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수만 명 참여 축제 취소시킨 장본인 “너는 누구냐?”

입력 2019.07.23 (07:00) 수정 2019.07.23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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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자 현대건축의 메카, 블루스와 재즈의 도시로도 널리 알려진 '윈디 시티(Windy City)' 시카고는 미국 5대호 중의 하나인 미시간호와 맞닿아 있다. 마천루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곳도 바로 미시간호수 주변이다.

말이 호수지, 규모나 외관으로 보면 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파도 치는 호수’ 미시간호 주변 모래사장에선 해마다 여름이면 도심 속 대형 음악 축제가 열린다. 이름하여 '맴비 온 더 비치(Mamby On The Beach)'.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 페스티벌로 올해도 다음달 23일과 24일(현지시간) 양일간 축제가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이 행사를 한 달여 앞두고 행사 조직위원회가 돌연 취소 방침을 발표했다. 조직위는 시카고 도심 인근 몬트로즈 비치에서 열릴 예정이던 2019 대형 뮤직 페스티벌을 "통제 불가능한 상황 발생을 이유로 취소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시카고시 공원관리국과 미 연방 내무부 산하 '어류 및 야생동물 관리국'과 협력해 대체 장소를 물색했지만 일정이 촉박해 참가자들이 미시간호수 주변 특징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며 양해를 구했다. 이미 축제 라인업도 거의 다 짜여진 상황으로 힙합 밴드 브록햄튼과 플라잉 로터스, 산티골드, 트로이 시반, 실반 에소, 판토그램 등 40여 팀이 참가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직위는 이미 팔린 입장권에 대해서는 닷새에서 열흘 안에 환불 조치하겠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6년에 열렸던 '맴비 온 더 비치' 페스티벌. 뒤로 미시간호와 시카고 스카이라인이 보인다.지난 2016년에 열렸던 '맴비 온 더 비치' 페스티벌. 뒤로 미시간호와 시카고 스카이라인이 보인다.

해마다 전통처럼 열려 오던 행사를, 그것도 하루에 2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몰린다는 인기 있는 축제를, 한 달 남짓 앞두고 전격 취소하게 된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시카고 현지 언론은 '새(조류)'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1950년대 이후 시카고 지역에서 볼 수 없었던 파이핑 플로버(Great Lakes Piping Plover) 한 쌍-시카고 시민들은 이들 새 부부에 '몬티(Monty)'와 '로즈(Rose)'라는 별명을 붙여줬다-이 지난달부터 몬트로즈 비치에 둥지를 짓고 알을 낳았으며 지난 17일과 18일에 새끼 세 마리가 부화했다"는 것이다.


시카고 조류학회는 파이핑 플로버는 미국 연방 당국이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한 조류로, 시카고 일원에서 알이 부화한 것은 60여 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며 환호했다.

그러나 이들의 부화는 곧 페스티벌 조직위원회와 동물보호단체 간에 '음악 축제를 예정대로 강행할 것인지' 여부를 두고 날 선 공방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행사 주최측이 양보하면서 일단락됐다. 주최측은 지난 겨울의 폭설과 봄 홍수의 영향으로 미시간호의 수위가 크게 상승하면서 몬트로즈 비치 일부가 침수된 것도 이유가 됐다고 설명했다.

희귀조류인 파이핑 플로버 가족의 서식지를 위해 몬트로즈 비치 출입 자체가 통제되고 있다. (사진 출처:Block Club Chicago) 자원봉사자들로 이뤄진 ‘플로버 지킴이’들이 일주일에 수십 시간씩 무리지어 이들을 모니터한다.희귀조류인 파이핑 플로버 가족의 서식지를 위해 몬트로즈 비치 출입 자체가 통제되고 있다. (사진 출처:Block Club Chicago) 자원봉사자들로 이뤄진 ‘플로버 지킴이’들이 일주일에 수십 시간씩 무리지어 이들을 모니터한다.

이러한 관심과 배려 덕분에 파이핑 플로버 가족은 지금까지 무사히 잘 지내고 있다. 갓 부화한 새끼가 날게 되기까지는 한 달가량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음악 축제도 취소됐으니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과 쓰레기 등으로 인한 서식지 파괴 문제에 있어서도 한 시름 놓을 수 있게 됐다.

시카고 주민들의 반응은 어떨까?

현지 언론에서는 아직 참가 예정자들의 불평불만의 소리는 다뤄지고 있지 않은 듯하다. 대신 파이핑 플로버를 반기며 보러 몰려든 사람들의 모습과 함께 절대로 서식지를 침범하거나 방해하지 말아 달라는 권고만 여기저기서 보도되고 있을 뿐이다.

지난 18일 희귀새인 파이핑 플로버 가족이 둥지를 튼 몬트로즈 비치에 찾아온 구경꾼들 [사진 출처 : 시카고 트리뷴]지난 18일 희귀새인 파이핑 플로버 가족이 둥지를 튼 몬트로즈 비치에 찾아온 구경꾼들 [사진 출처 : 시카고 트리뷴]

그렇다면 이렇게 '극진한 대접과 과분한 보호(?)'를 해서 큰 성공으로 이어진 사례가 있을까?

물론 있다. 시카고 시립 환경 보호 에이전시와 미네소타 주립대, 미시간 주립대, 디트로이트 동물학회 등이 체계적으로 협력해 자금 마련과 연구, 홍보 등에 힘쓰고 자원봉사자들과 시민들이 합심해 노력한 덕분에 캐나다두루미(sandhill cranes)라는 새는 1980년대 멸종위기에 처했었지만, 오늘날에는 사람을 쫓아다니는 모습이 종종 목격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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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23 07:00:20
    • 수정2019-07-23 10:2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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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자 현대건축의 메카, 블루스와 재즈의 도시로도 널리 알려진 '윈디 시티(Windy City)' 시카고는 미국 5대호 중의 하나인 미시간호와 맞닿아 있다. 마천루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곳도 바로 미시간호수 주변이다.

말이 호수지, 규모나 외관으로 보면 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파도 치는 호수’ 미시간호 주변 모래사장에선 해마다 여름이면 도심 속 대형 음악 축제가 열린다. 이름하여 '맴비 온 더 비치(Mamby On The Beach)'.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 페스티벌로 올해도 다음달 23일과 24일(현지시간) 양일간 축제가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이 행사를 한 달여 앞두고 행사 조직위원회가 돌연 취소 방침을 발표했다. 조직위는 시카고 도심 인근 몬트로즈 비치에서 열릴 예정이던 2019 대형 뮤직 페스티벌을 "통제 불가능한 상황 발생을 이유로 취소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시카고시 공원관리국과 미 연방 내무부 산하 '어류 및 야생동물 관리국'과 협력해 대체 장소를 물색했지만 일정이 촉박해 참가자들이 미시간호수 주변 특징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며 양해를 구했다. 이미 축제 라인업도 거의 다 짜여진 상황으로 힙합 밴드 브록햄튼과 플라잉 로터스, 산티골드, 트로이 시반, 실반 에소, 판토그램 등 40여 팀이 참가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직위는 이미 팔린 입장권에 대해서는 닷새에서 열흘 안에 환불 조치하겠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6년에 열렸던 '맴비 온 더 비치' 페스티벌. 뒤로 미시간호와 시카고 스카이라인이 보인다.
해마다 전통처럼 열려 오던 행사를, 그것도 하루에 2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몰린다는 인기 있는 축제를, 한 달 남짓 앞두고 전격 취소하게 된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시카고 현지 언론은 '새(조류)'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1950년대 이후 시카고 지역에서 볼 수 없었던 파이핑 플로버(Great Lakes Piping Plover) 한 쌍-시카고 시민들은 이들 새 부부에 '몬티(Monty)'와 '로즈(Rose)'라는 별명을 붙여줬다-이 지난달부터 몬트로즈 비치에 둥지를 짓고 알을 낳았으며 지난 17일과 18일에 새끼 세 마리가 부화했다"는 것이다.


시카고 조류학회는 파이핑 플로버는 미국 연방 당국이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한 조류로, 시카고 일원에서 알이 부화한 것은 60여 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며 환호했다.

그러나 이들의 부화는 곧 페스티벌 조직위원회와 동물보호단체 간에 '음악 축제를 예정대로 강행할 것인지' 여부를 두고 날 선 공방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행사 주최측이 양보하면서 일단락됐다. 주최측은 지난 겨울의 폭설과 봄 홍수의 영향으로 미시간호의 수위가 크게 상승하면서 몬트로즈 비치 일부가 침수된 것도 이유가 됐다고 설명했다.

희귀조류인 파이핑 플로버 가족의 서식지를 위해 몬트로즈 비치 출입 자체가 통제되고 있다. (사진 출처:Block Club Chicago) 자원봉사자들로 이뤄진 ‘플로버 지킴이’들이 일주일에 수십 시간씩 무리지어 이들을 모니터한다.
이러한 관심과 배려 덕분에 파이핑 플로버 가족은 지금까지 무사히 잘 지내고 있다. 갓 부화한 새끼가 날게 되기까지는 한 달가량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음악 축제도 취소됐으니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과 쓰레기 등으로 인한 서식지 파괴 문제에 있어서도 한 시름 놓을 수 있게 됐다.

시카고 주민들의 반응은 어떨까?

현지 언론에서는 아직 참가 예정자들의 불평불만의 소리는 다뤄지고 있지 않은 듯하다. 대신 파이핑 플로버를 반기며 보러 몰려든 사람들의 모습과 함께 절대로 서식지를 침범하거나 방해하지 말아 달라는 권고만 여기저기서 보도되고 있을 뿐이다.

지난 18일 희귀새인 파이핑 플로버 가족이 둥지를 튼 몬트로즈 비치에 찾아온 구경꾼들 [사진 출처 : 시카고 트리뷴]
그렇다면 이렇게 '극진한 대접과 과분한 보호(?)'를 해서 큰 성공으로 이어진 사례가 있을까?

물론 있다. 시카고 시립 환경 보호 에이전시와 미네소타 주립대, 미시간 주립대, 디트로이트 동물학회 등이 체계적으로 협력해 자금 마련과 연구, 홍보 등에 힘쓰고 자원봉사자들과 시민들이 합심해 노력한 덕분에 캐나다두루미(sandhill cranes)라는 새는 1980년대 멸종위기에 처했었지만, 오늘날에는 사람을 쫓아다니는 모습이 종종 목격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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