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K] ‘말하지 않을 권리’ 묵비권, 이상과 현실 사이

입력 2019.12.02 (17:16) 수정 2019.12.02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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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을 권리', 묵비권

진술거부권이라고 불리는 묵비권.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거나 질문에 대해 거부할 수 있는 피의자나 피고인의 권리입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으며 당신의 모든 발언은 법정에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범인이 체포될 때 등장하는 미란다의 원칙, 첫머리에 나오는 그 묵비권입니다.

헌법에도 형사소송법에도 명시된, 모든 사람이 행사할 수 있는 '법적인 권리'죠.


묵비권, 언제부터 '당연한 권리'가 됐을까?

묵비권의 기원은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영국에서 청교도 혁명을 주도했던 존 릴번이 '반정부 선동' 혐의로 재판을 받았는데요. 그는 불리한 답변을 하지 않겠다며 진술을 거부했고, 그 결과로 유죄 판결을 받습니다. 그러자 이에 분개한 시민들은 거리로 나왔고. 이 사건 이후, 진술 거부가 영미권 형사사법 절차에서 일반적인 권리로 자리 잡게 됐습니다.

이 전통을 계승해 미국은 수정헌법 5조에 묵비권을 보장하는 내용을 명문화했습니다. 묵비권은 이렇게 영미법에서 확립됐습니다.


묵비권 행사, 이상과 현실의 괴리

이론적으로 묵비권은 당연한 권리가 됐지만, 현실에서는 행사가 꼭 능사가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증거가 충분한 상황에서도 진술을 거부하면 검사로서는 증거인멸 우려가 크다고 생각하게 되고, 이런 태도가 재판까지 이어진다면 형량에도 영향을 미치는 게 현실입니다.

실제로 묵비권을 행사했다가 불이익을 당했다는 피의자나 피고인의 주장은 끊이지 않습니다. 가족과의 접견금지를 당했다는 사람, 구속영장이 청구됐다는 사람. 심지어 변호인이 묵비권을 조언했다가 '수사 방해'라는 이유로 쫓겨나 재판까지 갔던 사건도 있습니다.

대법원까지 간 이 사건은 재판부가 "(묵비권 행사는) 수사 방해가 아니고 오히려 수사기관이 위법행위를 저질렀다"고 판단을 내리며 종결되긴 했습니다. 하지만 수사받는 현실에서 묵비권 행사는 일반 피의자, 피고인에게 이토록 녹록지 않습니다.


최근 사모펀드 위법투자·자녀 입시 비리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패스트트랙 폭력 사태로 검찰에 출석했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검찰 조사에서 묵비권을 행사하고 나왔습니다.

이들처럼 검찰 출석 후 당당한 묵비권 행사는 특권층이나 막강한 변호인단을 꾸릴 수 있는 사람에게만 인정되는 게 현실아니냐는 볼멘 지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말하지 않을 권리' 묵비권,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여전히 큽니다.

동영상 제작
작가 : 팽혜영
컴퓨터 그래픽 : 김현갑
편집 : 송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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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팩트체크K] ‘말하지 않을 권리’ 묵비권, 이상과 현실 사이
    • 입력 2019-12-02 17:16:27
    • 수정2019-12-02 18:21:47
    팩트체크K
'말하지 않을 권리', 묵비권 진술거부권이라고 불리는 묵비권.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거나 질문에 대해 거부할 수 있는 피의자나 피고인의 권리입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으며 당신의 모든 발언은 법정에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범인이 체포될 때 등장하는 미란다의 원칙, 첫머리에 나오는 그 묵비권입니다. 헌법에도 형사소송법에도 명시된, 모든 사람이 행사할 수 있는 '법적인 권리'죠. 묵비권, 언제부터 '당연한 권리'가 됐을까? 묵비권의 기원은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영국에서 청교도 혁명을 주도했던 존 릴번이 '반정부 선동' 혐의로 재판을 받았는데요. 그는 불리한 답변을 하지 않겠다며 진술을 거부했고, 그 결과로 유죄 판결을 받습니다. 그러자 이에 분개한 시민들은 거리로 나왔고. 이 사건 이후, 진술 거부가 영미권 형사사법 절차에서 일반적인 권리로 자리 잡게 됐습니다. 이 전통을 계승해 미국은 수정헌법 5조에 묵비권을 보장하는 내용을 명문화했습니다. 묵비권은 이렇게 영미법에서 확립됐습니다. 묵비권 행사, 이상과 현실의 괴리 이론적으로 묵비권은 당연한 권리가 됐지만, 현실에서는 행사가 꼭 능사가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증거가 충분한 상황에서도 진술을 거부하면 검사로서는 증거인멸 우려가 크다고 생각하게 되고, 이런 태도가 재판까지 이어진다면 형량에도 영향을 미치는 게 현실입니다. 실제로 묵비권을 행사했다가 불이익을 당했다는 피의자나 피고인의 주장은 끊이지 않습니다. 가족과의 접견금지를 당했다는 사람, 구속영장이 청구됐다는 사람. 심지어 변호인이 묵비권을 조언했다가 '수사 방해'라는 이유로 쫓겨나 재판까지 갔던 사건도 있습니다. 대법원까지 간 이 사건은 재판부가 "(묵비권 행사는) 수사 방해가 아니고 오히려 수사기관이 위법행위를 저질렀다"고 판단을 내리며 종결되긴 했습니다. 하지만 수사받는 현실에서 묵비권 행사는 일반 피의자, 피고인에게 이토록 녹록지 않습니다. 최근 사모펀드 위법투자·자녀 입시 비리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패스트트랙 폭력 사태로 검찰에 출석했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검찰 조사에서 묵비권을 행사하고 나왔습니다. 이들처럼 검찰 출석 후 당당한 묵비권 행사는 특권층이나 막강한 변호인단을 꾸릴 수 있는 사람에게만 인정되는 게 현실아니냐는 볼멘 지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말하지 않을 권리' 묵비권,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여전히 큽니다. 동영상 제작 작가 : 팽혜영 컴퓨터 그래픽 : 김현갑 편집 : 송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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