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쓸모] ‘봉준호 영화’는 왜 예술인가?

입력 2019.05.16 (08:46) 수정 2019.05.16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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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영화와 함께 쓸모 있는 이야기 나눠보는 순서죠 영화의 쓸모 시간입니다.

영화평론가 송형국 기자 나와있습니다.

송기자, 오늘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을 가지고 오셨다고요?

[기자]

네, 지구촌 최대의 영화 잔치죠 올해 칸국제영화제가 어제 개막했습니다.

이번에 봉준호 감독의 새 작품이 경쟁부문에 초청됐습니다.

사실 칸영화제 출품된 예술영화 하면 왠지 어려울 것 같고 지루할 것 같기도 하고요.

반면에 우리가 쉽게 보는 상업 장르영화다 그러면 재미는 있는데 남는 건 없을 거 같고 그런 생각도 없지 않은데요.

봉준호 감독은 이 양쪽이 둘 다 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봉 감독의 이전 작품들을 보면서 재밌는 건 알겠는데 왜 예술적이다라고 하는 건지 함께 말씀 나눠보겠습니다.

한국시간으로 어제 새벽 칸영화제 개막식 장면입니다.

기라성 같은 거장 감독과 배우들의 모습이 보이는데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오는 22일 세계 최초로 이곳에서 공개되고 경쟁부문에서 경합을 벌이게 됩니다.

봉준호 감독이 이렇게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이유가 여러가지 있을텐데요.

무엇보다 관객의 긴장과 이완 사이를 넘나드는 리듬이 아주 탁월합니다.

주인공을 화면 밖으로 빼서 순간 궁금하게 만드는 이런 리듬감도 흥미롭구요.

마치 압력밥솥처럼, 뭔가 잔뜩 응축돼있다가 터져나오는 느낌을 굉장히 효과적으로 연출합니다.

이게 그냥 잔재주가 아니고 영화의 내용, 맥락하고 이어지니까 예술이다라고 하는 걸텐데요.

80년대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이 작품은.

["찾아보나 마나래두 글쎄."]

당시 공권력의 무능함, 패배감, 이런 것들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레인코트에 검은 눈동자~"]

어떤 일이 폭발하기 전에 공권력이 해야 할 일을 감지하고 조치했더라면 불행한 일들을 막을 수 있었을텐데 하는 심정을 담습니다.

["여섯! 일곱! 하지 마!"]

이런 심정을 폭발 직전의 긴장감과 함께 팽팽하게 잡아당겼다가 터뜨리는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본 것, 사실이라고 믿는 것, 이게 얼마나 진실에 가까울까, 아닐 수 있다, 우리는 알기 어렵다, 이런 주제가 봉감독 작품에 굉장히 많이 들어있는데요.

["모르겠다..."]

봉준호 감독이 인물의 얼굴을 활용하는 솜씨를 보면, 옆모습을 따라갈 때 관객은 이 사람의 시선 방향, 인물 외부에 신경을 쓰게 되고 정면을 볼 때는 이 사람의 내면, 인물의 심정에 더 빠져들게 되죠.

["중요한 거. 그니까 뭐."]

이렇게 옆모습이냐 앞모습이냐에 따라서 두 인물 사이의 주도권을 표현한 장면입니다.

진실을 쫓는 자들의 옆모습과 진실을 알고 있을 것만 같은 자의 앞모습을 이렇게 충돌시켜서 이번엔 범인을 잡을 수 있을까 하는 관객 각자의 상상의 영역을 넓히는 방식으로 화면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앵커]

네, '영화는 화면으로 이야기한다' 이런 말이 실감나는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영화의 대사나 스토리, 이런 내용도 중요하지만 촬영과 편집을 어떻게 했느냐, 이런 형식적인 부분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런 말씀이겠네요.

[기자]

그렇습니다.

예술 분야에서 음악이라면 소리가 그 언어고요.

미술은 빛, 색깔, 이런 걸 언어로 사용한다고 할 수 있겠죠.

그러면 영화는 영상을 언어로 하니까 영상의 표현 방식을 얼마나 풍성하게 했느냐가 같은 내용을 얘기하더라도 말하자면 어휘력이 얼마나 풍부한가, 이런 게 될 테고 이런 것들을 보면서 우리는 작품성이 뛰어나다, 예술이다, 이런 말을 하게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화면 보시겠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을 보면 16세기에서 17세기 고전 회화들이 많이 떠오릅니다.

화면 속 인물은 정말 곤경에 처해있고 힘겨운 상황인데 이렇게 멀리서 보니까 잔인하리만치 평온한 풍경이 펼쳐지고 관객이 작품 속 세상을 관조하게 해준다든지.

앞서 보신 이 장면은 이탈리아의 거장 화가, 카라바조의 그림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카라바조는 어두운 실내에서 빛으로 긴장감을 나타내는 이런 기법의 창시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누가 지목 대상인지 진실을 알기 어려운, 이런 연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런 조형적 측면이 인물의 관계나 사건 구도와 맞물려 굉장히 치밀하게 짜여져 있고요.

["그나저나 우리 살인사건이 얼마만이야?"]

이런 식으로 경찰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묘사하기도 하고요.

더불어서 카메라를 움직이는 솜씨에 대해 말씀드리면 이건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전설적인 작품의 한 장면인데요.

마음에 있는 여성에게 건 전화가 그렇게 성공적이지가 않아서 분위기가 좀 쓸쓸해졌고요.

이때 카메라를 옆으로 움직여서 주인공을 화면 밖으로 뺐다가 전화를 실망스럽게 끊은 다음에 인물이 화면 안으로 다시 들어와서 걸어나가는 이런 외로운 뒷모습을 카메라와 인물의 단순한 움직만으로 연출한 명장면이고요.

이 장면도 마찬가지로 구치소에 있는 아들과 만났다가 면회를 안 좋게 끝낸 어머니의 심정이 앞 장면과 비슷하게 표현됩니다.

이 어머니가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단서가 되는 남학생들을 추적하는데 이들이 과녁에 놓인 것처럼 화면 한가운데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면서 주인공을 화면 안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진짜 범인을 잡고야 말겠다는 어머니의 심정을 이렇게 카메라 움직임으로 드러내주는 연출도 굉장히 뛰어납니다.

이렇게 화면의 조형이나 구도가 움직임으로 이어져서 표현될 때 영화의 한 장면이 어떤 완결을 이룬다고 할 수 있을텐데요.

화면을 편집으로 끊지 않고 한번의 촬영으로 이렇게 이어가는 롱테이크 장면에서 만일 이걸 편집으로 끊어서 보여주면 영화 스토리만 따라가게 되기 쉬운데 화면이 이렇게 이어지니까.

관객이 좀더 능동적으로 현장에 참여하면서 극중 인물들과 같은 시간대에 있는 듯한 느낌 같은 것들을 받으면서 영화 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해주는, 이런 장면들이 세계를 놀라게 한 봉준호 감독의 연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앵커]

네, 이렇게 보고나니까 이번 칸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이 수상할 수 있지 않을까 더 기대가 되는데요.

좋은 결과 한번 기다려보겠습니다.

송기자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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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의 쓸모] ‘봉준호 영화’는 왜 예술인가?
    • 입력 2019-05-16 08:54:07
    • 수정2019-05-16 09:3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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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영화와 함께 쓸모 있는 이야기 나눠보는 순서죠 영화의 쓸모 시간입니다. 영화평론가 송형국 기자 나와있습니다. 송기자, 오늘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을 가지고 오셨다고요? [기자] 네, 지구촌 최대의 영화 잔치죠 올해 칸국제영화제가 어제 개막했습니다. 이번에 봉준호 감독의 새 작품이 경쟁부문에 초청됐습니다. 사실 칸영화제 출품된 예술영화 하면 왠지 어려울 것 같고 지루할 것 같기도 하고요. 반면에 우리가 쉽게 보는 상업 장르영화다 그러면 재미는 있는데 남는 건 없을 거 같고 그런 생각도 없지 않은데요. 봉준호 감독은 이 양쪽이 둘 다 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봉 감독의 이전 작품들을 보면서 재밌는 건 알겠는데 왜 예술적이다라고 하는 건지 함께 말씀 나눠보겠습니다. 한국시간으로 어제 새벽 칸영화제 개막식 장면입니다. 기라성 같은 거장 감독과 배우들의 모습이 보이는데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오는 22일 세계 최초로 이곳에서 공개되고 경쟁부문에서 경합을 벌이게 됩니다. 봉준호 감독이 이렇게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이유가 여러가지 있을텐데요. 무엇보다 관객의 긴장과 이완 사이를 넘나드는 리듬이 아주 탁월합니다. 주인공을 화면 밖으로 빼서 순간 궁금하게 만드는 이런 리듬감도 흥미롭구요. 마치 압력밥솥처럼, 뭔가 잔뜩 응축돼있다가 터져나오는 느낌을 굉장히 효과적으로 연출합니다. 이게 그냥 잔재주가 아니고 영화의 내용, 맥락하고 이어지니까 예술이다라고 하는 걸텐데요. 80년대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이 작품은. ["찾아보나 마나래두 글쎄."] 당시 공권력의 무능함, 패배감, 이런 것들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레인코트에 검은 눈동자~"] 어떤 일이 폭발하기 전에 공권력이 해야 할 일을 감지하고 조치했더라면 불행한 일들을 막을 수 있었을텐데 하는 심정을 담습니다. ["여섯! 일곱! 하지 마!"] 이런 심정을 폭발 직전의 긴장감과 함께 팽팽하게 잡아당겼다가 터뜨리는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본 것, 사실이라고 믿는 것, 이게 얼마나 진실에 가까울까, 아닐 수 있다, 우리는 알기 어렵다, 이런 주제가 봉감독 작품에 굉장히 많이 들어있는데요. ["모르겠다..."] 봉준호 감독이 인물의 얼굴을 활용하는 솜씨를 보면, 옆모습을 따라갈 때 관객은 이 사람의 시선 방향, 인물 외부에 신경을 쓰게 되고 정면을 볼 때는 이 사람의 내면, 인물의 심정에 더 빠져들게 되죠. ["중요한 거. 그니까 뭐."] 이렇게 옆모습이냐 앞모습이냐에 따라서 두 인물 사이의 주도권을 표현한 장면입니다. 진실을 쫓는 자들의 옆모습과 진실을 알고 있을 것만 같은 자의 앞모습을 이렇게 충돌시켜서 이번엔 범인을 잡을 수 있을까 하는 관객 각자의 상상의 영역을 넓히는 방식으로 화면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앵커] 네, '영화는 화면으로 이야기한다' 이런 말이 실감나는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영화의 대사나 스토리, 이런 내용도 중요하지만 촬영과 편집을 어떻게 했느냐, 이런 형식적인 부분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런 말씀이겠네요. [기자] 그렇습니다. 예술 분야에서 음악이라면 소리가 그 언어고요. 미술은 빛, 색깔, 이런 걸 언어로 사용한다고 할 수 있겠죠. 그러면 영화는 영상을 언어로 하니까 영상의 표현 방식을 얼마나 풍성하게 했느냐가 같은 내용을 얘기하더라도 말하자면 어휘력이 얼마나 풍부한가, 이런 게 될 테고 이런 것들을 보면서 우리는 작품성이 뛰어나다, 예술이다, 이런 말을 하게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화면 보시겠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을 보면 16세기에서 17세기 고전 회화들이 많이 떠오릅니다. 화면 속 인물은 정말 곤경에 처해있고 힘겨운 상황인데 이렇게 멀리서 보니까 잔인하리만치 평온한 풍경이 펼쳐지고 관객이 작품 속 세상을 관조하게 해준다든지. 앞서 보신 이 장면은 이탈리아의 거장 화가, 카라바조의 그림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카라바조는 어두운 실내에서 빛으로 긴장감을 나타내는 이런 기법의 창시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누가 지목 대상인지 진실을 알기 어려운, 이런 연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런 조형적 측면이 인물의 관계나 사건 구도와 맞물려 굉장히 치밀하게 짜여져 있고요. ["그나저나 우리 살인사건이 얼마만이야?"] 이런 식으로 경찰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묘사하기도 하고요. 더불어서 카메라를 움직이는 솜씨에 대해 말씀드리면 이건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전설적인 작품의 한 장면인데요. 마음에 있는 여성에게 건 전화가 그렇게 성공적이지가 않아서 분위기가 좀 쓸쓸해졌고요. 이때 카메라를 옆으로 움직여서 주인공을 화면 밖으로 뺐다가 전화를 실망스럽게 끊은 다음에 인물이 화면 안으로 다시 들어와서 걸어나가는 이런 외로운 뒷모습을 카메라와 인물의 단순한 움직만으로 연출한 명장면이고요. 이 장면도 마찬가지로 구치소에 있는 아들과 만났다가 면회를 안 좋게 끝낸 어머니의 심정이 앞 장면과 비슷하게 표현됩니다. 이 어머니가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단서가 되는 남학생들을 추적하는데 이들이 과녁에 놓인 것처럼 화면 한가운데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면서 주인공을 화면 안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진짜 범인을 잡고야 말겠다는 어머니의 심정을 이렇게 카메라 움직임으로 드러내주는 연출도 굉장히 뛰어납니다. 이렇게 화면의 조형이나 구도가 움직임으로 이어져서 표현될 때 영화의 한 장면이 어떤 완결을 이룬다고 할 수 있을텐데요. 화면을 편집으로 끊지 않고 한번의 촬영으로 이렇게 이어가는 롱테이크 장면에서 만일 이걸 편집으로 끊어서 보여주면 영화 스토리만 따라가게 되기 쉬운데 화면이 이렇게 이어지니까. 관객이 좀더 능동적으로 현장에 참여하면서 극중 인물들과 같은 시간대에 있는 듯한 느낌 같은 것들을 받으면서 영화 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해주는, 이런 장면들이 세계를 놀라게 한 봉준호 감독의 연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앵커] 네, 이렇게 보고나니까 이번 칸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이 수상할 수 있지 않을까 더 기대가 되는데요. 좋은 결과 한번 기다려보겠습니다. 송기자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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