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새우, 검역관리인을 수입업자가 고용한다?

입력 2019.10.04 (18:59) 수정 2019.10.04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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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새우에 바이러스 즉, 전염병 병원체가 있는지 없는지를 검사하는 사람은 검역 현장에 있는 '수산생물검역관'(이하 검역관)입니다. 검역관은 대부분 수산질병관리사나 수의사입니다. 수산물 검역기관인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에 소속돼 있습니다.

앞서 KBS탐사보도부가 취재해 보도한 것처럼 '병든' 수입새우가 검역망을 뚫고 유통된 데에는 일차적으로 검역 현장에 책임이 있습니다. 제한된 검역관 인력으로 전수 검사가 아닌 샘플 검사를 하는 원론적인 한계를 고려하더라도 그렇습니다. 현장에서 임상검사를 통해 병든 새우를 걸러내는 것도, 정밀검사를 할 수입새우를 무작위로 선정하는 것도 현장에 나간 검역관의 눈과 손을 거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수입 새우를 검역하는 현장에는 검역관이 아닌 '검역관리인'이라는 독특한 신분을 가진 사람이 더 있습니다. 검역관과 달리 검역당국이 직접 관리하지 않는 민간인입니다. 이 검역관리인의 인건비는 누가 댈까요? 이해하기 어렵지만 검역을 받는 수입업자가 부담합니다. 객관적이고 엄정한 검역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검역관리인은 누구?

한 번에 수만 톤씩 수입된 냉동새우들은 보통 하역과 동시에 보세 창고로 불리는 냉동창고로 들어갑니다. 통관 절차가 끝날 때까지 수입 수산물을 보관하는 이 창고들은 검역장소로 지정돼 있습니다. 이곳으로 검역관이 나와 검역을 진행합니다. 수산생물질병관리법은 이렇게 지정된 검역장소에 '검역관리인'을 두도록 하고 있습니다. 검역관리인도 검역관과 마찬가지로 수산질병관리사나 수의사가 할 수 있습니다.

검역관리인이 어떤 일을 하는지 한 번 볼까요.

관련법은 검역관리인이 지정 검역물의 입출고, 이동, 소독에 관한 사항, 현물 확인, 검사 시료 채취와 송부 협조, 시설 검사와 관리, 방역, 검역 장소 출입자 통제 등의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냉동새우로 쉽게 설명하면, 새우가 국내로 들어와 검역을 거쳐 통관을 마치고 유통될 때까지 냉동 새우 관리는 검역관리인의 몫입니다. 시료를 채취해 검사기관인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에 보내는 일에서도 검역관을 보조하도록 돼 있습니다. 한 마디로 검역이라는 공무가 객관적이고 엄정하게 이루어지도록 검역 현장을 전반적으로 관리하는 사람이 바로 검역관리인입니다.

검역관리인조합이 수입업자에게 발행한 거래명세서. 질병검역접수인지대 명목으로 13만 2천 원을 청구했다.검역관리인조합이 수입업자에게 발행한 거래명세서. 질병검역접수인지대 명목으로 13만 2천 원을 청구했다.

■수입업자가 인건비 대는 수입새우 검역관리인?

현재 냉동창고를 포함한 국내 저온창고 80곳이 검역장소로 지정돼있습니다. 이곳에 검역관리인이 선임돼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대로 검역이 끝날 때까지 지정검역물이 들고나는 것은 물론 출입자 통제까지 검역관리인이 책임지고 관리해야 합니다.

하지만 KBS 탐사보도부 취재결과 검역관리시스템은 정부의 구상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었습니다.

부산의 경우 조합을 구성하고 있는 수산물질병관리사 5명이 46개 저온창고의 지정검역물 관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한 명이 10개 창고의 지정검역물을 관리하고 있는 셈입니다. 현실적으로 법률이 정한 임무를 제대로 수행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이들의 인건비를 부담하는 건 검역장소 지정을 받은 창고주도 아닌 화주, 다시 말해 수입업자입니다. 냉동새우를 한 건 수입할 때마다 수입업자는 부가세를 포함해 13만 2천 원씩 '질병검역접수대'라는 명목으로 검역관리인에게 지급합니다.

수입업자가 직접 창고를 소유하고 있는 경우는 문제가 더 큽니다. 창고주 그러니까 수입업자가 검역관리인을 직접 고용하고 인건비도 지급하는 겁니다. 지정검역물 관리가 객관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까요?

해수위 국감 황주홍 위원장해수위 국감 황주홍 위원장

■ 검역관리인... 국가가 관리해야

황주홍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장은 4일 열린 해양수산부에 대한 국감에서 보도자료를 통해 "민간인 신분인 검역관리인은 벌칙을 적용할 때도 공무원 의제 적용을 받지 않고 있어서 검역 책임성보다는 수입업자의 이익을 위해 일하게 된다"며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라고 꼬집었습니다.

학자들의 우려도 큽니다. 김도형 부경대 수산과학대학 부학장은 "수산물 수입량이 늘어나면서 검역을 해야 하는 수산물의 양이 상당히 늘었다"며 "검역기관에 소속된 검역관 부족을 보완하기 위해 검역관리인 제도를 도입했는데, 이들이 수입업자로부터 수수료를 받는 것은 공정성 측면에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교수는 "검역관 수를 늘리든지 검역관리인제도를 정부에서 지원하는 시스템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KBS 탐사보도부가 확인한 '병든' 수입새우 유통은 허술한 검역 시스템과 검역 현장의 부실함이 합쳐진 결과입니다. 검역을 방해하고, 검역 당국의 눈을 속이려는 수출업자와 수입업자의 시도가 확인됐습니다. 지정검역물을 직접 관리하는 검역관리인까지 수입업자의 편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 가능한 검역 방해 시나리오는, 상상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날 국감에서 김종회 의원(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은 "검역을 통과한 수산물은 국민이 안심하고 먹어도 된다는 보증인데, 이런 새우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된 것은 큰 문제"라며 철저한 검역을 촉구했습니다.

이에 대해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은 "(수산물)검역과 방역체계에 문제가 있었다"며 "관련 법령과 검역시스템을 재정비하고, KBS 보도 직후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장을 직접 베트남으로 보내 문제가 된 현장을 점검한 뒤 베트남 정부측 담당자를 만나 개선을 당부했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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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입 새우, 검역관리인을 수입업자가 고용한다?
    • 입력 2019-10-04 18:59:13
    • 수정2019-10-04 19:41:19
    취재K
수입새우에 바이러스 즉, 전염병 병원체가 있는지 없는지를 검사하는 사람은 검역 현장에 있는 '수산생물검역관'(이하 검역관)입니다. 검역관은 대부분 수산질병관리사나 수의사입니다. 수산물 검역기관인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에 소속돼 있습니다.

앞서 KBS탐사보도부가 취재해 보도한 것처럼 '병든' 수입새우가 검역망을 뚫고 유통된 데에는 일차적으로 검역 현장에 책임이 있습니다. 제한된 검역관 인력으로 전수 검사가 아닌 샘플 검사를 하는 원론적인 한계를 고려하더라도 그렇습니다. 현장에서 임상검사를 통해 병든 새우를 걸러내는 것도, 정밀검사를 할 수입새우를 무작위로 선정하는 것도 현장에 나간 검역관의 눈과 손을 거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수입 새우를 검역하는 현장에는 검역관이 아닌 '검역관리인'이라는 독특한 신분을 가진 사람이 더 있습니다. 검역관과 달리 검역당국이 직접 관리하지 않는 민간인입니다. 이 검역관리인의 인건비는 누가 댈까요? 이해하기 어렵지만 검역을 받는 수입업자가 부담합니다. 객관적이고 엄정한 검역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검역관리인은 누구?

한 번에 수만 톤씩 수입된 냉동새우들은 보통 하역과 동시에 보세 창고로 불리는 냉동창고로 들어갑니다. 통관 절차가 끝날 때까지 수입 수산물을 보관하는 이 창고들은 검역장소로 지정돼 있습니다. 이곳으로 검역관이 나와 검역을 진행합니다. 수산생물질병관리법은 이렇게 지정된 검역장소에 '검역관리인'을 두도록 하고 있습니다. 검역관리인도 검역관과 마찬가지로 수산질병관리사나 수의사가 할 수 있습니다.

검역관리인이 어떤 일을 하는지 한 번 볼까요.

관련법은 검역관리인이 지정 검역물의 입출고, 이동, 소독에 관한 사항, 현물 확인, 검사 시료 채취와 송부 협조, 시설 검사와 관리, 방역, 검역 장소 출입자 통제 등의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냉동새우로 쉽게 설명하면, 새우가 국내로 들어와 검역을 거쳐 통관을 마치고 유통될 때까지 냉동 새우 관리는 검역관리인의 몫입니다. 시료를 채취해 검사기관인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에 보내는 일에서도 검역관을 보조하도록 돼 있습니다. 한 마디로 검역이라는 공무가 객관적이고 엄정하게 이루어지도록 검역 현장을 전반적으로 관리하는 사람이 바로 검역관리인입니다.

검역관리인조합이 수입업자에게 발행한 거래명세서. 질병검역접수인지대 명목으로 13만 2천 원을 청구했다.
■수입업자가 인건비 대는 수입새우 검역관리인?

현재 냉동창고를 포함한 국내 저온창고 80곳이 검역장소로 지정돼있습니다. 이곳에 검역관리인이 선임돼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대로 검역이 끝날 때까지 지정검역물이 들고나는 것은 물론 출입자 통제까지 검역관리인이 책임지고 관리해야 합니다.

하지만 KBS 탐사보도부 취재결과 검역관리시스템은 정부의 구상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었습니다.

부산의 경우 조합을 구성하고 있는 수산물질병관리사 5명이 46개 저온창고의 지정검역물 관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한 명이 10개 창고의 지정검역물을 관리하고 있는 셈입니다. 현실적으로 법률이 정한 임무를 제대로 수행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이들의 인건비를 부담하는 건 검역장소 지정을 받은 창고주도 아닌 화주, 다시 말해 수입업자입니다. 냉동새우를 한 건 수입할 때마다 수입업자는 부가세를 포함해 13만 2천 원씩 '질병검역접수대'라는 명목으로 검역관리인에게 지급합니다.

수입업자가 직접 창고를 소유하고 있는 경우는 문제가 더 큽니다. 창고주 그러니까 수입업자가 검역관리인을 직접 고용하고 인건비도 지급하는 겁니다. 지정검역물 관리가 객관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까요?

해수위 국감 황주홍 위원장
■ 검역관리인... 국가가 관리해야

황주홍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장은 4일 열린 해양수산부에 대한 국감에서 보도자료를 통해 "민간인 신분인 검역관리인은 벌칙을 적용할 때도 공무원 의제 적용을 받지 않고 있어서 검역 책임성보다는 수입업자의 이익을 위해 일하게 된다"며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라고 꼬집었습니다.

학자들의 우려도 큽니다. 김도형 부경대 수산과학대학 부학장은 "수산물 수입량이 늘어나면서 검역을 해야 하는 수산물의 양이 상당히 늘었다"며 "검역기관에 소속된 검역관 부족을 보완하기 위해 검역관리인 제도를 도입했는데, 이들이 수입업자로부터 수수료를 받는 것은 공정성 측면에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교수는 "검역관 수를 늘리든지 검역관리인제도를 정부에서 지원하는 시스템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KBS 탐사보도부가 확인한 '병든' 수입새우 유통은 허술한 검역 시스템과 검역 현장의 부실함이 합쳐진 결과입니다. 검역을 방해하고, 검역 당국의 눈을 속이려는 수출업자와 수입업자의 시도가 확인됐습니다. 지정검역물을 직접 관리하는 검역관리인까지 수입업자의 편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 가능한 검역 방해 시나리오는, 상상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날 국감에서 김종회 의원(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은 "검역을 통과한 수산물은 국민이 안심하고 먹어도 된다는 보증인데, 이런 새우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된 것은 큰 문제"라며 철저한 검역을 촉구했습니다.

이에 대해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은 "(수산물)검역과 방역체계에 문제가 있었다"며 "관련 법령과 검역시스템을 재정비하고, KBS 보도 직후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장을 직접 베트남으로 보내 문제가 된 현장을 점검한 뒤 베트남 정부측 담당자를 만나 개선을 당부했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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