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중환자실 실태 보고서-제주③ 제주형 중환자 의료 체계 필요

입력 2019.11.14 (16:41) 수정 2019.11.14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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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중환자실이 부족해 제주도 내 병원을 헤매다 아버지를 하늘로 떠나보낸 김 모 씨의 사례를 바탕으로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지난 한 달 동안 제주도 내 종합병원 응급실과 중환자실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현재에도, 여전히 중환자실을 기다리다 죽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비단 병원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중환자실 부족 이면에는 지역과 사회 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습니다. KBS제주 탐사K 팀은 4회에 걸쳐 제주지역 중증 응급의료 체계를 되짚고 더 나아가 제주지역에 맞는 현실적인 대안을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3편에서는 제주지역에 맞는 효율적인 중환자실 운영 방안을 짚어봅니다.』


지난달 15일 밤, 뇌졸중 증세를 보이던 강모(75) 할아버지가 서귀포의료원 응급실로 실려 왔다. 당뇨와 심혈관 수술 전력이 있던 강 할아버지는 다리를 움직일 수 없는 하지 위약감 증세도 보이고 있었다. 머리 CT와 MRI 검사에서 특별한 증세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혈액검사에서 신장 기능 수치가 급격히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장에 있던 강웅 서귀포의료원 응급실 과장은 "환자를 치료해야 하는데 신장 보는 선생님이 없다"며 제주대학교 병원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전원(병원 간 이송) 문의 때문에 연락 드렸는데요. 혈액검사 보니까 BUN(Blood Urea Nitrogen)과 크레아티닌이 92에 3.7로 상승해 있더라고요. 신장 문제 중심으로 환자를 치료해야 해서 전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우리 콩팥 보는 선생님이 아예 안 계시거든요."

강 과장은 제주대병원으로부터 전원 동의를 받은 뒤 소견서를 작성하고, 보호자에게 구급차가 준비되는 대로 전원을 보내겠다고 설명했다.

현장에서 만난 강 할아버지의 딸 강 모 씨는 "3시간 넘게 이러고 있는데 치료를 받은 것도 아니다. 치료도 제대로 못 받고 옮겨 다니는 게 너무 힘들다"고 호소했다. 강 씨의 손에는 38만 원짜리 진료비 명세서가 들려 있었다. 구급차 비용 10만 7,500원, CT와 MRI 비용 등 28만 2,560원. 강 할아버지는 30분 뒤 구급차를 타고 제주대병원으로 향했다.


강웅 응급실 과장은 환자를 보낸 뒤 '도내 종합병원 전문의들의 진료 일정을 조율해 중증 응급의료 공백을 막자'고 제안했다. 전문의가 없어 제주시 내 종합병원으로 옮겨지거나 다시 검사를 받는 과정에서 상태가 악화하는 걸 막자는 취지다.

"제 개인적인 바람은 같은 과 선생님들이 휴가 가는 일정을 조율해서 제주도 내 한 병원 정도는 반드시 환자를 책임지게끔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드리고 싶어요. 예를 들어 학회가 전국에서 열리면 그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각 전문의가 다 빠져나가거든요. 가끔 꼭 필요한 환자가 있는데 몹시 어려운 수술도 아닌데 해당과 전문의가 없어서 다른 지방으로 헬기 태워서 보내는 경우도 많거든요. 제주도 내 병원, 전문의 선생님들끼리 조율해서 당직을 선다거나…. 힘든 얘기지만 응급실 입장에서는 그렇습니다."

제주형 중환자 진료공유체제 필요 "30분 이상 줄일 수 있어"

제주도는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상 병원 간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 제주대학교병원은 이에 착안해 중환자의 진료정보를 공유하는 제주형 중환자 진료공유체계를 계획하고 있다. 이송 전 환자 상태를 공유해 수술과 진료 시간을 줄이자는 취지다.

송병철 제주대학교병원장은 "실제 서귀포시 거주자와 제주시 거주자가 심근경색으로 제주대병원까지 오는 시간이 50분가량 차이 난다. 중증 환자에게 50분은 엄청난 차이"라며 "지리적인 거리를 물리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워서 시스템을 개선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 원장은 실현할 수 있으면 적어도 30분 이상의 시간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경원 대한응급의료지도의사협의회 이사장은 "부족한 인력을 그 지역사회에서 얼마나 잘 조직화 해내느냐. 이것이 가장 어려운 문제"라며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제주도는 오히려 권역센터와 지역 센터가 정해져 있어 기관 간 협력, 그리고 제주도 소방당국의 협력이 있으면 (중증환자 의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인력 지원 지방정부가 적극 나서야…단계별 중환자실도 필요

중환자실 인력에 대한 지원도 늦출 수 없는 과제다. 송병철 제주대학교병원 원장은 "일본은 간호사가 그 지역에 취업하면 지방정부에서 보조금을 지급해준다. 그런데 제주 지역은 전혀 그런 게 없다"며 병원과 정부에만 의존하는 현행 지원 정책을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제주지역 중환자실 이용환자는 4,700여 명으로 절반가량이 70대 이상이었고, 80세 이상은 매년 천 명을 넘고 있다. 빠른 고령화에 맞춰 노인 중환자들을 돌볼 단계별 중환자실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현장에서 나왔다.

양영미 제주대학교병원 중환자실 수간호사는 "모니터만 필요한 분들만 따로 (간호)할 수 있는 준중환자실이 다른 큰 병원에는 있지만, 제주에는 그런 공간이 없다"며 "환자가 괜찮아져서 병동에 갈 상태까지 기다리다 보면 중환자실 자리가 부족한 경우들이 많다"고 말했다.

중환자실 전담전문의의 필요성과 역할도 강조됐다. 김상길 서귀포의료원장은 "의사들은 본인 환자가 중환자실에 있으면 잘 봐줄 것으로 생각한다. 중환자실에 있으면 퇴근하고 나서도 마음이 더 편한 게 의사들의 일반적인 심리"라며 "우선 중환자실 전담 의사가 있어야 하고, 중환자실 입·퇴실 절차를 굉장히 까다롭게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효율적인 운영을 줄이자는 취지다. 현재 제주지역 중환자실 전담전문의는 제주대학교병원 1명, 제주한라병원 2명 등 3명에 불과하다.

"경증 진료는 1차 의료기관에서" 도민 인식 개선 절실

송병철 제주대학교병원장은 "제주도민들이 입원을 선호하기 때문에 자꾸 하루, 이틀 정도 더 있게 해달라는 경우들이 있다. 하지만 병실이 차면 중환자들이 일반병실에 가려 해도 갈 수 없다. 이런 인식이 먼저 개선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실제 제주지역 종합병원 입원 환자의 중증도는 다른 지역 대학병원보다 낮지만, 재원 기간은 약 9일가량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른 지역 대학병원 평균 재원 일수인 7.9일보다 높은 수치다. 서울 지역 상위 4개 병원의 평균 재원 기간은 6.4일에 불과하다.

제주대학교병원과 제주한라병원 등 특정 병원을 자주 이용하는 경증환자를 대상으로 1차 병·의원을 가도록 유도하는 지자체 차원의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송 원장은 "중환자실에서 퇴원이 가능한 경우에도 일반 병실이 없어 중환자실에 2~3일씩 머무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1차 의료 기관을 이용해 종합병원이 중증 환자를 대상으로 진료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당부했다.

[방송보기]
[중환자실 실태 보고서]①기다리다 죽는 사람들
[중환자실 실태 보고서]②막을 수 있는 죽음, 왜 막지 못하나
[중환자실 실태 보고서]③제주형 중환자 의료 체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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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중환자실 실태 보고서-제주③ 제주형 중환자 의료 체계 필요
    • 입력 2019-11-14 16:41:30
    • 수정2019-11-14 16:42:39
    취재후·사건후
『지난 2017년 중환자실이 부족해 제주도 내 병원을 헤매다 아버지를 하늘로 떠나보낸 김 모 씨의 사례를 바탕으로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지난 한 달 동안 제주도 내 종합병원 응급실과 중환자실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현재에도, 여전히 중환자실을 기다리다 죽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비단 병원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중환자실 부족 이면에는 지역과 사회 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습니다. KBS제주 탐사K 팀은 4회에 걸쳐 제주지역 중증 응급의료 체계를 되짚고 더 나아가 제주지역에 맞는 현실적인 대안을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3편에서는 제주지역에 맞는 효율적인 중환자실 운영 방안을 짚어봅니다.』


지난달 15일 밤, 뇌졸중 증세를 보이던 강모(75) 할아버지가 서귀포의료원 응급실로 실려 왔다. 당뇨와 심혈관 수술 전력이 있던 강 할아버지는 다리를 움직일 수 없는 하지 위약감 증세도 보이고 있었다. 머리 CT와 MRI 검사에서 특별한 증세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혈액검사에서 신장 기능 수치가 급격히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장에 있던 강웅 서귀포의료원 응급실 과장은 "환자를 치료해야 하는데 신장 보는 선생님이 없다"며 제주대학교 병원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전원(병원 간 이송) 문의 때문에 연락 드렸는데요. 혈액검사 보니까 BUN(Blood Urea Nitrogen)과 크레아티닌이 92에 3.7로 상승해 있더라고요. 신장 문제 중심으로 환자를 치료해야 해서 전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우리 콩팥 보는 선생님이 아예 안 계시거든요."

강 과장은 제주대병원으로부터 전원 동의를 받은 뒤 소견서를 작성하고, 보호자에게 구급차가 준비되는 대로 전원을 보내겠다고 설명했다.

현장에서 만난 강 할아버지의 딸 강 모 씨는 "3시간 넘게 이러고 있는데 치료를 받은 것도 아니다. 치료도 제대로 못 받고 옮겨 다니는 게 너무 힘들다"고 호소했다. 강 씨의 손에는 38만 원짜리 진료비 명세서가 들려 있었다. 구급차 비용 10만 7,500원, CT와 MRI 비용 등 28만 2,560원. 강 할아버지는 30분 뒤 구급차를 타고 제주대병원으로 향했다.


강웅 응급실 과장은 환자를 보낸 뒤 '도내 종합병원 전문의들의 진료 일정을 조율해 중증 응급의료 공백을 막자'고 제안했다. 전문의가 없어 제주시 내 종합병원으로 옮겨지거나 다시 검사를 받는 과정에서 상태가 악화하는 걸 막자는 취지다.

"제 개인적인 바람은 같은 과 선생님들이 휴가 가는 일정을 조율해서 제주도 내 한 병원 정도는 반드시 환자를 책임지게끔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드리고 싶어요. 예를 들어 학회가 전국에서 열리면 그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각 전문의가 다 빠져나가거든요. 가끔 꼭 필요한 환자가 있는데 몹시 어려운 수술도 아닌데 해당과 전문의가 없어서 다른 지방으로 헬기 태워서 보내는 경우도 많거든요. 제주도 내 병원, 전문의 선생님들끼리 조율해서 당직을 선다거나…. 힘든 얘기지만 응급실 입장에서는 그렇습니다."

제주형 중환자 진료공유체제 필요 "30분 이상 줄일 수 있어"

제주도는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상 병원 간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 제주대학교병원은 이에 착안해 중환자의 진료정보를 공유하는 제주형 중환자 진료공유체계를 계획하고 있다. 이송 전 환자 상태를 공유해 수술과 진료 시간을 줄이자는 취지다.

송병철 제주대학교병원장은 "실제 서귀포시 거주자와 제주시 거주자가 심근경색으로 제주대병원까지 오는 시간이 50분가량 차이 난다. 중증 환자에게 50분은 엄청난 차이"라며 "지리적인 거리를 물리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워서 시스템을 개선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 원장은 실현할 수 있으면 적어도 30분 이상의 시간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경원 대한응급의료지도의사협의회 이사장은 "부족한 인력을 그 지역사회에서 얼마나 잘 조직화 해내느냐. 이것이 가장 어려운 문제"라며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제주도는 오히려 권역센터와 지역 센터가 정해져 있어 기관 간 협력, 그리고 제주도 소방당국의 협력이 있으면 (중증환자 의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인력 지원 지방정부가 적극 나서야…단계별 중환자실도 필요

중환자실 인력에 대한 지원도 늦출 수 없는 과제다. 송병철 제주대학교병원 원장은 "일본은 간호사가 그 지역에 취업하면 지방정부에서 보조금을 지급해준다. 그런데 제주 지역은 전혀 그런 게 없다"며 병원과 정부에만 의존하는 현행 지원 정책을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제주지역 중환자실 이용환자는 4,700여 명으로 절반가량이 70대 이상이었고, 80세 이상은 매년 천 명을 넘고 있다. 빠른 고령화에 맞춰 노인 중환자들을 돌볼 단계별 중환자실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현장에서 나왔다.

양영미 제주대학교병원 중환자실 수간호사는 "모니터만 필요한 분들만 따로 (간호)할 수 있는 준중환자실이 다른 큰 병원에는 있지만, 제주에는 그런 공간이 없다"며 "환자가 괜찮아져서 병동에 갈 상태까지 기다리다 보면 중환자실 자리가 부족한 경우들이 많다"고 말했다.

중환자실 전담전문의의 필요성과 역할도 강조됐다. 김상길 서귀포의료원장은 "의사들은 본인 환자가 중환자실에 있으면 잘 봐줄 것으로 생각한다. 중환자실에 있으면 퇴근하고 나서도 마음이 더 편한 게 의사들의 일반적인 심리"라며 "우선 중환자실 전담 의사가 있어야 하고, 중환자실 입·퇴실 절차를 굉장히 까다롭게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효율적인 운영을 줄이자는 취지다. 현재 제주지역 중환자실 전담전문의는 제주대학교병원 1명, 제주한라병원 2명 등 3명에 불과하다.

"경증 진료는 1차 의료기관에서" 도민 인식 개선 절실

송병철 제주대학교병원장은 "제주도민들이 입원을 선호하기 때문에 자꾸 하루, 이틀 정도 더 있게 해달라는 경우들이 있다. 하지만 병실이 차면 중환자들이 일반병실에 가려 해도 갈 수 없다. 이런 인식이 먼저 개선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실제 제주지역 종합병원 입원 환자의 중증도는 다른 지역 대학병원보다 낮지만, 재원 기간은 약 9일가량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른 지역 대학병원 평균 재원 일수인 7.9일보다 높은 수치다. 서울 지역 상위 4개 병원의 평균 재원 기간은 6.4일에 불과하다.

제주대학교병원과 제주한라병원 등 특정 병원을 자주 이용하는 경증환자를 대상으로 1차 병·의원을 가도록 유도하는 지자체 차원의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송 원장은 "중환자실에서 퇴원이 가능한 경우에도 일반 병실이 없어 중환자실에 2~3일씩 머무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1차 의료 기관을 이용해 종합병원이 중증 환자를 대상으로 진료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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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실 실태 보고서]①기다리다 죽는 사람들
[중환자실 실태 보고서]②막을 수 있는 죽음, 왜 막지 못하나
[중환자실 실태 보고서]③제주형 중환자 의료 체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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