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의병 후손들이 부르는 ‘영웅의 노래’
입력 2019.11.19 (07:30)
수정 2019.11.19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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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그제가(17일) 순국선열의 날이었죠.
경남 거창엔 1905년 을사늑약때 일본군과 맞서 싸운 영웅들, 월성의병이 있는데요.
후손 농민들이 잊혀진 의병을 기리는 창작오페라를 만들어 공연했습니다.
윤경재 기자입니다.
[리포트]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본에 외교권을 빼앗긴 뒤, 경남 거창 북상면 월성리에선 농민들이 총칼을 들었습니다.
거창과 덕유산을 근거지로 활동한 이들의 이름은 '월성의병'.
1910년 국권피탈 전까지 250여 명의 의병들이 일본군에 맞서 목숨을 건 치열한 전투를 이어갔습니다.
60~70대 농부들이 농기구 대신, 그리고 조상이 들었던 총칼 대신,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모두 월성의병 근거지였던 거창군 북상면 주민들로, 의병의 후손들도 포함돼 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생업인 농사일을 하면서 틈틈이 오페라를 연습했습니다.
[성낙경/거창하게노래하는농부들 단장 : "단원들이 전부 전문적인 성악을 배운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래서 모든 게 어려웠죠. 나이도 있고 그러니까 가사를 외우는 것도 힘들고 그렇습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내던진 의병 이야기를 보고 듣는 관객은 모두 지역 중고등학생들, 끝내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채 잊히고 있던 영웅들의 행적을, 후배 농민들이 오페라를 통해 더 어린 후손에게 전하게 됐습니다.
[박형인/광복회 경남북부연합지회장 : "지역민이기 때문에, 특히 그때 (의병)도 농민이지 않으냐. 그 후손들이 직접 하는 것이 의미가 더 크다."]
노래하는 농민들은 오페라 '월성의병'을 통해 이름 없는 영웅담을 계속 전할 계획입니다.
KBS 뉴스 윤경재입니다.
그제가(17일) 순국선열의 날이었죠.
경남 거창엔 1905년 을사늑약때 일본군과 맞서 싸운 영웅들, 월성의병이 있는데요.
후손 농민들이 잊혀진 의병을 기리는 창작오페라를 만들어 공연했습니다.
윤경재 기자입니다.
[리포트]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본에 외교권을 빼앗긴 뒤, 경남 거창 북상면 월성리에선 농민들이 총칼을 들었습니다.
거창과 덕유산을 근거지로 활동한 이들의 이름은 '월성의병'.
1910년 국권피탈 전까지 250여 명의 의병들이 일본군에 맞서 목숨을 건 치열한 전투를 이어갔습니다.
60~70대 농부들이 농기구 대신, 그리고 조상이 들었던 총칼 대신,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모두 월성의병 근거지였던 거창군 북상면 주민들로, 의병의 후손들도 포함돼 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생업인 농사일을 하면서 틈틈이 오페라를 연습했습니다.
[성낙경/거창하게노래하는농부들 단장 : "단원들이 전부 전문적인 성악을 배운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래서 모든 게 어려웠죠. 나이도 있고 그러니까 가사를 외우는 것도 힘들고 그렇습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내던진 의병 이야기를 보고 듣는 관객은 모두 지역 중고등학생들, 끝내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채 잊히고 있던 영웅들의 행적을, 후배 농민들이 오페라를 통해 더 어린 후손에게 전하게 됐습니다.
[박형인/광복회 경남북부연합지회장 : "지역민이기 때문에, 특히 그때 (의병)도 농민이지 않으냐. 그 후손들이 직접 하는 것이 의미가 더 크다."]
노래하는 농민들은 오페라 '월성의병'을 통해 이름 없는 영웅담을 계속 전할 계획입니다.
KBS 뉴스 윤경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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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성의병 후손들이 부르는 ‘영웅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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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9-11-19 07:32:42
- 수정2019-11-19 07:5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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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가(17일) 순국선열의 날이었죠.
경남 거창엔 1905년 을사늑약때 일본군과 맞서 싸운 영웅들, 월성의병이 있는데요.
후손 농민들이 잊혀진 의병을 기리는 창작오페라를 만들어 공연했습니다.
윤경재 기자입니다.
[리포트]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본에 외교권을 빼앗긴 뒤, 경남 거창 북상면 월성리에선 농민들이 총칼을 들었습니다.
거창과 덕유산을 근거지로 활동한 이들의 이름은 '월성의병'.
1910년 국권피탈 전까지 250여 명의 의병들이 일본군에 맞서 목숨을 건 치열한 전투를 이어갔습니다.
60~70대 농부들이 농기구 대신, 그리고 조상이 들었던 총칼 대신,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모두 월성의병 근거지였던 거창군 북상면 주민들로, 의병의 후손들도 포함돼 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생업인 농사일을 하면서 틈틈이 오페라를 연습했습니다.
[성낙경/거창하게노래하는농부들 단장 : "단원들이 전부 전문적인 성악을 배운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래서 모든 게 어려웠죠. 나이도 있고 그러니까 가사를 외우는 것도 힘들고 그렇습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내던진 의병 이야기를 보고 듣는 관객은 모두 지역 중고등학생들, 끝내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채 잊히고 있던 영웅들의 행적을, 후배 농민들이 오페라를 통해 더 어린 후손에게 전하게 됐습니다.
[박형인/광복회 경남북부연합지회장 : "지역민이기 때문에, 특히 그때 (의병)도 농민이지 않으냐. 그 후손들이 직접 하는 것이 의미가 더 크다."]
노래하는 농민들은 오페라 '월성의병'을 통해 이름 없는 영웅담을 계속 전할 계획입니다.
KBS 뉴스 윤경재입니다.
그제가(17일) 순국선열의 날이었죠.
경남 거창엔 1905년 을사늑약때 일본군과 맞서 싸운 영웅들, 월성의병이 있는데요.
후손 농민들이 잊혀진 의병을 기리는 창작오페라를 만들어 공연했습니다.
윤경재 기자입니다.
[리포트]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본에 외교권을 빼앗긴 뒤, 경남 거창 북상면 월성리에선 농민들이 총칼을 들었습니다.
거창과 덕유산을 근거지로 활동한 이들의 이름은 '월성의병'.
1910년 국권피탈 전까지 250여 명의 의병들이 일본군에 맞서 목숨을 건 치열한 전투를 이어갔습니다.
60~70대 농부들이 농기구 대신, 그리고 조상이 들었던 총칼 대신,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모두 월성의병 근거지였던 거창군 북상면 주민들로, 의병의 후손들도 포함돼 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생업인 농사일을 하면서 틈틈이 오페라를 연습했습니다.
[성낙경/거창하게노래하는농부들 단장 : "단원들이 전부 전문적인 성악을 배운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래서 모든 게 어려웠죠. 나이도 있고 그러니까 가사를 외우는 것도 힘들고 그렇습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내던진 의병 이야기를 보고 듣는 관객은 모두 지역 중고등학생들, 끝내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채 잊히고 있던 영웅들의 행적을, 후배 농민들이 오페라를 통해 더 어린 후손에게 전하게 됐습니다.
[박형인/광복회 경남북부연합지회장 : "지역민이기 때문에, 특히 그때 (의병)도 농민이지 않으냐. 그 후손들이 직접 하는 것이 의미가 더 크다."]
노래하는 농민들은 오페라 '월성의병'을 통해 이름 없는 영웅담을 계속 전할 계획입니다.
KBS 뉴스 윤경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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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재 기자 econom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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