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극우 약진…‘통합 유럽’ 구심점 “흔들”

입력 2019.05.27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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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는 지난 23일부터 26일까지 나흘에 걸쳐 큰 선거가 치러졌습니다. 유럽연합에 속한 28개 회원국에서 4억 2,700만 명의 유권자들이 참여해 유럽연합의회 의원 751명을 뽑는 선거였습니다. 잠정 투표율이 50%를 넘겼는데요. 1994년 선거 이후 가장 높은 투표율입니다. '반(反) 난민과 반 이슬람'을 외치는 극우파가 돌풍을 일으킬 것이라는 전망 속에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 이후 처음 치러지는 범유럽 차원의 선거인 만큼, 관심과 참여가 어느 때 보다 높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 출구조사 결과 보니...'중도 퇴조·극우 약진'

수십 년 동안 유럽 정치의 주류 자리는 '중도우파'와 '중도좌파' 정당이 차지해 왔습니다. 하지만 유럽의회가 회원국 출구조사결과 등을 토대로 예상한 이번 유럽의회 선거결과를 보면, 지난 수십 년 동안 유럽정치권을 지배해온 중도 우파 성향의 유럽 국민당 그룹과 중도 좌파 성향의 사회당 그룹의 '과점체제'에 작별을 고하게 될 게 확실시됩니다. 유럽 정치 지형에 변화가 불가피해질 거라는 얘기입니다.


유럽연합 선거관리위원회가 발표한 국가별 개표, 집계 결과를 보면 중도 우파 성향의 유럽 국민당(EPP) 그룹은 전체 751석 중 179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원내 제1당을 유지하기는 하겠지만, 지금 차지하고 있는 217석보다는 40석 가까이나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 것입니다.

또, 그동안 함께 연정을 구성해 왔던 중도 좌파 성향의 사회당(S&D)그룹은 150석을 차지하게 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2위가 예상되기는 하지만, 역시 의석수는 지금의 187석에서 37석이나 줄어들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두 정파의 의석수를 다 합치면 3백석 대 초반이 될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렇게 되면 전체 751석의 과반인 376석에는 못 미치게 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기존 연정과 같은 그룹으로는 재집권이 어려워질 거라는 얘기가 되는 겁니다. 실제 개표 결과가 이렇게 나온다면, 유럽의회 선거가 시작된 1979년 이후 중도세력의 의석수가 처음으로 절반 이하로 내려가게 됩니다.

예상대로 '반(反) 난민과 반 EU'를 앞세운 극우 정치세력은 약진했습니다. 현재까지 유럽연합 선관위의 예상으로는 극우 정치세력인 ECR, EFDD, ENF가 각각 50에서 60석 정도를 가져갈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유럽 내 극우, 포퓰리즘 성향의 세력은 현재 의석수인 154석보다 20석 가까이 늘어난 172석 정도를 차지하게 될 전망입니다. 중도좌파 계열의 사회당 그룹의 의석보다 많아질 거라는 예상입니다. 원내 제2 세력으로의 도약하게 되는 것입니다.

출구조사 결과를 보고 활짝 웃는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대표출구조사 결과를 보고 활짝 웃는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대표

■프랑스·영국에서도 극우 정당 1위...유럽 정치 지각 변동 예고

극우의 약진은 나라별 출구 조사에서도 뚜렷하게 확인됐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중도 성향의 '전진하는 공화국'이 마린 르펜이 이끄는 극우 성향의 '국민연합'에 밀려 2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노란 조끼' 시위에서 보여진 프랑스 시민들의 반감이 반영된 결과로 보입니다.

영국에서는 브렉시트를 찬성하는 극우 성향의 신생 정당, 브렉시트당이 1위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됐습니다. 2위는 브렉시트 반대파인 자유민주당이 차지했는데, 3년을 끌고도 출구를 찾지 못하는 브렉시트에 대한 영국인들의 정서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독일에서는 집권 기독민주당과 기독사회당 연합이 승리하기는 하겠지만, 득표율은 5년 전 35.3%에 못 미치는 28% 정도에 그칠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반면에 5년 전 선거에서 10.7%를 얻었던 녹색당에 대한 지지는 두 배 정도 올라, 22%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극우 성향의 '독일을 위한 대안'도, 지난 선거 때보다 3% 포인트 정도 높은 10%대 득표를 할 것으로 전망됐습니다.

이탈리아에서도 극우 성향의 정당인 '동맹'이 최다 득표를 기록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관련해 파이낸셜 타임스는 "예상 의석수가 확정되면 1979년 이후 의회를 휩쓸어 온 중도 좌파와 중도 우파의 주류 시대가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다수당 두 곳이 EU 통합을 주도해 왔다면, 앞으로는 더 많은 정당들과 손을 잡아야 할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손을 잡아야 할지도 모를 대상이 극우, 포퓰리즘 세력이 될 것이라는 데 이번 선거 결과의 파급력이 있습니다.

■ '우경화' 바람에 흔들리는 유럽 통합 구심점, EU

선거 결과가 예상대로 확정될 경우, 앞으로 EU 정책에도 변화가 불가피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유럽연합 의회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선거 결과에 관심을 두고 지켜봐야 하는 걸까요?


유럽의회는 국경을 뛰어넘어 구성된 대의 기관입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죠. 임기는 5년인데, 선출된 의원들은 각국의 이익이 아니라, 공동체로서의 EU의 이익을 대변합니다. 정치적 성향에 따라서 최소 7개 나라 출신 의원 25명 이상이 교섭단체를 만들어 활동합니다.

유럽의회 의원들이 어떤 권한을 갖고 있는지를 보면, 이번 선거 결과의 파급력을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유럽의회 의원들은 EU 집행위원회가 제안한 법안에 대한 심의·의결권을 갖고 있습니다. 또, EU 집행위원장 선출권과 집행위원단 임명 동의권 같은 감독·통제권을 가지고, 예산안 심의권도 갖고 있습니다. 2024년까지 앞으로 5년 동안 EU를 이끌어갈 집행위원회 의장 선출 권한을 갖고 있다는 얘기는 지도부 구성의 밑그림이 이번 선거를 통해 그려질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 유럽의 난민 문제는 유럽 내 유권자들의 표심을 결정할 가장 큰 쟁점으로 꼽혔습니다. 반 난민 정서를 앞세운 포퓰리즘 세력의 약진은 이미 유럽 곳곳에서 감지돼왔는데요, 르펜 대표가 이끄는 프랑스 국민연합이 2017년 있었던 프랑스 대선에서 결선에 진출하며 기염을 토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유럽연합 의회 선거의 최종 개표 결과 예상대로 유럽 의회에 극우 성향 정당의 영향력이 더 커진다면, 앞으로 EU의 정책 방향에도 큰 변화가 오겠죠. 유럽의회에서 주어진 권한을 총동원해서 EU의 난민 정책에 제동을 걸고 나올 가능성도 그만큼 커진 것입니다.

'난민 문제'에 대해서는 한목소리를 내더라도 민족주의 정서에 기반을 둔 극우 정치 세력들이 '하나의 유럽'을 내걸고 정치, 경제적 통합의 길을 걸어온 EU에 어느 정도의 '원심력'을 가속하게 될지도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지점입니다.

[사진 출처 : 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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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27 17: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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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는 지난 23일부터 26일까지 나흘에 걸쳐 큰 선거가 치러졌습니다. 유럽연합에 속한 28개 회원국에서 4억 2,700만 명의 유권자들이 참여해 유럽연합의회 의원 751명을 뽑는 선거였습니다. 잠정 투표율이 50%를 넘겼는데요. 1994년 선거 이후 가장 높은 투표율입니다. '반(反) 난민과 반 이슬람'을 외치는 극우파가 돌풍을 일으킬 것이라는 전망 속에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 이후 처음 치러지는 범유럽 차원의 선거인 만큼, 관심과 참여가 어느 때 보다 높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 출구조사 결과 보니...'중도 퇴조·극우 약진'

수십 년 동안 유럽 정치의 주류 자리는 '중도우파'와 '중도좌파' 정당이 차지해 왔습니다. 하지만 유럽의회가 회원국 출구조사결과 등을 토대로 예상한 이번 유럽의회 선거결과를 보면, 지난 수십 년 동안 유럽정치권을 지배해온 중도 우파 성향의 유럽 국민당 그룹과 중도 좌파 성향의 사회당 그룹의 '과점체제'에 작별을 고하게 될 게 확실시됩니다. 유럽 정치 지형에 변화가 불가피해질 거라는 얘기입니다.


유럽연합 선거관리위원회가 발표한 국가별 개표, 집계 결과를 보면 중도 우파 성향의 유럽 국민당(EPP) 그룹은 전체 751석 중 179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원내 제1당을 유지하기는 하겠지만, 지금 차지하고 있는 217석보다는 40석 가까이나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 것입니다.

또, 그동안 함께 연정을 구성해 왔던 중도 좌파 성향의 사회당(S&D)그룹은 150석을 차지하게 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2위가 예상되기는 하지만, 역시 의석수는 지금의 187석에서 37석이나 줄어들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두 정파의 의석수를 다 합치면 3백석 대 초반이 될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렇게 되면 전체 751석의 과반인 376석에는 못 미치게 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기존 연정과 같은 그룹으로는 재집권이 어려워질 거라는 얘기가 되는 겁니다. 실제 개표 결과가 이렇게 나온다면, 유럽의회 선거가 시작된 1979년 이후 중도세력의 의석수가 처음으로 절반 이하로 내려가게 됩니다.

예상대로 '반(反) 난민과 반 EU'를 앞세운 극우 정치세력은 약진했습니다. 현재까지 유럽연합 선관위의 예상으로는 극우 정치세력인 ECR, EFDD, ENF가 각각 50에서 60석 정도를 가져갈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유럽 내 극우, 포퓰리즘 성향의 세력은 현재 의석수인 154석보다 20석 가까이 늘어난 172석 정도를 차지하게 될 전망입니다. 중도좌파 계열의 사회당 그룹의 의석보다 많아질 거라는 예상입니다. 원내 제2 세력으로의 도약하게 되는 것입니다.

출구조사 결과를 보고 활짝 웃는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대표
■프랑스·영국에서도 극우 정당 1위...유럽 정치 지각 변동 예고

극우의 약진은 나라별 출구 조사에서도 뚜렷하게 확인됐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중도 성향의 '전진하는 공화국'이 마린 르펜이 이끄는 극우 성향의 '국민연합'에 밀려 2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노란 조끼' 시위에서 보여진 프랑스 시민들의 반감이 반영된 결과로 보입니다.

영국에서는 브렉시트를 찬성하는 극우 성향의 신생 정당, 브렉시트당이 1위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됐습니다. 2위는 브렉시트 반대파인 자유민주당이 차지했는데, 3년을 끌고도 출구를 찾지 못하는 브렉시트에 대한 영국인들의 정서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독일에서는 집권 기독민주당과 기독사회당 연합이 승리하기는 하겠지만, 득표율은 5년 전 35.3%에 못 미치는 28% 정도에 그칠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반면에 5년 전 선거에서 10.7%를 얻었던 녹색당에 대한 지지는 두 배 정도 올라, 22%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극우 성향의 '독일을 위한 대안'도, 지난 선거 때보다 3% 포인트 정도 높은 10%대 득표를 할 것으로 전망됐습니다.

이탈리아에서도 극우 성향의 정당인 '동맹'이 최다 득표를 기록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관련해 파이낸셜 타임스는 "예상 의석수가 확정되면 1979년 이후 의회를 휩쓸어 온 중도 좌파와 중도 우파의 주류 시대가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다수당 두 곳이 EU 통합을 주도해 왔다면, 앞으로는 더 많은 정당들과 손을 잡아야 할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손을 잡아야 할지도 모를 대상이 극우, 포퓰리즘 세력이 될 것이라는 데 이번 선거 결과의 파급력이 있습니다.

■ '우경화' 바람에 흔들리는 유럽 통합 구심점, EU

선거 결과가 예상대로 확정될 경우, 앞으로 EU 정책에도 변화가 불가피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유럽연합 의회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선거 결과에 관심을 두고 지켜봐야 하는 걸까요?


유럽의회는 국경을 뛰어넘어 구성된 대의 기관입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죠. 임기는 5년인데, 선출된 의원들은 각국의 이익이 아니라, 공동체로서의 EU의 이익을 대변합니다. 정치적 성향에 따라서 최소 7개 나라 출신 의원 25명 이상이 교섭단체를 만들어 활동합니다.

유럽의회 의원들이 어떤 권한을 갖고 있는지를 보면, 이번 선거 결과의 파급력을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유럽의회 의원들은 EU 집행위원회가 제안한 법안에 대한 심의·의결권을 갖고 있습니다. 또, EU 집행위원장 선출권과 집행위원단 임명 동의권 같은 감독·통제권을 가지고, 예산안 심의권도 갖고 있습니다. 2024년까지 앞으로 5년 동안 EU를 이끌어갈 집행위원회 의장 선출 권한을 갖고 있다는 얘기는 지도부 구성의 밑그림이 이번 선거를 통해 그려질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 유럽의 난민 문제는 유럽 내 유권자들의 표심을 결정할 가장 큰 쟁점으로 꼽혔습니다. 반 난민 정서를 앞세운 포퓰리즘 세력의 약진은 이미 유럽 곳곳에서 감지돼왔는데요, 르펜 대표가 이끄는 프랑스 국민연합이 2017년 있었던 프랑스 대선에서 결선에 진출하며 기염을 토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유럽연합 의회 선거의 최종 개표 결과 예상대로 유럽 의회에 극우 성향 정당의 영향력이 더 커진다면, 앞으로 EU의 정책 방향에도 큰 변화가 오겠죠. 유럽의회에서 주어진 권한을 총동원해서 EU의 난민 정책에 제동을 걸고 나올 가능성도 그만큼 커진 것입니다.

'난민 문제'에 대해서는 한목소리를 내더라도 민족주의 정서에 기반을 둔 극우 정치 세력들이 '하나의 유럽'을 내걸고 정치, 경제적 통합의 길을 걸어온 EU에 어느 정도의 '원심력'을 가속하게 될지도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지점입니다.

[사진 출처 : 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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