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내가 좋아하는 몸매”…욕설·성희롱 얼룩진 전국체전

입력 2019.10.28 (12:01) 수정 2019.10.28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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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이 지난 3일부터 10일까지 제100회 전국체육대회(이하 전국체전)의 14개 주요 종목(육상, 축구, 농구, 배구, 야구, 핸드볼, 배드민턴, 유도, 레슬링, 복싱, 씨름, 검도, 태권도, 역도)에서 언어폭력·신체폭력·성폭력 등 인권상황 모니터링을 실시했습니다.

인권위 조사관과 인권 전문가들로 구성된 20여 명의 모니터링 단원이 경기장 내·외부 점검, 경기 내용 관찰, 선수 인터뷰 등을 통해 살펴본 결과, 과열 경쟁과 권위주의적 문화로 인한 인권침해 상황이 다수 확인됐습니다.

■ "야 이 XX야, 죽을래?"…졌다는 이유로 심한 욕설·폭언

제100회 전국체육대회 개막식 모습제100회 전국체육대회 개막식 모습

욕설과 고성, 모욕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터져 나왔습니다. 경기를 잘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또는 상대에게 졌다는 이유로 선수들은 여러 차례 심한 폭언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일부 구기 종목에선 감독의 폭언을 보다 못한 관중들이 "저게 감독이냐, 욕하지 마라, 도대체 뭘 배우겠냐?"라고 되레 말릴 정도였습니다. 인권위가 포착한 문제 사례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① (구기 종목) 남자 지도자가 경기 내내 여자 고등학교 선수들에게 소리치고 화내고 욕설. 선수를 툭툭 밀치는 등 마치 물건 다루듯이 함. "야 이 XX야, XXX야, XX XX야, 죽을래, 그따위로 할 거야? 미쳤어? 나가! 너 뭐 하는 거야? 장난해" 등의 폭언.

② (투기 종목) 지도자가 학생선수들을 전체 집합시킨 상태로 "XX 놈들 XX들인가? 나가 뒤져야 된다"고 말함. 지도자가 "저 XX, A 대학에서 안 받았어야 하는데"라고 함.

③ (투기 종목) 경기에서 진 남자 대학 선수에게 남자 지도자가 "XXX가 이기려는 의지가 없어"라고 했으며, 남자 코치 역시 "XX XXXX"라고 폭언.

④ (구기 종목) 고등학교 남자 선수가 경기 중에 실수하자, 남자 지도자가 "야 XX XX가, 야 인마!"라고 폭언. 실책을 범한 여자 고교 선수에게 남자 지도자가 "00이는 안 뛰었냐? 에이 X"라고 말함. 남자 지도자가 여자 고교 선수에게 "집중 안 해 XX야, 너 하기 싫냐? 너 나올래 XX야?"라고 함.

⑤ (투기 종목) 경기장 복도 한쪽에 남자 고등학교 선수들을 열중쉬어 상태로 세워두고 "야 너는 이길 수 있는 경기를 왜 그따위로 한 거야"라고 소리치며 공포 분위기 속에서 혼냄. 경기에서 진 선수와 지도자가 함께 경기장 밖으로 이동하는 중에 지도자가 주먹으로 지역 선수단 안내 데스크를 강하게 내리쳐 주변 사람들이 모두 놀랄 정도로 큰 소리가 남.

■ "좀 더 벗으면 좋으련만"…성희롱에 '성차별적 의전'까지

제100회 전국체육대회 개막식에서 환호하는 관중 모습제100회 전국체육대회 개막식에서 환호하는 관중 모습

여성 선수나 직원들을 대상으로는 성희롱까지 버젓이 자행됐습니다.

한 종목에서는 심판이 경기장 안내를 맡은 여성 직원에게 "야 딱 내가 좋아하는 몸매야, 저런 스타일은 내가 들고 업을 수 있지"라고 말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일부 종목에선 작전 타임에 남성 코치가 여성 선수의 목덜미를 주무르고 만지는 장면도 목격됐습니다.

관중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남성 관중이 여성 선수에게 "나한테 시집와라, 시집와"라고 말하는가 하면, "몸매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네. 좀 더 벗으면 좋으련만"이라고 말하는 등 성희롱 발언도 곳곳에서 확인됐습니다.

인권위는 "스포츠 과정에서의 신체 접촉은 훈련, 교육, 격려 행위와 혼동될 수 있는 특징이 있고, 이를 빙자한 성폭력 사례가 많다는 점에서, 불필요한 신체접촉은 최소화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임원들에 대한 의전 역시 성차별적인 방식으로 진행되며 눈살을 찌푸리게 했습니다. 일부 여성 선수나 자원 봉사자들은 단상에 마련된 좌석에 앉아 있는 종목단체 임원 등에게 다과를 수발해야 했습니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높은 단상에 앉아 어린 여성들의 차 심부름을 당연한 듯이 받고 있는 구시대적 단상 문화에 대한 개선이 시급하다"고 비판했습니다.

■ 인권위 "권위주의적 문화 개선하고, 기량 다 할 수 있는 환경 만들어야"

올해로 100회를 맞은 전국체전은 국내 운동 경기 중 가장 높은 위상을 가진 대회입니다. 선수들은 한 번의 경기에 오랜 시간 가다듬어온 자신의 기량을 모두 쏟아붓습니다. 인권위는 경기를 준비하는 주최 측과 종목단체,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선수들이 최선의 기량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로 꼽힌 건 인권 침해와 권위주의적인 문화입니다. 과열된 경쟁 속에서 선수들은 감독이나 코치의 폭언에 그대로 노출됐고, 경기가 끝나고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종목단체 임원 등 고위직들의 훈화를 들어야 했습니다.

경기를 지켜보는 관중에 의한 혐오나 비하, 성희롱적 발언을 예방할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인권위는 말합니다. 일부 관중들이 선수들에게 지역감정에 기반한 비난을 하거나 여성에 대한 성희롱 발언을 내뱉으면서 선수 인권에 대한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입니다.

인권위는 앞으로도 스포츠 경기에서 인권침해와 권위주의적 문화가 완전히 근절될 수 있도록 대한체육회를 비롯한 각 이해당사자에게 개선을 촉구하고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겠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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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28 12:01:23
    • 수정2019-10-28 15:53:50
    취재K
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이 지난 3일부터 10일까지 제100회 전국체육대회(이하 전국체전)의 14개 주요 종목(육상, 축구, 농구, 배구, 야구, 핸드볼, 배드민턴, 유도, 레슬링, 복싱, 씨름, 검도, 태권도, 역도)에서 언어폭력·신체폭력·성폭력 등 인권상황 모니터링을 실시했습니다.

인권위 조사관과 인권 전문가들로 구성된 20여 명의 모니터링 단원이 경기장 내·외부 점검, 경기 내용 관찰, 선수 인터뷰 등을 통해 살펴본 결과, 과열 경쟁과 권위주의적 문화로 인한 인권침해 상황이 다수 확인됐습니다.

■ "야 이 XX야, 죽을래?"…졌다는 이유로 심한 욕설·폭언

제100회 전국체육대회 개막식 모습
욕설과 고성, 모욕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터져 나왔습니다. 경기를 잘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또는 상대에게 졌다는 이유로 선수들은 여러 차례 심한 폭언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일부 구기 종목에선 감독의 폭언을 보다 못한 관중들이 "저게 감독이냐, 욕하지 마라, 도대체 뭘 배우겠냐?"라고 되레 말릴 정도였습니다. 인권위가 포착한 문제 사례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① (구기 종목) 남자 지도자가 경기 내내 여자 고등학교 선수들에게 소리치고 화내고 욕설. 선수를 툭툭 밀치는 등 마치 물건 다루듯이 함. "야 이 XX야, XXX야, XX XX야, 죽을래, 그따위로 할 거야? 미쳤어? 나가! 너 뭐 하는 거야? 장난해" 등의 폭언.

② (투기 종목) 지도자가 학생선수들을 전체 집합시킨 상태로 "XX 놈들 XX들인가? 나가 뒤져야 된다"고 말함. 지도자가 "저 XX, A 대학에서 안 받았어야 하는데"라고 함.

③ (투기 종목) 경기에서 진 남자 대학 선수에게 남자 지도자가 "XXX가 이기려는 의지가 없어"라고 했으며, 남자 코치 역시 "XX XXXX"라고 폭언.

④ (구기 종목) 고등학교 남자 선수가 경기 중에 실수하자, 남자 지도자가 "야 XX XX가, 야 인마!"라고 폭언. 실책을 범한 여자 고교 선수에게 남자 지도자가 "00이는 안 뛰었냐? 에이 X"라고 말함. 남자 지도자가 여자 고교 선수에게 "집중 안 해 XX야, 너 하기 싫냐? 너 나올래 XX야?"라고 함.

⑤ (투기 종목) 경기장 복도 한쪽에 남자 고등학교 선수들을 열중쉬어 상태로 세워두고 "야 너는 이길 수 있는 경기를 왜 그따위로 한 거야"라고 소리치며 공포 분위기 속에서 혼냄. 경기에서 진 선수와 지도자가 함께 경기장 밖으로 이동하는 중에 지도자가 주먹으로 지역 선수단 안내 데스크를 강하게 내리쳐 주변 사람들이 모두 놀랄 정도로 큰 소리가 남.

■ "좀 더 벗으면 좋으련만"…성희롱에 '성차별적 의전'까지

제100회 전국체육대회 개막식에서 환호하는 관중 모습
여성 선수나 직원들을 대상으로는 성희롱까지 버젓이 자행됐습니다.

한 종목에서는 심판이 경기장 안내를 맡은 여성 직원에게 "야 딱 내가 좋아하는 몸매야, 저런 스타일은 내가 들고 업을 수 있지"라고 말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일부 종목에선 작전 타임에 남성 코치가 여성 선수의 목덜미를 주무르고 만지는 장면도 목격됐습니다.

관중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남성 관중이 여성 선수에게 "나한테 시집와라, 시집와"라고 말하는가 하면, "몸매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네. 좀 더 벗으면 좋으련만"이라고 말하는 등 성희롱 발언도 곳곳에서 확인됐습니다.

인권위는 "스포츠 과정에서의 신체 접촉은 훈련, 교육, 격려 행위와 혼동될 수 있는 특징이 있고, 이를 빙자한 성폭력 사례가 많다는 점에서, 불필요한 신체접촉은 최소화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임원들에 대한 의전 역시 성차별적인 방식으로 진행되며 눈살을 찌푸리게 했습니다. 일부 여성 선수나 자원 봉사자들은 단상에 마련된 좌석에 앉아 있는 종목단체 임원 등에게 다과를 수발해야 했습니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높은 단상에 앉아 어린 여성들의 차 심부름을 당연한 듯이 받고 있는 구시대적 단상 문화에 대한 개선이 시급하다"고 비판했습니다.

■ 인권위 "권위주의적 문화 개선하고, 기량 다 할 수 있는 환경 만들어야"

올해로 100회를 맞은 전국체전은 국내 운동 경기 중 가장 높은 위상을 가진 대회입니다. 선수들은 한 번의 경기에 오랜 시간 가다듬어온 자신의 기량을 모두 쏟아붓습니다. 인권위는 경기를 준비하는 주최 측과 종목단체,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선수들이 최선의 기량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로 꼽힌 건 인권 침해와 권위주의적인 문화입니다. 과열된 경쟁 속에서 선수들은 감독이나 코치의 폭언에 그대로 노출됐고, 경기가 끝나고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종목단체 임원 등 고위직들의 훈화를 들어야 했습니다.

경기를 지켜보는 관중에 의한 혐오나 비하, 성희롱적 발언을 예방할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인권위는 말합니다. 일부 관중들이 선수들에게 지역감정에 기반한 비난을 하거나 여성에 대한 성희롱 발언을 내뱉으면서 선수 인권에 대한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입니다.

인권위는 앞으로도 스포츠 경기에서 인권침해와 권위주의적 문화가 완전히 근절될 수 있도록 대한체육회를 비롯한 각 이해당사자에게 개선을 촉구하고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겠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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