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후] ‘훔치고’, ‘사칭하고’…그런데 경찰이라고?

입력 2019.10.2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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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간 군 장교로 복무한 A(40) 씨는 군 생활을 마무리하고 지난 2017년 8월 순경으로 임용돼 경찰관으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A 순경은 2017년 8월부터 올해 3월까지 모 경찰서 지구대에서, 이후 강원지방경찰청에서 근무했다. 하지만 A 씨의 짧은 경찰 생활은 징계로 얼룩졌고 결국 그는 해임 처분을 받고 경찰을 떠나야 했다.

도대체 A 순경은 무슨 일을 저질렀기에 해임까지 됐을까? 법원 판결문을 살펴봤다.

지난해 6월 26일 강원도 원주시의 한 호텔.

직무와 관련한 교육을 위해 이 호텔에 투숙한 A 순경은 퇴실하면서 직원들의 감시가 소홀한 사이 호텔에 있던 슬리퍼, 베개피, 베개, 가운, 수건 등 모두 4만 2000원 상당의 물건을 자신의 가방에 몰려 숨겨서 나왔다. 호텔 측은 객실 청소 과정에서 비품이 없어진 사실을 확인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호텔 CCTV 분석을 통해 인적 사항을 파악한 끝에 A 순경을 붙잡았다. 검찰은 A 순경에게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A 순경은 이보다 앞서 더욱 황당한 일을 벌인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지난해 5월 18일 오후 4시쯤 강원도의 한 공중전화.

A 순경은 한 초등학교에 전화를 걸어 전화를 받은 여교사한테 “내가 00 초등학교 교감인데, 예쁘다는 소문을 듣고 전화했다. 남자친구를 소개해 주려 한다”고 말했지만, 결혼했다는 얘기를 듣는다. 이에 A 순경은 “동료 교사 중 예쁜 선생님이 있으면 두 명 정도 이름과 연락처를 달라”고 다시 말했고 교사 2명의 이름을 알아냈다. A 순경의 범행은 자신을 사칭한 사실을 알게 된 해당 초등학교 교감이 신고하면서 들통이 났다. 교감은 명예훼손 및 공무원 자격 사칭으로 A 순경을 고소했지만, A 순경은 증거불충분으로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다. 다만 A 순경은 경범죄 처벌법(관명 사칭)위반으로 8만 원의 통고 처분을 받았다.

절도 사건이 발생한 이튿날 직위 해제된 A 순경은 같은 해 7월 징계위원회에서 해임됐으나 소청 심사에서 "절차상 하자가 있다"는 이유로 처분이 취소되면서 복직됐다. 하지만 그해 11월 강원경찰청이 A 순경을 관명 사칭 혐의로 다시 직위 해제한 뒤 징계위원회를 열어 해임을 의결하자 A 순경은 소청 심사를 청구했으나 기각됐다. 이후 A 순경은 지난 5월 행정소송을 냈다.

A 순경은 재판 과정에서 "변사 사건 트라우마와 과중한 업무로 인한 우울증 등으로 절도를 저질렀고, 마음에 드는 선생님의 결혼 여부 등을 알고 싶어 관명을 사칭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했다"며 "피해자들에게 사과도 했고 노력한 점 등을 고려하면 해임 처분은 너무 무겁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A 순경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춘천지법 제1행정부(부장판사 성지호)는 A 순경이 “해임 처분이 너무 무겁다”며 강원지방경찰청장을 상대로 낸 해임처분취소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범죄를 예방해야 하는 경찰이 도리어 범죄를 저지르는 행위는 그 피해액이 적거나 피해자와 합의가 되었다는 등의 사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의무위반의 정도가 중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관명 사칭의 경우도 비록 불기소처분을 받았지만, 실질적 피해 내용과 타인의 법익을 보호해야 할 지위에 있는 원고가 다른 공무원을 사칭해 위 같은 행위를 한 점은 형사상 불기소처분을 받았다는 점만으로 비위행위 정도가 가볍다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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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22 07:00:30
    취재후·사건후
18년간 군 장교로 복무한 A(40) 씨는 군 생활을 마무리하고 지난 2017년 8월 순경으로 임용돼 경찰관으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A 순경은 2017년 8월부터 올해 3월까지 모 경찰서 지구대에서, 이후 강원지방경찰청에서 근무했다. 하지만 A 씨의 짧은 경찰 생활은 징계로 얼룩졌고 결국 그는 해임 처분을 받고 경찰을 떠나야 했다.

도대체 A 순경은 무슨 일을 저질렀기에 해임까지 됐을까? 법원 판결문을 살펴봤다.

지난해 6월 26일 강원도 원주시의 한 호텔.

직무와 관련한 교육을 위해 이 호텔에 투숙한 A 순경은 퇴실하면서 직원들의 감시가 소홀한 사이 호텔에 있던 슬리퍼, 베개피, 베개, 가운, 수건 등 모두 4만 2000원 상당의 물건을 자신의 가방에 몰려 숨겨서 나왔다. 호텔 측은 객실 청소 과정에서 비품이 없어진 사실을 확인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호텔 CCTV 분석을 통해 인적 사항을 파악한 끝에 A 순경을 붙잡았다. 검찰은 A 순경에게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A 순경은 이보다 앞서 더욱 황당한 일을 벌인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지난해 5월 18일 오후 4시쯤 강원도의 한 공중전화.

A 순경은 한 초등학교에 전화를 걸어 전화를 받은 여교사한테 “내가 00 초등학교 교감인데, 예쁘다는 소문을 듣고 전화했다. 남자친구를 소개해 주려 한다”고 말했지만, 결혼했다는 얘기를 듣는다. 이에 A 순경은 “동료 교사 중 예쁜 선생님이 있으면 두 명 정도 이름과 연락처를 달라”고 다시 말했고 교사 2명의 이름을 알아냈다. A 순경의 범행은 자신을 사칭한 사실을 알게 된 해당 초등학교 교감이 신고하면서 들통이 났다. 교감은 명예훼손 및 공무원 자격 사칭으로 A 순경을 고소했지만, A 순경은 증거불충분으로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다. 다만 A 순경은 경범죄 처벌법(관명 사칭)위반으로 8만 원의 통고 처분을 받았다.

절도 사건이 발생한 이튿날 직위 해제된 A 순경은 같은 해 7월 징계위원회에서 해임됐으나 소청 심사에서 "절차상 하자가 있다"는 이유로 처분이 취소되면서 복직됐다. 하지만 그해 11월 강원경찰청이 A 순경을 관명 사칭 혐의로 다시 직위 해제한 뒤 징계위원회를 열어 해임을 의결하자 A 순경은 소청 심사를 청구했으나 기각됐다. 이후 A 순경은 지난 5월 행정소송을 냈다.

A 순경은 재판 과정에서 "변사 사건 트라우마와 과중한 업무로 인한 우울증 등으로 절도를 저질렀고, 마음에 드는 선생님의 결혼 여부 등을 알고 싶어 관명을 사칭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했다"며 "피해자들에게 사과도 했고 노력한 점 등을 고려하면 해임 처분은 너무 무겁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A 순경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춘천지법 제1행정부(부장판사 성지호)는 A 순경이 “해임 처분이 너무 무겁다”며 강원지방경찰청장을 상대로 낸 해임처분취소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범죄를 예방해야 하는 경찰이 도리어 범죄를 저지르는 행위는 그 피해액이 적거나 피해자와 합의가 되었다는 등의 사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의무위반의 정도가 중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관명 사칭의 경우도 비록 불기소처분을 받았지만, 실질적 피해 내용과 타인의 법익을 보호해야 할 지위에 있는 원고가 다른 공무원을 사칭해 위 같은 행위를 한 점은 형사상 불기소처분을 받았다는 점만으로 비위행위 정도가 가볍다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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