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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대 오른 검찰 수사…유해용 ‘무죄’ 판결문 뒤집어보기
입력 2020.01.14 (15:01) 수정 2020.01.14 (15:19) 취재K
심판대 오른 검찰 수사…유해용 ‘무죄’ 판결문 뒤집어보기
검찰의 수사는 "총체적 위법 수사"다.

어제(13일) 1심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은, 지난해 5월 27일 자신의 첫 재판에서 검찰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도 검찰 수사가 과연 적법 절차를 따랐는지를 사건의 주요 쟁점으로 내세우면서, 공소 자체를 기각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치열했던 재판 과정은 판결문에도 담겼습니다. 유 전 연구관 측이 주장해 온 검찰 수사·공소제기의 문제점과, 그에 따른 증거능력 인정 여부에 대한 판단에 대한 서술이 60쪽가량이나 됩니다. 전체 판결문의 3분의 1이 넘습니다.

사건의 피고인은 유 전 연구관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검찰 역시 재판부의 심판대에 올랐던 셈입니다. 검찰의 피의자·참고인 조사와 압수수색 절차, 공소장 내용은 물론,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수사 과정에서 문제가 됐던 피의사실공표와 포토라인 문제까지 두루 제기됐는데요.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장황한' 공소장…"피고인에게 엄청난 방어의 부담 지워"

첫 번째 문제, 검찰의 공소장이었습니다. 유 전 연구관의 변호인은 검찰이 '범행배경'을 설명한다며 유죄의 인상을 줄 우려가 있는 내용을 공소장에 적었고, 유 전 연구관이 전관예우를 이용해 재판에 부당한 영향을 끼쳤다는 식의 기재가 있다고도 주장했습니다. 이른바 '공소장일본주의' 위반 주장입니다.

[연관 기사] 공소장 일본주의가 뭐길래? MB부터 전두환까지 법정서 방패로

유 전 연구관 측이 문제 삼은 공소장 내용 중 일부. (국회 제출용)유 전 연구관 측이 문제 삼은 공소장 내용 중 일부. (국회 제출용)

재판부도 공소장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재판부는 검사가 A4용지 두 쪽 분량으로 적은 공소사실은 단 4줄로 요약될 수 있다며, 직접 요약한 내용을 판결문에 적어 두기도 했습니다. 칼 같은 '첨삭' 이후 따가운 지적이 이어졌습니다.


"매우 강한" "엄청난" "심각하게" 등의 부사를 써가면서 검찰 공소장이 피고인의 권리를 침해하고, '쓸데없는' 내용이 많다고 밝힌 재판부. 하지만 그것이 위법이다, 즉 공소장일본주의 위반이라고까지는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공소사실을 볼 때 범행 동기와 배경을 상세하게 기재하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범죄사실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장애가 될 수 있을 정도"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잘 쓴 공소장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소기각 판결을 할 만큼 중대한 수준은 아니라고 본 것인데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비롯해 다른 '사법 농단' 사건 재판에서도 검찰의 '장황한' 공소장에 대한 지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영장 범위 벗어난 위법한 압수수색…"헌법에 정면으로 반해"

유 전 연구관은 판사 일을 그만두면서, 대법원 재판연구관들이 쓴 검토보고서(대법원 판결문 초고 등)를 무단으로 들고 나와 변호사 영업에 활용한 혐의도 받았습니다. 1심 재판부 판단은 무죄였죠. 그런데 재판과정에서는 이 혐의의 내용뿐 아니라, 혐의를 뒷받침하는 증거를 수집한 '절차' 자체도 다툼의 대상이 됐습니다. 이런 상황은 사실 검찰 수사 때부터 예견된 것이었습니다.


그럼 무엇이 문제였는지 거슬러 올라가 볼까요. '사법 농단' 수사의 핵심 증거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USB. 이 USB에서 유 전 연구관의 이름이 제목에 적힌 파일이 4개 발견되면서, 유 전 연구관은 검찰의 수사 선상에 올랐습니다.

검찰은 2018년 9월 5일 유 전 연구관의 변호사 사무실을 압수 수색을 했습니다.그가 임 전 차장과 공모해, 대통령 측근 소송의 일부 진행경과와 처리계획이 담긴 '사안 요약' 문건을 청와대에 유출했다는 혐의에 대한 수사 과정의 일환이었습니다.

법원은 당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하면서 '사안 요약' 문건의 파일·출력물을 압수할 물건으로 제한했습니다. 그리고 파일 검색을 위해 필요한 컴퓨터 검색어를, 해당 소송의 사건번호인 "2015후2204" "15후2204" 두 가지로 제한했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이를 그대로 지키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사안 요약' 문건 파일의 최종본 압수를 허용하는 영장의 취지에 비춰볼 때, "2015" "후" "2204"로 검색하는 것 역시 적법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그런 유추해석을 허용할 수 없다면서 검사의 행위를 헌법 조항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위라고까지 평가했지요.


검사는 "2204"로 유 전 연구관의 컴퓨터를 검색하던 과정에서, 대법원 재판연구관들이 쓴 검토보고서를 발견했습니다. A라는 혐의를 수사하다가 B 라는 별도의 범죄 혐의를 처음 포착하게 된 겁니다. 검사는 검토보고서가 나타난 컴퓨터 검색 결과 화면(모니터)을 그 자리에서 사진으로 촬영했습니다.

검찰이 예상치 못한 증거를 손에 넣게 되면서, 유 전 연구관의 대법원 재판연구관 검토보고서 유출 혐의(공공기록물·개인정보 무단 유출 혐의)에 대한 수사가 시작된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렇게 수집한 증거는 재판에서 증거로 쓸 수 없다고 했습니다. 당시 검사가 사진을 촬영해 놓고도, 유 전 연구관에게 압수물 목록을 주지 않은 점 역시 문제 삼았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검찰은 압수수색 이후 '모니터 촬영 사진'에서 이름이 특정된 대법원 재판연구관 2명을 불러 조사하면서, 유 전 연구관에게 검토보고서 파일을 취합해 전달했다는 의미 있는 진술을 얻었는데요.

재판부는 당시 검사가 문제의 '모니터 촬영 사진'을 보여주며 기억을 되살리는 방식으로 재판연구관들의 진술을 받아냈다며, 그 진술이 적힌 검찰 진술조서 부분도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위법수집 증거를 이용해 얻은 2차 증거도 위법하다는 취지입니다.


검찰은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유 전 연구관의 변호사 사무실 책상과 캐비닛 등에 검토보고서 출력물이 쌓여 있는 것을 압수수색 당시 검사가 이미 눈으로 확인했고, 이 때문에 모니터 촬영 사진이 없었더라도 유 전 연구관과 함께 근무했던 대법원 재판연구관들을 불러 조사할 예정이었다는 것입니다.

또 연구관들은 검사가 보여준 사진과 무관하게, 독립적인 판단하에 기억을 진술했다고도 검찰은 주장합니다. 항소심에서 또다시 양측이 다투게 될 부분입니다.


"암시적이고 반복적인" 유도신문…검찰조서 못 믿어

유 전 연구관은 검찰 조사에서 '사안 요약' 문건의 작성·전달과 관련해 일부 혐의를 인정하는 듯한 진술을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상황이 기억나진 않지만, 문건의 내용을 보면 내가 재판연구관에게 지시해 초안을 받아 편집한 것 같다', '만약 내가 임종헌에게 보내준 것이 맞는다면, 사건 진행경과를 알려달라는 임종헌의 부탁으로 보내주었을 가능성은 있다'는 취지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법정에서 '사안 요약' 문건의 작성과 전달에 관여한 적이 없다고 일관되게 주장해왔습니다. 검찰은 유 전 연구관이 불리한 진술을 번복한 것이라며, 검찰 진술에 의미를 둬야 한다고 주장했는데요. 재판부 판단은 어땠을까요?


검찰 조사 당시의 상황과 방식 등을 문제 삼아, 검찰에게 유리한 증거인 피의자신문조서 내용을 증거로 쓸 수 없다고 본 것입니다. 이른바 진술의 '특신상태(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판단이지요.

검찰에서의 진술보다 법정 진술에 더 무게를 두는 것은 최근 법원의 경향이기도 합니다. 특히 어제(1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따라 검찰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은 제한받게 됐습니다.

유 전 연구관 사건에서처럼 피고인이 "조서 기재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하면, 그 검찰 조서는 증거로 쓸 수 없게 됩니다. 다만 해당 조항은 법률 공포 후 4년 동안 시행이 유예돼, 당분간은 재판에서 검찰 조서의 증거능력을 두고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피의사실공표·공개소환 문제는 인정 안 했다

마지막으로 유 전 연구관이 강력히 주장해 온 피의사실공표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는 자신의 첫 재판에서 일그러진 표정으로 검사들을 바라보며, "이 사건 수사과정에서 저는 이미 언론에게 중대 범죄자로 낙인찍혀 만신창이가 됐습니다. 그동안 쌓아온 모든 삶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면서 말 그대로 불가역적 타격을 입었습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이런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자신에 대한 수사를 보도한 기사 15건과 '3차장 풀'(서울중앙지검 3차장 명의로 출입기자들에게 발송되는 문자메시지) 문자를 재판부에 제출했습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일부 기사가 "검찰 관계자는" "검찰에 따르면" 등 검찰 측 말을 인용하고 있고, 특히 한 언론은 유 전 연구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집행된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압수수색에서 확보된 증거에 대해 기사를 출고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압수수색 사실이 언론에 알려져 수많은 기자들이 유 전 연구관의 변호사 사무실 앞 복도에 대기했던 점 등도 언급했습니다. 조국 전 장관 수사를 둘러싼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 논란과 대부분 겹쳐지는 대목입니다.

재판부는 하지만 검찰이 유 전 연구관에 대한 피의사실을 공표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국민의 알 권리와 과거 검찰의 공보준칙, 언론에 알려진 정보의 구체성 등 다양한 측면이 고려됐습니다.


'포토라인' 문제도 쟁점이었습니다. 지난해 10월 윤석열 검찰총장의 '공개소환' 폐지 지시 이후 일단 상황이 달라졌지만 살펴보겠습니다.

유 전 연구관은 검찰이 수사에 순순히 협조하지 않는 자신을 "응징"하기 위해 두 차례 공개소환을 벌여 "과도한 심리적 부담감, 위축감, 모멸감, 수치심"을 일으키게 하고, 유죄의 낙인을 씌워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과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개인의 인격권 등을 크게 침해했다고 주장했는데요.

재판부는 '포토라인'의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검찰의 위법이라고는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검찰이 유 전 연구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서울지방변호사회에 유 전 연구관의 사건수임내역을 요청한 점 등이 "과잉·표적 수사"라는 변호인의 주장 역시 기각됐습니다.

결국, 전체적으로 보면 검찰의 수사가 "총체적 위법 수사"라는 유 전 연구관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번 일을 통해 우리의 수사 현실이나 관행에서 고치고 바로잡아야 할 많은 문제점을 보게 됐다"는 유 전 연구관의 최후 진술에, 재판부도 일정 정도 동의했다는 점은 숙고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사건 판결문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 심판대 오른 검찰 수사…유해용 ‘무죄’ 판결문 뒤집어보기
    • 입력 2020.01.14 (15:01)
    • 수정 2020.01.14 (15:19)
    취재K
심판대 오른 검찰 수사…유해용 ‘무죄’ 판결문 뒤집어보기
검찰의 수사는 "총체적 위법 수사"다.

어제(13일) 1심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은, 지난해 5월 27일 자신의 첫 재판에서 검찰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도 검찰 수사가 과연 적법 절차를 따랐는지를 사건의 주요 쟁점으로 내세우면서, 공소 자체를 기각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치열했던 재판 과정은 판결문에도 담겼습니다. 유 전 연구관 측이 주장해 온 검찰 수사·공소제기의 문제점과, 그에 따른 증거능력 인정 여부에 대한 판단에 대한 서술이 60쪽가량이나 됩니다. 전체 판결문의 3분의 1이 넘습니다.

사건의 피고인은 유 전 연구관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검찰 역시 재판부의 심판대에 올랐던 셈입니다. 검찰의 피의자·참고인 조사와 압수수색 절차, 공소장 내용은 물론,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수사 과정에서 문제가 됐던 피의사실공표와 포토라인 문제까지 두루 제기됐는데요.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장황한' 공소장…"피고인에게 엄청난 방어의 부담 지워"

첫 번째 문제, 검찰의 공소장이었습니다. 유 전 연구관의 변호인은 검찰이 '범행배경'을 설명한다며 유죄의 인상을 줄 우려가 있는 내용을 공소장에 적었고, 유 전 연구관이 전관예우를 이용해 재판에 부당한 영향을 끼쳤다는 식의 기재가 있다고도 주장했습니다. 이른바 '공소장일본주의' 위반 주장입니다.

[연관 기사] 공소장 일본주의가 뭐길래? MB부터 전두환까지 법정서 방패로

유 전 연구관 측이 문제 삼은 공소장 내용 중 일부. (국회 제출용)유 전 연구관 측이 문제 삼은 공소장 내용 중 일부. (국회 제출용)

재판부도 공소장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재판부는 검사가 A4용지 두 쪽 분량으로 적은 공소사실은 단 4줄로 요약될 수 있다며, 직접 요약한 내용을 판결문에 적어 두기도 했습니다. 칼 같은 '첨삭' 이후 따가운 지적이 이어졌습니다.


"매우 강한" "엄청난" "심각하게" 등의 부사를 써가면서 검찰 공소장이 피고인의 권리를 침해하고, '쓸데없는' 내용이 많다고 밝힌 재판부. 하지만 그것이 위법이다, 즉 공소장일본주의 위반이라고까지는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공소사실을 볼 때 범행 동기와 배경을 상세하게 기재하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범죄사실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장애가 될 수 있을 정도"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잘 쓴 공소장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소기각 판결을 할 만큼 중대한 수준은 아니라고 본 것인데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비롯해 다른 '사법 농단' 사건 재판에서도 검찰의 '장황한' 공소장에 대한 지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영장 범위 벗어난 위법한 압수수색…"헌법에 정면으로 반해"

유 전 연구관은 판사 일을 그만두면서, 대법원 재판연구관들이 쓴 검토보고서(대법원 판결문 초고 등)를 무단으로 들고 나와 변호사 영업에 활용한 혐의도 받았습니다. 1심 재판부 판단은 무죄였죠. 그런데 재판과정에서는 이 혐의의 내용뿐 아니라, 혐의를 뒷받침하는 증거를 수집한 '절차' 자체도 다툼의 대상이 됐습니다. 이런 상황은 사실 검찰 수사 때부터 예견된 것이었습니다.


그럼 무엇이 문제였는지 거슬러 올라가 볼까요. '사법 농단' 수사의 핵심 증거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USB. 이 USB에서 유 전 연구관의 이름이 제목에 적힌 파일이 4개 발견되면서, 유 전 연구관은 검찰의 수사 선상에 올랐습니다.

검찰은 2018년 9월 5일 유 전 연구관의 변호사 사무실을 압수 수색을 했습니다.그가 임 전 차장과 공모해, 대통령 측근 소송의 일부 진행경과와 처리계획이 담긴 '사안 요약' 문건을 청와대에 유출했다는 혐의에 대한 수사 과정의 일환이었습니다.

법원은 당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하면서 '사안 요약' 문건의 파일·출력물을 압수할 물건으로 제한했습니다. 그리고 파일 검색을 위해 필요한 컴퓨터 검색어를, 해당 소송의 사건번호인 "2015후2204" "15후2204" 두 가지로 제한했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이를 그대로 지키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사안 요약' 문건 파일의 최종본 압수를 허용하는 영장의 취지에 비춰볼 때, "2015" "후" "2204"로 검색하는 것 역시 적법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그런 유추해석을 허용할 수 없다면서 검사의 행위를 헌법 조항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위라고까지 평가했지요.


검사는 "2204"로 유 전 연구관의 컴퓨터를 검색하던 과정에서, 대법원 재판연구관들이 쓴 검토보고서를 발견했습니다. A라는 혐의를 수사하다가 B 라는 별도의 범죄 혐의를 처음 포착하게 된 겁니다. 검사는 검토보고서가 나타난 컴퓨터 검색 결과 화면(모니터)을 그 자리에서 사진으로 촬영했습니다.

검찰이 예상치 못한 증거를 손에 넣게 되면서, 유 전 연구관의 대법원 재판연구관 검토보고서 유출 혐의(공공기록물·개인정보 무단 유출 혐의)에 대한 수사가 시작된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렇게 수집한 증거는 재판에서 증거로 쓸 수 없다고 했습니다. 당시 검사가 사진을 촬영해 놓고도, 유 전 연구관에게 압수물 목록을 주지 않은 점 역시 문제 삼았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검찰은 압수수색 이후 '모니터 촬영 사진'에서 이름이 특정된 대법원 재판연구관 2명을 불러 조사하면서, 유 전 연구관에게 검토보고서 파일을 취합해 전달했다는 의미 있는 진술을 얻었는데요.

재판부는 당시 검사가 문제의 '모니터 촬영 사진'을 보여주며 기억을 되살리는 방식으로 재판연구관들의 진술을 받아냈다며, 그 진술이 적힌 검찰 진술조서 부분도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위법수집 증거를 이용해 얻은 2차 증거도 위법하다는 취지입니다.


검찰은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유 전 연구관의 변호사 사무실 책상과 캐비닛 등에 검토보고서 출력물이 쌓여 있는 것을 압수수색 당시 검사가 이미 눈으로 확인했고, 이 때문에 모니터 촬영 사진이 없었더라도 유 전 연구관과 함께 근무했던 대법원 재판연구관들을 불러 조사할 예정이었다는 것입니다.

또 연구관들은 검사가 보여준 사진과 무관하게, 독립적인 판단하에 기억을 진술했다고도 검찰은 주장합니다. 항소심에서 또다시 양측이 다투게 될 부분입니다.


"암시적이고 반복적인" 유도신문…검찰조서 못 믿어

유 전 연구관은 검찰 조사에서 '사안 요약' 문건의 작성·전달과 관련해 일부 혐의를 인정하는 듯한 진술을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상황이 기억나진 않지만, 문건의 내용을 보면 내가 재판연구관에게 지시해 초안을 받아 편집한 것 같다', '만약 내가 임종헌에게 보내준 것이 맞는다면, 사건 진행경과를 알려달라는 임종헌의 부탁으로 보내주었을 가능성은 있다'는 취지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법정에서 '사안 요약' 문건의 작성과 전달에 관여한 적이 없다고 일관되게 주장해왔습니다. 검찰은 유 전 연구관이 불리한 진술을 번복한 것이라며, 검찰 진술에 의미를 둬야 한다고 주장했는데요. 재판부 판단은 어땠을까요?


검찰 조사 당시의 상황과 방식 등을 문제 삼아, 검찰에게 유리한 증거인 피의자신문조서 내용을 증거로 쓸 수 없다고 본 것입니다. 이른바 진술의 '특신상태(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판단이지요.

검찰에서의 진술보다 법정 진술에 더 무게를 두는 것은 최근 법원의 경향이기도 합니다. 특히 어제(1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따라 검찰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은 제한받게 됐습니다.

유 전 연구관 사건에서처럼 피고인이 "조서 기재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하면, 그 검찰 조서는 증거로 쓸 수 없게 됩니다. 다만 해당 조항은 법률 공포 후 4년 동안 시행이 유예돼, 당분간은 재판에서 검찰 조서의 증거능력을 두고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피의사실공표·공개소환 문제는 인정 안 했다

마지막으로 유 전 연구관이 강력히 주장해 온 피의사실공표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는 자신의 첫 재판에서 일그러진 표정으로 검사들을 바라보며, "이 사건 수사과정에서 저는 이미 언론에게 중대 범죄자로 낙인찍혀 만신창이가 됐습니다. 그동안 쌓아온 모든 삶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면서 말 그대로 불가역적 타격을 입었습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이런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자신에 대한 수사를 보도한 기사 15건과 '3차장 풀'(서울중앙지검 3차장 명의로 출입기자들에게 발송되는 문자메시지) 문자를 재판부에 제출했습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일부 기사가 "검찰 관계자는" "검찰에 따르면" 등 검찰 측 말을 인용하고 있고, 특히 한 언론은 유 전 연구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집행된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압수수색에서 확보된 증거에 대해 기사를 출고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압수수색 사실이 언론에 알려져 수많은 기자들이 유 전 연구관의 변호사 사무실 앞 복도에 대기했던 점 등도 언급했습니다. 조국 전 장관 수사를 둘러싼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 논란과 대부분 겹쳐지는 대목입니다.

재판부는 하지만 검찰이 유 전 연구관에 대한 피의사실을 공표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국민의 알 권리와 과거 검찰의 공보준칙, 언론에 알려진 정보의 구체성 등 다양한 측면이 고려됐습니다.


'포토라인' 문제도 쟁점이었습니다. 지난해 10월 윤석열 검찰총장의 '공개소환' 폐지 지시 이후 일단 상황이 달라졌지만 살펴보겠습니다.

유 전 연구관은 검찰이 수사에 순순히 협조하지 않는 자신을 "응징"하기 위해 두 차례 공개소환을 벌여 "과도한 심리적 부담감, 위축감, 모멸감, 수치심"을 일으키게 하고, 유죄의 낙인을 씌워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과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개인의 인격권 등을 크게 침해했다고 주장했는데요.

재판부는 '포토라인'의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검찰의 위법이라고는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검찰이 유 전 연구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서울지방변호사회에 유 전 연구관의 사건수임내역을 요청한 점 등이 "과잉·표적 수사"라는 변호인의 주장 역시 기각됐습니다.

결국, 전체적으로 보면 검찰의 수사가 "총체적 위법 수사"라는 유 전 연구관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번 일을 통해 우리의 수사 현실이나 관행에서 고치고 바로잡아야 할 많은 문제점을 보게 됐다"는 유 전 연구관의 최후 진술에, 재판부도 일정 정도 동의했다는 점은 숙고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사건 판결문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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