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K] KTX 승무원들, 왜 추석에 파업 나섰나?

입력 2019.09.11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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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에는 똑같지만, 엄연히 다르다!

KTX나 SRT를 타면 객실을 돌아다니는 승무원들을 만나게 됩니다. 검표 업무를 담당하기도 하고, 객실 내 온도를 점검하기도 하며 짐칸의 짐이 안전한지도 확인하고, 승객들의 민원도 처리해 줍니다.

그런데 손님들 눈에는 다 똑같아 보이는데 엄밀하게 보면 객실 승무원도 구분이 있습니다. 코레일 소속의 열차팀장과 코레일 자회사인 코레일관광개발 소속의 객실 승무원입니다. 보통 열차 한 편성에는 열차팀장 1명과 객실 승무원 2명이 탑승하게 됩니다.

회사가 다른 만큼 공식적인 업무도 다르다고 합니다. 철도노조 설명에 따르면 열차팀장은 열차와 승객의 안전 업무를 담당하고, 객실 승무원들은 승객 서비스 업무를 담당하게 돼 있습니다. 단 비상시에는 열차팀장을 보조해 안전업무를 수행해야 하는데 이 경우에도 열차팀장의 지시에 따라 안전업무를 수행하게 돼 있다고 합니다.

철도노조는 2018년 12월 강릉 KTX 탈선사고를 들어 이 규정이 심각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당시 사고가 나자 객실 승무원들이 승객에 대한 안전 조치를 취하려고 했지만, 열차팀장의 지시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적극적인 대처가 힘들었다는 겁니다.

■승무원 600명 파업…‘처우개선·직접고용’ 요구


이 코레일관광개발 소속 객실 승무원 600여 명이 오늘(11일) 새벽 4시부터 파업에 들어갔습니다.

코레일 본사와 비교하면 현저히 떨어지는 처우를 개선하고, 안전업무 종사자들은 직접 고용하라는 것이 핵심 요구사항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코레일 본사보다 50% 수준에 불과한 처우개선이지만 핵심 사항은 직접 고용 문제입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의 주요 원칙 중 하나가 상시 지속적 업무 종사자에 대한 정규직 전환입니다. 특히 생명·안전 업무는 직접 고용을 원칙으로 한다고 천명했습니다.

노조는 이 원칙을 강조하는 한편, 강릉 KTX 탈선 사례를 들며 여객 승무원들 역시 생명 안전 업무 종사자인 만큼 직접 고용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KTX 사측도 이 문제에 대해 전향적으로 고민한 흔적이 있습니다.

2018년 6월 철도노조 위원장과 당시 오영식 코레일 사장이 서명한 '노사 및 전문가 중앙협의기구' 합의서입니다.


합의서를 보면 국민의 생명·안전 업무 및 주요시설물 CCTV 감시 업무는 한국철도공사가 직접 수행하고, 그 종사자 1,432명은 공사에서 직접 고용하도록 했습니다. 이뿐 아니라 철도공사 관련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에 대한 여러 원칙이 상세히 적혀 있습니다.

여기에 열차 승무원들 관련 내용도 포함돼 있습니다.

코레일관광개발의 열차 내 고객서비스 업무 종사자 563명에 대해서는 전문가 조정을 의뢰하고 전문가 실사 등을 거쳐 제시된 '조정안'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그로부터 3개월 뒤인 2018년 9월, 드디어 전문가 조정 결정서가 나왔습니다.

4가지 항목으로 구성돼 있는데, 3번째 항목이 핵심입니다.


"철도안전강화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것이 공공기관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코레일관광개발(주)에 위탁 중인 '열차 내 고객서비스' 업무에 대해 관련법 및 규정 제·개정 등을 통해 전환할 것을 권고한다"고 돼 있습니다.

이번에 관광개발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며 코레일 측이 합의를 어겼다고 주장하는 바로 그 대목입니다.

■합의사항 둘러싼 서로 다른 해석들

노조는 2018년 6월 노사 합의 사항이 '전문가 조정 결정'을 따르기로 강제했고, 3개월 뒤 '전문가 조정 결정서'를 보면 "전환할 것을 권고한다"고 돼 있는 만큼 승무원들을 당연히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코레일 사측에서도 전향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KTX 탈선 사고 등으로 철도공사 사장이 바뀌면서 사측의 입장도 바뀌었다고도 주장했습니다.

반면, 철도공사 사측은 같은 문장에서 '관련법 및 규정 제·개정 등을 통해'라는 부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객실 승무원들을 직접 고용한다는 원칙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관련법이 먼저 제·개정돼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그리고 관련법 개정은 철도공사의 소관이 아니고, 엄연히 정부와 국회의 영역인 만큼 철도공사로서는 개정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같은 결정서를 두고서 노사 간 해석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전문가 결정서'를 작성한 전문위원들은 어떤 취지로 결정서를 썼을까요?

전문위원 중 한 명에게 어렵사리 연락을 해봤습니다. 해당 위원은 결정서를 작성할 당시에도 KTX 여승무원에 대한 대법원 판례 등으로 인해 노사 간 이견이 팽배했다고 털어놨습니다. 그러면서 현행 규정으로는 코레일 사측이 직접고용을 하지 않아도 될 명분이 많이 생기는 만큼, 이번 기회에 법령을 명확하게 해서 직접고용을 하도록 했다는 취지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법령 제·개정 문구' 때문에 현재 노사 간 입장 차이가 생기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면서, 개인적인 입장으로는 "법 개정까지 기다리라는 뜻이 아니라, 정규직 전환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달라는 의미"라고 설명했습니다.

■하필 추석에 파업하는 이유는?

코레일관광개발 노조원들이 파업에 나선 시기는 추석 명절로 교통 수요가 최고에 달하는 기간, 즉 특별수송대책 기간입니다.

노조에 연락해서 파업을 하더라도 전 국민이 이동하는 추석을 앞두고 파업에 돌입하는 것은 과도하지 않는지, 명절 기간 파업은 전례가 없는 일 아닌지 물어봤습니다.

노조 관계자는 국민에게는 정말 죄송하다면서도, 뜻밖에 2017년 9월 추석에도 이틀간 파업을 했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열차 운행에 직접 차질을 주지 않아서 파업을 해도 국민들이 잘 모른다고 털어놨습니다.

그러면서 평시에 파업하면 국민들이 정말 모를 것 같아서 명절에 파업을 시작한다고도 했습니다.

오늘 새벽 파업이 시작되자마자 코레일과 SRT는 비노조원이나 본사 직원들로 대체 근무를 신속히 편성해 곧바로 객차 근무에 투입했습니다.

대체 근무자라 하지만 승무 교육을 받거나 승무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일반 승객들은 누가 대신 근무에 들어왔는지도 모를 수 있습니다.

파업은 16일까지 이어집니다. 추석을 택해 파업을 한 객실 승무원들, 이번 파업에서는 소기의 목적을 거둘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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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K] KTX 승무원들, 왜 추석에 파업 나섰나?
    • 입력 2019-09-11 16:59:51
    취재K
■보기에는 똑같지만, 엄연히 다르다!

KTX나 SRT를 타면 객실을 돌아다니는 승무원들을 만나게 됩니다. 검표 업무를 담당하기도 하고, 객실 내 온도를 점검하기도 하며 짐칸의 짐이 안전한지도 확인하고, 승객들의 민원도 처리해 줍니다.

그런데 손님들 눈에는 다 똑같아 보이는데 엄밀하게 보면 객실 승무원도 구분이 있습니다. 코레일 소속의 열차팀장과 코레일 자회사인 코레일관광개발 소속의 객실 승무원입니다. 보통 열차 한 편성에는 열차팀장 1명과 객실 승무원 2명이 탑승하게 됩니다.

회사가 다른 만큼 공식적인 업무도 다르다고 합니다. 철도노조 설명에 따르면 열차팀장은 열차와 승객의 안전 업무를 담당하고, 객실 승무원들은 승객 서비스 업무를 담당하게 돼 있습니다. 단 비상시에는 열차팀장을 보조해 안전업무를 수행해야 하는데 이 경우에도 열차팀장의 지시에 따라 안전업무를 수행하게 돼 있다고 합니다.

철도노조는 2018년 12월 강릉 KTX 탈선사고를 들어 이 규정이 심각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당시 사고가 나자 객실 승무원들이 승객에 대한 안전 조치를 취하려고 했지만, 열차팀장의 지시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적극적인 대처가 힘들었다는 겁니다.

■승무원 600명 파업…‘처우개선·직접고용’ 요구


이 코레일관광개발 소속 객실 승무원 600여 명이 오늘(11일) 새벽 4시부터 파업에 들어갔습니다.

코레일 본사와 비교하면 현저히 떨어지는 처우를 개선하고, 안전업무 종사자들은 직접 고용하라는 것이 핵심 요구사항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코레일 본사보다 50% 수준에 불과한 처우개선이지만 핵심 사항은 직접 고용 문제입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의 주요 원칙 중 하나가 상시 지속적 업무 종사자에 대한 정규직 전환입니다. 특히 생명·안전 업무는 직접 고용을 원칙으로 한다고 천명했습니다.

노조는 이 원칙을 강조하는 한편, 강릉 KTX 탈선 사례를 들며 여객 승무원들 역시 생명 안전 업무 종사자인 만큼 직접 고용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KTX 사측도 이 문제에 대해 전향적으로 고민한 흔적이 있습니다.

2018년 6월 철도노조 위원장과 당시 오영식 코레일 사장이 서명한 '노사 및 전문가 중앙협의기구' 합의서입니다.


합의서를 보면 국민의 생명·안전 업무 및 주요시설물 CCTV 감시 업무는 한국철도공사가 직접 수행하고, 그 종사자 1,432명은 공사에서 직접 고용하도록 했습니다. 이뿐 아니라 철도공사 관련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에 대한 여러 원칙이 상세히 적혀 있습니다.

여기에 열차 승무원들 관련 내용도 포함돼 있습니다.

코레일관광개발의 열차 내 고객서비스 업무 종사자 563명에 대해서는 전문가 조정을 의뢰하고 전문가 실사 등을 거쳐 제시된 '조정안'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그로부터 3개월 뒤인 2018년 9월, 드디어 전문가 조정 결정서가 나왔습니다.

4가지 항목으로 구성돼 있는데, 3번째 항목이 핵심입니다.


"철도안전강화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것이 공공기관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코레일관광개발(주)에 위탁 중인 '열차 내 고객서비스' 업무에 대해 관련법 및 규정 제·개정 등을 통해 전환할 것을 권고한다"고 돼 있습니다.

이번에 관광개발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며 코레일 측이 합의를 어겼다고 주장하는 바로 그 대목입니다.

■합의사항 둘러싼 서로 다른 해석들

노조는 2018년 6월 노사 합의 사항이 '전문가 조정 결정'을 따르기로 강제했고, 3개월 뒤 '전문가 조정 결정서'를 보면 "전환할 것을 권고한다"고 돼 있는 만큼 승무원들을 당연히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코레일 사측에서도 전향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KTX 탈선 사고 등으로 철도공사 사장이 바뀌면서 사측의 입장도 바뀌었다고도 주장했습니다.

반면, 철도공사 사측은 같은 문장에서 '관련법 및 규정 제·개정 등을 통해'라는 부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객실 승무원들을 직접 고용한다는 원칙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관련법이 먼저 제·개정돼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그리고 관련법 개정은 철도공사의 소관이 아니고, 엄연히 정부와 국회의 영역인 만큼 철도공사로서는 개정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같은 결정서를 두고서 노사 간 해석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전문가 결정서'를 작성한 전문위원들은 어떤 취지로 결정서를 썼을까요?

전문위원 중 한 명에게 어렵사리 연락을 해봤습니다. 해당 위원은 결정서를 작성할 당시에도 KTX 여승무원에 대한 대법원 판례 등으로 인해 노사 간 이견이 팽배했다고 털어놨습니다. 그러면서 현행 규정으로는 코레일 사측이 직접고용을 하지 않아도 될 명분이 많이 생기는 만큼, 이번 기회에 법령을 명확하게 해서 직접고용을 하도록 했다는 취지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법령 제·개정 문구' 때문에 현재 노사 간 입장 차이가 생기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면서, 개인적인 입장으로는 "법 개정까지 기다리라는 뜻이 아니라, 정규직 전환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달라는 의미"라고 설명했습니다.

■하필 추석에 파업하는 이유는?

코레일관광개발 노조원들이 파업에 나선 시기는 추석 명절로 교통 수요가 최고에 달하는 기간, 즉 특별수송대책 기간입니다.

노조에 연락해서 파업을 하더라도 전 국민이 이동하는 추석을 앞두고 파업에 돌입하는 것은 과도하지 않는지, 명절 기간 파업은 전례가 없는 일 아닌지 물어봤습니다.

노조 관계자는 국민에게는 정말 죄송하다면서도, 뜻밖에 2017년 9월 추석에도 이틀간 파업을 했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열차 운행에 직접 차질을 주지 않아서 파업을 해도 국민들이 잘 모른다고 털어놨습니다.

그러면서 평시에 파업하면 국민들이 정말 모를 것 같아서 명절에 파업을 시작한다고도 했습니다.

오늘 새벽 파업이 시작되자마자 코레일과 SRT는 비노조원이나 본사 직원들로 대체 근무를 신속히 편성해 곧바로 객차 근무에 투입했습니다.

대체 근무자라 하지만 승무 교육을 받거나 승무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일반 승객들은 누가 대신 근무에 들어왔는지도 모를 수 있습니다.

파업은 16일까지 이어집니다. 추석을 택해 파업을 한 객실 승무원들, 이번 파업에서는 소기의 목적을 거둘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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