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장벽 붕괴 30주년…옛 동독 수감자 “장벽 붕괴에 큰 두려움”
입력 2019.11.08 (19:29)
수정 2019.11.08 (19:51)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내일은 베를린장벽 붕괴 30주년이 되는 날인데요.
분단시절 악명 높았던 동독의 비밀경찰 슈타지가 운영하던 감옥의 수감자는 당시 장벽 붕괴가 기쁨이 아닌 큰 두려움으로 다가왔다고 합니다.
그 사연을 베를린 유광석 특파원이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지금은 기념관으로 변한 옛 동독 슈타지의 정치범 수감소.
가이드로서 당시 상황을 증언하는 코이프 씨는 수감자였습니다.
사회주의자였던 아버지를 따라 서독에서 동독으로 이주했던 가족.
하지만 자유가 억압된 생활을 견디다 못해 다시 서독으로 이주허가신청을 낸 뒤로 비극이 시작됐습니다.
[페터 코이프/옛 슈타지 감옥 수감자 : "저는 학교에서 퇴학을 당했고 대학교를 갈 수 없었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유를 갈망했던 청년은 급기야 22살 때이던 1981년 동독 탈출을 감행하다 기차역에서 붙잡혔습니다.
수감생활은 감시와 억압의 연속이었습니다.
[페터 코이프/옛 슈타지 감옥 수감자 : "어떤 정보도 얻지 못하고 질문을 하면 안 되고 가족과 연락할 수 없는 것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동독의 정치범을 돈을 주고 빼오는 서독의 '프라이카우프' 제도 덕에 아홉 달 만에 풀려난 코이프 씨는 곧장 조부모가 계신 서독지역 에센에 정착했습니다.
그러던 중 1989년 들려온 장벽 붕괴 소식은 기쁨이 아닌 크나큰 두려움이었습니다.
출감하던 날 "우리는 당신을 어디든 추적할 수 있다"고 말하던 교도관들이 떠올랐습니다.
[페터 코이프/옛 슈타지 감옥 수감자 : "굉장히 두려웠습니다. 동독은 제게 국경 뒤에 있는, 철의 커튼 뒤에 있는 것이었는데 '이 사람들이 다시 나에게 접근할 수 있겠구나'라는 공포를 느꼈습니다."]
지금도 옛 동독지역을 방문하면 사흘 이상을 머무르지 못한다는 코이프 씨.
사상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힘줘 말합니다.
베를린에서 KBS 뉴스 유광석입니다.
내일은 베를린장벽 붕괴 30주년이 되는 날인데요.
분단시절 악명 높았던 동독의 비밀경찰 슈타지가 운영하던 감옥의 수감자는 당시 장벽 붕괴가 기쁨이 아닌 큰 두려움으로 다가왔다고 합니다.
그 사연을 베를린 유광석 특파원이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지금은 기념관으로 변한 옛 동독 슈타지의 정치범 수감소.
가이드로서 당시 상황을 증언하는 코이프 씨는 수감자였습니다.
사회주의자였던 아버지를 따라 서독에서 동독으로 이주했던 가족.
하지만 자유가 억압된 생활을 견디다 못해 다시 서독으로 이주허가신청을 낸 뒤로 비극이 시작됐습니다.
[페터 코이프/옛 슈타지 감옥 수감자 : "저는 학교에서 퇴학을 당했고 대학교를 갈 수 없었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유를 갈망했던 청년은 급기야 22살 때이던 1981년 동독 탈출을 감행하다 기차역에서 붙잡혔습니다.
수감생활은 감시와 억압의 연속이었습니다.
[페터 코이프/옛 슈타지 감옥 수감자 : "어떤 정보도 얻지 못하고 질문을 하면 안 되고 가족과 연락할 수 없는 것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동독의 정치범을 돈을 주고 빼오는 서독의 '프라이카우프' 제도 덕에 아홉 달 만에 풀려난 코이프 씨는 곧장 조부모가 계신 서독지역 에센에 정착했습니다.
그러던 중 1989년 들려온 장벽 붕괴 소식은 기쁨이 아닌 크나큰 두려움이었습니다.
출감하던 날 "우리는 당신을 어디든 추적할 수 있다"고 말하던 교도관들이 떠올랐습니다.
[페터 코이프/옛 슈타지 감옥 수감자 : "굉장히 두려웠습니다. 동독은 제게 국경 뒤에 있는, 철의 커튼 뒤에 있는 것이었는데 '이 사람들이 다시 나에게 접근할 수 있겠구나'라는 공포를 느꼈습니다."]
지금도 옛 동독지역을 방문하면 사흘 이상을 머무르지 못한다는 코이프 씨.
사상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힘줘 말합니다.
베를린에서 KBS 뉴스 유광석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베를린장벽 붕괴 30주년…옛 동독 수감자 “장벽 붕괴에 큰 두려움”
-
- 입력 2019-11-08 19:32:06
- 수정2019-11-08 19:51:20
[앵커]
내일은 베를린장벽 붕괴 30주년이 되는 날인데요.
분단시절 악명 높았던 동독의 비밀경찰 슈타지가 운영하던 감옥의 수감자는 당시 장벽 붕괴가 기쁨이 아닌 큰 두려움으로 다가왔다고 합니다.
그 사연을 베를린 유광석 특파원이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지금은 기념관으로 변한 옛 동독 슈타지의 정치범 수감소.
가이드로서 당시 상황을 증언하는 코이프 씨는 수감자였습니다.
사회주의자였던 아버지를 따라 서독에서 동독으로 이주했던 가족.
하지만 자유가 억압된 생활을 견디다 못해 다시 서독으로 이주허가신청을 낸 뒤로 비극이 시작됐습니다.
[페터 코이프/옛 슈타지 감옥 수감자 : "저는 학교에서 퇴학을 당했고 대학교를 갈 수 없었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유를 갈망했던 청년은 급기야 22살 때이던 1981년 동독 탈출을 감행하다 기차역에서 붙잡혔습니다.
수감생활은 감시와 억압의 연속이었습니다.
[페터 코이프/옛 슈타지 감옥 수감자 : "어떤 정보도 얻지 못하고 질문을 하면 안 되고 가족과 연락할 수 없는 것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동독의 정치범을 돈을 주고 빼오는 서독의 '프라이카우프' 제도 덕에 아홉 달 만에 풀려난 코이프 씨는 곧장 조부모가 계신 서독지역 에센에 정착했습니다.
그러던 중 1989년 들려온 장벽 붕괴 소식은 기쁨이 아닌 크나큰 두려움이었습니다.
출감하던 날 "우리는 당신을 어디든 추적할 수 있다"고 말하던 교도관들이 떠올랐습니다.
[페터 코이프/옛 슈타지 감옥 수감자 : "굉장히 두려웠습니다. 동독은 제게 국경 뒤에 있는, 철의 커튼 뒤에 있는 것이었는데 '이 사람들이 다시 나에게 접근할 수 있겠구나'라는 공포를 느꼈습니다."]
지금도 옛 동독지역을 방문하면 사흘 이상을 머무르지 못한다는 코이프 씨.
사상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힘줘 말합니다.
베를린에서 KBS 뉴스 유광석입니다.
내일은 베를린장벽 붕괴 30주년이 되는 날인데요.
분단시절 악명 높았던 동독의 비밀경찰 슈타지가 운영하던 감옥의 수감자는 당시 장벽 붕괴가 기쁨이 아닌 큰 두려움으로 다가왔다고 합니다.
그 사연을 베를린 유광석 특파원이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지금은 기념관으로 변한 옛 동독 슈타지의 정치범 수감소.
가이드로서 당시 상황을 증언하는 코이프 씨는 수감자였습니다.
사회주의자였던 아버지를 따라 서독에서 동독으로 이주했던 가족.
하지만 자유가 억압된 생활을 견디다 못해 다시 서독으로 이주허가신청을 낸 뒤로 비극이 시작됐습니다.
[페터 코이프/옛 슈타지 감옥 수감자 : "저는 학교에서 퇴학을 당했고 대학교를 갈 수 없었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유를 갈망했던 청년은 급기야 22살 때이던 1981년 동독 탈출을 감행하다 기차역에서 붙잡혔습니다.
수감생활은 감시와 억압의 연속이었습니다.
[페터 코이프/옛 슈타지 감옥 수감자 : "어떤 정보도 얻지 못하고 질문을 하면 안 되고 가족과 연락할 수 없는 것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동독의 정치범을 돈을 주고 빼오는 서독의 '프라이카우프' 제도 덕에 아홉 달 만에 풀려난 코이프 씨는 곧장 조부모가 계신 서독지역 에센에 정착했습니다.
그러던 중 1989년 들려온 장벽 붕괴 소식은 기쁨이 아닌 크나큰 두려움이었습니다.
출감하던 날 "우리는 당신을 어디든 추적할 수 있다"고 말하던 교도관들이 떠올랐습니다.
[페터 코이프/옛 슈타지 감옥 수감자 : "굉장히 두려웠습니다. 동독은 제게 국경 뒤에 있는, 철의 커튼 뒤에 있는 것이었는데 '이 사람들이 다시 나에게 접근할 수 있겠구나'라는 공포를 느꼈습니다."]
지금도 옛 동독지역을 방문하면 사흘 이상을 머무르지 못한다는 코이프 씨.
사상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힘줘 말합니다.
베를린에서 KBS 뉴스 유광석입니다.
-
-
유광석 기자 ksyoo@kbs.co.kr
유광석 기자의 기사 모음
-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
좋아요
0
-
응원해요
0
-
후속 원해요
0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