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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수능 4교시의 마법(?)…지난해 부정행위 절반이 ‘4교시’
입력 2019.11.20 (14:04) 수정 2019.11.20 (14:04) 취재후
[취재후] 수능 4교시의 마법(?)…지난해 부정행위 절반이 ‘4교시’
"아예 0점 처리된다고 하니까, 지난 시간 동안 공부했던 게 모두 물거품이 된 것만 같아요."

수시로 대학에 예비 합격해 최저 등급만 받으면 되는 수험생 A양. 하지만 이번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전 과목이 0점 처리될 위기에 놓였습니다.

4교시 탐구영역 시간에 실수로 답안을 잘못 수정했다는 사실을 감독관에게 알렸다가, 결국 부정행위로 처리됐기 때문입니다.

■ "옆 칸 넘어가면 부정행위"…너무 까다로운 '수능 4교시'

수능 4교시 응시요령은 무척 까다롭습니다. 필수 과목 한국사와 탐구 영역 1~2과목을 한꺼번에 치르는데, OMR 답안지 한 장에 모든 과목의 답안을 작성해야 합니다.

수능 4교시 영역 OMR 답안지수능 4교시 영역 OMR 답안지

과목별로 주어진 시간은 각 30분! 규정상 다음 시험시간에 앞선 답안지를 수정하거나 작성하면 부정행위로 처리됩니다. 답안 작성 과정에서 '사소한 실수'로 부정행위자가 될 수 있는 겁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수험생은 "옆 칸에 손만 대도 부정행위라고 하니, 4교시 영역 OMR 답안지 작성은 항상 스트레스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수능에서 A양이 그랬습니다. A양은 4교시에 한국사와 생명과학, 지구과학 시험을 쳤습니다. 그런데 생명과학 시험 종료 5분을 앞두고 8번 답을 잘못 표기한 걸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 답을 고친다는 걸 그만 앞 시험인 한국사 문제 8번 답을 고쳤습니다. 시험은 세 과목이지만 OMR 답안지는 한 장이 나란히 있다 보니 답안지 작성 영역을 헷갈린 겁니다.

경남 창원 △△고등학교에 다니는 A양이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경남 창원 △△고등학교에 다니는 A양이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 '마킹 실수' 솔직하게 알려도 '부정행위'

즉시 실수를 알아차린 A양은 손을 들어 감독관에게 솔직히 알렸습니다. 그리고 감독관 지시에 따라 끝까지 시험을 봤습니다. 감독관은 시험 종료 뒤 이 사실을 시험관리본부에 보고했습니다.

하지만 본부는 부정행위라며 A양의 수능 시험 전체를 무효로 했습니다.

A양의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당시 현장에서 깜짝 놀란 감독관들이 "답안지와 문제지 기록 등을 확인했을 때 A양의 행동은 부정행위가 아니라 단순 실수"라며 따져도 보고, "사소한 실수에 도움을 요청한 아이를 부정행위자로 모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눈물도 흘렸다고 합니다.

당시 고사장 감독관 부정행위자 조서(학부모 증언 바탕으로 재구성)당시 고사장 감독관 부정행위자 조서(학부모 증언 바탕으로 재구성)

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부정행위의 고의성이 없는 단순 실수가 맞지만, 행위만 두고 봤을 때 그 자체로 규정 위반이라는 겁니다.

A양의 학교에 있는 한 지도 교사는 "정직했던 것이 오히려 독이 됐다"며 "부정행위 처리를 아이들의 양심에 맡기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 지난해, 수능 부정행위 절반이 '4교시 응시 방법 위반'

사실, 4교시 응시 방법을 둘러싼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4교시 선택과목 응시 순서를 착각한 수험생, 선택과목 문제지가 자신도 모르게 겹쳐져 있던 수험생 등이 모두 전 과목 0점 처리됐습니다.

최근 3년간 ‘4교시 응시방법’ 위반 건수최근 3년간 ‘4교시 응시방법’ 위반 건수

최근 3년 동안 '4교시 응시방법' 위반 건수는 모두 329건. 지난해 치른 수능에서도 전체 290여 명 부정행위자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인원이 4교시 응시 방법 위반으로 수능이 무효 처리됐습니다.

응시 방법은 '너무나' 까다롭고 처벌은 '너무나' 엄격한 4교시 시험시간 탓에, 전국의 수많은 수험생이 수능을 망치고 있는 것입니다. 사소한 실수 하나로도 절망적인 상황을 맞게 되는 겁니다.

교육청 장학사들은 "교육부나 평가원 회의에 가면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 장학사들이 끊임없이 질의하고 개선을 요구한다"고 말했습니다.

■ '4교시 복잡한 시험 방식''수능 0점' 처리 학생 양산

"답안지 3장 만드는 데 돈 많이 안 들어요. 그것 하나 때문에 매년 부정행위로 수능 12년 공부가 물거품이 됩니다."

A양의 담임 선생님의 말입니다. 그는 애초에 답안지를 과목별로 나눠줬다면 이런 안타까운 일이 생기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학생들이 편안하게 시험을 치를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준 뒤 평가를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4교시에 수험생들이 겪는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며 "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여러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반복했습니다.

■ 당국, 제도 개선엔 소극적 ...'행정편의주의' 아닌지 따져봐야

교육부가 4교시의 복잡한 시험 방식을 내버려둬, 수험생 피해자들을 양산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대목입니다. 특히 해마다 평균 백 명 이상이 이른바 '4교시 부정행위'로 수능 0점을 맞는다는 현실은 수험생의 입장은 뒷전에 둔 행정 편의주의의 결과는 아닌지 심각히 따져봐야 할 때입니다.

A양 등 모든 수험생의 부정행위는 교육부의 심의위원회 심사를 거쳐 이달 말쯤 최종 확정될 예정입니다.

[연관기사] “마킹 실수로 수정” 말했다가…수능 전 과목 ‘0점 처리’
  • [취재후] 수능 4교시의 마법(?)…지난해 부정행위 절반이 ‘4교시’
    • 입력 2019.11.20 (14:04)
    • 수정 2019.11.20 (14:04)
    취재후
[취재후] 수능 4교시의 마법(?)…지난해 부정행위 절반이 ‘4교시’
"아예 0점 처리된다고 하니까, 지난 시간 동안 공부했던 게 모두 물거품이 된 것만 같아요."

수시로 대학에 예비 합격해 최저 등급만 받으면 되는 수험생 A양. 하지만 이번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전 과목이 0점 처리될 위기에 놓였습니다.

4교시 탐구영역 시간에 실수로 답안을 잘못 수정했다는 사실을 감독관에게 알렸다가, 결국 부정행위로 처리됐기 때문입니다.

■ "옆 칸 넘어가면 부정행위"…너무 까다로운 '수능 4교시'

수능 4교시 응시요령은 무척 까다롭습니다. 필수 과목 한국사와 탐구 영역 1~2과목을 한꺼번에 치르는데, OMR 답안지 한 장에 모든 과목의 답안을 작성해야 합니다.

수능 4교시 영역 OMR 답안지수능 4교시 영역 OMR 답안지

과목별로 주어진 시간은 각 30분! 규정상 다음 시험시간에 앞선 답안지를 수정하거나 작성하면 부정행위로 처리됩니다. 답안 작성 과정에서 '사소한 실수'로 부정행위자가 될 수 있는 겁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수험생은 "옆 칸에 손만 대도 부정행위라고 하니, 4교시 영역 OMR 답안지 작성은 항상 스트레스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수능에서 A양이 그랬습니다. A양은 4교시에 한국사와 생명과학, 지구과학 시험을 쳤습니다. 그런데 생명과학 시험 종료 5분을 앞두고 8번 답을 잘못 표기한 걸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 답을 고친다는 걸 그만 앞 시험인 한국사 문제 8번 답을 고쳤습니다. 시험은 세 과목이지만 OMR 답안지는 한 장이 나란히 있다 보니 답안지 작성 영역을 헷갈린 겁니다.

경남 창원 △△고등학교에 다니는 A양이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경남 창원 △△고등학교에 다니는 A양이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 '마킹 실수' 솔직하게 알려도 '부정행위'

즉시 실수를 알아차린 A양은 손을 들어 감독관에게 솔직히 알렸습니다. 그리고 감독관 지시에 따라 끝까지 시험을 봤습니다. 감독관은 시험 종료 뒤 이 사실을 시험관리본부에 보고했습니다.

하지만 본부는 부정행위라며 A양의 수능 시험 전체를 무효로 했습니다.

A양의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당시 현장에서 깜짝 놀란 감독관들이 "답안지와 문제지 기록 등을 확인했을 때 A양의 행동은 부정행위가 아니라 단순 실수"라며 따져도 보고, "사소한 실수에 도움을 요청한 아이를 부정행위자로 모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눈물도 흘렸다고 합니다.

당시 고사장 감독관 부정행위자 조서(학부모 증언 바탕으로 재구성)당시 고사장 감독관 부정행위자 조서(학부모 증언 바탕으로 재구성)

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부정행위의 고의성이 없는 단순 실수가 맞지만, 행위만 두고 봤을 때 그 자체로 규정 위반이라는 겁니다.

A양의 학교에 있는 한 지도 교사는 "정직했던 것이 오히려 독이 됐다"며 "부정행위 처리를 아이들의 양심에 맡기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 지난해, 수능 부정행위 절반이 '4교시 응시 방법 위반'

사실, 4교시 응시 방법을 둘러싼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4교시 선택과목 응시 순서를 착각한 수험생, 선택과목 문제지가 자신도 모르게 겹쳐져 있던 수험생 등이 모두 전 과목 0점 처리됐습니다.

최근 3년간 ‘4교시 응시방법’ 위반 건수최근 3년간 ‘4교시 응시방법’ 위반 건수

최근 3년 동안 '4교시 응시방법' 위반 건수는 모두 329건. 지난해 치른 수능에서도 전체 290여 명 부정행위자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인원이 4교시 응시 방법 위반으로 수능이 무효 처리됐습니다.

응시 방법은 '너무나' 까다롭고 처벌은 '너무나' 엄격한 4교시 시험시간 탓에, 전국의 수많은 수험생이 수능을 망치고 있는 것입니다. 사소한 실수 하나로도 절망적인 상황을 맞게 되는 겁니다.

교육청 장학사들은 "교육부나 평가원 회의에 가면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 장학사들이 끊임없이 질의하고 개선을 요구한다"고 말했습니다.

■ '4교시 복잡한 시험 방식''수능 0점' 처리 학생 양산

"답안지 3장 만드는 데 돈 많이 안 들어요. 그것 하나 때문에 매년 부정행위로 수능 12년 공부가 물거품이 됩니다."

A양의 담임 선생님의 말입니다. 그는 애초에 답안지를 과목별로 나눠줬다면 이런 안타까운 일이 생기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학생들이 편안하게 시험을 치를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준 뒤 평가를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4교시에 수험생들이 겪는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며 "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여러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반복했습니다.

■ 당국, 제도 개선엔 소극적 ...'행정편의주의' 아닌지 따져봐야

교육부가 4교시의 복잡한 시험 방식을 내버려둬, 수험생 피해자들을 양산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대목입니다. 특히 해마다 평균 백 명 이상이 이른바 '4교시 부정행위'로 수능 0점을 맞는다는 현실은 수험생의 입장은 뒷전에 둔 행정 편의주의의 결과는 아닌지 심각히 따져봐야 할 때입니다.

A양 등 모든 수험생의 부정행위는 교육부의 심의위원회 심사를 거쳐 이달 말쯤 최종 확정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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