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심야심] “원하는 사람만 군대로” 총선 앞두고 모병제 공론화

입력 2019.11.07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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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 39조 제1항 :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국방의 의무를 진다

병역법 3조 제1항 : 대한민국 국민인 남자는 헌법과 이 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병역 의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

한국전쟁 이후 우리나라의 국방을 떠받쳐온 '국민개병'의 원칙입니다.

국방 의무는 교육·근로·납세의 의무와 달리 '신성한'라는 수식어와 함께 할 때가 많습니다.

여기에 도전하거나 회피하려는 것 자체가 용납될 수 없었습니다.

유력 대선 후보였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발목을 잡은 것도, 대한민국 제1의 댄스 가수로 승승장구하던 유승준 씨를 몰락시킨 것도 바로 이 국방 의무를 둘러싼 논란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21대 총선을 앞두고 이 원칙에 대한 도전(?)에 나섰습니다.

총선 공약으로 모병제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겁니다.

민주연구원 "단계적 모병제 전환 필요"

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은 오늘(7일) 단계적 모병제 전환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은 정책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민주연구원은 모병제 전환이 필요한 가장 큰 이유로 '인구 절벽'을 꼽았습니다.

주요 병역 자원인 19세부터 21세 사이의 남성 숫자가 2019년 100만 4천 명에서 2023년 76만 8천 명으로, 2040년엔 46만 5천 명까지 떨어져 50만 명의 군 규모를 유지하기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두 번째 이유로는 병역 자원의 질(質) 향상을 들었습니다.

18개월인 현행 군 목부 기간으로는 대부분 군인이 전투 숙련도가 상급 수준에 이르기도 전에 전역할 수밖에 없어 첨단 무기체계 운용 등에서 문제점을 노출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전쟁의 승패가 군인 숫자가 아니라 무기체계의 수준과 운용에 따라 결정되는 현대대전의 특성상 징병제보다는 자발성과 전문성을 갖춘 모병제가 더 적합하다는 겁니다.

또 군 가산점 역차별로 인한 남녀 갈등과 병역 기피 논란, 군 인권 학대·부조리 등의 사회 문제 역시 모병제 도입으로 해결이 가능하다는 게 민주연구원의 생각입니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징병제로 인해 소모되는 11조 원대의 기회비용과 모병제 도입이 가져올 공공일자리 창출 효과 등을 고려하면 '남는 장사'라고 민주연구원은 내다봤습니다.

민주연구원은 이런 점들을 종합해 볼 때 징병제를 유지하면서 단계적으로 모병제를 늘려가는 '징·모병 혼합제'를 도입하고, 궁극적으로는 모병제로 완전 전환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같은 단계적 모병제 전환 방안은 조만간 총선기획단에도 정식 보고돼, 내년 총선 공약으로 검토될 예정입니다.

민주당 총선기획단은 단계적 모병제 도입을 총선 공약으로 검토할 예정이다민주당 총선기획단은 단계적 모병제 도입을 총선 공약으로 검토할 예정이다

당 지도부 "민주연구원 자체 의견일 뿐"

그렇다면 과연 실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민주당 지도부는 일단 민주연구원의 자체 의견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기자들을 만나 모병제 도입 공약에 대해 "정리되지 않은 얘기"라면서 "공식 논의한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총선기획단에서 공약을 담당하는 윤관석 의원도 "모병제 논의가 현재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그런(모병제를 총선 공약으로 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간 것인지 찾아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지도부는 신중한 입장이지만, 당내에선 모병제의 총선 공약화에 찬성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총선기획단 위원이기도 한 장경태 민주당 청년위원장은 KBS와 통화에서 "모병제로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면서 "총선 공약으로도 충분히 다룰 수 있고, 구체적인 시행 방향이나 시기를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9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정경두 국방부 장관에게 모병제 도입 필요성에 대해 질의했던 민주당 이훈 의원도 "모병제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해볼 시기가 됐다고 생각한다"면서 "총선 공약으로 만드는 과정을 통해 공론화를 시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모병제, 20대 남성 표심 붙잡을 카드?

모병제가 정부 여당에 등을 돌린 20대 남성층의 지지를 다시 이끌어낼 수 있다는 기대 섞인 관측도 여당내에선 나옵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모병제 전환 검토는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면서 "양 원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20대 청년층 지지를 확보하지 못하면 당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여러 차례 얘기해왔는데, 모병제 전환도 그런 차원에서 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20대 남성을 중심으로 '여성도 평등하게 군 복무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여성에게도 병역 의무를 부과하라'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여성을 군 복무 대상에 포함시키기는 어려운 상황, 모병제 도입이 그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실제로 민주연구원이 비공식적으로 FGI(포커스 그룹 인터뷰) 조사를 해본 결과 모병제 도입에 대해 20대 남성의 호응이 컸던 것을 알려졌습니다.

2019년도 첫 병역판정검사가 실시된 지난 1월 28일 서울 영등포구 서울지방병무청에서 병역 의무자들이 신체검사를 받고 있다2019년도 첫 병역판정검사가 실시된 지난 1월 28일 서울 영등포구 서울지방병무청에서 병역 의무자들이 신체검사를 받고 있다

"모병제는 정의롭지 못해"…비판 의견도

모병제 도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여전합니다.

장경태 위원장은 "먼저 군대를 다녀온 사람 입장에서는 '왜 동생들은 군대에 가지 않느냐, 억울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면서 "세대 간 형평성도 고려할 부분"이라고 짚었습니다.

빈부 격차에 따라 경제적 하위 계층만이 군대에 갈 우려가 있어 정의롭지 못하다는 비판도 제기됩니다.

바른미래당 유승민 전 대표는 모병제 도입 논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남북 군사대치 상황에서 안보에 조금도 도움되지 않는다"며 "어떤 사람은 군에 가고 어떤 사람은 군에 가지 않는 상황은 깊이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국방부도 오늘 정례브리핑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모병제를 검토한 바는 없고, "모병제 전환을 위해서는 군사적 필요성에 대한 검토 선행 후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있어야 가능할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습니다.

선거철이면 찾아 오는 모병제 이슈

정치권에서 모병제가 거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 2012년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후보였던 김두관 의원이 모병제 공약을 내놓은 바 있고, 2016년 바른정당의 대선 경선에서도 남경필 당시 후보가 모병제 도입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새로울 것이 없는 의제인데도 과거보다 지금 모병제 도입 논의가 더 관심을 끄는 이유는 급격한 인구 구조 변화와 남녀 간 사회적 갈등의 고조 등이 맞물려 있기 때문일 겁니다.

모병제 도입이 어차피 피할 수 없는 화두라면, 단순히 여당 내부의 총선용 공약 검토에 그칠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충분한 논의를 통해 국방 의무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합의점을 찾을 수 있도록 공론장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돼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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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심야심] “원하는 사람만 군대로” 총선 앞두고 모병제 공론화
    • 입력 2019-11-07 18:14:21
    여심야심
대한민국 헌법 39조 제1항 :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국방의 의무를 진다

병역법 3조 제1항 : 대한민국 국민인 남자는 헌법과 이 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병역 의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

한국전쟁 이후 우리나라의 국방을 떠받쳐온 '국민개병'의 원칙입니다.

국방 의무는 교육·근로·납세의 의무와 달리 '신성한'라는 수식어와 함께 할 때가 많습니다.

여기에 도전하거나 회피하려는 것 자체가 용납될 수 없었습니다.

유력 대선 후보였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발목을 잡은 것도, 대한민국 제1의 댄스 가수로 승승장구하던 유승준 씨를 몰락시킨 것도 바로 이 국방 의무를 둘러싼 논란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21대 총선을 앞두고 이 원칙에 대한 도전(?)에 나섰습니다.

총선 공약으로 모병제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겁니다.

민주연구원 "단계적 모병제 전환 필요"

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은 오늘(7일) 단계적 모병제 전환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은 정책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민주연구원은 모병제 전환이 필요한 가장 큰 이유로 '인구 절벽'을 꼽았습니다.

주요 병역 자원인 19세부터 21세 사이의 남성 숫자가 2019년 100만 4천 명에서 2023년 76만 8천 명으로, 2040년엔 46만 5천 명까지 떨어져 50만 명의 군 규모를 유지하기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두 번째 이유로는 병역 자원의 질(質) 향상을 들었습니다.

18개월인 현행 군 목부 기간으로는 대부분 군인이 전투 숙련도가 상급 수준에 이르기도 전에 전역할 수밖에 없어 첨단 무기체계 운용 등에서 문제점을 노출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전쟁의 승패가 군인 숫자가 아니라 무기체계의 수준과 운용에 따라 결정되는 현대대전의 특성상 징병제보다는 자발성과 전문성을 갖춘 모병제가 더 적합하다는 겁니다.

또 군 가산점 역차별로 인한 남녀 갈등과 병역 기피 논란, 군 인권 학대·부조리 등의 사회 문제 역시 모병제 도입으로 해결이 가능하다는 게 민주연구원의 생각입니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징병제로 인해 소모되는 11조 원대의 기회비용과 모병제 도입이 가져올 공공일자리 창출 효과 등을 고려하면 '남는 장사'라고 민주연구원은 내다봤습니다.

민주연구원은 이런 점들을 종합해 볼 때 징병제를 유지하면서 단계적으로 모병제를 늘려가는 '징·모병 혼합제'를 도입하고, 궁극적으로는 모병제로 완전 전환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같은 단계적 모병제 전환 방안은 조만간 총선기획단에도 정식 보고돼, 내년 총선 공약으로 검토될 예정입니다.

민주당 총선기획단은 단계적 모병제 도입을 총선 공약으로 검토할 예정이다
당 지도부 "민주연구원 자체 의견일 뿐"

그렇다면 과연 실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민주당 지도부는 일단 민주연구원의 자체 의견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기자들을 만나 모병제 도입 공약에 대해 "정리되지 않은 얘기"라면서 "공식 논의한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총선기획단에서 공약을 담당하는 윤관석 의원도 "모병제 논의가 현재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그런(모병제를 총선 공약으로 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간 것인지 찾아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지도부는 신중한 입장이지만, 당내에선 모병제의 총선 공약화에 찬성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총선기획단 위원이기도 한 장경태 민주당 청년위원장은 KBS와 통화에서 "모병제로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면서 "총선 공약으로도 충분히 다룰 수 있고, 구체적인 시행 방향이나 시기를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9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정경두 국방부 장관에게 모병제 도입 필요성에 대해 질의했던 민주당 이훈 의원도 "모병제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해볼 시기가 됐다고 생각한다"면서 "총선 공약으로 만드는 과정을 통해 공론화를 시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모병제, 20대 남성 표심 붙잡을 카드?

모병제가 정부 여당에 등을 돌린 20대 남성층의 지지를 다시 이끌어낼 수 있다는 기대 섞인 관측도 여당내에선 나옵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모병제 전환 검토는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면서 "양 원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20대 청년층 지지를 확보하지 못하면 당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여러 차례 얘기해왔는데, 모병제 전환도 그런 차원에서 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20대 남성을 중심으로 '여성도 평등하게 군 복무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여성에게도 병역 의무를 부과하라'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여성을 군 복무 대상에 포함시키기는 어려운 상황, 모병제 도입이 그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실제로 민주연구원이 비공식적으로 FGI(포커스 그룹 인터뷰) 조사를 해본 결과 모병제 도입에 대해 20대 남성의 호응이 컸던 것을 알려졌습니다.

2019년도 첫 병역판정검사가 실시된 지난 1월 28일 서울 영등포구 서울지방병무청에서 병역 의무자들이 신체검사를 받고 있다
"모병제는 정의롭지 못해"…비판 의견도

모병제 도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여전합니다.

장경태 위원장은 "먼저 군대를 다녀온 사람 입장에서는 '왜 동생들은 군대에 가지 않느냐, 억울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면서 "세대 간 형평성도 고려할 부분"이라고 짚었습니다.

빈부 격차에 따라 경제적 하위 계층만이 군대에 갈 우려가 있어 정의롭지 못하다는 비판도 제기됩니다.

바른미래당 유승민 전 대표는 모병제 도입 논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남북 군사대치 상황에서 안보에 조금도 도움되지 않는다"며 "어떤 사람은 군에 가고 어떤 사람은 군에 가지 않는 상황은 깊이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국방부도 오늘 정례브리핑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모병제를 검토한 바는 없고, "모병제 전환을 위해서는 군사적 필요성에 대한 검토 선행 후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있어야 가능할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습니다.

선거철이면 찾아 오는 모병제 이슈

정치권에서 모병제가 거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 2012년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후보였던 김두관 의원이 모병제 공약을 내놓은 바 있고, 2016년 바른정당의 대선 경선에서도 남경필 당시 후보가 모병제 도입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새로울 것이 없는 의제인데도 과거보다 지금 모병제 도입 논의가 더 관심을 끄는 이유는 급격한 인구 구조 변화와 남녀 간 사회적 갈등의 고조 등이 맞물려 있기 때문일 겁니다.

모병제 도입이 어차피 피할 수 없는 화두라면, 단순히 여당 내부의 총선용 공약 검토에 그칠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충분한 논의를 통해 국방 의무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합의점을 찾을 수 있도록 공론장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돼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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