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한반도로 뻗은 아베의 ‘검은손’…한국 제물로 ‘동북아 패권’ 노리나

입력 2019.07.23 (08:01)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한국을 겨냥한 일본의 수출 통제는 모양새 자체가 참으로 괴상하다. 한국의 급소인 반도체에 칼을 대면서 '한국의 대북 제재 위반 의혹'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대북제재를 위반했다면 미국이 나설 일이다. 일본은 그럴 자격도 없거니와 경제적 타격을 가하는 것이 수단도 될 수 없다. 차라리 과거사 갈등이 이유라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그건 아니라고 항변한다.

미국을 등에 업고 한 것이든 아니든, 아베의 한국 때리기는 군사대국을 통한 동북아 패권을 노리는 그가 한국을 제물로 삼았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매우 심각한 사안이며, 아베 자신에게도 아주 위험한 도박이 아닐 수 없다.

'북한 연관성' 내세워 한국 겨냥…아베의 어설픈 칼

"한국은 '북한에 대해 제대로 무역 관리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징용 문제에 대해 국제적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 명확하게 됐다. 무역관리도 지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에 대한 수출 통제를 단행한 아베 총리가 지난 7일 방송에서 한 말이다. '북한과의 관련성을 시사한 것'이라고 현지 매체들은 전했다. '한국에서 북한으로 대량파괴무기의 제조에 전용될 수 있는 물질이 흘러들어 간 것이냐?'는 진행자 질문에 "개별적인 것에 대해 말씀드리는 건 삼가고 싶다"면서 "한국이 정확한 수출관리를 하고 있다고 확실히 제시해 주지 않으면 규제 품목을 내보낼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아베 총리가 “한국이 대북제재를 제대로 지켜야 한다”며 수출규제 강화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지난 7일. BS후지TV)아베 총리가 “한국이 대북제재를 제대로 지켜야 한다”며 수출규제 강화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지난 7일. BS후지TV)

아베 총리는 그러면서 "한국에 대한 규제 조치가 징용 문제에 대한 보복 조치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보복 차원은 절대 아니다. 국가 안보, 즉 한국의 대북 제재 위반 의혹 때문'이라는 게 지금까지 일본 정부가 유지해온 입장이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일본의 스텝이 꼬일 수밖에 없다. 일본은 '제재 위반'을 이유로 한국을 손봐줄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조치가 일본의 소신에 따른 것인지 의구심이 들게 하는 점도 노출했다. '안보'를 명분으로 중국에 경제적 타격을 가하는 트럼프 스타일을 베끼면서 올해 '일본 통상백서'에는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 세계에서 보호주의적 움직임이 늘고 있다"고 우려한 것이다.

수출 규제 명분으로 주장한 한국의 대북제재 위반 의혹에 대해서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뭐라도 있는 것처럼 암시하더니 "한국에서 제3국으로의 구체적인 수출 안건을 염두에 둔 조치는 아니다"라고 말을 바꿨다. 한국에 추가로 타격을 가할 총알은 많이 있다고 하지만 명분과 관련해선 어설픈 인상마저 풍기고 있다. 일본은 왜 자신들이 '할 일이 아닌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강변하는 걸까?

미국도 한국 압박…"한미 정상, 일본과 '연합훈련' 협력 약속"

아베가 한국에 칼을 빼 들기 직전, 일본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온 미국 대통령과 한국 대통령 간 회담이 있었다. 미국 국무부는 한미 정상이 이번 회담에서 한 약속을 홈페이지에 상세히 올렸다. 이례적인 일이다. 국무부가 밝힌 한미 정상 간 합의는 아래와 같다.


미국이 새롭게 수립한 '인도·태평양' 전략에서도 한미 동맹이 린치핀(핵심축)이라고 못 박으면서 이를 위해 한·미·일 3각 안보협력을 강조했다. 일본까지 포함한 3각 공조에 '연합훈련'까지 적시한 점이 주목된다. '일본과는 안보 협력을 하지 않는다'는 한국과 중국 간 이른바 '3불(사드 추가 배치, 미국의 탄도미사일방어체제 참여, 한·미·일 안보협력을 하지 않는다)'과 정면배치되는 내용이다. 미국이 트럼프 정부 들어 미군의 '태평양 사령부'를 '인도·태평양 사령부'로 바꾼 것은 중국을 상대하기 위함이다. 트럼프 정부는 이전 미국 정부들과 달리 중국 제압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 주도의 국가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바꾸는 것이 무역 전쟁의 목표라는 사실도 숨기지 않고 있다.

이런 미국은 중국에 맞서 함께 싸워줄 강한 우군을 필요로 한다. 그러면서 한국에도 '미국과 중국 중 택일하라'는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지난달, 한국이 남중국해로 군함을 보내달라는 미국의 요청을 거절했다고 전하면서 "한국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받고 있는 동시에 중국과 무역관계 훼손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진퇴양난"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전통적인 동맹이면서 중국의 강력한 교역 파트너인 한국이 가장 큰 압력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말 G20 직후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한·미·일 3각 공조'를 확약받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미국과 일본은 2017년 한국과 중국 정부가 '3불'에 합의하면서 삐걱대기 시작했다. 한미 간에도 대북 접근법에 있어 입장 차를 노출해왔는데, 지난달에는 한국을 향해 공개적으로 '화웨이 제재 동참'을 요구한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가 청와대의 입장을 반박하며 파열음을 내기도 했다. 당시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중국으로부터도 '미국과 화웨이 제재에 손 잡으면 감당 못 할 것'이라는 압박을 받았다.

'중재 요청'에 냉담한 미국…트럼프 "아베는 특별한 사람"

한·미동맹이 찰떡 공조를 과시하는 상황이라면 굳이 미국과 한국 대통령까지 나서 한·미동맹의 가치를 재확인할 필요가 있을까. 미국은 '중국 무력화'를 1순위에 둔 현재 세계 전략상 한·미 동맹이 필요하고 이를 확장한 개념이 바로 한·미·일 3각 동맹이다. 어느 때보다 3각 공조가 돈독해야 할 시점에 일본이 기습적으로 한국의 급소를 때렸다. '트럼프의 푸들'로까지 불리는 아베가 말이다.

'그가 과연 독단적으로 일을 벌였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는 게 오히려 상식적이다. 일본이 한국에 수출통제를 가한 전후로 벌어진 상황들을 연결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한국에 대한 미국의 '남중국해 군함 파견'과 '화웨이 제재 동참' 요구에 한국이 거절한 일이 있었다. 그리고 미·일 정상이 두 차례 밀도 있는 회담을 한 직후 미국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과 '한·미·일 협력'에 '안보' 개념을 포함해 적극적으로 조율하기로 합의했다. 이렇게 미국이 한국-중국 간 '삼불'과 충돌하는 약속을 받아간 다음 날 일본은 '대북제재 위반 의혹'을 명분으로 한국에 수출통제를 가했다.

뒤늦게 드러난 사실이지만, 한·미 정상회담 당시 이미 한·일 갈등과 관련한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 요청이 있었고 트럼프 대통령은 사실상 수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는 아베가 곧 한국을 겨눌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을까. 일본의 대표적인 지한파 학자인 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지역문화연구소장은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이 한국에 규제를 하면서 '안전보장' 문제를 꺼낸 것으로 미뤄봤을 때, 미국의 '묵시적 허락'이 있을 것"이라면서 "일본에선 한·일 갈등을 미·중 대립의 큰 틀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많다. 미국이 중국과 가까워지려는 한국에 경고를 보낸 것으로 해석하는 견해"라고 말했다.


한·일 갈등을 다루는 미국의 입장을 보면 이전과 달리 '차가움'마저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주말 일본의 수출 통제에 대해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의 메시지는 한마디로 "당장은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알아서 해결하라"는 미국 정부의 입장과 다르지 않다. 그러면서 "나는 두 정상을 좋아한다. 문재인 대통령을 좋아하고, 아베 총리는 '특별한 사람'"이라고 한 점이 눈에 띈다.

[연관 기사] [글로벌 돋보기] 한국과 척지고 영국과 손잡는 日…열강의 추억인가?

나흘 전(현지시각 15일)에는 일본을 콕 집어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일본과 다른 나라들은 나의 확실한 요구, 지시 ... 뭐라고 불러도 좋다. 엄청난 빌딩과 공장을 미국에 보내고 있다"고 말한 것이다. 이때 역시 전례 없는 한일 갈등으로 미국 언론도 그의 입장을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대 중국 정책은 물론 미국 내 투자까지 지금 트럼프의 가장 든든한 우군이 아베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한국 때리고 북한에 손 내민 아베 … '동북아 패권'·'한반도 주도권' 노리나

그렇다면 한국 언론은 물론 자국 언론과 외신의 호된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아베가 써본 적도 없는 칼을 한국에 들이댄 이유는 뭘까. 그 노림수를 알려면, 그가 '전쟁 가능한 일본'을 넘어 '군사대국 일본'을 집요하게 추진하는 최종 목적이 무엇인지 간파해야 한다.

[연관 기사]
[글로벌 돋보기] 40년 만에 금간 미중 관계…“진짜 전쟁은 지금부터”
[글로벌 돋보기] 美 “중국 제압해 북한 떼어낸다”…임박한 ‘비핵화 결전’의 시간


아베가 트럼프 곁에 바짝 붙어 중국 때리기에 발 벗고 나서는 건 결국 동아시아 패권을 거머쥐기 위한 포석이다. 트럼프 마음 얻기에 올인하는 건 아베 자신이 믿는 일본의 국익을 위한 철저히 계산된 행보다. 중국의 힘이 약해지면 세계 3위 경제 대국인 일본의 입지는 그만큼 넓어진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 '미국을 일본 편으로 만들기'에 공세적으로 나서는 이유는 '중국 주저앉히기'가 최우선인 트럼프 정부 목표의 반사이익을 최대한 누리기 위한 전략인 것이다.

북한이 작은 미사일 한 발만 쏴도 전쟁이라도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던 아베 총리가 지난해 싱가포르 회담을 기점으로 대북 접근법을 완전히 바꾼 것도 마찬가지다. 미·중 간 오랜 밀월 속에 주변 강대국과 마찬가지로 '한반도 분단 고착화'를 전제로 유지해온 일본의 대북 전략도 재빨리 수정된 것이다. 아베는 대 한국 수출 통제를 정당화하는 와중에도 북한 김정은 위원장에겐 만나고 싶다고 손을 내밀었다. '중국에서 북한을 떼내 경제 강국으로 만든다'는 트럼프의 구상에도 한발 앞서 다가가려는 그의 의도가 엿보인다.

아베 총리와 시진핑 주석이 정상회담을 하면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지난달 27일. 오사카)아베 총리와 시진핑 주석이 정상회담을 하면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지난달 27일. 오사카)

NHK 등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은 시진핑 주석과의 평양 회담에서 '아베 총리의 정상회담 제안에 유의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 주석이 김 위원장의 이런 메시지를 최근 G20에서 전달했다고 한다. 아베 총리의 집요함에 김 위원장도 화답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한미군사령부는 최근 발간한 '2019 전략 다이제스트' 보고서에 "유엔사는 한반도 유사시 일본과 전력 지원 협력을 할 것"이라는 내용을 담았다.

[연관 기사] [글로벌 돋보기] 시진핑과 일전 앞둔 트럼프…일본에 ‘군사대국’ 선물 안기나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아베 총리가 '평화헌법' 개정을 위한 개헌 발의선 달성에 실패한 건 우리로선 다행이다. 하지만 일본은 2016년부터 '자위대의 집단자위권 행사'를 인정한 안보관련법을 시행해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 개입을 검토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뒀다. 또한, 헌법 개정에 날개를 달아줄 '미·일 안보조약 개정'에도 진척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G20 회의 직전, 조약 개정의 필요성을 공식 언급했기 때문이다. '중국을 함께 견제할 강력한 우군'이라는 미국의 전략적 필요를 십분 활용한 아베의 대미 외교 성과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파죽지세' 일본, '유엔사 아래' 두려는 미국의 속셈은?

일본은 세계 군사력 순위에서 올해 6위로 뛰어올라 7위인 한국을 제쳤다. 세계 최고수준의 해상 전력을 앞세워 양적 규모는 한국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지만, 질적인 수준에서 우위를 점한 것으로 분석됐다. 게다가 일본은 '인도·태평양 전개훈련' 명목으로 육상과 해상을 넘나들며 동남아시아는 물론 호주에서까지 미국 해병대와 대규모 상륙 훈련을 했다. 일본 자위대는 미군과 미국 본토에서, 영국군과 일본 본토에서 합동 훈련을 한 바 있다. 일본 군대가 전쟁 참여를 위한 '명분'은 더 쌓아가야 하지만 '실력'은 이미 충분히 확보한 것이 현실이다.

[연관 기사]
일본 자위대, 미 해병대와 “첫 장거리 상륙 훈련”…왜?
[글로벌 돋보기] 트럼프는 아베를 믿을까?…미국에 ‘올인’하는 일본을 경계하는 이유


그러나 다행인 것은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풍겨왔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아베 얼굴 앞에서 '진주만을 잊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지금은 전략적 이해관계에 따라 일본에 힘을 실어주는 트럼프지만, 앞으로 일본에 얼마만큼의 보폭을 더 허용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는 파격 요법을 쓰면서도 한편으로 전례 없이 강력한 대북제재와 한반도에 대한 유엔군사령부의 역할 확대를 지속해서 추진해왔다. 사실상 유엔사 후방기지 역할을 해온 일본을 유엔 전력 제공 국에 포함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 (지난 5월. 도쿄)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 (지난 5월. 도쿄)

하지만 일본까지 유엔사 우산 아래 넣는 데에는 미국의 또 다른 의도가 숨어있다. 힘을 기르더라도 미국이 주도하고 제공하는 질서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확실한 메시지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일 갈등을 언급하며 '한·일 정상 둘 다 원한다면'이라는 단서를 달면서도 개입 가능성을 시사한 것은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는 방증이며 더는 사태를 키우지 말라는 메시지로도 관측된다. 다만, 비핵화 이후 한반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한국을 겨냥해 일본이 '안보'를 이유로 사실상 전쟁을 선포한 데에서는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선점하기 위해 한국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보인다.

아베가 지금 가장 두려워하는 건 '통일 한국'의 출현이다. 일본은 100년 전 서구 열강을 등에 업고 강대국 반열에 올라 한국을 식민지화했다. 2019년 트럼프를 등에 업은 아베가 주제넘게 한반도로 비집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루빨리 미국과 한국 사이의 틈새를 없애야 한다. 미국이 요청하는 호르무즈 해협 파병이 그 시발점이 될 것이다. 미국은 한·미동맹의 가치를 역설하며 끊임없이 우리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미국이 내심 가장 함께 하고픈 동맹도 혈맹인 한국이지 전범 국가인 일본이 아니다. 더는 일본이 강해질 수 있는 명분을 줘선 안 된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글로벌 돋보기] 한반도로 뻗은 아베의 ‘검은손’…한국 제물로 ‘동북아 패권’ 노리나
    • 입력 2019-07-23 08:01:27
    글로벌 돋보기
한국을 겨냥한 일본의 수출 통제는 모양새 자체가 참으로 괴상하다. 한국의 급소인 반도체에 칼을 대면서 '한국의 대북 제재 위반 의혹'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대북제재를 위반했다면 미국이 나설 일이다. 일본은 그럴 자격도 없거니와 경제적 타격을 가하는 것이 수단도 될 수 없다. 차라리 과거사 갈등이 이유라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그건 아니라고 항변한다.

미국을 등에 업고 한 것이든 아니든, 아베의 한국 때리기는 군사대국을 통한 동북아 패권을 노리는 그가 한국을 제물로 삼았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매우 심각한 사안이며, 아베 자신에게도 아주 위험한 도박이 아닐 수 없다.

'북한 연관성' 내세워 한국 겨냥…아베의 어설픈 칼

"한국은 '북한에 대해 제대로 무역 관리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징용 문제에 대해 국제적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 명확하게 됐다. 무역관리도 지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에 대한 수출 통제를 단행한 아베 총리가 지난 7일 방송에서 한 말이다. '북한과의 관련성을 시사한 것'이라고 현지 매체들은 전했다. '한국에서 북한으로 대량파괴무기의 제조에 전용될 수 있는 물질이 흘러들어 간 것이냐?'는 진행자 질문에 "개별적인 것에 대해 말씀드리는 건 삼가고 싶다"면서 "한국이 정확한 수출관리를 하고 있다고 확실히 제시해 주지 않으면 규제 품목을 내보낼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아베 총리가 “한국이 대북제재를 제대로 지켜야 한다”며 수출규제 강화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지난 7일. BS후지TV)
아베 총리는 그러면서 "한국에 대한 규제 조치가 징용 문제에 대한 보복 조치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보복 차원은 절대 아니다. 국가 안보, 즉 한국의 대북 제재 위반 의혹 때문'이라는 게 지금까지 일본 정부가 유지해온 입장이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일본의 스텝이 꼬일 수밖에 없다. 일본은 '제재 위반'을 이유로 한국을 손봐줄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조치가 일본의 소신에 따른 것인지 의구심이 들게 하는 점도 노출했다. '안보'를 명분으로 중국에 경제적 타격을 가하는 트럼프 스타일을 베끼면서 올해 '일본 통상백서'에는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 세계에서 보호주의적 움직임이 늘고 있다"고 우려한 것이다.

수출 규제 명분으로 주장한 한국의 대북제재 위반 의혹에 대해서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뭐라도 있는 것처럼 암시하더니 "한국에서 제3국으로의 구체적인 수출 안건을 염두에 둔 조치는 아니다"라고 말을 바꿨다. 한국에 추가로 타격을 가할 총알은 많이 있다고 하지만 명분과 관련해선 어설픈 인상마저 풍기고 있다. 일본은 왜 자신들이 '할 일이 아닌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강변하는 걸까?

미국도 한국 압박…"한미 정상, 일본과 '연합훈련' 협력 약속"

아베가 한국에 칼을 빼 들기 직전, 일본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온 미국 대통령과 한국 대통령 간 회담이 있었다. 미국 국무부는 한미 정상이 이번 회담에서 한 약속을 홈페이지에 상세히 올렸다. 이례적인 일이다. 국무부가 밝힌 한미 정상 간 합의는 아래와 같다.


미국이 새롭게 수립한 '인도·태평양' 전략에서도 한미 동맹이 린치핀(핵심축)이라고 못 박으면서 이를 위해 한·미·일 3각 안보협력을 강조했다. 일본까지 포함한 3각 공조에 '연합훈련'까지 적시한 점이 주목된다. '일본과는 안보 협력을 하지 않는다'는 한국과 중국 간 이른바 '3불(사드 추가 배치, 미국의 탄도미사일방어체제 참여, 한·미·일 안보협력을 하지 않는다)'과 정면배치되는 내용이다. 미국이 트럼프 정부 들어 미군의 '태평양 사령부'를 '인도·태평양 사령부'로 바꾼 것은 중국을 상대하기 위함이다. 트럼프 정부는 이전 미국 정부들과 달리 중국 제압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 주도의 국가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바꾸는 것이 무역 전쟁의 목표라는 사실도 숨기지 않고 있다.

이런 미국은 중국에 맞서 함께 싸워줄 강한 우군을 필요로 한다. 그러면서 한국에도 '미국과 중국 중 택일하라'는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지난달, 한국이 남중국해로 군함을 보내달라는 미국의 요청을 거절했다고 전하면서 "한국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받고 있는 동시에 중국과 무역관계 훼손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진퇴양난"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전통적인 동맹이면서 중국의 강력한 교역 파트너인 한국이 가장 큰 압력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말 G20 직후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한·미·일 3각 공조'를 확약받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미국과 일본은 2017년 한국과 중국 정부가 '3불'에 합의하면서 삐걱대기 시작했다. 한미 간에도 대북 접근법에 있어 입장 차를 노출해왔는데, 지난달에는 한국을 향해 공개적으로 '화웨이 제재 동참'을 요구한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가 청와대의 입장을 반박하며 파열음을 내기도 했다. 당시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중국으로부터도 '미국과 화웨이 제재에 손 잡으면 감당 못 할 것'이라는 압박을 받았다.

'중재 요청'에 냉담한 미국…트럼프 "아베는 특별한 사람"

한·미동맹이 찰떡 공조를 과시하는 상황이라면 굳이 미국과 한국 대통령까지 나서 한·미동맹의 가치를 재확인할 필요가 있을까. 미국은 '중국 무력화'를 1순위에 둔 현재 세계 전략상 한·미 동맹이 필요하고 이를 확장한 개념이 바로 한·미·일 3각 동맹이다. 어느 때보다 3각 공조가 돈독해야 할 시점에 일본이 기습적으로 한국의 급소를 때렸다. '트럼프의 푸들'로까지 불리는 아베가 말이다.

'그가 과연 독단적으로 일을 벌였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는 게 오히려 상식적이다. 일본이 한국에 수출통제를 가한 전후로 벌어진 상황들을 연결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한국에 대한 미국의 '남중국해 군함 파견'과 '화웨이 제재 동참' 요구에 한국이 거절한 일이 있었다. 그리고 미·일 정상이 두 차례 밀도 있는 회담을 한 직후 미국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과 '한·미·일 협력'에 '안보' 개념을 포함해 적극적으로 조율하기로 합의했다. 이렇게 미국이 한국-중국 간 '삼불'과 충돌하는 약속을 받아간 다음 날 일본은 '대북제재 위반 의혹'을 명분으로 한국에 수출통제를 가했다.

뒤늦게 드러난 사실이지만, 한·미 정상회담 당시 이미 한·일 갈등과 관련한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 요청이 있었고 트럼프 대통령은 사실상 수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는 아베가 곧 한국을 겨눌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을까. 일본의 대표적인 지한파 학자인 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지역문화연구소장은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이 한국에 규제를 하면서 '안전보장' 문제를 꺼낸 것으로 미뤄봤을 때, 미국의 '묵시적 허락'이 있을 것"이라면서 "일본에선 한·일 갈등을 미·중 대립의 큰 틀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많다. 미국이 중국과 가까워지려는 한국에 경고를 보낸 것으로 해석하는 견해"라고 말했다.


한·일 갈등을 다루는 미국의 입장을 보면 이전과 달리 '차가움'마저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주말 일본의 수출 통제에 대해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의 메시지는 한마디로 "당장은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알아서 해결하라"는 미국 정부의 입장과 다르지 않다. 그러면서 "나는 두 정상을 좋아한다. 문재인 대통령을 좋아하고, 아베 총리는 '특별한 사람'"이라고 한 점이 눈에 띈다.

[연관 기사] [글로벌 돋보기] 한국과 척지고 영국과 손잡는 日…열강의 추억인가?

나흘 전(현지시각 15일)에는 일본을 콕 집어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일본과 다른 나라들은 나의 확실한 요구, 지시 ... 뭐라고 불러도 좋다. 엄청난 빌딩과 공장을 미국에 보내고 있다"고 말한 것이다. 이때 역시 전례 없는 한일 갈등으로 미국 언론도 그의 입장을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대 중국 정책은 물론 미국 내 투자까지 지금 트럼프의 가장 든든한 우군이 아베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한국 때리고 북한에 손 내민 아베 … '동북아 패권'·'한반도 주도권' 노리나

그렇다면 한국 언론은 물론 자국 언론과 외신의 호된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아베가 써본 적도 없는 칼을 한국에 들이댄 이유는 뭘까. 그 노림수를 알려면, 그가 '전쟁 가능한 일본'을 넘어 '군사대국 일본'을 집요하게 추진하는 최종 목적이 무엇인지 간파해야 한다.

[연관 기사]
[글로벌 돋보기] 40년 만에 금간 미중 관계…“진짜 전쟁은 지금부터”
[글로벌 돋보기] 美 “중국 제압해 북한 떼어낸다”…임박한 ‘비핵화 결전’의 시간


아베가 트럼프 곁에 바짝 붙어 중국 때리기에 발 벗고 나서는 건 결국 동아시아 패권을 거머쥐기 위한 포석이다. 트럼프 마음 얻기에 올인하는 건 아베 자신이 믿는 일본의 국익을 위한 철저히 계산된 행보다. 중국의 힘이 약해지면 세계 3위 경제 대국인 일본의 입지는 그만큼 넓어진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 '미국을 일본 편으로 만들기'에 공세적으로 나서는 이유는 '중국 주저앉히기'가 최우선인 트럼프 정부 목표의 반사이익을 최대한 누리기 위한 전략인 것이다.

북한이 작은 미사일 한 발만 쏴도 전쟁이라도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던 아베 총리가 지난해 싱가포르 회담을 기점으로 대북 접근법을 완전히 바꾼 것도 마찬가지다. 미·중 간 오랜 밀월 속에 주변 강대국과 마찬가지로 '한반도 분단 고착화'를 전제로 유지해온 일본의 대북 전략도 재빨리 수정된 것이다. 아베는 대 한국 수출 통제를 정당화하는 와중에도 북한 김정은 위원장에겐 만나고 싶다고 손을 내밀었다. '중국에서 북한을 떼내 경제 강국으로 만든다'는 트럼프의 구상에도 한발 앞서 다가가려는 그의 의도가 엿보인다.

아베 총리와 시진핑 주석이 정상회담을 하면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지난달 27일. 오사카)
NHK 등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은 시진핑 주석과의 평양 회담에서 '아베 총리의 정상회담 제안에 유의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 주석이 김 위원장의 이런 메시지를 최근 G20에서 전달했다고 한다. 아베 총리의 집요함에 김 위원장도 화답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한미군사령부는 최근 발간한 '2019 전략 다이제스트' 보고서에 "유엔사는 한반도 유사시 일본과 전력 지원 협력을 할 것"이라는 내용을 담았다.

[연관 기사] [글로벌 돋보기] 시진핑과 일전 앞둔 트럼프…일본에 ‘군사대국’ 선물 안기나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아베 총리가 '평화헌법' 개정을 위한 개헌 발의선 달성에 실패한 건 우리로선 다행이다. 하지만 일본은 2016년부터 '자위대의 집단자위권 행사'를 인정한 안보관련법을 시행해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 개입을 검토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뒀다. 또한, 헌법 개정에 날개를 달아줄 '미·일 안보조약 개정'에도 진척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G20 회의 직전, 조약 개정의 필요성을 공식 언급했기 때문이다. '중국을 함께 견제할 강력한 우군'이라는 미국의 전략적 필요를 십분 활용한 아베의 대미 외교 성과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파죽지세' 일본, '유엔사 아래' 두려는 미국의 속셈은?

일본은 세계 군사력 순위에서 올해 6위로 뛰어올라 7위인 한국을 제쳤다. 세계 최고수준의 해상 전력을 앞세워 양적 규모는 한국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지만, 질적인 수준에서 우위를 점한 것으로 분석됐다. 게다가 일본은 '인도·태평양 전개훈련' 명목으로 육상과 해상을 넘나들며 동남아시아는 물론 호주에서까지 미국 해병대와 대규모 상륙 훈련을 했다. 일본 자위대는 미군과 미국 본토에서, 영국군과 일본 본토에서 합동 훈련을 한 바 있다. 일본 군대가 전쟁 참여를 위한 '명분'은 더 쌓아가야 하지만 '실력'은 이미 충분히 확보한 것이 현실이다.

[연관 기사]
일본 자위대, 미 해병대와 “첫 장거리 상륙 훈련”…왜?
[글로벌 돋보기] 트럼프는 아베를 믿을까?…미국에 ‘올인’하는 일본을 경계하는 이유


그러나 다행인 것은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풍겨왔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아베 얼굴 앞에서 '진주만을 잊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지금은 전략적 이해관계에 따라 일본에 힘을 실어주는 트럼프지만, 앞으로 일본에 얼마만큼의 보폭을 더 허용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는 파격 요법을 쓰면서도 한편으로 전례 없이 강력한 대북제재와 한반도에 대한 유엔군사령부의 역할 확대를 지속해서 추진해왔다. 사실상 유엔사 후방기지 역할을 해온 일본을 유엔 전력 제공 국에 포함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 (지난 5월. 도쿄)
하지만 일본까지 유엔사 우산 아래 넣는 데에는 미국의 또 다른 의도가 숨어있다. 힘을 기르더라도 미국이 주도하고 제공하는 질서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확실한 메시지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일 갈등을 언급하며 '한·일 정상 둘 다 원한다면'이라는 단서를 달면서도 개입 가능성을 시사한 것은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는 방증이며 더는 사태를 키우지 말라는 메시지로도 관측된다. 다만, 비핵화 이후 한반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한국을 겨냥해 일본이 '안보'를 이유로 사실상 전쟁을 선포한 데에서는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선점하기 위해 한국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보인다.

아베가 지금 가장 두려워하는 건 '통일 한국'의 출현이다. 일본은 100년 전 서구 열강을 등에 업고 강대국 반열에 올라 한국을 식민지화했다. 2019년 트럼프를 등에 업은 아베가 주제넘게 한반도로 비집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루빨리 미국과 한국 사이의 틈새를 없애야 한다. 미국이 요청하는 호르무즈 해협 파병이 그 시발점이 될 것이다. 미국은 한·미동맹의 가치를 역설하며 끊임없이 우리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미국이 내심 가장 함께 하고픈 동맹도 혈맹인 한국이지 전범 국가인 일본이 아니다. 더는 일본이 강해질 수 있는 명분을 줘선 안 된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