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약물중독자입니다]① ‘익명의 약물중독자들’(N·A)과 만나다

입력 2019.05.14 (07:00) 수정 2019.05.29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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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화요일 저녁 7시, 서울 압구정동 학동역 인근에는 20대 여성부터 예순을 넘은 할아버지까지 한자리에 모입니다. 서로를 마주 보며 앉은 이들은 입을 모아 말합니다. "나는 약물에 무력했습니다."

국내 4곳뿐인 '익명의 약물 중독자들'(Narcotics Anonymous), 'N·A 모임' 중 가장 오래된 이른바 '학동 모임'입니다. N·A는 '단약'(斷藥, 약물을 끊는 것)을 위해 경험을 나누는 약물 중독자 자조 모임입니다.

과거 소수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마약을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게 됐습니다. 우리 사회 곳곳으로 번진 마약 문제의 해결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마약 세계의 내부자들을 찾았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KBS 디지털 공간에 연재합니다. '학동 모임'과 그곳에서 만난 중독자 A의 이야기로 연재의 문을 엽니다.


어느 화요일, N·A 학동 모임을 찾았습니다. 경찰에 구속되는 '피의자'로만 접하던 약물 중독자들을 만날 생각에 긴장이 됐습니다. 긴 탁자가 하나 놓인 작은 회의실에 N·A 회원들 15명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 기자의 긴장이 무색하게 평온합니다. 담소를 나누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 모습은 여느 친목 모임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서로 성씨나 이름을 부르는 대신 '중독자김', '관악이' 등 익명의 호칭으로 부릅니다. 그때에야 새삼 이 모임이 N·A로 느껴지는 정도입니다.

시계가 정각 7시를 가리키자 모임이 시작됐습니다. 단약(斷藥)을 다짐하는 N·A의 지침을 읽은 후 각자의 경험담을 나눕니다. 중독을 넘어 새로운 삶을 직면하려는 이들의 고백은 글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무거웠습니다.

"7번 체포, 6번 구속, 5번 투옥 '바닥 치고' 단약 시작"…중독자 A의 이야기

중독자 A가 입을 열었습니다. A의 어머니는 알코올중독이었습니다. A는 20대에 고향에서 대마초와 마리화나를 시작해 태국에서 필로폰을 배웠고, 귀국해서는 마약 투약에 유통까지 했습니다. 모두 7번 경찰에 형사 입건됐고, 이 가운데 6번은 구속 수사를 받았습니다. 초범일 때는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지만, 이후엔 벌금형 한 번을 빼고 5차례에 걸쳐 5년 넘게 징역을 살았습니다. A가 과거를 회상하며 반성하자 다른 참석자들은 "감사합니다"하고 박수를 쳐줬습니다.

며칠 뒤, 서울 목동에 위치한 약물 중독자 재활 시설에서 A를 다시 만났습니다. A는 N·A 뿐만 아니라 A·A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들, Alcoholics Anonymous)도 다니며 2년 8개월 동안 단약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단약 전엔 꿈도 꾸지 못했던 규칙적인 일도 하고 있습니다.

A가 단약을 다짐할 때마다 본다는 N·A 메달A가 단약을 다짐할 때마다 본다는 N·A 메달

"아버지 무덤에 갈 때도 약을 하고 가더라고요."

A가 처음 감옥에 투옥된 건 2013년입니다. 성동구치소에서 징역 8개월을 살고 나온 당일, A는 먼저 출소한 '후배'가 가져온 필로폰을 투약했습니다. 이런 '출소뽕'을 그는 3번 경험했습니다. (약물중독자는 출소 직후 다시 마약을 투약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투옥 기간이 1년 2개월도 있고, 1년 4개월도 있었는데 단약이 전혀 안 되더라고요. 그게 정말 신기했습니다." A가 말했습니다.

2016년 3월 27일을 A는 절대 잊지 못합니다. 투옥돼 있던 A에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동생한테 연락이 왔더라고요. 근데 동생이 나를 데리러 못 와서 아버지 장례식에 참석을 못 했어요. 피눈물을 흘리면서 108배를 하고 단약하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리고 넉 달 뒤, A는 출소했습니다. "출소하고, 아버지 산소를 찾아가려고 하는데도 그때도 내가 투약을 하고 가더라고요…. 그렇게 결심을 했는데…. 그래서 그때부터는 내가 진짜, 아 이거는 정말… 끊을 수가 없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죠."

"처음에는 쾌락을 느끼려고, 나중에는 생활하려고"…마약의 늪

호기심에 접한 마약은 헤어나올 수 없는 '지옥의 늪'이 됩니다. "처음에는 내가 쾌감을 느끼려고 하다가 나중에는 이게(기분이) 떨어져요. 굉장한 무력감과, 그걸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허탈감, 우울감, 이런 게 와요. 그럼 일상생활이 안 돼요. 투약을 해야 내가 밥을 먹을 수 있는 거예요." A는 담담히 설명했습니다.

검찰 통계에 따르면, 마약류 사범의 재범률은 30%, 특히 향정신성의약품(필로폰, 엑스터시 등)의 경우 2017년 기준으로 40%대에 달합니다. 수사기관에 적발되지 않는 경우를 고려하면 재범률은 훨씬 높아집니다. 한번 투약했던 사람들은 "무조건 다시 투약한다"고 말합니다.

재활 시작했지만 다시 경찰에 붙잡혀…기적 같은 '불구속' 기소

2016년 10월, A는 무작정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시립은평병원에 들어가서 의사 선생님한테, 정말 인간의 힘으로 안 되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하면서 손을 잡았어요. 또 구속될 게 뻔한 그런 상황이었죠." 우리나라에서 무료로 마약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곳은 시립은평병원과 인천참사랑병원이 사실상 전부입니다.

퇴원 후엔 민간 재활 시설에 입소해 매일 A·A 모임을 다니며 단약을 이어갔습니다. 국내 A·A는 N·A보다 훨씬 활성화돼 있습니다. 그렇게 희망을 찾아가던 때, 다시 경찰이 찾아왔습니다.

A의 노트. ‘석방일기’에는 경찰이 A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고 불구속으로 검찰에 송치한 내용이 담겨있다. 첫 장 마지막 문장에 “담당 형사님들 감사드립니다”라고 적혀있다.A의 노트. ‘석방일기’에는 경찰이 A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고 불구속으로 검찰에 송치한 내용이 담겨있다. 첫 장 마지막 문장에 “담당 형사님들 감사드립니다”라고 적혀있다.

"원래 마약사범과 경찰들 관계는 정말 안 좋거든요. 마약사범은 워낙 거짓말을 계속하니까, 경찰이 아예 말을 무시하고…. 근데 내가 경찰서에 가서 온전히 앉아서 있는 그대로 이야기를 하니까, 반장님이 처음으로 저를 불구속으로 놓아주더라고요. 놀랍지..."

경찰은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로 보냈습니다. 하지만 검사는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남부지검 젊은 검사님이 나를 부르더니만, "당신이 왜 밖에 나와있어요?" 이러더라고요. 자기가 보기엔 이해가 안 되는 거거든, 내가 전과 6범에다가 투약 횟수도 적은 게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교부한 적도 있고 이런데. 검사님이 제 구속영장 칠(청구할) 거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그게 받아들여 지더라고, 예전 같으면 벌써 도망치고 없었지. 한 2주 있으니까 실질심사 받으러 오라고 연락이 왔더라고. 가니까 형사가 수갑을 채우더라고요. 제가 형사한테 검사님 한 번만 만나게 해주십시오,했죠.

검사님 만나니까 제가 전혀 두려움 없이 말하더라고요. 검사님, 제가 약물로만 계속 구속된 전과자입니다. 하지만 처음 시작은 제가 이렇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렇게 하려고 범죄자가 되려고 약물을 투약했겠습니까. 10년 동안 교도소 생활 다섯 번 해도 단약이 안되더라고요. 꼭 투옥만이, 구속시키는 것 만이 단약의 길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검사님도 제 진정성이 느껴지는지 "충분히 제가 공감을 합니다. 근데 이게 제 일입니다" 이러시더라고요. 그때 제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수사하는 사람들과의 그런 정말 거부감들이 없어지더라고요.

실질심사에서 판사님이 하실 말씀 없냐고 묻기에, 제가 구속의 기회를 제 단약의 기회로 삼겠습니다, 그랬어요. 그리고 남부구치소에 대기하는데 23명 중에 내 이름만 부르더라고. (영장이 기각됐다고) 나오라고. 기적 같은 일이지."

A의 책상 위에 A·A(익명의 알코올 중독자들) 서적과 수첩이 놓여져 있다. N·A는 A·A에서 파생돼 나온 조직이다. A·A는 국내에 9개 지역 지부가 있을 정도로 활발하게 운영되지만 N·A는 공식적으로 전국 4곳만 운영되고 있다.A의 책상 위에 A·A(익명의 알코올 중독자들) 서적과 수첩이 놓여져 있다. N·A는 A·A에서 파생돼 나온 조직이다. A·A는 국내에 9개 지역 지부가 있을 정도로 활발하게 운영되지만 N·A는 공식적으로 전국 4곳만 운영되고 있다.

A는 출소 후 재활 시설에서 지내며 주말도 쉬지 않고 매일 N·A와 A·A 모임을 나갑니다. A는 약물중독이라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평생 N·A를 나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담배는, 해로운 걸 아니까 금연하러 오고 하잖아요. 근데 약물은 그보다 훨씬 더 고통과 피해가 심하다는 거, 그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단순히 호기심과 쾌감만 있고 그 뒤는 전혀 모르잖아요. 이게 덮여있는 부분이거든요.

그걸 감춰두고 접어두고만 하지 말고 이제는 공론화해서, 문제다, 이거는 우리 사회에서 언제든지 더 퍼질 수 있고, 이것이 문제 될 수 있다, 말하고, 치료와 회복으로 가는 방향을 제시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약물중독자입니다]② 시약기(試藥器) 비웃는 마약의 진화, 몸은 기억한다’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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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약물중독자입니다]① ‘익명의 약물중독자들’(N·A)과 만나다
    • 입력 2019-05-14 07:00:12
    • 수정2019-05-29 17:35:43
    취재K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서울 압구정동 학동역 인근에는 20대 여성부터 예순을 넘은 할아버지까지 한자리에 모입니다. 서로를 마주 보며 앉은 이들은 입을 모아 말합니다. "나는 약물에 무력했습니다."

국내 4곳뿐인 '익명의 약물 중독자들'(Narcotics Anonymous), 'N·A 모임' 중 가장 오래된 이른바 '학동 모임'입니다. N·A는 '단약'(斷藥, 약물을 끊는 것)을 위해 경험을 나누는 약물 중독자 자조 모임입니다.

과거 소수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마약을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게 됐습니다. 우리 사회 곳곳으로 번진 마약 문제의 해결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마약 세계의 내부자들을 찾았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KBS 디지털 공간에 연재합니다. '학동 모임'과 그곳에서 만난 중독자 A의 이야기로 연재의 문을 엽니다.


어느 화요일, N·A 학동 모임을 찾았습니다. 경찰에 구속되는 '피의자'로만 접하던 약물 중독자들을 만날 생각에 긴장이 됐습니다. 긴 탁자가 하나 놓인 작은 회의실에 N·A 회원들 15명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 기자의 긴장이 무색하게 평온합니다. 담소를 나누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 모습은 여느 친목 모임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서로 성씨나 이름을 부르는 대신 '중독자김', '관악이' 등 익명의 호칭으로 부릅니다. 그때에야 새삼 이 모임이 N·A로 느껴지는 정도입니다.

시계가 정각 7시를 가리키자 모임이 시작됐습니다. 단약(斷藥)을 다짐하는 N·A의 지침을 읽은 후 각자의 경험담을 나눕니다. 중독을 넘어 새로운 삶을 직면하려는 이들의 고백은 글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무거웠습니다.

"7번 체포, 6번 구속, 5번 투옥 '바닥 치고' 단약 시작"…중독자 A의 이야기

중독자 A가 입을 열었습니다. A의 어머니는 알코올중독이었습니다. A는 20대에 고향에서 대마초와 마리화나를 시작해 태국에서 필로폰을 배웠고, 귀국해서는 마약 투약에 유통까지 했습니다. 모두 7번 경찰에 형사 입건됐고, 이 가운데 6번은 구속 수사를 받았습니다. 초범일 때는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지만, 이후엔 벌금형 한 번을 빼고 5차례에 걸쳐 5년 넘게 징역을 살았습니다. A가 과거를 회상하며 반성하자 다른 참석자들은 "감사합니다"하고 박수를 쳐줬습니다.

며칠 뒤, 서울 목동에 위치한 약물 중독자 재활 시설에서 A를 다시 만났습니다. A는 N·A 뿐만 아니라 A·A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들, Alcoholics Anonymous)도 다니며 2년 8개월 동안 단약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단약 전엔 꿈도 꾸지 못했던 규칙적인 일도 하고 있습니다.

A가 단약을 다짐할 때마다 본다는 N·A 메달
"아버지 무덤에 갈 때도 약을 하고 가더라고요."

A가 처음 감옥에 투옥된 건 2013년입니다. 성동구치소에서 징역 8개월을 살고 나온 당일, A는 먼저 출소한 '후배'가 가져온 필로폰을 투약했습니다. 이런 '출소뽕'을 그는 3번 경험했습니다. (약물중독자는 출소 직후 다시 마약을 투약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투옥 기간이 1년 2개월도 있고, 1년 4개월도 있었는데 단약이 전혀 안 되더라고요. 그게 정말 신기했습니다." A가 말했습니다.

2016년 3월 27일을 A는 절대 잊지 못합니다. 투옥돼 있던 A에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동생한테 연락이 왔더라고요. 근데 동생이 나를 데리러 못 와서 아버지 장례식에 참석을 못 했어요. 피눈물을 흘리면서 108배를 하고 단약하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리고 넉 달 뒤, A는 출소했습니다. "출소하고, 아버지 산소를 찾아가려고 하는데도 그때도 내가 투약을 하고 가더라고요…. 그렇게 결심을 했는데…. 그래서 그때부터는 내가 진짜, 아 이거는 정말… 끊을 수가 없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죠."

"처음에는 쾌락을 느끼려고, 나중에는 생활하려고"…마약의 늪

호기심에 접한 마약은 헤어나올 수 없는 '지옥의 늪'이 됩니다. "처음에는 내가 쾌감을 느끼려고 하다가 나중에는 이게(기분이) 떨어져요. 굉장한 무력감과, 그걸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허탈감, 우울감, 이런 게 와요. 그럼 일상생활이 안 돼요. 투약을 해야 내가 밥을 먹을 수 있는 거예요." A는 담담히 설명했습니다.

검찰 통계에 따르면, 마약류 사범의 재범률은 30%, 특히 향정신성의약품(필로폰, 엑스터시 등)의 경우 2017년 기준으로 40%대에 달합니다. 수사기관에 적발되지 않는 경우를 고려하면 재범률은 훨씬 높아집니다. 한번 투약했던 사람들은 "무조건 다시 투약한다"고 말합니다.

재활 시작했지만 다시 경찰에 붙잡혀…기적 같은 '불구속' 기소

2016년 10월, A는 무작정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시립은평병원에 들어가서 의사 선생님한테, 정말 인간의 힘으로 안 되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하면서 손을 잡았어요. 또 구속될 게 뻔한 그런 상황이었죠." 우리나라에서 무료로 마약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곳은 시립은평병원과 인천참사랑병원이 사실상 전부입니다.

퇴원 후엔 민간 재활 시설에 입소해 매일 A·A 모임을 다니며 단약을 이어갔습니다. 국내 A·A는 N·A보다 훨씬 활성화돼 있습니다. 그렇게 희망을 찾아가던 때, 다시 경찰이 찾아왔습니다.

A의 노트. ‘석방일기’에는 경찰이 A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고 불구속으로 검찰에 송치한 내용이 담겨있다. 첫 장 마지막 문장에 “담당 형사님들 감사드립니다”라고 적혀있다.
"원래 마약사범과 경찰들 관계는 정말 안 좋거든요. 마약사범은 워낙 거짓말을 계속하니까, 경찰이 아예 말을 무시하고…. 근데 내가 경찰서에 가서 온전히 앉아서 있는 그대로 이야기를 하니까, 반장님이 처음으로 저를 불구속으로 놓아주더라고요. 놀랍지..."

경찰은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로 보냈습니다. 하지만 검사는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남부지검 젊은 검사님이 나를 부르더니만, "당신이 왜 밖에 나와있어요?" 이러더라고요. 자기가 보기엔 이해가 안 되는 거거든, 내가 전과 6범에다가 투약 횟수도 적은 게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교부한 적도 있고 이런데. 검사님이 제 구속영장 칠(청구할) 거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그게 받아들여 지더라고, 예전 같으면 벌써 도망치고 없었지. 한 2주 있으니까 실질심사 받으러 오라고 연락이 왔더라고. 가니까 형사가 수갑을 채우더라고요. 제가 형사한테 검사님 한 번만 만나게 해주십시오,했죠.

검사님 만나니까 제가 전혀 두려움 없이 말하더라고요. 검사님, 제가 약물로만 계속 구속된 전과자입니다. 하지만 처음 시작은 제가 이렇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렇게 하려고 범죄자가 되려고 약물을 투약했겠습니까. 10년 동안 교도소 생활 다섯 번 해도 단약이 안되더라고요. 꼭 투옥만이, 구속시키는 것 만이 단약의 길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검사님도 제 진정성이 느껴지는지 "충분히 제가 공감을 합니다. 근데 이게 제 일입니다" 이러시더라고요. 그때 제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수사하는 사람들과의 그런 정말 거부감들이 없어지더라고요.

실질심사에서 판사님이 하실 말씀 없냐고 묻기에, 제가 구속의 기회를 제 단약의 기회로 삼겠습니다, 그랬어요. 그리고 남부구치소에 대기하는데 23명 중에 내 이름만 부르더라고. (영장이 기각됐다고) 나오라고. 기적 같은 일이지."

A의 책상 위에 A·A(익명의 알코올 중독자들) 서적과 수첩이 놓여져 있다. N·A는 A·A에서 파생돼 나온 조직이다. A·A는 국내에 9개 지역 지부가 있을 정도로 활발하게 운영되지만 N·A는 공식적으로 전국 4곳만 운영되고 있다.
A는 출소 후 재활 시설에서 지내며 주말도 쉬지 않고 매일 N·A와 A·A 모임을 나갑니다. A는 약물중독이라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평생 N·A를 나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담배는, 해로운 걸 아니까 금연하러 오고 하잖아요. 근데 약물은 그보다 훨씬 더 고통과 피해가 심하다는 거, 그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단순히 호기심과 쾌감만 있고 그 뒤는 전혀 모르잖아요. 이게 덮여있는 부분이거든요.

그걸 감춰두고 접어두고만 하지 말고 이제는 공론화해서, 문제다, 이거는 우리 사회에서 언제든지 더 퍼질 수 있고, 이것이 문제 될 수 있다, 말하고, 치료와 회복으로 가는 방향을 제시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약물중독자입니다]② 시약기(試藥器) 비웃는 마약의 진화, 몸은 기억한다’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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