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잡은 ‘성폭력 증거물’…다른 것들도 잘 보관되고 있나요?

입력 2019.10.03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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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동안 풀지 못했던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실마리는 일부 증거물에서 나온 DNA였습니다. 지난 2006년 4월 2일로 공소시효가 완성됐지만 경찰이 수사기록과 증거물을 계속 보관해 온 덕택입니다.

화성 사건처럼 특히 성폭력 증거물이 장기미제사건 등 강력 사건을 풀 핵심 열쇠로 떠오르면서 현재 경찰이 성폭력 증거물을 어떻게 보관하고 있는지, 또 관리 점검이 이뤄지고 있는지 알아봤습니다. KBS는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국회 행정안전위윈회)을 통해 지난 3월 25일부터 4월 3일까지 경찰청이 7개 지방경찰청과 16개 경찰서를 대상으로 벌인 감사 결과를 입수했습니다.


방치하고 누락하고…성폭력 증거물 관리 실태 '엉망'

전주 완산경찰서는 성폭력 증거물을 사무실에 두고 있다가 적발됐습니다. 피해 여성은 지난해 11월, 성폭행을 당했다며 경찰에 신고하고 난 뒤 성폭력 피해자들의 통합지원 업무를 하고 있는 해바라기센터에 가 증거물을 제출했습니다. 하지만 담당 수사관은 이튿날 피해 여성이 처벌을 원치 않는다며 연락을 두절하자 사건을 시스템에 등록하지도 않았고 이 증거물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지 않았습니다.

지난 2013년 6월, 모든 성범죄에 대해 친고죄가 폐지되면서 피해자의 처벌 의사와는 상관없이 경찰은 사건을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에 등록하고, 증거물은 국과수에 보내 감정을 의뢰해야 합니다. 하지만 담당 수사관이 이를 사무실에 방치한 뒤 인사 발령을 받아 증거물은 폐기되지도 못한 채 넉 달 넘게 보관돼 있었던 겁니다.

경찰 관계자는 "압수물과 달리, 당시 증거물을 등록하는 시스템이 수사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었다"며 "피해자가 조사를 원치 않아 피해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사건을 등록할 수도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국과수의 감정을 받고 난 뒤 돌려받은 성폭력 증거물을 사무실 냉장고와 사물함에 방치했습니다. 재감식을 대비해 DNA 검출 여부에 상관없이 반환받은 증거물은 '증거물 보관실'에 보관해야 합니다.

증거물 보관실은 현재 세종서를 제외한 전국 경찰서 254곳에 설치돼 있으며 냉장·냉동·항온항습기가 마련돼 있는데요. 성폭력 증거물은 판결이 확정되거나 공소시효가 완료될 때까지 보관하게 돼 있습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바른미래당 권은희 의원은 "증거물의 부실한 관리는 형사 법정에서의 증거물의 가치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적기 감정 시기를 놓칠 수 있는 등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는 데 있어서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밖에도 피해자에게 의류 등을 임의로 제출받은 경우에도 조서를 작성해야 하는 절차를 지키지 않은 서울청 해바라기센터도 감사에서 적발됐습니다.

부랴부랴 지난 8월부터 증거물 통합 관리…실효성은 과연?

경찰청은 감사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 8월부터 압수물과 증거물 관리를 강화하는 지침을 내렸습니다. 압수물 관리는 수사에서 담당하고, 증거물 관리는 과학수사에서 담당하던 관행을 일괄 수사지원팀이 맡기로 했습니다. 한 명을 전담인력으로 배치하고 압수물과 증거물의 입·출고 등 통합 관리 업무를 맡기겠다는 구상입니다.

하지만 경찰은 2006년부터 증거물을 보관, 관리하기 위한 증거물 관리 시스템(EMS)을 운영해 왔습니다. 형사소송법상 압수영장을 발부받아 보관하는 압수물의 경우에는 무조건 KICS에 등록해야 하는 것과 달리, 증거물 관리 시스템에는 강제성이 없다는 게 문제로 꼽힙니다. 결국 제도적 뒷받침이 아닌 사건 담당자의 의식에 맡겨 왔다는 건데 두 개의 시스템을 하나로 통합하겠다는 방안이 적절한 대응책이 아니라는 비판이 나오는 건 당연해 보입니다.

프로파일러인 배상훈 서울 디지털대 교수는 "경찰의 증거물 보관 법적 근거는 경찰청 훈령인 '과학수사 기본원칙'과 '범죄수사규칙'에 근거하고 있다"며 "이를 법률이나 최소한 명령으로 규정해 관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배 교수는 또, "증거물 관리의 연속성을 갖기 위해서는 과학지식을 가지고 있는 전담인력이 증거물을 관리해야 한다"면서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미국처럼 법원에 증거물 보관실을 마련하고, 전문가가 증거물을 관리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2015년부터 19년 상반기까지 경찰이 시스템에 등록한 증거물은 40만 6천여 건이나 됩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보관하고 있지 않은 증거물이 22만 3천여 건입니다. 경찰은 이 증거물들이 폐기된 건지, 검찰에 송치된 건지, 혹은 분실되거나 훼손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별도로 관리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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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춘재 잡은 ‘성폭력 증거물’…다른 것들도 잘 보관되고 있나요?
    • 입력 2019-10-03 15:59:24
    취재K
33년 동안 풀지 못했던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실마리는 일부 증거물에서 나온 DNA였습니다. 지난 2006년 4월 2일로 공소시효가 완성됐지만 경찰이 수사기록과 증거물을 계속 보관해 온 덕택입니다.

화성 사건처럼 특히 성폭력 증거물이 장기미제사건 등 강력 사건을 풀 핵심 열쇠로 떠오르면서 현재 경찰이 성폭력 증거물을 어떻게 보관하고 있는지, 또 관리 점검이 이뤄지고 있는지 알아봤습니다. KBS는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국회 행정안전위윈회)을 통해 지난 3월 25일부터 4월 3일까지 경찰청이 7개 지방경찰청과 16개 경찰서를 대상으로 벌인 감사 결과를 입수했습니다.


방치하고 누락하고…성폭력 증거물 관리 실태 '엉망'

전주 완산경찰서는 성폭력 증거물을 사무실에 두고 있다가 적발됐습니다. 피해 여성은 지난해 11월, 성폭행을 당했다며 경찰에 신고하고 난 뒤 성폭력 피해자들의 통합지원 업무를 하고 있는 해바라기센터에 가 증거물을 제출했습니다. 하지만 담당 수사관은 이튿날 피해 여성이 처벌을 원치 않는다며 연락을 두절하자 사건을 시스템에 등록하지도 않았고 이 증거물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지 않았습니다.

지난 2013년 6월, 모든 성범죄에 대해 친고죄가 폐지되면서 피해자의 처벌 의사와는 상관없이 경찰은 사건을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에 등록하고, 증거물은 국과수에 보내 감정을 의뢰해야 합니다. 하지만 담당 수사관이 이를 사무실에 방치한 뒤 인사 발령을 받아 증거물은 폐기되지도 못한 채 넉 달 넘게 보관돼 있었던 겁니다.

경찰 관계자는 "압수물과 달리, 당시 증거물을 등록하는 시스템이 수사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었다"며 "피해자가 조사를 원치 않아 피해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사건을 등록할 수도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국과수의 감정을 받고 난 뒤 돌려받은 성폭력 증거물을 사무실 냉장고와 사물함에 방치했습니다. 재감식을 대비해 DNA 검출 여부에 상관없이 반환받은 증거물은 '증거물 보관실'에 보관해야 합니다.

증거물 보관실은 현재 세종서를 제외한 전국 경찰서 254곳에 설치돼 있으며 냉장·냉동·항온항습기가 마련돼 있는데요. 성폭력 증거물은 판결이 확정되거나 공소시효가 완료될 때까지 보관하게 돼 있습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바른미래당 권은희 의원은 "증거물의 부실한 관리는 형사 법정에서의 증거물의 가치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적기 감정 시기를 놓칠 수 있는 등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는 데 있어서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밖에도 피해자에게 의류 등을 임의로 제출받은 경우에도 조서를 작성해야 하는 절차를 지키지 않은 서울청 해바라기센터도 감사에서 적발됐습니다.

부랴부랴 지난 8월부터 증거물 통합 관리…실효성은 과연?

경찰청은 감사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 8월부터 압수물과 증거물 관리를 강화하는 지침을 내렸습니다. 압수물 관리는 수사에서 담당하고, 증거물 관리는 과학수사에서 담당하던 관행을 일괄 수사지원팀이 맡기로 했습니다. 한 명을 전담인력으로 배치하고 압수물과 증거물의 입·출고 등 통합 관리 업무를 맡기겠다는 구상입니다.

하지만 경찰은 2006년부터 증거물을 보관, 관리하기 위한 증거물 관리 시스템(EMS)을 운영해 왔습니다. 형사소송법상 압수영장을 발부받아 보관하는 압수물의 경우에는 무조건 KICS에 등록해야 하는 것과 달리, 증거물 관리 시스템에는 강제성이 없다는 게 문제로 꼽힙니다. 결국 제도적 뒷받침이 아닌 사건 담당자의 의식에 맡겨 왔다는 건데 두 개의 시스템을 하나로 통합하겠다는 방안이 적절한 대응책이 아니라는 비판이 나오는 건 당연해 보입니다.

프로파일러인 배상훈 서울 디지털대 교수는 "경찰의 증거물 보관 법적 근거는 경찰청 훈령인 '과학수사 기본원칙'과 '범죄수사규칙'에 근거하고 있다"며 "이를 법률이나 최소한 명령으로 규정해 관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배 교수는 또, "증거물 관리의 연속성을 갖기 위해서는 과학지식을 가지고 있는 전담인력이 증거물을 관리해야 한다"면서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미국처럼 법원에 증거물 보관실을 마련하고, 전문가가 증거물을 관리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2015년부터 19년 상반기까지 경찰이 시스템에 등록한 증거물은 40만 6천여 건이나 됩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보관하고 있지 않은 증거물이 22만 3천여 건입니다. 경찰은 이 증거물들이 폐기된 건지, 검찰에 송치된 건지, 혹은 분실되거나 훼손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별도로 관리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 KBS 제보는 전화 02-781-4444번이나, 카카오톡 친구 검색창에서 'KBS 제보'를 찾아 채널 추가하신 뒤 제보하실 수 있습니다. 영상 제보는 보도에 반영되면 사례하겠습니다. KBS 뉴스는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갑니다. 많은 제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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