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청사 앞 돼지 시위…ASF가 불러 온 ‘잔반 사료’ 논란

입력 2019.10.22 (08:19) 수정 2019.10.22 (08:59)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어제 정부세종청사 앞에선 돼지와 사람이 뒤엉키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먼저 현장 화면 보시겠습니다.

세종 청사 농식품부 앞입니다.

집회를 하던 양돈 농민들이 갑자기 화물차로 몰려갑니다.

그러더니, 트럭에 싣고 온 돼지 수십 마리를 풀어 놓습니다.

도로는 금세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달아나는 돼지를 잡으러 경찰관들이 이리 뛰고 저리 뜁니다.

농민들이 돼지를 몰고 청사 진입을 시도하자 경찰과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집니다.

["다 이리 와, 이리 와. 이리 와."]

일부 농민들은 이렇게 눈물까지 보이는데,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걸까요?

일단 돼지가 등장했으니 자연스레 아프리카돼지열병, ASF를 떠올리실 텐데요,

여기서 문제가 된 것 중 하나가 바로 잔반, 즉 사람이 먹다 남긴 음식물입니다.

그동안 학계와 전문가 그룹이 ASF의 주요 감염 경로 중 하나로 지목한 것이 바로 잔반입니다.

잔반에 섞여 들어간 바이러스 오염 물질이 ASF 감염의 주된 통로가 됐다는 것입니다.

정부 역시 이런 주장에 근거해 지난 7월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고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돼지에게 잔반을 사료로 주지 못하게 하는 내용이 핵심입니다.

그러자 잔반을 사료로 줘왔던 일부 농가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정부의 잔반 사용 금지로 값이 배 이상 비싼 배합 사료를 쓰다보니 폐업 위기에까지 내몰렸다고 호소합니다.

들어보시겠습니다.

[주영동/양돈 농민 : "이미 폐업 상태인 사람도 있고, 사실 너무 어렵고 힘들어서 분신 직전에 있는 상황입니다."]

그동안 일부 농장에선 식당과 학교, 공공기관, 예식장 등에서 잔반을 수거해 동물들에게 사료로 제공해 왔습니다.

리터 당 160원씩 음식물 폐기물 수거비를 받기도 하니, 잔반은 수거비도 벌고 사료비도 절약하는 일석 이조의 효과가 있던 셈입니다.

하지만 아프리카 돼지 열병 ASF 국내 상륙 이후 잔반에 대한 주변 경계가 높아졌습니다.

우리보다 훨씬 앞서 ASF가 휩쓸고 간 유럽에서는 20여 년 전부터 돼지에 대한 잔반 급여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유럽 최초 아프리카돼지열병 발병 국가인 포르투갈 사례에서 기인합니다.

1957년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 항구에 배 한 척이 도착합니다.

배에서 버린 쓰레기에는 잔반도 있었습니다.

누구도 그 잔반 안에 유럽 돼지의 목숨을 빼앗을 바이러스가 있다는 걸 알지 못했습니다.

수거된 잔반은 돼지 사료로 사용됐고 이걸 먹은 돼지가 곳곳에서 쓰러졌습니다.

리스본의 악몽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된 측면이 하나 있습니다.

잔반에 바이러스가 섞여 있더라도 가열 처리만 제대로 하면 전염병이 발병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아프리카 돼지열병 바이러스는 생존 능력이 우수하지만 고온에는 약합니다.

섭씨 75도 이상에 수분만 노출돼도 사멸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어제 시위에 나선 농민들 주장도 이와 맥을 같이 합니다.

즉, 잔반을 끓여서, 그런까 제대로 가열 처리를 하면 바이러스 감염 위험은 차단이 가능하단 입장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해 가열 처리를 하지 않은 잔반 사육 농가 96곳을 적발했다며 여전히 잔반의 위험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일단 정부가 잔반 사료 급여를 중지하기에 이르렀지만 걸림돌은 또 있습니다.

음식물 쓰레기 대란 우려입니다.

반찬 가짓수가 많은 '백반 문화'에 익숙한 우리 국민들 하루 배출하는 음식물 쓰레기 양은 약 만5000톤에 달합니다.

이 가운데 재활용되는 음식물의 약 43%가 동물들 먹이나 사료로 가공되는데 쓰입니다.

돼지에게 잔반 제공을 전면 금지할 경우 매일 천2백 톤이 넘는 음식물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할 지가 또 걱정입니다.

벌써부터 일부 지자체에서는 빈 그릇 바닥을 사진 찍어 올리면 문화상품권을 주는 잔반 줄이기 캠페인에 들어갔습니다.

아프리카 돼지열병이 불러 온 잔반 처리 논란, 일부 양돈 농가의 반대 시위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여 황금돼지해 남은 기해년도 이래저래 시끄러울 듯 합니다.

친절한 뉴스였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세종청사 앞 돼지 시위…ASF가 불러 온 ‘잔반 사료’ 논란
    • 입력 2019-10-22 08:23:10
    • 수정2019-10-22 08:59:08
    아침뉴스타임
어제 정부세종청사 앞에선 돼지와 사람이 뒤엉키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먼저 현장 화면 보시겠습니다.

세종 청사 농식품부 앞입니다.

집회를 하던 양돈 농민들이 갑자기 화물차로 몰려갑니다.

그러더니, 트럭에 싣고 온 돼지 수십 마리를 풀어 놓습니다.

도로는 금세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달아나는 돼지를 잡으러 경찰관들이 이리 뛰고 저리 뜁니다.

농민들이 돼지를 몰고 청사 진입을 시도하자 경찰과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집니다.

["다 이리 와, 이리 와. 이리 와."]

일부 농민들은 이렇게 눈물까지 보이는데,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걸까요?

일단 돼지가 등장했으니 자연스레 아프리카돼지열병, ASF를 떠올리실 텐데요,

여기서 문제가 된 것 중 하나가 바로 잔반, 즉 사람이 먹다 남긴 음식물입니다.

그동안 학계와 전문가 그룹이 ASF의 주요 감염 경로 중 하나로 지목한 것이 바로 잔반입니다.

잔반에 섞여 들어간 바이러스 오염 물질이 ASF 감염의 주된 통로가 됐다는 것입니다.

정부 역시 이런 주장에 근거해 지난 7월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고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돼지에게 잔반을 사료로 주지 못하게 하는 내용이 핵심입니다.

그러자 잔반을 사료로 줘왔던 일부 농가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정부의 잔반 사용 금지로 값이 배 이상 비싼 배합 사료를 쓰다보니 폐업 위기에까지 내몰렸다고 호소합니다.

들어보시겠습니다.

[주영동/양돈 농민 : "이미 폐업 상태인 사람도 있고, 사실 너무 어렵고 힘들어서 분신 직전에 있는 상황입니다."]

그동안 일부 농장에선 식당과 학교, 공공기관, 예식장 등에서 잔반을 수거해 동물들에게 사료로 제공해 왔습니다.

리터 당 160원씩 음식물 폐기물 수거비를 받기도 하니, 잔반은 수거비도 벌고 사료비도 절약하는 일석 이조의 효과가 있던 셈입니다.

하지만 아프리카 돼지 열병 ASF 국내 상륙 이후 잔반에 대한 주변 경계가 높아졌습니다.

우리보다 훨씬 앞서 ASF가 휩쓸고 간 유럽에서는 20여 년 전부터 돼지에 대한 잔반 급여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유럽 최초 아프리카돼지열병 발병 국가인 포르투갈 사례에서 기인합니다.

1957년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 항구에 배 한 척이 도착합니다.

배에서 버린 쓰레기에는 잔반도 있었습니다.

누구도 그 잔반 안에 유럽 돼지의 목숨을 빼앗을 바이러스가 있다는 걸 알지 못했습니다.

수거된 잔반은 돼지 사료로 사용됐고 이걸 먹은 돼지가 곳곳에서 쓰러졌습니다.

리스본의 악몽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된 측면이 하나 있습니다.

잔반에 바이러스가 섞여 있더라도 가열 처리만 제대로 하면 전염병이 발병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아프리카 돼지열병 바이러스는 생존 능력이 우수하지만 고온에는 약합니다.

섭씨 75도 이상에 수분만 노출돼도 사멸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어제 시위에 나선 농민들 주장도 이와 맥을 같이 합니다.

즉, 잔반을 끓여서, 그런까 제대로 가열 처리를 하면 바이러스 감염 위험은 차단이 가능하단 입장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해 가열 처리를 하지 않은 잔반 사육 농가 96곳을 적발했다며 여전히 잔반의 위험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일단 정부가 잔반 사료 급여를 중지하기에 이르렀지만 걸림돌은 또 있습니다.

음식물 쓰레기 대란 우려입니다.

반찬 가짓수가 많은 '백반 문화'에 익숙한 우리 국민들 하루 배출하는 음식물 쓰레기 양은 약 만5000톤에 달합니다.

이 가운데 재활용되는 음식물의 약 43%가 동물들 먹이나 사료로 가공되는데 쓰입니다.

돼지에게 잔반 제공을 전면 금지할 경우 매일 천2백 톤이 넘는 음식물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할 지가 또 걱정입니다.

벌써부터 일부 지자체에서는 빈 그릇 바닥을 사진 찍어 올리면 문화상품권을 주는 잔반 줄이기 캠페인에 들어갔습니다.

아프리카 돼지열병이 불러 온 잔반 처리 논란, 일부 양돈 농가의 반대 시위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여 황금돼지해 남은 기해년도 이래저래 시끄러울 듯 합니다.

친절한 뉴스였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