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부적정 임용 교수, 그는 총장 아들이었다”

입력 2019.08.30 (09:27) 수정 2019.08.30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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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제주 KBS 보도국으로 한 통의 편지가 전달됐습니다. 대학 사회 병폐를 지적해 달라는 내용의 이 편지에는 사립대학교인 제주 관광대 교수 채용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총장 아들이 교수 채용 과정에서 자격 미달자로 지적받아 시정 명령이 이뤄졌는데 여전히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확인 결과 실제로 지난 1월 공개된 제주도 감사위원회(제주도 감사위) 재무감사에서 제주 관광대 교수의 부적정 임용 사실이 드러난 바 있었습니다. 하지만 감사 내용에는 채용된 교수가 누구인지, 총장과 어떤 관계인지 등은 명시되지 않았습니다. KBS 취재결과 편지 내용대로 해당 교수는 총장의‘아들’이었습니다.


기본 자격 미달인데 서류심사 합격

지난 2017년 12월 교수 채용이 진행됐습니다. 1차 서류심사(기초심사, 전공심사)와 2차 면접 심사 등으로 절차가 진행됐는데, 제주도 감사위는 1차 서류 심사 과정의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제주도 감사위에 따르면, 당시 서류 심사 조건은 '대학교원 자격 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교육과 연구·연수 경력이 합계 4년 이상인 자를 합격자로 결정해야 하지만, 당시 만 28살이던 총장 아들 A 씨는 2년 5개월임에도 기초 심사를 통과했습니다. 당시 또 다른 지원자 B 씨의 경력은 5년 8개월이었습니다.

전공 적합성 심사에서도 점수가 부당하게 부여됐습니다. 당시 전공 심사위원회는 해당 학과 학과장과 학과 교수 2명, 외부심사위원 1명으로 구성됐는데, 한 심사위원은 총장 아들 A 씨에게는 배점 기준 최고점인 8점을 초과하는 9점을 부여했고, B 씨에게는 배점표에 없는 2점을 부당하게 부여했습니다. 해당 배점표는 매우 적합(8점)과 적합(6점), 유사(4점), 부적합(1점)으로 이뤄져 있었습니다.


석사 학위에 대해서도 부당한 점수가 부여됐습니다. 두 심사위원은 두 지원자 모두 같은 경영학 석사 출신인데도, 총장 아들 A 씨에게는 최고점인 8점을, B 씨에게는 세부전공이 기술혁신경영이라는 이유로 부적합에 해당하는 1점을 부여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총장 아들 A 씨는 채용공고에서 권장하는 연구 실적 200%도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도 나타났났습니다. 하지만 박사 학위 소지자였던 B 씨는 탈락했고, 조건 미달에 박사과정생이었던 A 씨는 교수로 채용됐습니다.

당시 관광대는 제주도 감사위에 총장 아들 A씨가 “연구실적은 미약하나, 미국 대학의 학부 과정에서 국제경영을 전공하고, 학과목을 강의할 능력이 충분하다”며 “젊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채용을 결정했다”고 답변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감사위는 “기초 심사는 법령에서 정한 교원 최소 자격 기준을 위한 것으로 가장 기본적이고 우선하여 확인해야 할 사항이고, 전공심사도 배점 기준표에서 정한 범위를 벗어나 점수를 부여하는 등 변명 사유로 인정되기 어렵다”며 기관장 경고와 심사위원에게 경고 처분을 내릴 것을 요구했습니다.


취재진은 김성규 총장에게 감사 결과에 대한 입장을 묻기 위해 여러 차례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현재까지 답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채용된 A 씨도 직접 만나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채용 과정을 잘 모른다’며 추후 연락을 주겠다고 했지만, 아직 답변이 없는 상황입니다.

다만 학교 측은 취재가 시작되자 “행정적인 미흡함이 있었지만, 부정 채용은 아니”라며 “당시 심사위원 4명에게 경고 처분을 내렸다”고 전해왔습니다.

KBS 취재 결과 대학 측은 감사 지적 이후인 지난 3월, 교수 등 학내 구성원으로 구성된 교원인사위원회를 열어 A 씨를 교원으로 인정했습니다. 교원인사위원회로부터 자격을 인정받으면 연구 실적과 교육 경력 합계가 2년 이상인 경우에도 교수로 근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당초 서류심사에서 떨어져야 할 사람을 채용한 뒤, 문제가 불거지자 인사위를 열어 교수 자격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보장해준 셈입니다. 제주관광대에서 교원인사위원회를 통해 교원으로 인정받은 사례는 총장 아들인 A 씨뿐입니다.

감사 실효성 있나

제주 관광대학교는 1990년대 초 학교법인 제주교육학원 설립인가를 받았습니다. 설립자이자 초대 이사장은 김창희 박사로, 그의 아내는 현 김성규 총장입니다. 관광대는 설립 이후 두 부부가 번갈아 가며 총장과 이사장직 등을 수행해 온 전형적인 가족 경영 사학입니다.

인사권 등이 이사장에게 있기 때문에 도감사위가 지적한들, 학교가 나서 처분을 내리지 않으면 문제가 불거져도 위와 같은 방법으로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제주도는 지난 2011년 대학 설립 운영에 관한 권한이 제주특별자치도로 이양되면서 도지사에게 사립대학 지도 감독권이 부여됐습니다. 제주도의 관리·감독이 이뤄지고 있지만, 전문 인력이 부족하고 담당자가 주기적으로 변경되는 등 업무 연속성이 떨어져 사립대 전반적인 문제에 대한 관리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진실과 정의를 위한 제주 교수 네트워크 정민 교수(제주 한라대학교)는 “사립대 경영진의 독단적 대학 운영, 각종 인사 비리와 부정부패에도 ‘대학 내에서 알아서 할 일’로 간주하고, 위법 사항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인 경우들이 있다”며 사립대 지도감독권 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정 교수는 “대학 구성원과 도민 감시,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제도적 창구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사립대학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특별위원회와 사립대학 시민감시단 구성 등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제주도 내 사립대학은 제주 관광대를 비롯해 1969년 공립간호학교로 출발한 현 제주 한라대학교, 1973년 제주 실업전문학교로 시작한 현 제주국제대학교 등 3곳입니다. 정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가족 경영인 관광대를 비롯해 한라대 역시 학원장과 이사, 총장 등이 가족이고, 제주국제대는 설립 당시 이사장 가족이 학교 경영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이미 제주 한라대는 감사원 감사와 제주도 감사위 감사를 통해 여러 비위 등이 불거졌고, 제주 국제대는 감사원 감사와 통폐합 과정에서 재단의 교비 횡령 등으로 인한 대학경영 부실이 초래된 바 있습니다. 제주관광대는 이번 사례를 제외하고 표면적으로 드러난 문제는 없지만, 노조 등 학내 문제를 제기할 임의단체가 없는 상황입니다.

"A 씨도 오히려 피해자일 수 있다"

제주 관광대 기획처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아들인 A 교수는 잘못이 없고 오히려 피해자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맞는 얘깁니다. A 씨는 채용 과정에 응시해 합격했을 뿐 잘못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 문제를 단순히 심사위원 잘못으로, 행정 상 미흡함으로 치부하는 게 맞는 걸까요. 먼 훗날 아들 A 씨가 총장과 이사장 자리에 앉게 될 수 있다는 상상은 비단 저만의 생각일까요? 유학파에 젊고 유능한 인재라 한들 채용 과정과 절차가 잘못됐다면 학교가 먼저 나서 이를 바로 잡는 게 우선 아닐까요?

대학 측은 취재가 시작되자 "법적 자문을 거쳐 A 씨가 교수로 재직하는 것이 문제가 없는지 검토하겠다"고 뒤늦게 알려왔습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도내 사립대학 제도 개선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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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부적정 임용 교수, 그는 총장 아들이었다”
    • 입력 2019-08-30 09:27:15
    • 수정2019-08-30 09:27:21
    취재후·사건후
지난주 제주 KBS 보도국으로 한 통의 편지가 전달됐습니다. 대학 사회 병폐를 지적해 달라는 내용의 이 편지에는 사립대학교인 제주 관광대 교수 채용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총장 아들이 교수 채용 과정에서 자격 미달자로 지적받아 시정 명령이 이뤄졌는데 여전히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확인 결과 실제로 지난 1월 공개된 제주도 감사위원회(제주도 감사위) 재무감사에서 제주 관광대 교수의 부적정 임용 사실이 드러난 바 있었습니다. 하지만 감사 내용에는 채용된 교수가 누구인지, 총장과 어떤 관계인지 등은 명시되지 않았습니다. KBS 취재결과 편지 내용대로 해당 교수는 총장의‘아들’이었습니다.


기본 자격 미달인데 서류심사 합격

지난 2017년 12월 교수 채용이 진행됐습니다. 1차 서류심사(기초심사, 전공심사)와 2차 면접 심사 등으로 절차가 진행됐는데, 제주도 감사위는 1차 서류 심사 과정의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제주도 감사위에 따르면, 당시 서류 심사 조건은 '대학교원 자격 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교육과 연구·연수 경력이 합계 4년 이상인 자를 합격자로 결정해야 하지만, 당시 만 28살이던 총장 아들 A 씨는 2년 5개월임에도 기초 심사를 통과했습니다. 당시 또 다른 지원자 B 씨의 경력은 5년 8개월이었습니다.

전공 적합성 심사에서도 점수가 부당하게 부여됐습니다. 당시 전공 심사위원회는 해당 학과 학과장과 학과 교수 2명, 외부심사위원 1명으로 구성됐는데, 한 심사위원은 총장 아들 A 씨에게는 배점 기준 최고점인 8점을 초과하는 9점을 부여했고, B 씨에게는 배점표에 없는 2점을 부당하게 부여했습니다. 해당 배점표는 매우 적합(8점)과 적합(6점), 유사(4점), 부적합(1점)으로 이뤄져 있었습니다.


석사 학위에 대해서도 부당한 점수가 부여됐습니다. 두 심사위원은 두 지원자 모두 같은 경영학 석사 출신인데도, 총장 아들 A 씨에게는 최고점인 8점을, B 씨에게는 세부전공이 기술혁신경영이라는 이유로 부적합에 해당하는 1점을 부여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총장 아들 A 씨는 채용공고에서 권장하는 연구 실적 200%도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도 나타났났습니다. 하지만 박사 학위 소지자였던 B 씨는 탈락했고, 조건 미달에 박사과정생이었던 A 씨는 교수로 채용됐습니다.

당시 관광대는 제주도 감사위에 총장 아들 A씨가 “연구실적은 미약하나, 미국 대학의 학부 과정에서 국제경영을 전공하고, 학과목을 강의할 능력이 충분하다”며 “젊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채용을 결정했다”고 답변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감사위는 “기초 심사는 법령에서 정한 교원 최소 자격 기준을 위한 것으로 가장 기본적이고 우선하여 확인해야 할 사항이고, 전공심사도 배점 기준표에서 정한 범위를 벗어나 점수를 부여하는 등 변명 사유로 인정되기 어렵다”며 기관장 경고와 심사위원에게 경고 처분을 내릴 것을 요구했습니다.


취재진은 김성규 총장에게 감사 결과에 대한 입장을 묻기 위해 여러 차례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현재까지 답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채용된 A 씨도 직접 만나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채용 과정을 잘 모른다’며 추후 연락을 주겠다고 했지만, 아직 답변이 없는 상황입니다.

다만 학교 측은 취재가 시작되자 “행정적인 미흡함이 있었지만, 부정 채용은 아니”라며 “당시 심사위원 4명에게 경고 처분을 내렸다”고 전해왔습니다.

KBS 취재 결과 대학 측은 감사 지적 이후인 지난 3월, 교수 등 학내 구성원으로 구성된 교원인사위원회를 열어 A 씨를 교원으로 인정했습니다. 교원인사위원회로부터 자격을 인정받으면 연구 실적과 교육 경력 합계가 2년 이상인 경우에도 교수로 근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당초 서류심사에서 떨어져야 할 사람을 채용한 뒤, 문제가 불거지자 인사위를 열어 교수 자격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보장해준 셈입니다. 제주관광대에서 교원인사위원회를 통해 교원으로 인정받은 사례는 총장 아들인 A 씨뿐입니다.

감사 실효성 있나

제주 관광대학교는 1990년대 초 학교법인 제주교육학원 설립인가를 받았습니다. 설립자이자 초대 이사장은 김창희 박사로, 그의 아내는 현 김성규 총장입니다. 관광대는 설립 이후 두 부부가 번갈아 가며 총장과 이사장직 등을 수행해 온 전형적인 가족 경영 사학입니다.

인사권 등이 이사장에게 있기 때문에 도감사위가 지적한들, 학교가 나서 처분을 내리지 않으면 문제가 불거져도 위와 같은 방법으로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제주도는 지난 2011년 대학 설립 운영에 관한 권한이 제주특별자치도로 이양되면서 도지사에게 사립대학 지도 감독권이 부여됐습니다. 제주도의 관리·감독이 이뤄지고 있지만, 전문 인력이 부족하고 담당자가 주기적으로 변경되는 등 업무 연속성이 떨어져 사립대 전반적인 문제에 대한 관리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진실과 정의를 위한 제주 교수 네트워크 정민 교수(제주 한라대학교)는 “사립대 경영진의 독단적 대학 운영, 각종 인사 비리와 부정부패에도 ‘대학 내에서 알아서 할 일’로 간주하고, 위법 사항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인 경우들이 있다”며 사립대 지도감독권 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정 교수는 “대학 구성원과 도민 감시,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제도적 창구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사립대학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특별위원회와 사립대학 시민감시단 구성 등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제주도 내 사립대학은 제주 관광대를 비롯해 1969년 공립간호학교로 출발한 현 제주 한라대학교, 1973년 제주 실업전문학교로 시작한 현 제주국제대학교 등 3곳입니다. 정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가족 경영인 관광대를 비롯해 한라대 역시 학원장과 이사, 총장 등이 가족이고, 제주국제대는 설립 당시 이사장 가족이 학교 경영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이미 제주 한라대는 감사원 감사와 제주도 감사위 감사를 통해 여러 비위 등이 불거졌고, 제주 국제대는 감사원 감사와 통폐합 과정에서 재단의 교비 횡령 등으로 인한 대학경영 부실이 초래된 바 있습니다. 제주관광대는 이번 사례를 제외하고 표면적으로 드러난 문제는 없지만, 노조 등 학내 문제를 제기할 임의단체가 없는 상황입니다.

"A 씨도 오히려 피해자일 수 있다"

제주 관광대 기획처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아들인 A 교수는 잘못이 없고 오히려 피해자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맞는 얘깁니다. A 씨는 채용 과정에 응시해 합격했을 뿐 잘못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 문제를 단순히 심사위원 잘못으로, 행정 상 미흡함으로 치부하는 게 맞는 걸까요. 먼 훗날 아들 A 씨가 총장과 이사장 자리에 앉게 될 수 있다는 상상은 비단 저만의 생각일까요? 유학파에 젊고 유능한 인재라 한들 채용 과정과 절차가 잘못됐다면 학교가 먼저 나서 이를 바로 잡는 게 우선 아닐까요?

대학 측은 취재가 시작되자 "법적 자문을 거쳐 A 씨가 교수로 재직하는 것이 문제가 없는지 검토하겠다"고 뒤늦게 알려왔습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도내 사립대학 제도 개선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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