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분석/인사청문]① 답변하지마? 듣지 않는 청문회

입력 2019.07.23 (07:00) 수정 2019.07.31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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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제가 답변을 좀 드려도 되겠습니까?”
“한 번만 말씀드릴 기회를 주십시오.”

극도의 존칭을 쓰며 답변을 하게 해달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송구하지만” 이나 “허락해주신다면” 이라는 읍소도 심심치 않게 따라붙습니다. 답을 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허락을 구하는 사람들, 바로 대한민국의 총리, 부총리, 장관 후보자들입니다. 질문에 입을 떼는 게 이렇게 어려운 곳, 인사청문회장입니다.

■전체 답변의 14% 가 한 음절 “예”… 40%가 10음절 이하

인사청문회에서 얼마나 답변을 하기 어려우면 저렇게 읍소를 했는지, 후보자들의 답변을 따져봤습니다.

“예” 한 음절로만 답변한 경우가 얼마나 됐을까요?


전체 청문회의록 305건(행정부+중앙선관위원 후보자)에서 모든 답변을 분석한 결과 “예”가 13.9%로 나타났습니다. 주로 대법관들이 겸직하는 중앙선거관리위원 후보자만 따로 보면 전체 답변의 16.7%가 “예” 한 글자였습니다.
청문회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예, 유념하겠습니다.”는 8음절입니다. 이같은 10음절 이하의 답변이 전체 답변의 40%였습니다. “예”와 “유념하겠습니다. 위원님”으로 후보자를 검증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

KBS 데이터저널리즘팀은 2000년 첫 인사청문회 이후 국회 인사청문회의록 305건을 분석해(분석방법-하단) 인사청문회가 20년간 어땠는지를 살펴봤습니다. 후보자 개인이 아니라 국회의 후보자 검증 실태를 면밀히 따져봅니다.

■질문 30초에 답변 10초전체 청문회 평균 질문 74% 답변 26%

먼저 305건의 청문 회의록 전체를 질문과 답변으로 나눠 말의 길이를 따져봤습니다.

분석결과, 전체 질문 개수는 15만 6,076건 답변은 14만 9,458건으로 집계됐습니다. 6천 건 가량 차이는 청문위원과 후보자 간 질문답변 중간중간 다른 위원들의 질문이 끼어들거나, 시간 초과로 후보자가 답변을 아예 못했다는 겁니다.

 
이 질문과 답변을 음절 단위로 길이 분석을 해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답변 길이는 총 676만 6,256음절인데 비해 질문은 1,911만 4,968음절. 말의 길이로 생각해보면 질문이 3배입니다.
청문회장에서 의사진행발언이나 신상 발언을 제외하고 질문 답변만 순수하게 놓고 봤을 경우 4분의 3은 질문, 그에 대한 답은 4분의 1에 불과했다는 얘깁니다.

■평균 답변 시간 5초도…말줄임표 가득한 회의록

역대 행정부 장관 청문회를 펼쳐놓았을 때, 답을 제일 적게 한 사람은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였습니다. 문재인 정부 1기 내각에서 산자부 장관으로 임명된 백 후보자는 질문을 100%로 봤을 때 답변 비율이 17.5%에 그쳤습니다.
답변 1번 할 때 평균 28.3음절을 사용해 시간으로 따지면 5초였습니다. 실제로 백운규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의록에는 곳곳에 말줄임표가 가득했습니다.

“원자력은... ”
“4.5메가...”
“제가... ”


질문에 답을 하려 하면 말을 끊는 위원들...그야말로 입도 떼지 못한 셈입니다.

이귀남, 박상기, 김현웅 법무부장관 후보자도 청문으로 검증을 했다고 보긴 어려워 보입니다. 청문위원의 질문 대비 답변 길이가 20% 대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20%의 답변마저도 "예"와 "알겠습니다."가 대부분입니다.

■할 말 다 한 이해찬평균 답변 22초 질문 23초

 
청문위원과 거의 1대 1의 비율로 말한 사람은 이해찬 국무총리 후보자. 특유의 꼬장꼬장한 말투와 접속사를 사용해 말을 이어가는 화법으로 막힘없이 답변을 이어갑니다. 질문과 답변의 길이가 비슷한 것으로 분석됐는데 야당에서는 질문 답변의 균형이 무너졌다며 “후보자의 답변 시간을 줄이라”고 대놓고 요구하는 촌극도 빚어졌습니다.

다음으로 답변 비중이 높았던 이는 임태희 노동부 장관 후보자. 이명박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노동부장관을 거쳐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임 후보자도 답변 비율은 질문 대비 78%로 상당히 높았습니다. 이어 첫 청문 대상자였던 이한동 국무총리 후보자 역시 75.5%의 답변 비율로 할 말은 다 했던 청문회. 그러나 뒤를 이은 후보자들의 답변 비율은 절반가량으로 뚝 떨어집니다.

■ 확연히 짧아지는 답변 길이…갈수록 말하지 마!

초창기 청문회는 비교적 듣는 분위기였습니다. 총리 후보자가 된 감회를 묻는 질문에 “청문회는 검증을 하는 곳이지 감회를 묻는 곳이 아니다”고 답변할 정도로 청문회장의 분위기는 요즘과 사뭇 달랐습니다.

 
실제로 KBS 데이터저널리즘팀이 정부별로 “얼마나 들었나”를 분석한 결과 변화는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김대중 정부 내각 후보자들은 청문회에서 질문 대비 51.3%가량 답변한 반면, 노무현 정부에선 40%, 이명박 정부 36.2%, 박근혜 정부 35.7%, 현재 문재인 정부에선 29.6%로 답변 비중이 줄어드는 게 확연히 드러납니다. 특히 문재인 정부 내각에서 청문 후보자가 됐던 이들은 "제가 답변 좀 해도 되겠습니까?"라는 읍소가 이어졌습니다.

청문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은 게 이해도 됩니다. 들은 게 없으니 적격, 부적격 판단이 어려웠을 겁니다.

■답변하지 마! 청문회왜 그럴까?

청문회장에서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단어 중에는 자료, 시간, 중계, 방송이 빠지지 않습니다.


청문회마다 등장하는 시간 압박은 결국 청문회의 발목을 잡습니다. 특히 생방송과 연결된 경우 위원들은 본인의 질의가 언론에 보도되도록 하기 위해 시간을 아껴 씁니다. 후보자를 공격하며 답변할 기회를 주지 않는 겁니다. 7분이냐 5분이냐...질의 시간을 둘러싼 기 싸움은 후보자의 답변을 듣기 위해 시간을 마련해주는 것이 아니라 청문위원 본인에게 주어진 시간 확보에 가깝습니다.

뭘 물어보든 답을 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습니다. 예리하고 좋은 질문에는 심도 있는 답변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기껏 물어놓고 답을 안 듣는 건 스스로 던진 질문의 함량이 부족해서 일지도 모릅니다.

청문. 들을 청에 들을 문. 영어로는 히어링(hearing)이라고 합니다. 알고 싶은 바를 물은 뒤 듣고 또 들어서 검증을 하는 제도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핵심은 얼마나 들었는지, 그리고 무엇을 물었는 지입니다.

다음 기사에서는 청문회에서 도대체 뭘 물어봤는지 들여다봅니다.

■ 분석방법
KBS 데이터저널리즘팀은 올해로 20년째를 맞은 인사청문회를 들여다봤습니다. 인사청문회가 ‘검증’이라는 본질에 어느 정도 충실했는지 청문회를 검증했습니다.
분석대상은 2000년 6월부터 2019년 3월까지.
사법기관(헌법재판소, 대법원)을 제외한 국무총리, 국무위원, 검찰총장, 한국방송공사 사장까지 286명, 305개 회의록입니다. 청문 질문은 도덕성/전문성/정파/사상검증/지역구민원/훈계 당부로 범주화되어 분류됐고, 이는 각 정부 1기 내각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1기 내각을 대상으로 한 이유는 방대한 회의록 가운데 여야의 힘겨루기가 가장 첨예한 청문회를 우선으로 했기 때문입니다.

데이터 분석 윤지희, 김명윤
데이터 시각화 임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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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분석/인사청문]① 답변하지마? 듣지 않는 청문회
    • 입력 2019-07-23 07:00:19
    • 수정2019-07-31 16: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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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제가 답변을 좀 드려도 되겠습니까?”
“한 번만 말씀드릴 기회를 주십시오.”

극도의 존칭을 쓰며 답변을 하게 해달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송구하지만” 이나 “허락해주신다면” 이라는 읍소도 심심치 않게 따라붙습니다. 답을 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허락을 구하는 사람들, 바로 대한민국의 총리, 부총리, 장관 후보자들입니다. 질문에 입을 떼는 게 이렇게 어려운 곳, 인사청문회장입니다.

■전체 답변의 14% 가 한 음절 “예”… 40%가 10음절 이하

인사청문회에서 얼마나 답변을 하기 어려우면 저렇게 읍소를 했는지, 후보자들의 답변을 따져봤습니다.

“예” 한 음절로만 답변한 경우가 얼마나 됐을까요?


전체 청문회의록 305건(행정부+중앙선관위원 후보자)에서 모든 답변을 분석한 결과 “예”가 13.9%로 나타났습니다. 주로 대법관들이 겸직하는 중앙선거관리위원 후보자만 따로 보면 전체 답변의 16.7%가 “예” 한 글자였습니다.
청문회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예, 유념하겠습니다.”는 8음절입니다. 이같은 10음절 이하의 답변이 전체 답변의 40%였습니다. “예”와 “유념하겠습니다. 위원님”으로 후보자를 검증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

KBS 데이터저널리즘팀은 2000년 첫 인사청문회 이후 국회 인사청문회의록 305건을 분석해(분석방법-하단) 인사청문회가 20년간 어땠는지를 살펴봤습니다. 후보자 개인이 아니라 국회의 후보자 검증 실태를 면밀히 따져봅니다.

■질문 30초에 답변 10초전체 청문회 평균 질문 74% 답변 26%

먼저 305건의 청문 회의록 전체를 질문과 답변으로 나눠 말의 길이를 따져봤습니다.

분석결과, 전체 질문 개수는 15만 6,076건 답변은 14만 9,458건으로 집계됐습니다. 6천 건 가량 차이는 청문위원과 후보자 간 질문답변 중간중간 다른 위원들의 질문이 끼어들거나, 시간 초과로 후보자가 답변을 아예 못했다는 겁니다.

 
이 질문과 답변을 음절 단위로 길이 분석을 해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답변 길이는 총 676만 6,256음절인데 비해 질문은 1,911만 4,968음절. 말의 길이로 생각해보면 질문이 3배입니다.
청문회장에서 의사진행발언이나 신상 발언을 제외하고 질문 답변만 순수하게 놓고 봤을 경우 4분의 3은 질문, 그에 대한 답은 4분의 1에 불과했다는 얘깁니다.

■평균 답변 시간 5초도…말줄임표 가득한 회의록

역대 행정부 장관 청문회를 펼쳐놓았을 때, 답을 제일 적게 한 사람은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였습니다. 문재인 정부 1기 내각에서 산자부 장관으로 임명된 백 후보자는 질문을 100%로 봤을 때 답변 비율이 17.5%에 그쳤습니다.
답변 1번 할 때 평균 28.3음절을 사용해 시간으로 따지면 5초였습니다. 실제로 백운규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의록에는 곳곳에 말줄임표가 가득했습니다.

“원자력은... ”
“4.5메가...”
“제가... ”


질문에 답을 하려 하면 말을 끊는 위원들...그야말로 입도 떼지 못한 셈입니다.

이귀남, 박상기, 김현웅 법무부장관 후보자도 청문으로 검증을 했다고 보긴 어려워 보입니다. 청문위원의 질문 대비 답변 길이가 20% 대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20%의 답변마저도 "예"와 "알겠습니다."가 대부분입니다.

■할 말 다 한 이해찬평균 답변 22초 질문 23초

 
청문위원과 거의 1대 1의 비율로 말한 사람은 이해찬 국무총리 후보자. 특유의 꼬장꼬장한 말투와 접속사를 사용해 말을 이어가는 화법으로 막힘없이 답변을 이어갑니다. 질문과 답변의 길이가 비슷한 것으로 분석됐는데 야당에서는 질문 답변의 균형이 무너졌다며 “후보자의 답변 시간을 줄이라”고 대놓고 요구하는 촌극도 빚어졌습니다.

다음으로 답변 비중이 높았던 이는 임태희 노동부 장관 후보자. 이명박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노동부장관을 거쳐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임 후보자도 답변 비율은 질문 대비 78%로 상당히 높았습니다. 이어 첫 청문 대상자였던 이한동 국무총리 후보자 역시 75.5%의 답변 비율로 할 말은 다 했던 청문회. 그러나 뒤를 이은 후보자들의 답변 비율은 절반가량으로 뚝 떨어집니다.

■ 확연히 짧아지는 답변 길이…갈수록 말하지 마!

초창기 청문회는 비교적 듣는 분위기였습니다. 총리 후보자가 된 감회를 묻는 질문에 “청문회는 검증을 하는 곳이지 감회를 묻는 곳이 아니다”고 답변할 정도로 청문회장의 분위기는 요즘과 사뭇 달랐습니다.

 
실제로 KBS 데이터저널리즘팀이 정부별로 “얼마나 들었나”를 분석한 결과 변화는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김대중 정부 내각 후보자들은 청문회에서 질문 대비 51.3%가량 답변한 반면, 노무현 정부에선 40%, 이명박 정부 36.2%, 박근혜 정부 35.7%, 현재 문재인 정부에선 29.6%로 답변 비중이 줄어드는 게 확연히 드러납니다. 특히 문재인 정부 내각에서 청문 후보자가 됐던 이들은 "제가 답변 좀 해도 되겠습니까?"라는 읍소가 이어졌습니다.

청문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은 게 이해도 됩니다. 들은 게 없으니 적격, 부적격 판단이 어려웠을 겁니다.

■답변하지 마! 청문회왜 그럴까?

청문회장에서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단어 중에는 자료, 시간, 중계, 방송이 빠지지 않습니다.


청문회마다 등장하는 시간 압박은 결국 청문회의 발목을 잡습니다. 특히 생방송과 연결된 경우 위원들은 본인의 질의가 언론에 보도되도록 하기 위해 시간을 아껴 씁니다. 후보자를 공격하며 답변할 기회를 주지 않는 겁니다. 7분이냐 5분이냐...질의 시간을 둘러싼 기 싸움은 후보자의 답변을 듣기 위해 시간을 마련해주는 것이 아니라 청문위원 본인에게 주어진 시간 확보에 가깝습니다.

뭘 물어보든 답을 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습니다. 예리하고 좋은 질문에는 심도 있는 답변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기껏 물어놓고 답을 안 듣는 건 스스로 던진 질문의 함량이 부족해서 일지도 모릅니다.

청문. 들을 청에 들을 문. 영어로는 히어링(hearing)이라고 합니다. 알고 싶은 바를 물은 뒤 듣고 또 들어서 검증을 하는 제도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핵심은 얼마나 들었는지, 그리고 무엇을 물었는 지입니다.

다음 기사에서는 청문회에서 도대체 뭘 물어봤는지 들여다봅니다.

■ 분석방법
KBS 데이터저널리즘팀은 올해로 20년째를 맞은 인사청문회를 들여다봤습니다. 인사청문회가 ‘검증’이라는 본질에 어느 정도 충실했는지 청문회를 검증했습니다.
분석대상은 2000년 6월부터 2019년 3월까지.
사법기관(헌법재판소, 대법원)을 제외한 국무총리, 국무위원, 검찰총장, 한국방송공사 사장까지 286명, 305개 회의록입니다. 청문 질문은 도덕성/전문성/정파/사상검증/지역구민원/훈계 당부로 범주화되어 분류됐고, 이는 각 정부 1기 내각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1기 내각을 대상으로 한 이유는 방대한 회의록 가운데 여야의 힘겨루기가 가장 첨예한 청문회를 우선으로 했기 때문입니다.

데이터 분석 윤지희, 김명윤
데이터 시각화 임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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