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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환경부가 의료폐기물 8백톤 몰래 태운 사연은?
입력 2019.09.16 (09:54) 수정 2019.09.16 (09:54) 취재후
[취재후] 환경부가 의료폐기물 8백톤 몰래 태운 사연은?
지난달 말 환경부 산하 낙동강유역환경청은 한 건의 보도자료를 배포합니다. 경남 김해 등에 불법 보관되어 오던 의료폐기물 412톤을 전량 처리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주민 건강권 보호를 위한 적극 행정의 사례"로 소개했습니다. 의료폐기물 소각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그 많은 의료폐기물을 불과 보름여 만에 처리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건 '적극 행정'을 넘어 '기적의 행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량 처리했다는 의료폐기물…알고 보니 '불법 소각'

소각 당시 CCTV 화면소각 당시 CCTV 화면

의료폐기물을 소각한 곳은 의료폐기물 전용 소각장이 아닌, 일반 지정폐기물 소각장이었습니다. 유해성 지정폐기물의 경우, 감염 위험성이 없으면 일반 지정폐기물 소각장으로 가지만 감염 위험성이 있는 의료폐기물은 전용 소각장에서만 처리해야 합니다. 전용 소각장에서는, 의료폐기물을 담은 전용 용기가 파손되지 않도록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소각로까지 안전하게 옮겨집니다. 감염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KBS가 확보한 작업 당시 CCTV에는 의료폐기물이 일반폐기물과 마구잡이로 뒤섞여 크레인 집게에 의해 소각로로 이동하는 모습이 그대로 담겼습니다. 작업 당시 소각장 문도 활짝 열려 있어 감염 위험은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해당 소각장 측은 불법인 줄 알면서도 환경부의 요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의료폐기물을 소각했다고 밝혔습니다.

환경부 예외처리 지침 공문 환경부 예외처리 지침 공문

실제로 환경부는 지난달 초 산하 7개 환경청에 '의료폐기물 예외처리 지침'을 담은 비공개 공문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비상시(즉시 소각처리 가능하다고 볼 수 없으면) 전용 소각장이 아닌 곳에서 의료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도록 한 내용이었습니다. 이 지침에 따라 의료폐기물 800여 톤이 경남 창원과 경북 구미에서 사실상 '불법소각'됐습니다.

주민 몰래 비밀리 소각…창원시 '알고도 묵인'


현행법상 의료폐기물 소각장을 지으려면 환경영향평가와 주민 공청회를 거쳐야 합니다. 의료폐기물 소각장은 반드시 필요한 시설이지만, 소각장 주변 주민들의 건강권과 그들의 알 권리 역시 못지않게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환경부는 의료폐기물 800여 톤을 소각하면서 이 모든 걸 주민들 몰래 처리했습니다. 지자체 반발을 의식한 듯 관련 지침에는 지자체와 사전 협의하는 절차는 없고, 예외처리 승인이 나면 이를 사후 통보하도록 해놓았습니다. 보도자료 역시 소각이 다 끝난 뒤 배포되었는데, 의료폐기물 전용 소각장이 아닌 곳에서 소각했다는 핵심 사실은 쏙 빠져 있습니다. 창원시는 소각 직전 이 지침을 통보받았다면서도, 사실상 묵인했습니다.

환경부 "감사기구 사전 자문받아 불법 소각 아니다" 강변

환경부는 결코 '불법 소각'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해당 지침은 내부 감사기구의 사전컨설팅 심의를 받았기 때문에, 업무를 추진한 공무원 역시 '면책'이 된다는 겁니다. 이 지침 또한 소각장이 부족해 의료폐기물들이 불법 적치되는 현실에서 불가피했다고 주장합니다. 2차 감염을 막고 주민들의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한 '적극 행정'이었다고 해명했습니다.

악취로 고통받은 주민·근로자들…분노하는 진짜 이유는?


"기자님, 저는 기사에 쓰셨던 소각장과 1km 거리 대단지 아파트에 사는 입주민입니다. 언제부터인가 구역질 나는 냄새로 창문도 제대로 못 열고, 두통과 구토가 날 지경이었습니다. 민원을 넣었지만, 저희에게 돌아온 답은 어떤 냄새인지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기준치 이내이다…. 입주민들은 엄청나게 화가 나 있는 상황입니다. 창원시청 공무원들은 진정 몰랐던 것인지. 환경부는 저희 입주민들 민원을 알고는 있었는지 말이죠."

4천 명에 달하는 아파트 주민뿐만이 아닙니다. 의료폐기물이 소각된 곳은 경남 창원의 도심 한복판으로, 100m 옆 공장에 근로자 4,500명이 일하고 있습니다. 이곳 근로자들은 40년 가까이 이 소각장 악취로 인해 많은 고통을 받았다고 호소합니다. 악취가 얼마나 심했던지 오죽하면 노사 합의로 '대피시간'까지 만들었습니다. 악취로 도저히 작업할 수 없을 때 근로자 모두 일손을 놓고 지하로 한 시간 이상 대피하는 시간입니다.

불법 소각 이후 민원 처리도 '빵점' .. 행정이 국민의 건강권 위협

이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내 집과 일터 주변에서 의료폐기물이 소각됐다는 사실 때문만이 아닙니다. 악취 때문에 고통받으면서도 법이 그렇다고 하니 아무것도 못 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법에도 없는 의료폐기물마저 자신들 몰래 반입됐다는 사실에 울분이 치밀어 오릅니다. 주민 건강권을 위한 '적극 행정'이었다지만, 적어도 이들에겐 건강권을 위협하는 '적극 행정'일 뿐이었습니다.
  • [취재후] 환경부가 의료폐기물 8백톤 몰래 태운 사연은?
    • 입력 2019.09.16 (09:54)
    • 수정 2019.09.16 (09:54)
    취재후
[취재후] 환경부가 의료폐기물 8백톤 몰래 태운 사연은?
지난달 말 환경부 산하 낙동강유역환경청은 한 건의 보도자료를 배포합니다. 경남 김해 등에 불법 보관되어 오던 의료폐기물 412톤을 전량 처리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주민 건강권 보호를 위한 적극 행정의 사례"로 소개했습니다. 의료폐기물 소각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그 많은 의료폐기물을 불과 보름여 만에 처리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건 '적극 행정'을 넘어 '기적의 행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량 처리했다는 의료폐기물…알고 보니 '불법 소각'

소각 당시 CCTV 화면소각 당시 CCTV 화면

의료폐기물을 소각한 곳은 의료폐기물 전용 소각장이 아닌, 일반 지정폐기물 소각장이었습니다. 유해성 지정폐기물의 경우, 감염 위험성이 없으면 일반 지정폐기물 소각장으로 가지만 감염 위험성이 있는 의료폐기물은 전용 소각장에서만 처리해야 합니다. 전용 소각장에서는, 의료폐기물을 담은 전용 용기가 파손되지 않도록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소각로까지 안전하게 옮겨집니다. 감염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KBS가 확보한 작업 당시 CCTV에는 의료폐기물이 일반폐기물과 마구잡이로 뒤섞여 크레인 집게에 의해 소각로로 이동하는 모습이 그대로 담겼습니다. 작업 당시 소각장 문도 활짝 열려 있어 감염 위험은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해당 소각장 측은 불법인 줄 알면서도 환경부의 요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의료폐기물을 소각했다고 밝혔습니다.

환경부 예외처리 지침 공문 환경부 예외처리 지침 공문

실제로 환경부는 지난달 초 산하 7개 환경청에 '의료폐기물 예외처리 지침'을 담은 비공개 공문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비상시(즉시 소각처리 가능하다고 볼 수 없으면) 전용 소각장이 아닌 곳에서 의료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도록 한 내용이었습니다. 이 지침에 따라 의료폐기물 800여 톤이 경남 창원과 경북 구미에서 사실상 '불법소각'됐습니다.

주민 몰래 비밀리 소각…창원시 '알고도 묵인'


현행법상 의료폐기물 소각장을 지으려면 환경영향평가와 주민 공청회를 거쳐야 합니다. 의료폐기물 소각장은 반드시 필요한 시설이지만, 소각장 주변 주민들의 건강권과 그들의 알 권리 역시 못지않게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환경부는 의료폐기물 800여 톤을 소각하면서 이 모든 걸 주민들 몰래 처리했습니다. 지자체 반발을 의식한 듯 관련 지침에는 지자체와 사전 협의하는 절차는 없고, 예외처리 승인이 나면 이를 사후 통보하도록 해놓았습니다. 보도자료 역시 소각이 다 끝난 뒤 배포되었는데, 의료폐기물 전용 소각장이 아닌 곳에서 소각했다는 핵심 사실은 쏙 빠져 있습니다. 창원시는 소각 직전 이 지침을 통보받았다면서도, 사실상 묵인했습니다.

환경부 "감사기구 사전 자문받아 불법 소각 아니다" 강변

환경부는 결코 '불법 소각'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해당 지침은 내부 감사기구의 사전컨설팅 심의를 받았기 때문에, 업무를 추진한 공무원 역시 '면책'이 된다는 겁니다. 이 지침 또한 소각장이 부족해 의료폐기물들이 불법 적치되는 현실에서 불가피했다고 주장합니다. 2차 감염을 막고 주민들의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한 '적극 행정'이었다고 해명했습니다.

악취로 고통받은 주민·근로자들…분노하는 진짜 이유는?


"기자님, 저는 기사에 쓰셨던 소각장과 1km 거리 대단지 아파트에 사는 입주민입니다. 언제부터인가 구역질 나는 냄새로 창문도 제대로 못 열고, 두통과 구토가 날 지경이었습니다. 민원을 넣었지만, 저희에게 돌아온 답은 어떤 냄새인지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기준치 이내이다…. 입주민들은 엄청나게 화가 나 있는 상황입니다. 창원시청 공무원들은 진정 몰랐던 것인지. 환경부는 저희 입주민들 민원을 알고는 있었는지 말이죠."

4천 명에 달하는 아파트 주민뿐만이 아닙니다. 의료폐기물이 소각된 곳은 경남 창원의 도심 한복판으로, 100m 옆 공장에 근로자 4,500명이 일하고 있습니다. 이곳 근로자들은 40년 가까이 이 소각장 악취로 인해 많은 고통을 받았다고 호소합니다. 악취가 얼마나 심했던지 오죽하면 노사 합의로 '대피시간'까지 만들었습니다. 악취로 도저히 작업할 수 없을 때 근로자 모두 일손을 놓고 지하로 한 시간 이상 대피하는 시간입니다.

불법 소각 이후 민원 처리도 '빵점' .. 행정이 국민의 건강권 위협

이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내 집과 일터 주변에서 의료폐기물이 소각됐다는 사실 때문만이 아닙니다. 악취 때문에 고통받으면서도 법이 그렇다고 하니 아무것도 못 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법에도 없는 의료폐기물마저 자신들 몰래 반입됐다는 사실에 울분이 치밀어 오릅니다. 주민 건강권을 위한 '적극 행정'이었다지만, 적어도 이들에겐 건강권을 위협하는 '적극 행정'일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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