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껴갔는데 이 정도…“괴물 태풍 곧 온다”

입력 2019.09.24 (17:00) 수정 2019.09.25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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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속 52.5m 강풍', '780mm 폭우' 이달 들어 한반도에 영향을 미친 두 태풍 '링링'과 '타파'가 각각 흑산도와 제주 한라산에 남긴 기록입니다. '링링'은 서해로 북상해 황해도에 상륙했고, '타파'는 제주 동쪽 해상을 지나 쓰시마섬 부근 대한해협을 통과했습니다. 지난 일기예보에 가정이 의미 없기는 합니다만, 만약 태풍이 한반도에 더 가깝게 접근했다면 어땠을까요?

'링링'이 수도권에 상륙했다면?

13호 태풍 ‘링링’ 진로13호 태풍 ‘링링’ 진로

태풍 '링링'은 상륙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 서울 인근의 경기 북부 지역에 상륙할 것으로 예보됐습니다. 이 예보가 현실이 됐다면 수도권은 태풍 중심부 강풍대의 직접 영향권에 들었을 것입니다. 내륙 지역의 마찰 등을 고려하더라도 수도권 지역에도 초속 40~50m의 강한 바람이 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당시 서울에서 실제로 관측됐던 최대 순간 풍속 초속 28.3m보다 두 배 가까이 강한 바람입니다. 인구와 시설물이 밀집한 곳인 만큼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겠죠. 실제 박두선 조선대 교수가 과거 한반도에 영향을 미친 태풍 80여 개를 조사한 결과 풍속이 초속 30에서 50미터로 상승하면 재산 피해액은 3배나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타파'가 부산에 상륙했다면?

17호 태풍 ‘타파’ 진로17호 태풍 ‘타파’ 진로

'타파'도 마찬가지입니다. 북상 하루 전까지만 해도 태풍의 중심은 쓰시마섬이 아닌 부산 부근을 스쳐 지날 것으로 예보됐습니다. 실제 진로는 70km 정도 더 먼 바다로 비껴간 것이죠. 당시 태풍의 가장 강한 비구름은 중심 주위의 반경 약 50km 이내에 주로 분포했었는데요. 영남 지방은 아슬아슬하게 중심부가 비껴갔는데도 울산 일부 지역에는 이틀 동안 339.5mm의 큰비가 내렸습니다. 만약 태풍이 부산에 상륙하기라도 했다면 강수량은 애초 기상청이 예보한 500mm를 훌쩍 넘겼을 것으로 보입니다. 역시 산업 시설이 밀집한 부산과 울산, 경남 등지에 훨씬 더 큰 피해를 냈을 가능성이 큽니다.

굳이 이런 가정을 한 건, 이번 두 사례가 한반도 내륙 지역에도 얼마든 '괴물 태풍'이 휩쓸고 갈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실제로 과거보다 최근 한반도로 북상하는 태풍이 더 강한 세력을 유지한 채 접근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제주대 태풍연구센터장인 문일주 교수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을 꼽았습니다. '해수면 온도'와 '제트기류'입니다.

태풍 북상 경로 상 해수면 온도 상승 뚜렷


'해수면 온도'가 중요한 이유는 태풍의 주 에너지원이 바다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수증기이기 때문입니다. 위 그림은 1979년부터 2014년까지 해수면 온도의 변화 경향을 나타낸 건데요. 보시면 한반도로 올라오는 태풍의 길목인 필리핀 동쪽 해상부터 동중국해, 그리고 남해상까지 특히 상승 경향이 뚜렷합니다. 태풍이 과거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얻으면서 한반도로 북상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문 교수는 "과거 태풍이 북상하면서 오키나와 근처를 지나면 급격히 약화했지만, 이제는 강도를 어느 정도 유지한 채 한반도로 접근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한반도 부근 제트기류 느려져…"방패막이 약해졌다"

뜨거워진 바닷물이 태풍의 발달을 돕는 요소라면 중위도 상공 약 10km 고도에서 부는 강한 바람, 즉 제트기류는 태풍의 세력을 약화할 수 있는 요소입니다. 반시계방향으로 회전하는 태풍은 마치 팽이처럼 기울어지면 세력이 급격히 약해집니다. 그런데 10km 상층에서 부는 제트기류는 팽이의 윗부분을 치듯 태풍을 기울어지게 하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태풍이 제트기류를 만나는 순간 세력을 잃게 됩니다.


위 그림은 수직 바람 시어(shear), 즉 상층과 하층의 바람 차이의 변화 경향을 나타낸 그림입니다. 상층과 하층의 바람 차이가 클수록 제트기류가 강하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1979년 이후 변화 경향을 보면 한반도 부근의 중위도에서 뚜렷하게 감소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과거보다 태풍의 세력을 약화할 수 있는 제트기류가 약해진 겁니다. 문 교수는 "태풍의 방패막이가 약해진 셈이 돼 강한 태풍이 더 고위도까지 북상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졌다"고 설명했습니다.

느려진 태풍 이동 속도, 폭우 몰고 온다

제트기류가 약해지면 또 다른 측면에서 태풍 피해를 늘릴 수 있습니다. 태풍의 이동 속도를 느리게 해 더 오랜 기간 한반도에 많은 비를 뿌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해외 연구 결과(Kossin et al., Nature, 2018) 지구온난화로 인해 전 지구적으로 태풍의 이동 속도가 느려지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2017년 미국에 상륙한 허리케인 하비의 강수량(단위 : 인치)과 진로도2017년 미국에 상륙한 허리케인 하비의 강수량(단위 : 인치)과 진로도

이러한 현상은 2017년 미국을 강타한 허리케인 '하비'때 여실히 드러났는데요. 하비는 최대 1,500mm가 넘는 기록적인 비를 뿌리며, 무려 130조 원에 달하는 피해를 낸 '괴물 허리케인'입니다. 당시 이렇게 많은 비가 내린 원인은 위 진로도처럼 하비가 텍사스에 상륙한 뒤 거의 멈추듯 오랜 시간을 머물렀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연구진은 태풍이 한 지역에 내리는 비의 양은 태풍의 통과 속도에 반비례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최악은 피했지만…"괴물 태풍 대비해야"

이상을 종합해보면 한반도로 다가오는 태풍은 과거보다 1) 더 발달해 북상하고 2) 한반도에 접근해도 덜 약해지며 3) 오랜 시간 머물며 많은 비를 뿌릴 수 있는 형태로 바뀌고 있다는 겁니다. 이달 들어 2개의 강력한 태풍이 우리나라를 아슬아슬하게 비껴갔습니다. 그런데도 상당한 피해가 발생했죠. 만약 주변 기압계가 조금만 틀어졌더라면 이 태풍은 우리나라에 훨씬 더 큰 상처를 낼 뻔했습니다. 이번에는 다행히 최악은 피했지만, 인간이 일으킨 기후 변화로 앞으로 한반도에는 훨씬 더 강한 태풍이 북상할 수 있습니다. 태풍에 더욱 철저한 대비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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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껴갔는데 이 정도…“괴물 태풍 곧 온다”
    • 입력 2019-09-24 17:00:49
    • 수정2019-09-25 07:12:04
    취재K
'초속 52.5m 강풍', '780mm 폭우' 이달 들어 한반도에 영향을 미친 두 태풍 '링링'과 '타파'가 각각 흑산도와 제주 한라산에 남긴 기록입니다. '링링'은 서해로 북상해 황해도에 상륙했고, '타파'는 제주 동쪽 해상을 지나 쓰시마섬 부근 대한해협을 통과했습니다. 지난 일기예보에 가정이 의미 없기는 합니다만, 만약 태풍이 한반도에 더 가깝게 접근했다면 어땠을까요?

'링링'이 수도권에 상륙했다면?

13호 태풍 ‘링링’ 진로
태풍 '링링'은 상륙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 서울 인근의 경기 북부 지역에 상륙할 것으로 예보됐습니다. 이 예보가 현실이 됐다면 수도권은 태풍 중심부 강풍대의 직접 영향권에 들었을 것입니다. 내륙 지역의 마찰 등을 고려하더라도 수도권 지역에도 초속 40~50m의 강한 바람이 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당시 서울에서 실제로 관측됐던 최대 순간 풍속 초속 28.3m보다 두 배 가까이 강한 바람입니다. 인구와 시설물이 밀집한 곳인 만큼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겠죠. 실제 박두선 조선대 교수가 과거 한반도에 영향을 미친 태풍 80여 개를 조사한 결과 풍속이 초속 30에서 50미터로 상승하면 재산 피해액은 3배나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타파'가 부산에 상륙했다면?

17호 태풍 ‘타파’ 진로
'타파'도 마찬가지입니다. 북상 하루 전까지만 해도 태풍의 중심은 쓰시마섬이 아닌 부산 부근을 스쳐 지날 것으로 예보됐습니다. 실제 진로는 70km 정도 더 먼 바다로 비껴간 것이죠. 당시 태풍의 가장 강한 비구름은 중심 주위의 반경 약 50km 이내에 주로 분포했었는데요. 영남 지방은 아슬아슬하게 중심부가 비껴갔는데도 울산 일부 지역에는 이틀 동안 339.5mm의 큰비가 내렸습니다. 만약 태풍이 부산에 상륙하기라도 했다면 강수량은 애초 기상청이 예보한 500mm를 훌쩍 넘겼을 것으로 보입니다. 역시 산업 시설이 밀집한 부산과 울산, 경남 등지에 훨씬 더 큰 피해를 냈을 가능성이 큽니다.

굳이 이런 가정을 한 건, 이번 두 사례가 한반도 내륙 지역에도 얼마든 '괴물 태풍'이 휩쓸고 갈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실제로 과거보다 최근 한반도로 북상하는 태풍이 더 강한 세력을 유지한 채 접근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제주대 태풍연구센터장인 문일주 교수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을 꼽았습니다. '해수면 온도'와 '제트기류'입니다.

태풍 북상 경로 상 해수면 온도 상승 뚜렷


'해수면 온도'가 중요한 이유는 태풍의 주 에너지원이 바다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수증기이기 때문입니다. 위 그림은 1979년부터 2014년까지 해수면 온도의 변화 경향을 나타낸 건데요. 보시면 한반도로 올라오는 태풍의 길목인 필리핀 동쪽 해상부터 동중국해, 그리고 남해상까지 특히 상승 경향이 뚜렷합니다. 태풍이 과거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얻으면서 한반도로 북상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문 교수는 "과거 태풍이 북상하면서 오키나와 근처를 지나면 급격히 약화했지만, 이제는 강도를 어느 정도 유지한 채 한반도로 접근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한반도 부근 제트기류 느려져…"방패막이 약해졌다"

뜨거워진 바닷물이 태풍의 발달을 돕는 요소라면 중위도 상공 약 10km 고도에서 부는 강한 바람, 즉 제트기류는 태풍의 세력을 약화할 수 있는 요소입니다. 반시계방향으로 회전하는 태풍은 마치 팽이처럼 기울어지면 세력이 급격히 약해집니다. 그런데 10km 상층에서 부는 제트기류는 팽이의 윗부분을 치듯 태풍을 기울어지게 하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태풍이 제트기류를 만나는 순간 세력을 잃게 됩니다.


위 그림은 수직 바람 시어(shear), 즉 상층과 하층의 바람 차이의 변화 경향을 나타낸 그림입니다. 상층과 하층의 바람 차이가 클수록 제트기류가 강하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1979년 이후 변화 경향을 보면 한반도 부근의 중위도에서 뚜렷하게 감소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과거보다 태풍의 세력을 약화할 수 있는 제트기류가 약해진 겁니다. 문 교수는 "태풍의 방패막이가 약해진 셈이 돼 강한 태풍이 더 고위도까지 북상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졌다"고 설명했습니다.

느려진 태풍 이동 속도, 폭우 몰고 온다

제트기류가 약해지면 또 다른 측면에서 태풍 피해를 늘릴 수 있습니다. 태풍의 이동 속도를 느리게 해 더 오랜 기간 한반도에 많은 비를 뿌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해외 연구 결과(Kossin et al., Nature, 2018) 지구온난화로 인해 전 지구적으로 태풍의 이동 속도가 느려지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2017년 미국에 상륙한 허리케인 하비의 강수량(단위 : 인치)과 진로도
이러한 현상은 2017년 미국을 강타한 허리케인 '하비'때 여실히 드러났는데요. 하비는 최대 1,500mm가 넘는 기록적인 비를 뿌리며, 무려 130조 원에 달하는 피해를 낸 '괴물 허리케인'입니다. 당시 이렇게 많은 비가 내린 원인은 위 진로도처럼 하비가 텍사스에 상륙한 뒤 거의 멈추듯 오랜 시간을 머물렀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연구진은 태풍이 한 지역에 내리는 비의 양은 태풍의 통과 속도에 반비례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최악은 피했지만…"괴물 태풍 대비해야"

이상을 종합해보면 한반도로 다가오는 태풍은 과거보다 1) 더 발달해 북상하고 2) 한반도에 접근해도 덜 약해지며 3) 오랜 시간 머물며 많은 비를 뿌릴 수 있는 형태로 바뀌고 있다는 겁니다. 이달 들어 2개의 강력한 태풍이 우리나라를 아슬아슬하게 비껴갔습니다. 그런데도 상당한 피해가 발생했죠. 만약 주변 기압계가 조금만 틀어졌더라면 이 태풍은 우리나라에 훨씬 더 큰 상처를 낼 뻔했습니다. 이번에는 다행히 최악은 피했지만, 인간이 일으킨 기후 변화로 앞으로 한반도에는 훨씬 더 강한 태풍이 북상할 수 있습니다. 태풍에 더욱 철저한 대비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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