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母子의 비극, 왜 두 달 동안 몰랐나

입력 2019.08.14 (08:00) 수정 2019.08.14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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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납 수도요금 37만 원'...이웃과 왕래 없었다

서울 관악구의 한 아파트에서 40대 탈북 여성 한 모 씨와 6살 난 아들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발견 시점은 지난달 31일. 수도 요금이 수개월 동안 밀리자 아파트 관리인이 강제로 잠긴 문을 열고 들어가 두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발견 당시 시신은 이미 상당히 부패했고, 집 안에선 음식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경찰은 굶주리다 '아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KBS 취재진이 현장을 찾아 도시가스 검침 표를 확인해 봤습니다. 지난 4월 이후로 가스 점검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우편함에 꽂혀 있던 수도요금 고지서에는 연체 요금을 포함해 이번 달 수도요금이 37만여 원으로 적혀 있었습니다. 지난 4월과 5월 요금이 각각 5만여 원으로 나왔던 것을 보면, 벌써 수개월째 미납상태였던 겁니다.

현장에서 만난 이웃 주민은 한 씨에 대해 '이웃과 왕래가 없었던 사람'이라며 "항상 모자를 뒤집어쓴 채 아이만 데리고 다녔다"고 말했습니다.

경찰은 주변인 진술 등을 토대로 한 씨 모자가 사망한 지 2달이 넘어 발견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왜 이 긴 시간 동안 관계 당국은 이들을 발견하지 못했던 걸까요?

■'보호 기간은 5년'...정부 지원금도 신청 안 해


탈북민에, 한부모 가정에, 변변한 수입조차 없었습니다. 이 정도 상황이면 관할 구청이나 통일부 등에서 한 씨 모자를 적절히 관리했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왜 두 달 넘게 한 씨 모자는 숨진 채 방치된 걸까요.

먼저 탈북민들이 어떤 지원을 받는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최초 탈북한 사람은 최초 12주 동안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에서 사회적응 교육을 받은 뒤 퇴소해 거주지에서 보호를 받습니다.

▲취업지원(고용지원금·무료직업훈련) ▲교육지원(특례 편입학·등록금 지원) ▲보호담당관제(거주지보호·취업보호·신변보호) 같은 지원이 있는데요. 지역마다 설치된 하나 센터에서 전문 상담사들이 상담 서비스도 제공합니다.

하지만 이 거주지 보호 기간은 딱 '5년'입니다. 보호담당관이 이 5년까지는 집중적으로 탈북민을 관리하지만, 이후 탈북민에 대한 보호가 필요 없다고 판단하면 보호담당관들이 더는 연락을 취하지 않습니다. 한 씨는 2009년 탈북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법적 보호 기간인 5년을 훌쩍 넘어 보호담당관들이 별도 연락을 취할 의무가 없어진 겁니다.

한 씨는 중국 동포와 결혼해 중국으로 이사해 살다가, 지난해 10월 서울 관악구에 다시 전입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이 사실을 확인한 신변보호담당관(경찰)이 한 씨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고 실제 방문하지는 않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거주지보호담당관(관악구청)과 취업보호담당관(관악 고용센터) 등도 한 씨와 별도로 접촉하지 않았습니다. 알고는 있었지만 '의무'는 없었습니다.

한 씨가 최근까지 정부에게 받은 지원금도 아들과 관련된 돈뿐이었습니다. 아동수당과 양육수당 각각 10만 원씩, 모두 20만 원뿐이었습니다. 이 중 아동수당은 자녀가 만 6살 때까지만 지원되기 때문에, 김 군이 크면서 지난 3월부터는 지급되지 않았습니다. 한 씨는 기초생활수급 신청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결국, 3월부터 한 씨 모자의 총수입은 양육수당 10만 원뿐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만 통일부는 경제 상황이 매우 어려운 탈북민에게는 하나 재단 등을 통해 지원금을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본인이 사전에 요청하지 않으면 지원은 이뤄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나 재단에서 개인 소득 정보를 먼저 파악할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본인 요청이 있을 때만 지역마다 설치된 하나 센터의 상담사들이 지원을 하는 체계입니다. 한 씨가 관악구에 전입하고도 도움을 청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 씨를 담당했던 관악구 동부하나센터 상담사와도 연락이 닿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결국, 탈북한지 10년이 됐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다른 사람들이나 정부 기관과의 접촉을 피했던 한 씨는 탈북민으로서의 지원도, 신변 보호도, 정부의 재정적 지원도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 통일부 "사각지대 없도록 점검하겠다"

통일부 당국자는 "사각지대로 관리가 안 된 부분에 대해 점검하겠다"고 설명했습니다. 법적으로 정해진 '5년'이라는 기한과 관계기관의 지원제도에 미흡한 점이 없었는지 확인하고 보완하겠다는 겁니다.

또, 경찰 조사 결과를 확인한 뒤 관련 부서에서 미흡한 지원이 없었는지를 확인하겠다고 밝혔는데요. 경찰은 모자 시신에 대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맡기고 정확한 사인과 사망 시점 등을 확인할 방침입니다.

경찰은 한 씨와 이혼한 전 남편이 현재 중국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긴 했지만, 이번 사건과의 연관성은 없다고 판단해 소환할 방침은 정해진 게 없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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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북민 母子의 비극, 왜 두 달 동안 몰랐나
    • 입력 2019-08-14 08:00:14
    • 수정2019-08-14 09:15:29
    취재K
■ '미납 수도요금 37만 원'...이웃과 왕래 없었다

서울 관악구의 한 아파트에서 40대 탈북 여성 한 모 씨와 6살 난 아들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발견 시점은 지난달 31일. 수도 요금이 수개월 동안 밀리자 아파트 관리인이 강제로 잠긴 문을 열고 들어가 두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발견 당시 시신은 이미 상당히 부패했고, 집 안에선 음식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경찰은 굶주리다 '아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KBS 취재진이 현장을 찾아 도시가스 검침 표를 확인해 봤습니다. 지난 4월 이후로 가스 점검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우편함에 꽂혀 있던 수도요금 고지서에는 연체 요금을 포함해 이번 달 수도요금이 37만여 원으로 적혀 있었습니다. 지난 4월과 5월 요금이 각각 5만여 원으로 나왔던 것을 보면, 벌써 수개월째 미납상태였던 겁니다.

현장에서 만난 이웃 주민은 한 씨에 대해 '이웃과 왕래가 없었던 사람'이라며 "항상 모자를 뒤집어쓴 채 아이만 데리고 다녔다"고 말했습니다.

경찰은 주변인 진술 등을 토대로 한 씨 모자가 사망한 지 2달이 넘어 발견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왜 이 긴 시간 동안 관계 당국은 이들을 발견하지 못했던 걸까요?

■'보호 기간은 5년'...정부 지원금도 신청 안 해


탈북민에, 한부모 가정에, 변변한 수입조차 없었습니다. 이 정도 상황이면 관할 구청이나 통일부 등에서 한 씨 모자를 적절히 관리했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왜 두 달 넘게 한 씨 모자는 숨진 채 방치된 걸까요.

먼저 탈북민들이 어떤 지원을 받는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최초 탈북한 사람은 최초 12주 동안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에서 사회적응 교육을 받은 뒤 퇴소해 거주지에서 보호를 받습니다.

▲취업지원(고용지원금·무료직업훈련) ▲교육지원(특례 편입학·등록금 지원) ▲보호담당관제(거주지보호·취업보호·신변보호) 같은 지원이 있는데요. 지역마다 설치된 하나 센터에서 전문 상담사들이 상담 서비스도 제공합니다.

하지만 이 거주지 보호 기간은 딱 '5년'입니다. 보호담당관이 이 5년까지는 집중적으로 탈북민을 관리하지만, 이후 탈북민에 대한 보호가 필요 없다고 판단하면 보호담당관들이 더는 연락을 취하지 않습니다. 한 씨는 2009년 탈북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법적 보호 기간인 5년을 훌쩍 넘어 보호담당관들이 별도 연락을 취할 의무가 없어진 겁니다.

한 씨는 중국 동포와 결혼해 중국으로 이사해 살다가, 지난해 10월 서울 관악구에 다시 전입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이 사실을 확인한 신변보호담당관(경찰)이 한 씨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고 실제 방문하지는 않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거주지보호담당관(관악구청)과 취업보호담당관(관악 고용센터) 등도 한 씨와 별도로 접촉하지 않았습니다. 알고는 있었지만 '의무'는 없었습니다.

한 씨가 최근까지 정부에게 받은 지원금도 아들과 관련된 돈뿐이었습니다. 아동수당과 양육수당 각각 10만 원씩, 모두 20만 원뿐이었습니다. 이 중 아동수당은 자녀가 만 6살 때까지만 지원되기 때문에, 김 군이 크면서 지난 3월부터는 지급되지 않았습니다. 한 씨는 기초생활수급 신청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결국, 3월부터 한 씨 모자의 총수입은 양육수당 10만 원뿐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만 통일부는 경제 상황이 매우 어려운 탈북민에게는 하나 재단 등을 통해 지원금을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본인이 사전에 요청하지 않으면 지원은 이뤄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나 재단에서 개인 소득 정보를 먼저 파악할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본인 요청이 있을 때만 지역마다 설치된 하나 센터의 상담사들이 지원을 하는 체계입니다. 한 씨가 관악구에 전입하고도 도움을 청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 씨를 담당했던 관악구 동부하나센터 상담사와도 연락이 닿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결국, 탈북한지 10년이 됐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다른 사람들이나 정부 기관과의 접촉을 피했던 한 씨는 탈북민으로서의 지원도, 신변 보호도, 정부의 재정적 지원도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 통일부 "사각지대 없도록 점검하겠다"

통일부 당국자는 "사각지대로 관리가 안 된 부분에 대해 점검하겠다"고 설명했습니다. 법적으로 정해진 '5년'이라는 기한과 관계기관의 지원제도에 미흡한 점이 없었는지 확인하고 보완하겠다는 겁니다.

또, 경찰 조사 결과를 확인한 뒤 관련 부서에서 미흡한 지원이 없었는지를 확인하겠다고 밝혔는데요. 경찰은 모자 시신에 대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맡기고 정확한 사인과 사망 시점 등을 확인할 방침입니다.

경찰은 한 씨와 이혼한 전 남편이 현재 중국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긴 했지만, 이번 사건과의 연관성은 없다고 판단해 소환할 방침은 정해진 게 없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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