태와 문제점 등을 짚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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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득격차 확대]⑦ 비정규직, 20년간 바뀐 건 더 벌어진 임금 격차
    • 입력 2019-04-18 08:00:33
    • 수정2019-05-29 17:53:20
    취재K
이달 초 고성, 강릉 등 강원도 일대에서 동시에 발생한 산불은 모든 국민들을 긴장시켰다. 화재 당시 빠른 정부의 대처로 진화 작업이 신속하게 이뤄지면서 화재 진압 뒤에 숨은 주역이었던 산불재난 특수진화대에 국민들의 관심이 쏠렸다. 불길이 번지는 산에 직접 무거운 소방 호스를 들고 들어가 불을 끄는 이들은 산림청 소속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위험을 감수하고 불을 끈 뒤 하루 받는 돈은 일당 10만 원. 그나마 10개월 단기계약직으로, 이런 비정규직 특수진화대원은 산림청에 330명이 일하고 있다.

IMF 요구로 1998년 곧바로 시행된 비정규직 관련 노동법

소득격차 확대의 주요인으로 작용한 비정규직이 크게 늘어난 시기는 IMF 외환위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6년 12월 26일 김영삼 정권 당시 날치기로 통과시킨 노동법이 노동계의 강력한 반발로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는 2년 유예로 재정리됐지만, IMF 요구에 따라 1998년 곧바로 시행에 들어갔다. 기업들은 정규직 노동자를 정리해고하고 그 자리에 ‘비정규직’노동자를 밀어 넣었다. 쉽게 노동자를 자르고, 적은 임금으로 비정규직을 고용해 짧게 쓰고 또 다른 비정규직을 썼다. 기업들은 적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수익이 늘었고, 비정규직 노동자는 불안한 삶을 이어가게 됐다.

■ 10명 중 3~4명은 비정규직

정부 기준으로 비정규직은 2003년 462만 2천 명에서 2018년 661만 명으로 1.4배 늘어났다. 전체 임금노동자 중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2년 27.4%에서 2017년 32.9%, 2018년엔 33%를 기록했다. 하지만 노동계가 파악하는 비정규직 숫자는 크게 차이가 난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조사 결과 IMF 이후 2002년 772만 명까지 늘어났던 비정규직 숫자는 2004년 8백만 명대로 올라간 뒤 2016년 873만 7천 명까지 올라갔다가 2018년 820만 명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임금노동자 중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2년 56.6% 최고를 찍은 뒤 2018년 40.9%로 비중은 줄어들었지만, 정부 조사와 큰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정부 통계이든 노동계 통계이든 임금노동자 10명 중 3~4명은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얘기다.

2007년부터 비정규직 보호법이 시행됐지만, 법 취지와 달리 계약직 노동자 대부분은 고용 기간 2년을 초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되기보다는 2년 뒤 잘리는 역효과가 발생했다. 비정규직 보호법은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것은 막았지만 줄이는 데는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

■ 비정규직 근속 기간, 정규직의 1/3

비정규직 노동자는 고용의 안정성과 임금 모두에서 차별을 받는다. 우선 안정성 측면에서는 언제 잘릴지 모르고 근속기간 자체가 짧다. 통계청 조사 결과 2018년 기준 정규직의 평균 근속기간은 7년 9개월이며, 비정규직은 2년 7개월로 정규직의 3분의 1수준이다. 또 비정규직 가운데 기간제는 2년 5개월, 비정규직 시간제는 1년 9개월로 비정규직 노동자가 2년을 주기로 직장을 옮겨다니고 있다는 얘기다.


앞선 기사에서도 전했지만, 근속기간이 짧으면 근속에 따른 임금 상승의 여력이 작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가뜩이나 적은 임금으로 시작해서 임금이 조금 올라가다 말고 다시 다른 직장으로 옮겨다니다보면 박봉의 삶만 반복되는 것이다. 메뚜기처럼 직장을 옮겨 다녀야 하니 직업의 불안정성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 비정규직 임금, 정규직의 절반…20년간 임금 격차 더 벌어졌다

통계청 통계로 보면 정규직 임금을 100으로 했을 때 비정규직 임금 수준은 2018년 54.6%를 기록했다. 2002년 임금수준이 67.1%였던 점을 비교하면 16년 사이 12.5%p 격차가 더 벌어진 것이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기록했지만, 비정규직들에겐 오히려 박탈감만 안겨준 지난 세월이었다. 그나마 정부 통계가 이 정도이고, 노동계 통계는 훨씬 더 격차가 크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조사 결과 지난해 정규직 평균 임금은 월 321만 원, 비정규직은 월 163만 원이었다. 비중으로 보면 비정규직 임금이 정규직의 50.7%로 정규직의 절반 임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나마 2000년 정규직의 53.7% 임금 수준에서 18년 사이 격차가 더 벌어졌으며, IMF 때 통계가 없을 뿐이지 20년간 임금 격차도 비슷한 수준으로 벌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1998년 IMF의 노동시장 유연화 요구사항으로 확산된 '비정규직 일자리 양산'은 지난 세월 불안정한 일자리에 정규직의 절반 수준인 값싼 임금으로 노동자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여론조사한 결과에서도 우리 국민들은 '20년 전 IMF 외환위기가 비정규직 문제를 확산시켰다(88.8%)'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정규직 문제는 IMF 이후 오히려 더 커지면 커졌지 줄어들지 않았다.

비정규직이 반드시 해결돼야 할 문제라는 걸 알지만, 어느 정권도 속시원하게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 해왔다. 아니 오히려 이를 양산하는 정권도 있었다. 문재인 정부도 노동시장의 핵심적인 정책과제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기치로 내걸고 공공부문부터 정규직전환을 추진하고 있지만, 곳곳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다음 편에선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실태와 문제점 등을 짚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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