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훈의 시사본부] 허장환 “5·18 특조위? 진실 밝혀낼 역량 있을지 의문”

입력 2019.05.27 (16:51) 수정 2019.05.28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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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전두환이 광주 다녀간 건 증명할 수 있어, 당시 공군비행장에 첩보 보고자 있어
-허: 그 보고자 확인하면, 전두환이 다녀갔다는 것을 증언할 수 있을 것
-허: 지금 우리의 증언은 손바닥의 뒷면, 지금까지 알려진 광주의 이야기를 다 뒤집는 것
-허: 당시 암매장은 없었고, 모두 가매장... 가매장은 다시 시체를 발굴하기 위한 조치
-허: 가매장된 사람을 전부 다시 발굴해서 지문채취 후 조직적으로 시신 처리해
-허: 보안사령부는 이를 전부 희석, 변조, 파기... 그래서 진실 규명 못하고 39년 세월 흘러
-허: 특조위 구성돼 수사 이루어진다 해도, 진실 밝혀낼 역량 있을지 의문
-허: 그동안 언론은 5월만 되면 화제성만으로 5.18에 접근, 근본적 문제 다루지 않아

■ 프로그램명 : 오태훈의 시사본부
■ 코너명 : 정청래의 정가이슈
■ 방송시간 : 5월 27일(월요일) 12:20~14:00 KBS 1라디오
■ 출연자 : 허장환 전 505보안부대 수사관



▷ 오태훈 : 올 5월은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단 달로 저는 기억이 됩니다. 특히 5.18민주화운동 관련해서 참 유의미한 증언들이 쏟아진 달이었는데요. 이 중에 가장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것이 39년 만의 5.18 증언이라는 이름으로 김용장 전 미 정보부대 군사정보관, 또 허장환 전 보안부대 수사관의 기자회견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분들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소감은 지금이 바로 용기를 낼 때였는데요. 저희 시사본부에서 505보안부대에서 활동을 했던 허장환 씨 연결해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 허장환 : 반갑습니다.

▷ 오태훈 : 지난 국회 기자회견 이후에 참 많은 일들이 있었고 또 많은 관심도 받으셨습니다. 올 5월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 허장환 : 뭐 정신없이 다녔습니다. 5월 단체분들도 만나고 기자회견도 하고 하여간 근간에 보기 드문 바쁜 일정이었습니다.

▷ 오태훈 : 기자회견 이후에 상황이 좀 많이 달라졌구나, 우리의 기자회견이 많은 의미를 갖고 있었구나라고 좀 생각이 되시던가요?

▶ 허장환 : 지금까지는 시대적인 배경과 정치적인 배경이 5.18에 대해서 크나큰 관심이 없었다기보다는 하여튼 뭐 제가 보는 시각으로는 예년에 없는 큰 관심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 오태훈 : 그러셨군요. 과거로 다시 한 번 좀 돌아가보겠습니다. 5.18 당시에 어떤 일을 하고 계셨는지부터 좀 여쭙겠습니다.

▶ 허장환 : 제가 이상하게도 그 당시에 저희 합동수사본부에 여러 직책의 수사관들이 있었지만 저는 다망하게 여러 분야에 제가 속해 있는 국보위 청년반이라고 하는 직분이 여러 분야에 관여를 하게 그렇게 만들더군요. 그래서 거기서 오늘날 5.18에 대한 조명을 여러 분야에서, 여러 파트에서 디테일하게 이렇게 알게 되지 않았나, 제시를 하게 되지 않았나 이렇게 생각이 듭니다.

▷ 오태훈 : 군에서는 언제까지 일을 하셨던 거예요, 그러면?

▶ 허장환 : 80년 5월에 광주민주항쟁 사건을 치르고 나서 그 과정에서 조금 불미한 일이 좀 있었습니다. 공판도 시작되기 전에 죄명을 전부 다 적어서 공판부에 통보를 한다든가 압력을 행사하고 또 그리고 뭐 제가 이런 말씀을 좀 드리기는 뭐 하지만 개인적인 사석에서 이게 시나리오다라는 걸 느끼면서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구나. 이게 좀 심한 표현으로 정권 찬탈도 좋은데 우리 사령관님께서 왜 이러시는지 모르겠다, 이거는 좀 심한 거 아니냐 이런 말을 제가 왕왕 했습니다. 그런 걸 연유로 해서 제가. 또 그 항명 사건이 수괴를 지정하는 과정에서 제가 상당히 격분되는 일이 있었어요. 뭐 주먹구구식으로 수괴를 지정하고 이런 과정이 있었는데.

▷ 오태훈 : 수괴?

▶ 허장환 : 그러니까 광주항쟁의 전체적인. 그거를 저희들은 그 당시에 수괴라고 표기를 했습니다.

▷ 오태훈 : 광주민주화운동을 총괄적으로 지휘했던 그 인물을 수괴 정도로 좀 지칭을 하셨군요?

▶ 허장환 : 광주 문제는 무슨 누가 지도자가 있었던 것이 아니고 광주민들이 전부 다 무슨 다 십시일반으로 자기들이 느낀 바를 표출한 거지 지도자가 특별히 있었던 것은 아닌데.

▷ 오태훈 : 시민군의 그 부분들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예, 알겠습니다.

▶ 허장환 : 시민군은 따로 있었고 저희들이 분류를 할 때 제야수괴, 학생수괴, 폭도수괴 뭐 이런 식으로 수괴를 지정했는데 그때 그들을 총지휘하는 서울에는 김대중이 총수괴고 그 밑에 광주 현지 수괴를 지정하는 과정에서 저희들이 수사 중간 결과 보고를 하면서 서류를 작성합니다. 거기에 광주 수괴가 들어가는 과정에 사실상 광주민의 민중항쟁은 수괴나 무슨 지도자가 없는 상태고 시민 전체가 자진 자기들의 자존감을 위해서, 민주주의를 위해서 항쟁을 한 거지 특별히 누가 무슨 지도자가 있었던 것은 아닌데도 불구하고 사태의 짜임새를 갖다 저희들이 각본에 의해서 수괴를 지정했습니다. 바로 그런 과정에서 제가 상당히 격분하는 마음에 주먹구구식으로 이렇게 지정하는 과정에서 군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항명 사건이 좀 있었습니다.

▷ 오태훈 : 그러셨군요.

▶ 허장환 : 네, 그래서 내가 군복을 벗게 됐는데 그때가 81년 9월경입니다, 9월 말경에. 그래서 제가 강제 전역을 당하고 민간인 신분인 저희는 또 광주 문제를 기록했다 하는 원고가 중앙정보부에 유입되어서 제가 악명 높은 서빙고분실이라는 그 보안사 수사분실에 연행이 되어서 거기서 한 19일 정도 심하게 고초를 겪었습니다. 뭐 그렇게 해서 군 생활을 마감하게 됩니다.

▷ 오태훈 : 결국에는 광주 때문에 군 생활을 마치셨네요. 마감하게 되셨네요.

▶ 허장환 : 그런 셈이죠.

▷ 오태훈 : 벌써 3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올해 광주와 관련되어서 참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고요. 특히 전두환 씨 같은 경우에는 광주의 법원에 가서 출석을 하기도 했고 또 허장환 선생님하고 김용장 씨가 국회에서 증언도 하셨습니다. 그 증언 가운데 전두환이 5월에 광주에 와서 정호용 특전사령관, 이재우 보안대장과 회의를 했고 이후에 군인들이 총을 쐈다. 이것이 사살 명령의 정황이다 이런 증언까지 나왔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허장환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허장환 : 어떻게 생각하고 말고가 아니고 그거는 확인한 사실입니다. 21일에 사살 명령을 내렸다 하는 것은 사실은 21일이 아니라 20일에 사살 명령을 내릴 것이다 하는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 오태훈 : 분위기가?

▶ 허장환 : 네, 그런데 누구한테 제가 들었다 카더라 이런 수준이 아니고 저희들 수사회의에서 거명되는 내용은 들었다 카더라하고 개념이 다릅니다.

▷ 오태훈 : 그렇겠죠.

▶ 허장환 : 그래서 언제, 얼마 전에 제가 보니까 기자분이 수사부국장으로부터 제가 들었다 카더라 이렇게 표기를 했는데 그런 걸 보면서 아, 또 들었다 카더라냐? 이렇게 그런 걸 갖다가 좀.

▷ 오태훈 : 몰고 가는 분위기를 좀 만들었죠.

▶ 허장환 :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제가 모르겠는데 좀 희석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희들이 수사회의석상에서 회의 논제로 거명되는 문제는 들었다 카더라하고 개념이 다른 거죠. 그런데 그날 분명히 저희 회사, 회사란다. 수사회의석상에서 그런 문제가 논의됐습니다. 뭐 상세하게 디테일하게 회의 전체적인 사항은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주요 내용이 사령관님이 다녀가셨고 곧 사살 명령을 내릴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가 됐습니다. 그래서 그 후속적인 문제가 그 당시에 제가 수사부국장이 그 이야기를 하길래 제가 기억하기로는 이거 혹시 4.19 당시 최인규 같은, 그 당시 내무장관 최인규 씨이지 않습니까? 최인규 씨와 같은 그런 오명을 후세에 쓰지 않겠습니까 하는 소리까지 제가 한 기억이 있습니다.

▷ 오태훈 : 그렇군요.

▶ 허장환 : 그랬더니 수사부국장이 하는 소리가 그때는 그때하고 지금은 시대가 서로 다르다. 또 상황 자체가 국가를 문란하게 하는 그 사람들의 행위는 그때하고는 4.19 때하고는 개념이 다르다. 그리고 만약 이것이 문제가 생겼을 때는 사령관님이 책임지신다.

▷ 오태훈 : 사령관이 책임진다?

▶ 허장환 : 네, 이렇게까지 회의 논제에서 거론됐습니다. 그러니까 확실하게 다녀갔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고 그 당시에 K57이라고 하는 공군비행장에, 전두환 씨가 다녀간 그 공군비행장에 보고자가 있었습니다. 한 서너 명 있었는데 한 3명이 동시에 저한테 보안사령관님이 왔다 하는 것을 저한테 첩보 보고를 했습니다. 뭐 그런 것은 저희가 회견에서, 기자회견석상에서 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 이미 제가 알고 있는 상황이라서, 사령관님이 오셨다 하는 걸 알고 있는 상황이라서 뭐 그렇게 첩보원의 보고사항을 중요시하지는 않았는데 지금이라도 그 사람을 제가 확인하면 그 당시 그분으로부터 제가 들은 첩보 보고 받은 사령관이 다녀가셨다라는 문제는 증언을 할 수가 있습니다.

▷ 오태훈 : 그렇군요. 그리고 한동안 광주에서 희생자들의 유해 발굴을 위해서 많은 노력이 있었습니다. 한데 그것이 글쎄요, 좀 이렇게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번에 보안사가 시신 암매장이라든가 소각 등을 조직적으로 은폐했다고 증언을 하셨어요. 여기에 대해서 좀 말씀을 듣겠습니다.

▶ 허장환 : 지금 김용장 씨나 제가 증언하는 내용은 지금 39년간 알려져 있던, 예를 들어서 손바닥의 앞면이라면 저희들이 증언하는 내용은 손바닥의 뒷면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반장식인데 완전히 뒤집어버리는 거죠, 지금까지 알려져 있던 그 광주항쟁의 스토리를. 그 과정에서 일부분인데 예를 들어서 시신을 갖다가 무슨 가매장 상태에서 발굴해서 처리를 했다 뭐 이런 등등은 그 당시에 있었던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런 걸 이때까지는 교도소에 매장되어 있었다.

▷ 오태훈 : 뭐 담장 밑에 있더라 이런.

▶ 허장환 : 네, 그런 편협적인 그 당시 현지 공수부대 지휘관들이나 목격자들이, 광주 전체적인 사항을 알지 못하는 분들이 자기가 속해 있던 그 부분의 시각적인 면을 증언한 것이고 전체적인 각본의 스토리는 이미 짜여져 있던 내용대로. 그리고 군에서는 암매장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전투 시에는. 또 더군다나 광주항쟁 기간 동안에 암매장은 없었습니다. 가매장했었지. 가매장과 암매장의 구분은 가매장은 예를 들어서 다시 시체를 발굴하기 위한 임시 조치입니다. 암매장은 영원히 모르게 은닉하기 위해서 매장해버리는 사항을 갖다 암매장이라고 그러고. 그래서 전부 다 저희들이 간첩이 혹시 침투하지 않았나? 대한민국에 주민등록이 없는 사람들이 발견되지 않겠나 싶어서 가매장 상태의 사람들을, 또 그 당시에 폭동에 가담했던 사람들을 갖다 가려내기 위해서 전부 지문 채취를 다 했습니다, 가매장된 상태의 사람들을 전부 다시 발굴해서. 그런데 그때 날씨가 상당히 더우니까 부패된 상태에서 지문 채취에 상당히 어려움을 겪었는데 뭐 저는 그 업무에 종사할 그런 군대 용어로 군번이 아니고 다른 분들이 이제 그런 걸 했는데 뭐 장갑을 끼고 하고 와도 저녁에 냄새가 많이 심하다. 굉장히 그 친구가 수사관이 고통스러워했습니다, 그 지문 채취하는 업무를 맡은 일이. 그런 상태에서 일괄적으로, 물론 거기에 약간의 누수는 있겠죠. 그런데 거의 100% 지문 채취를 끝내고 그 시신을 처리했습니다.

▷ 오태훈 : 그러면 가매장 상황에서 이후에 조직적으로 시신을 처리한 것 아니겠습니까?

▶ 허장환 : 그런 셈이죠.

▷ 오태훈 : 그러면 이것이 마무리된 시점은 언제쯤으로 판단하세요? 예상하세요?

▶ 허장환 : 그게 지속적으로 양이 원체 많다 보니까 가매장된 시신을 발굴해낸 그 상태에서 상당한 오랜 기간 동안에 지문 채취가 이루어지고 또 그 시신의 유기 문제가 이루어진 것으로 제가 알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적으로 그 업무에 관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디테일하게 뭐 숫자가 몇 명이고 날짜가 언제까지 했다 이런 것은 제가 알지 못하지만 그런 행위가 있었다는 건 제가 알고 있습니다.

▷ 오태훈 : 그리고 그 근무하셨던 505보안부대 여기에서 이 5.18 당시에 시민들의 고문이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여기에 대해서도 말씀을 해 주실 게 있으실지요.

▶ 허장환 : 얼마 전에 제가 5.18재단에 세미나가 있어서 참석을 했는데 거기에 많은 5.18을 연구하신 분들이나 전문가들 또는 대학 교수님들 이런 분들이 참석을 하셨더만요. 제가 그 자리에서 그분들한테 외람되게 한 가지를 여쭤봤습니다. 광주항쟁의 끝은 어디고 광주항쟁의 시작점은 어디냐 하고 물었더니 아무도 흔쾌히 답을 하시는 분이 없더만요. 그런데 광주항쟁의 그 끝은 망자들이 누워 계시는 망월묘지고 광주항쟁의 시작점은 보안사령부를 옮겨다놓은 것 같은 전남합동수사본부, 다시 말해서 505보안부대 거기가 바로 시작점입니다. 그 당시에 505보안부대 지하실에 유치된 인사들은 전부 다 거물급, 중량급에 다 해당되는 분들이 유치가 되셨고 일반 무슨 잡군 수준의, 다시 말해서 형량이 좀 가벼운 분들이라든가 활동사항이 두드러지지 않은 분들은 거기에 유치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좀 저희들 시각으로 그 당시 봤을 때 중량급이다 하는 분들은 거기에서 상당한 고초를 받았습니다.

▷ 오태훈 : 그러셨군요.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 505보안부대에서 근무를 했던 허장환 씨와 함께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앞서서 이것이 그동안에 있었던 증언과는 차원이 다른 의미의 증언이라고 말씀을 좀 해 주셨는데요. 우리가 구체적으로 이것의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더 철저한 보완을 위해서는 어떤 것들을 확인하고 뭐 어떤 서류를 더 확보해야 하고 누구의 이야기를 더 들어야 하고 어디 가서 뭐를 봐야 할지에 대한 궁금증이 좀 생깁니다. 어떤 것들을 더 도와주실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 허장환 :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역사의 왜곡이라는 것은 고대에서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식민지 상태에서도 엄청난 역사의 왜곡이 있었는데 39년이라는 긴 세월은 정말로 긴 세월입니다. 어린아이가 태어나서 나이가 마흔이 될 정도가 되었는데.

▷ 오태훈 : 그렇죠.

▶ 허장환 : 그런 과정에서 보안사령부는 5.11대책분석반이나 5.11연구위원회나 이런 걸 만들어 가지고 자기네들의 잘못된 부분을 전부 희석하고 변조하고 파기했습니다. 또 그 반면에 지난 세월의 전체적인 배경이 대통령이 바뀌실 때마다 말로는 뭐 철저하게 규명하겠다 이렇게 하셨지만 그것이 규명되지 못하고 39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 오태훈 :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네요.

▶ 허장환 : 네, 그래서 지금 우리 문재인 정부에 제가 다시 출연해서 이거를 증언하게 된 계기가 우리 문재인 정부는 과거 정부하고 다른 빚이 없는 그런 정부입니다. 부담 없는 정부고 또 대통령께서 우리 광주의 5월 항쟁의 정신을 헌법에 입법하시기 위해서 민족의 정기, 정신으로 삼겠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그 용감성에, 그 용기에 제가 하마되어서 이제야 때가 왔구나 하고 김용장 씨하고 이 증언을 하게 됐는데 지금 뭐 특조위가 구성되고 수사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그 당시의 시나리오 작성에 가담했던 분들은 전부 베테랑 수사관들입니다. 그분들을 과연 그 당시 정서를 모르는 이 세대가 취조를 하고 밝혀낼 수 있는 테크닉이 있을지, 역량이 있을지 그게 제가 의문스럽고 또 보안사령부라는 그 특성은 부대 명칭이 아무리 바뀌어도 정보기관의 생명은 존안입니다. 옛날에 중앙정보부와 보안사 양대기관이 존립을 했는데 법으로 인정받는 우리 중앙정보부가 항상 보안부대의 활동에 뒤쳐지는 그 현상은 보안부대가 상무대 시절부터 오랜 존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존안의 승리, 정보기관의 승리입니다. 존안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디테일한 존안을 가지고 있느냐 이것에 따라서 정보기관의 가치가 달라지는 건데 부대 명칭이 아무리 바뀌고 뭐 시대가 변하고 이래도 보안사의 존안 기록이라는 것은 파기할 수 있는, 다시 말해서 접근할 수 있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을 일반민들은 모릅니다. 저로서는 상당히 염려스러운 부분이고 또 우리 그런 것이 밝혀지고 뭐 어느 정도 접근이 되어서 우리나라 헌법 최고기관인 헌재에서 판결을 내리더라도 이념이 다른 정부가 또 들어서면 또 뒤집을 수 있는 것이 광주 문제입니다. 그래서 그거를 영원히 봉인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 하는 제가 복안을 가지고 있는데 이 전화 인터뷰상으로는 제가 말씀을 드릴 수가 없고 영원히 봉인을 해 가지고 민족의 정신으로 삼아서 역사의 봉인함 속에 납땜을 해버리는 그런 방법을 취하지 않고는 5.18 문제는 결론짓기 힘들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 오태훈 : 말씀하신 것처럼 현 정부 출범 이후에 5.18진상조사위원회가 국회 차원에서 구성이 됐습니다. 하지만 위원 선정이라든가 이런 부분에서 아직까지도 정치권에서 논란이 많아서 제대로 활동을 지금 못하고 있는데 이 진상조사위가 구성되고 본격적인 활동을 하게 되면 허장환 씨께서 좀 일정 정도의 도움을 주실 용이가 있으신 거죠?

▶ 허장환 : 그분들이 어떻게 활동하느냐에 따라서 제가 기대하는 기대치만큼이 되면 제가 기꺼이 협조를 하고 또 증언하고 하겠지만 또 무슨 이전투구식의 또는 정치적인 가미가 된다면 저는 사양하겠습니다.

▷ 오태훈 : 혹시라도 그런 움직임이라든가 기미가 보이면 저희를 통해서 좀 알려주시고 그러면 저희가 좀 적극적으로 그 부분에 대해서 문제를 삼도록 하겠습니다.

▶ 허장환 : 제가 언론에 따끔한 말씀을 한 가지 드릴까요?

▷ 오태훈 : 고맙습니다. 좋습니다.

▶ 허장환 : 지금까지 39년 동안 광주 문제가 베일에 싸인 가장 큰 원인은 5.11연구소의 보안사의 분석 행위에 해당되는 희석 작업이었고 두 번째는 정치인들은 39년 동안 자기들의 당리당략을 위해서 5.18에 접근했습니다. 또 한편으로 우리 언론은, 국민들이 가장 기대를 했던 우리 언론은 시사성만 노린, 다시 말해서 스타트 뉴스, 5월만 되면 뭐 으레 행사적으로 한 달 기간 동안 기사화하는 그런 시사성만 노려서 5.18에 접근을 해서 다시 말해서 근본적인 5.18의 진단이나 해부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 언론은 접근했습니다. 선배 언론인들은 그렇게 하신 것으로 제가 알고 있는데 이 지금 현 세대 후배 언론인들은 그거를 귀감 삼아서 5.18의 근본적인 대책에 심도 있게 접근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 오태훈 : 명심하겠습니다. 참 이번에 39년 만에 정말 의미 있는 증언들이 나왔고 그 증언의 가운데에 서 계셨습니다. 그동안의 말씀들이 헛되지 않도록 또 저희도 많이 좀 챙겨보겠고요. 또 계속해서 이 5.18진상조사위원회가 제대로 된 활동을 할 때까지 또 감시 활동, 말씀해 주신 것처럼 계속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어려운 말씀 잘 들었고 또 긴 시간 동안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허장환 : 감사합니다.

▷ 오태훈 : 지금까지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을 증언하신 허장환 전 보안부대 수사관과 함께 말씀 나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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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태훈의 시사본부] 허장환 “5·18 특조위? 진실 밝혀낼 역량 있을지 의문”
    • 입력 2019-05-27 16:51:12
    • 수정2019-05-28 09:13:45
    최영일의 시사본부
-허: 전두환이 광주 다녀간 건 증명할 수 있어, 당시 공군비행장에 첩보 보고자 있어
-허: 그 보고자 확인하면, 전두환이 다녀갔다는 것을 증언할 수 있을 것
-허: 지금 우리의 증언은 손바닥의 뒷면, 지금까지 알려진 광주의 이야기를 다 뒤집는 것
-허: 당시 암매장은 없었고, 모두 가매장... 가매장은 다시 시체를 발굴하기 위한 조치
-허: 가매장된 사람을 전부 다시 발굴해서 지문채취 후 조직적으로 시신 처리해
-허: 보안사령부는 이를 전부 희석, 변조, 파기... 그래서 진실 규명 못하고 39년 세월 흘러
-허: 특조위 구성돼 수사 이루어진다 해도, 진실 밝혀낼 역량 있을지 의문
-허: 그동안 언론은 5월만 되면 화제성만으로 5.18에 접근, 근본적 문제 다루지 않아

■ 프로그램명 : 오태훈의 시사본부
■ 코너명 : 정청래의 정가이슈
■ 방송시간 : 5월 27일(월요일) 12:20~14:00 KBS 1라디오
■ 출연자 : 허장환 전 505보안부대 수사관



▷ 오태훈 : 올 5월은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단 달로 저는 기억이 됩니다. 특히 5.18민주화운동 관련해서 참 유의미한 증언들이 쏟아진 달이었는데요. 이 중에 가장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것이 39년 만의 5.18 증언이라는 이름으로 김용장 전 미 정보부대 군사정보관, 또 허장환 전 보안부대 수사관의 기자회견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분들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소감은 지금이 바로 용기를 낼 때였는데요. 저희 시사본부에서 505보안부대에서 활동을 했던 허장환 씨 연결해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 허장환 : 반갑습니다.

▷ 오태훈 : 지난 국회 기자회견 이후에 참 많은 일들이 있었고 또 많은 관심도 받으셨습니다. 올 5월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 허장환 : 뭐 정신없이 다녔습니다. 5월 단체분들도 만나고 기자회견도 하고 하여간 근간에 보기 드문 바쁜 일정이었습니다.

▷ 오태훈 : 기자회견 이후에 상황이 좀 많이 달라졌구나, 우리의 기자회견이 많은 의미를 갖고 있었구나라고 좀 생각이 되시던가요?

▶ 허장환 : 지금까지는 시대적인 배경과 정치적인 배경이 5.18에 대해서 크나큰 관심이 없었다기보다는 하여튼 뭐 제가 보는 시각으로는 예년에 없는 큰 관심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 오태훈 : 그러셨군요. 과거로 다시 한 번 좀 돌아가보겠습니다. 5.18 당시에 어떤 일을 하고 계셨는지부터 좀 여쭙겠습니다.

▶ 허장환 : 제가 이상하게도 그 당시에 저희 합동수사본부에 여러 직책의 수사관들이 있었지만 저는 다망하게 여러 분야에 제가 속해 있는 국보위 청년반이라고 하는 직분이 여러 분야에 관여를 하게 그렇게 만들더군요. 그래서 거기서 오늘날 5.18에 대한 조명을 여러 분야에서, 여러 파트에서 디테일하게 이렇게 알게 되지 않았나, 제시를 하게 되지 않았나 이렇게 생각이 듭니다.

▷ 오태훈 : 군에서는 언제까지 일을 하셨던 거예요, 그러면?

▶ 허장환 : 80년 5월에 광주민주항쟁 사건을 치르고 나서 그 과정에서 조금 불미한 일이 좀 있었습니다. 공판도 시작되기 전에 죄명을 전부 다 적어서 공판부에 통보를 한다든가 압력을 행사하고 또 그리고 뭐 제가 이런 말씀을 좀 드리기는 뭐 하지만 개인적인 사석에서 이게 시나리오다라는 걸 느끼면서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구나. 이게 좀 심한 표현으로 정권 찬탈도 좋은데 우리 사령관님께서 왜 이러시는지 모르겠다, 이거는 좀 심한 거 아니냐 이런 말을 제가 왕왕 했습니다. 그런 걸 연유로 해서 제가. 또 그 항명 사건이 수괴를 지정하는 과정에서 제가 상당히 격분되는 일이 있었어요. 뭐 주먹구구식으로 수괴를 지정하고 이런 과정이 있었는데.

▷ 오태훈 : 수괴?

▶ 허장환 : 그러니까 광주항쟁의 전체적인. 그거를 저희들은 그 당시에 수괴라고 표기를 했습니다.

▷ 오태훈 : 광주민주화운동을 총괄적으로 지휘했던 그 인물을 수괴 정도로 좀 지칭을 하셨군요?

▶ 허장환 : 광주 문제는 무슨 누가 지도자가 있었던 것이 아니고 광주민들이 전부 다 무슨 다 십시일반으로 자기들이 느낀 바를 표출한 거지 지도자가 특별히 있었던 것은 아닌데.

▷ 오태훈 : 시민군의 그 부분들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예, 알겠습니다.

▶ 허장환 : 시민군은 따로 있었고 저희들이 분류를 할 때 제야수괴, 학생수괴, 폭도수괴 뭐 이런 식으로 수괴를 지정했는데 그때 그들을 총지휘하는 서울에는 김대중이 총수괴고 그 밑에 광주 현지 수괴를 지정하는 과정에서 저희들이 수사 중간 결과 보고를 하면서 서류를 작성합니다. 거기에 광주 수괴가 들어가는 과정에 사실상 광주민의 민중항쟁은 수괴나 무슨 지도자가 없는 상태고 시민 전체가 자진 자기들의 자존감을 위해서, 민주주의를 위해서 항쟁을 한 거지 특별히 누가 무슨 지도자가 있었던 것은 아닌데도 불구하고 사태의 짜임새를 갖다 저희들이 각본에 의해서 수괴를 지정했습니다. 바로 그런 과정에서 제가 상당히 격분하는 마음에 주먹구구식으로 이렇게 지정하는 과정에서 군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항명 사건이 좀 있었습니다.

▷ 오태훈 : 그러셨군요.

▶ 허장환 : 네, 그래서 내가 군복을 벗게 됐는데 그때가 81년 9월경입니다, 9월 말경에. 그래서 제가 강제 전역을 당하고 민간인 신분인 저희는 또 광주 문제를 기록했다 하는 원고가 중앙정보부에 유입되어서 제가 악명 높은 서빙고분실이라는 그 보안사 수사분실에 연행이 되어서 거기서 한 19일 정도 심하게 고초를 겪었습니다. 뭐 그렇게 해서 군 생활을 마감하게 됩니다.

▷ 오태훈 : 결국에는 광주 때문에 군 생활을 마치셨네요. 마감하게 되셨네요.

▶ 허장환 : 그런 셈이죠.

▷ 오태훈 : 벌써 3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올해 광주와 관련되어서 참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고요. 특히 전두환 씨 같은 경우에는 광주의 법원에 가서 출석을 하기도 했고 또 허장환 선생님하고 김용장 씨가 국회에서 증언도 하셨습니다. 그 증언 가운데 전두환이 5월에 광주에 와서 정호용 특전사령관, 이재우 보안대장과 회의를 했고 이후에 군인들이 총을 쐈다. 이것이 사살 명령의 정황이다 이런 증언까지 나왔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허장환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허장환 : 어떻게 생각하고 말고가 아니고 그거는 확인한 사실입니다. 21일에 사살 명령을 내렸다 하는 것은 사실은 21일이 아니라 20일에 사살 명령을 내릴 것이다 하는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 오태훈 : 분위기가?

▶ 허장환 : 네, 그런데 누구한테 제가 들었다 카더라 이런 수준이 아니고 저희들 수사회의에서 거명되는 내용은 들었다 카더라하고 개념이 다릅니다.

▷ 오태훈 : 그렇겠죠.

▶ 허장환 : 그래서 언제, 얼마 전에 제가 보니까 기자분이 수사부국장으로부터 제가 들었다 카더라 이렇게 표기를 했는데 그런 걸 보면서 아, 또 들었다 카더라냐? 이렇게 그런 걸 갖다가 좀.

▷ 오태훈 : 몰고 가는 분위기를 좀 만들었죠.

▶ 허장환 :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제가 모르겠는데 좀 희석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희들이 수사회의석상에서 회의 논제로 거명되는 문제는 들었다 카더라하고 개념이 다른 거죠. 그런데 그날 분명히 저희 회사, 회사란다. 수사회의석상에서 그런 문제가 논의됐습니다. 뭐 상세하게 디테일하게 회의 전체적인 사항은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주요 내용이 사령관님이 다녀가셨고 곧 사살 명령을 내릴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가 됐습니다. 그래서 그 후속적인 문제가 그 당시에 제가 수사부국장이 그 이야기를 하길래 제가 기억하기로는 이거 혹시 4.19 당시 최인규 같은, 그 당시 내무장관 최인규 씨이지 않습니까? 최인규 씨와 같은 그런 오명을 후세에 쓰지 않겠습니까 하는 소리까지 제가 한 기억이 있습니다.

▷ 오태훈 : 그렇군요.

▶ 허장환 : 그랬더니 수사부국장이 하는 소리가 그때는 그때하고 지금은 시대가 서로 다르다. 또 상황 자체가 국가를 문란하게 하는 그 사람들의 행위는 그때하고는 4.19 때하고는 개념이 다르다. 그리고 만약 이것이 문제가 생겼을 때는 사령관님이 책임지신다.

▷ 오태훈 : 사령관이 책임진다?

▶ 허장환 : 네, 이렇게까지 회의 논제에서 거론됐습니다. 그러니까 확실하게 다녀갔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고 그 당시에 K57이라고 하는 공군비행장에, 전두환 씨가 다녀간 그 공군비행장에 보고자가 있었습니다. 한 서너 명 있었는데 한 3명이 동시에 저한테 보안사령관님이 왔다 하는 것을 저한테 첩보 보고를 했습니다. 뭐 그런 것은 저희가 회견에서, 기자회견석상에서 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 이미 제가 알고 있는 상황이라서, 사령관님이 오셨다 하는 걸 알고 있는 상황이라서 뭐 그렇게 첩보원의 보고사항을 중요시하지는 않았는데 지금이라도 그 사람을 제가 확인하면 그 당시 그분으로부터 제가 들은 첩보 보고 받은 사령관이 다녀가셨다라는 문제는 증언을 할 수가 있습니다.

▷ 오태훈 : 그렇군요. 그리고 한동안 광주에서 희생자들의 유해 발굴을 위해서 많은 노력이 있었습니다. 한데 그것이 글쎄요, 좀 이렇게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번에 보안사가 시신 암매장이라든가 소각 등을 조직적으로 은폐했다고 증언을 하셨어요. 여기에 대해서 좀 말씀을 듣겠습니다.

▶ 허장환 : 지금 김용장 씨나 제가 증언하는 내용은 지금 39년간 알려져 있던, 예를 들어서 손바닥의 앞면이라면 저희들이 증언하는 내용은 손바닥의 뒷면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반장식인데 완전히 뒤집어버리는 거죠, 지금까지 알려져 있던 그 광주항쟁의 스토리를. 그 과정에서 일부분인데 예를 들어서 시신을 갖다가 무슨 가매장 상태에서 발굴해서 처리를 했다 뭐 이런 등등은 그 당시에 있었던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런 걸 이때까지는 교도소에 매장되어 있었다.

▷ 오태훈 : 뭐 담장 밑에 있더라 이런.

▶ 허장환 : 네, 그런 편협적인 그 당시 현지 공수부대 지휘관들이나 목격자들이, 광주 전체적인 사항을 알지 못하는 분들이 자기가 속해 있던 그 부분의 시각적인 면을 증언한 것이고 전체적인 각본의 스토리는 이미 짜여져 있던 내용대로. 그리고 군에서는 암매장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전투 시에는. 또 더군다나 광주항쟁 기간 동안에 암매장은 없었습니다. 가매장했었지. 가매장과 암매장의 구분은 가매장은 예를 들어서 다시 시체를 발굴하기 위한 임시 조치입니다. 암매장은 영원히 모르게 은닉하기 위해서 매장해버리는 사항을 갖다 암매장이라고 그러고. 그래서 전부 다 저희들이 간첩이 혹시 침투하지 않았나? 대한민국에 주민등록이 없는 사람들이 발견되지 않겠나 싶어서 가매장 상태의 사람들을, 또 그 당시에 폭동에 가담했던 사람들을 갖다 가려내기 위해서 전부 지문 채취를 다 했습니다, 가매장된 상태의 사람들을 전부 다시 발굴해서. 그런데 그때 날씨가 상당히 더우니까 부패된 상태에서 지문 채취에 상당히 어려움을 겪었는데 뭐 저는 그 업무에 종사할 그런 군대 용어로 군번이 아니고 다른 분들이 이제 그런 걸 했는데 뭐 장갑을 끼고 하고 와도 저녁에 냄새가 많이 심하다. 굉장히 그 친구가 수사관이 고통스러워했습니다, 그 지문 채취하는 업무를 맡은 일이. 그런 상태에서 일괄적으로, 물론 거기에 약간의 누수는 있겠죠. 그런데 거의 100% 지문 채취를 끝내고 그 시신을 처리했습니다.

▷ 오태훈 : 그러면 가매장 상황에서 이후에 조직적으로 시신을 처리한 것 아니겠습니까?

▶ 허장환 : 그런 셈이죠.

▷ 오태훈 : 그러면 이것이 마무리된 시점은 언제쯤으로 판단하세요? 예상하세요?

▶ 허장환 : 그게 지속적으로 양이 원체 많다 보니까 가매장된 시신을 발굴해낸 그 상태에서 상당한 오랜 기간 동안에 지문 채취가 이루어지고 또 그 시신의 유기 문제가 이루어진 것으로 제가 알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적으로 그 업무에 관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디테일하게 뭐 숫자가 몇 명이고 날짜가 언제까지 했다 이런 것은 제가 알지 못하지만 그런 행위가 있었다는 건 제가 알고 있습니다.

▷ 오태훈 : 그리고 그 근무하셨던 505보안부대 여기에서 이 5.18 당시에 시민들의 고문이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여기에 대해서도 말씀을 해 주실 게 있으실지요.

▶ 허장환 : 얼마 전에 제가 5.18재단에 세미나가 있어서 참석을 했는데 거기에 많은 5.18을 연구하신 분들이나 전문가들 또는 대학 교수님들 이런 분들이 참석을 하셨더만요. 제가 그 자리에서 그분들한테 외람되게 한 가지를 여쭤봤습니다. 광주항쟁의 끝은 어디고 광주항쟁의 시작점은 어디냐 하고 물었더니 아무도 흔쾌히 답을 하시는 분이 없더만요. 그런데 광주항쟁의 그 끝은 망자들이 누워 계시는 망월묘지고 광주항쟁의 시작점은 보안사령부를 옮겨다놓은 것 같은 전남합동수사본부, 다시 말해서 505보안부대 거기가 바로 시작점입니다. 그 당시에 505보안부대 지하실에 유치된 인사들은 전부 다 거물급, 중량급에 다 해당되는 분들이 유치가 되셨고 일반 무슨 잡군 수준의, 다시 말해서 형량이 좀 가벼운 분들이라든가 활동사항이 두드러지지 않은 분들은 거기에 유치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좀 저희들 시각으로 그 당시 봤을 때 중량급이다 하는 분들은 거기에서 상당한 고초를 받았습니다.

▷ 오태훈 : 그러셨군요.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 505보안부대에서 근무를 했던 허장환 씨와 함께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앞서서 이것이 그동안에 있었던 증언과는 차원이 다른 의미의 증언이라고 말씀을 좀 해 주셨는데요. 우리가 구체적으로 이것의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더 철저한 보완을 위해서는 어떤 것들을 확인하고 뭐 어떤 서류를 더 확보해야 하고 누구의 이야기를 더 들어야 하고 어디 가서 뭐를 봐야 할지에 대한 궁금증이 좀 생깁니다. 어떤 것들을 더 도와주실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 허장환 :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역사의 왜곡이라는 것은 고대에서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식민지 상태에서도 엄청난 역사의 왜곡이 있었는데 39년이라는 긴 세월은 정말로 긴 세월입니다. 어린아이가 태어나서 나이가 마흔이 될 정도가 되었는데.

▷ 오태훈 : 그렇죠.

▶ 허장환 : 그런 과정에서 보안사령부는 5.11대책분석반이나 5.11연구위원회나 이런 걸 만들어 가지고 자기네들의 잘못된 부분을 전부 희석하고 변조하고 파기했습니다. 또 그 반면에 지난 세월의 전체적인 배경이 대통령이 바뀌실 때마다 말로는 뭐 철저하게 규명하겠다 이렇게 하셨지만 그것이 규명되지 못하고 39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 오태훈 :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네요.

▶ 허장환 : 네, 그래서 지금 우리 문재인 정부에 제가 다시 출연해서 이거를 증언하게 된 계기가 우리 문재인 정부는 과거 정부하고 다른 빚이 없는 그런 정부입니다. 부담 없는 정부고 또 대통령께서 우리 광주의 5월 항쟁의 정신을 헌법에 입법하시기 위해서 민족의 정기, 정신으로 삼겠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그 용감성에, 그 용기에 제가 하마되어서 이제야 때가 왔구나 하고 김용장 씨하고 이 증언을 하게 됐는데 지금 뭐 특조위가 구성되고 수사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그 당시의 시나리오 작성에 가담했던 분들은 전부 베테랑 수사관들입니다. 그분들을 과연 그 당시 정서를 모르는 이 세대가 취조를 하고 밝혀낼 수 있는 테크닉이 있을지, 역량이 있을지 그게 제가 의문스럽고 또 보안사령부라는 그 특성은 부대 명칭이 아무리 바뀌어도 정보기관의 생명은 존안입니다. 옛날에 중앙정보부와 보안사 양대기관이 존립을 했는데 법으로 인정받는 우리 중앙정보부가 항상 보안부대의 활동에 뒤쳐지는 그 현상은 보안부대가 상무대 시절부터 오랜 존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존안의 승리, 정보기관의 승리입니다. 존안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디테일한 존안을 가지고 있느냐 이것에 따라서 정보기관의 가치가 달라지는 건데 부대 명칭이 아무리 바뀌고 뭐 시대가 변하고 이래도 보안사의 존안 기록이라는 것은 파기할 수 있는, 다시 말해서 접근할 수 있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을 일반민들은 모릅니다. 저로서는 상당히 염려스러운 부분이고 또 우리 그런 것이 밝혀지고 뭐 어느 정도 접근이 되어서 우리나라 헌법 최고기관인 헌재에서 판결을 내리더라도 이념이 다른 정부가 또 들어서면 또 뒤집을 수 있는 것이 광주 문제입니다. 그래서 그거를 영원히 봉인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 하는 제가 복안을 가지고 있는데 이 전화 인터뷰상으로는 제가 말씀을 드릴 수가 없고 영원히 봉인을 해 가지고 민족의 정신으로 삼아서 역사의 봉인함 속에 납땜을 해버리는 그런 방법을 취하지 않고는 5.18 문제는 결론짓기 힘들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 오태훈 : 말씀하신 것처럼 현 정부 출범 이후에 5.18진상조사위원회가 국회 차원에서 구성이 됐습니다. 하지만 위원 선정이라든가 이런 부분에서 아직까지도 정치권에서 논란이 많아서 제대로 활동을 지금 못하고 있는데 이 진상조사위가 구성되고 본격적인 활동을 하게 되면 허장환 씨께서 좀 일정 정도의 도움을 주실 용이가 있으신 거죠?

▶ 허장환 : 그분들이 어떻게 활동하느냐에 따라서 제가 기대하는 기대치만큼이 되면 제가 기꺼이 협조를 하고 또 증언하고 하겠지만 또 무슨 이전투구식의 또는 정치적인 가미가 된다면 저는 사양하겠습니다.

▷ 오태훈 : 혹시라도 그런 움직임이라든가 기미가 보이면 저희를 통해서 좀 알려주시고 그러면 저희가 좀 적극적으로 그 부분에 대해서 문제를 삼도록 하겠습니다.

▶ 허장환 : 제가 언론에 따끔한 말씀을 한 가지 드릴까요?

▷ 오태훈 : 고맙습니다. 좋습니다.

▶ 허장환 : 지금까지 39년 동안 광주 문제가 베일에 싸인 가장 큰 원인은 5.11연구소의 보안사의 분석 행위에 해당되는 희석 작업이었고 두 번째는 정치인들은 39년 동안 자기들의 당리당략을 위해서 5.18에 접근했습니다. 또 한편으로 우리 언론은, 국민들이 가장 기대를 했던 우리 언론은 시사성만 노린, 다시 말해서 스타트 뉴스, 5월만 되면 뭐 으레 행사적으로 한 달 기간 동안 기사화하는 그런 시사성만 노려서 5.18에 접근을 해서 다시 말해서 근본적인 5.18의 진단이나 해부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 언론은 접근했습니다. 선배 언론인들은 그렇게 하신 것으로 제가 알고 있는데 이 지금 현 세대 후배 언론인들은 그거를 귀감 삼아서 5.18의 근본적인 대책에 심도 있게 접근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 오태훈 : 명심하겠습니다. 참 이번에 39년 만에 정말 의미 있는 증언들이 나왔고 그 증언의 가운데에 서 계셨습니다. 그동안의 말씀들이 헛되지 않도록 또 저희도 많이 좀 챙겨보겠고요. 또 계속해서 이 5.18진상조사위원회가 제대로 된 활동을 할 때까지 또 감시 활동, 말씀해 주신 것처럼 계속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어려운 말씀 잘 들었고 또 긴 시간 동안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허장환 : 감사합니다.

▷ 오태훈 : 지금까지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을 증언하신 허장환 전 보안부대 수사관과 함께 말씀 나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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