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약물중독자입니다]⑤ 마약과 용서, 그녀의 이야기

입력 2019.05.22 (10:37) 수정 2019.05.29 (17:39)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국내 마약 문제의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나는 약물중독자입니다] 시리즈의 첫 기사가 나가고 며칠 후, 여성 중독자 A가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마약 세계의 내부자를 만나겠다"는 포부로 연재를 시작했지만, 여성인 중독자를 만나는 데 특히 어려움을 겪던 상황이었습니다.


A는 약 20년 전 필로폰을 시작했고, 단약(斷藥)한 지는 11년이 됩니다. 최근에는 약물중독 재활 관련 일을 하며 사회복지학 석사 과정도 밟고 있습니다. 경기도의 한 아파트에서 A와 A의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엄마가 한 첫 신고…마약 때문에 '잃어버린 10년'

A의 아버지는 A가 약물중독에 빠졌던 삶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A는 이른바 '폰팅'에서 만난 남자의 권유로 처음 필로폰을 투약했고, 식욕 억제를 위해 마약류를 계속 투약하며 중독에 빠져들었습니다.

A를 처음 경찰에 신고한 사람은 다름 아닌 A의 엄마였습니다. 투옥은 중독을 막지 못했고, A는 7차례 경찰에 붙잡혀 3차례 실형을 살았습니다. 부모에 의해 강제로 정신병원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나는 이렇게 살다 죽겠지라고 생각했어요" A가 말했습니다.

A를 약물중독에서 헤어나오게 해 준 중독자 B가 “엄마에게 받은 책”이라며 A에게 준 책. A는 B와 헤어진 후 이 책을 돌려주려고 했지만, B는 받지 않았다.A를 약물중독에서 헤어나오게 해 준 중독자 B가 “엄마에게 받은 책”이라며 A에게 준 책. A는 B와 헤어진 후 이 책을 돌려주려고 했지만, B는 받지 않았다.

마약 끊게 도와준 건, 또 다른 중독자

A가 마약의 늪에서 헤어나올 수 있도록 도와준 건 또 다른 중독자였습니다. "더 이상 뒷바라지 해줄 수 없다"는 아버지의 최후통첩을 받고 찾아간 병원에서 A는 남성 중독자 B를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아빠 얘기를 하더라고요. 자기 아빠가 써 준 편지 같은 것도 보여주고…. 그러면서 저한테 나이가 젊으니까 약을 하고 다니지, 늙으면 약하는 남자들이 안 만나 준다고, 그때 가서도 못 끊으면 섬 같은 데 팔려갈 거라고 하더라고요. 약하는 남자한테 여자는 배설하는 것뿐이라면서, 모진 말도 하고요. 근데 그게 기분이 안 나빴어요. 저를 비난하려는 게 아니고 따뜻하게 약을 끊으라고 도와주는 게 느껴졌거든요. 그때 기분이 딱 든 거죠, 아 약을 끊어야겠다." A는 말했습니다.

전국 중독 재활 시설 19곳…여성 전용 시설은 2곳뿐

마약을 끊겠다고 다짐해도 재활 치료를 할 만한 곳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N·A(약물중독 치료 자조 모임)나 A·A(알코올중독 치료 자조 모임)에 가면 여성이 스무 명에 한 명꼴이거든요. 그래서 가기가 되게 어려웠어요. 남자들도 그렇겠지만, 특히 성적인 부분이 연관되다 보니 여성들은 정말 터놓고 이야기하기가 힘들거든요." A씨가 털어놨습니다.

A는 가족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 그나마 사정이 나았습니다. 중독 재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설은 국내 19곳, 이 가운데 주거 공간을 제공하는 곳은 15곳입니다. 그중에서도 여성 전용 시설은 2곳뿐입니다. 여성 중독자 대부분이 남성 중독자와 함께 치료받는 것을 꺼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입니다.

여성 전용 중독 치료 시설의 운영자는 "알코올중독보다 약물중독자가 더 수용하기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약물중독은 재발이 잦은 데다, 마약을 몰래 하더라도 시설 측에서 알아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여성들만의 N·A모임이 있으면 여성 중독자들이 훨씬 쉽게 찾아올 것 같다"고 A는 털어놨습니다.

A가 약물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매일 쓴 점검 일지A가 약물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매일 쓴 점검 일지

임신·출산·유산…"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가 없죠"

여성 중독자들이 직면하는 또 하나의 문제는 임신입니다. "우연하게 임신이 되는 경우가 많죠. 유산(임신 중절)도 흔하고, 아이를 낳아도 부모가 맨날 경찰에 잡혀가니까 양육이 잘 될 리가 없죠." A가 설명했습니다.

약물을 투약하느라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 아동학대로 신고당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합니다. 약물중독 여성 혹은 부부의 아이는 마약으로 인한 불행에 고스란히 빠져들게 되는 셈입니다. 마약을 개인의 일탈이 아닌 사회의 병폐로 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20년 만에 엄마에게 사죄하자, "고맙다"는 말에….

A는 이제 N·A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한두 명씩 찾아오는 여성 중독자들의 '언니' 역할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자신을 신고한 어머니를 비로소 용서했습니다.

"엄마가 나를 신고한 것 때문에, 항상 엄마 때문에 전과자가 됐다 이런 식으로 원한을 갖고 있었어요. 그걸 최근에 극복하고 엄마한테 미안하다고 하는데. 엄마 첫마디가 "고맙다" 이러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네가 탈선할 수밖에 없었어, 가정환경이 그래서…'라고 하시는데. 난생처음 엄마 품이 따뜻하다는 걸 느꼈어요."

눈물짓는 A를 보며 A의 아버지는 "쟤가 고향으로 돌아온 거예요."라며 미소 지었습니다.

([나는약물중독자입니다] 시리즈의 마지막 여섯 번째 편에서 계속됩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나는 약물중독자입니다]⑤ 마약과 용서, 그녀의 이야기
    • 입력 2019-05-22 10:37:05
    • 수정2019-05-29 17:39:45
    취재K
국내 마약 문제의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나는 약물중독자입니다] 시리즈의 첫 기사가 나가고 며칠 후, 여성 중독자 A가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마약 세계의 내부자를 만나겠다"는 포부로 연재를 시작했지만, 여성인 중독자를 만나는 데 특히 어려움을 겪던 상황이었습니다.


A는 약 20년 전 필로폰을 시작했고, 단약(斷藥)한 지는 11년이 됩니다. 최근에는 약물중독 재활 관련 일을 하며 사회복지학 석사 과정도 밟고 있습니다. 경기도의 한 아파트에서 A와 A의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엄마가 한 첫 신고…마약 때문에 '잃어버린 10년'

A의 아버지는 A가 약물중독에 빠졌던 삶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A는 이른바 '폰팅'에서 만난 남자의 권유로 처음 필로폰을 투약했고, 식욕 억제를 위해 마약류를 계속 투약하며 중독에 빠져들었습니다.

A를 처음 경찰에 신고한 사람은 다름 아닌 A의 엄마였습니다. 투옥은 중독을 막지 못했고, A는 7차례 경찰에 붙잡혀 3차례 실형을 살았습니다. 부모에 의해 강제로 정신병원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나는 이렇게 살다 죽겠지라고 생각했어요" A가 말했습니다.

A를 약물중독에서 헤어나오게 해 준 중독자 B가 “엄마에게 받은 책”이라며 A에게 준 책. A는 B와 헤어진 후 이 책을 돌려주려고 했지만, B는 받지 않았다.
마약 끊게 도와준 건, 또 다른 중독자

A가 마약의 늪에서 헤어나올 수 있도록 도와준 건 또 다른 중독자였습니다. "더 이상 뒷바라지 해줄 수 없다"는 아버지의 최후통첩을 받고 찾아간 병원에서 A는 남성 중독자 B를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아빠 얘기를 하더라고요. 자기 아빠가 써 준 편지 같은 것도 보여주고…. 그러면서 저한테 나이가 젊으니까 약을 하고 다니지, 늙으면 약하는 남자들이 안 만나 준다고, 그때 가서도 못 끊으면 섬 같은 데 팔려갈 거라고 하더라고요. 약하는 남자한테 여자는 배설하는 것뿐이라면서, 모진 말도 하고요. 근데 그게 기분이 안 나빴어요. 저를 비난하려는 게 아니고 따뜻하게 약을 끊으라고 도와주는 게 느껴졌거든요. 그때 기분이 딱 든 거죠, 아 약을 끊어야겠다." A는 말했습니다.

전국 중독 재활 시설 19곳…여성 전용 시설은 2곳뿐

마약을 끊겠다고 다짐해도 재활 치료를 할 만한 곳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N·A(약물중독 치료 자조 모임)나 A·A(알코올중독 치료 자조 모임)에 가면 여성이 스무 명에 한 명꼴이거든요. 그래서 가기가 되게 어려웠어요. 남자들도 그렇겠지만, 특히 성적인 부분이 연관되다 보니 여성들은 정말 터놓고 이야기하기가 힘들거든요." A씨가 털어놨습니다.

A는 가족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 그나마 사정이 나았습니다. 중독 재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설은 국내 19곳, 이 가운데 주거 공간을 제공하는 곳은 15곳입니다. 그중에서도 여성 전용 시설은 2곳뿐입니다. 여성 중독자 대부분이 남성 중독자와 함께 치료받는 것을 꺼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입니다.

여성 전용 중독 치료 시설의 운영자는 "알코올중독보다 약물중독자가 더 수용하기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약물중독은 재발이 잦은 데다, 마약을 몰래 하더라도 시설 측에서 알아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여성들만의 N·A모임이 있으면 여성 중독자들이 훨씬 쉽게 찾아올 것 같다"고 A는 털어놨습니다.

A가 약물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매일 쓴 점검 일지
임신·출산·유산…"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가 없죠"

여성 중독자들이 직면하는 또 하나의 문제는 임신입니다. "우연하게 임신이 되는 경우가 많죠. 유산(임신 중절)도 흔하고, 아이를 낳아도 부모가 맨날 경찰에 잡혀가니까 양육이 잘 될 리가 없죠." A가 설명했습니다.

약물을 투약하느라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 아동학대로 신고당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합니다. 약물중독 여성 혹은 부부의 아이는 마약으로 인한 불행에 고스란히 빠져들게 되는 셈입니다. 마약을 개인의 일탈이 아닌 사회의 병폐로 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20년 만에 엄마에게 사죄하자, "고맙다"는 말에….

A는 이제 N·A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한두 명씩 찾아오는 여성 중독자들의 '언니' 역할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자신을 신고한 어머니를 비로소 용서했습니다.

"엄마가 나를 신고한 것 때문에, 항상 엄마 때문에 전과자가 됐다 이런 식으로 원한을 갖고 있었어요. 그걸 최근에 극복하고 엄마한테 미안하다고 하는데. 엄마 첫마디가 "고맙다" 이러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네가 탈선할 수밖에 없었어, 가정환경이 그래서…'라고 하시는데. 난생처음 엄마 품이 따뜻하다는 걸 느꼈어요."

눈물짓는 A를 보며 A의 아버지는 "쟤가 고향으로 돌아온 거예요."라며 미소 지었습니다.

([나는약물중독자입니다] 시리즈의 마지막 여섯 번째 편에서 계속됩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