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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 다되어 경찰개혁 시늉”…‘검사내전’ 검사의 사표
입력 2020.01.14 (16:57) 취재K
“해질녘 다되어 경찰개혁 시늉”…‘검사내전’ 검사의 사표
"이 법안들은 개혁이 아닙니다. 민주화 이후 가장 혐오스러운 음모이자 퇴보입니다. 서민은 불리하고, 국민은 더 불편해지며, 수사기관의 권한은 무한정으로 확대되어 부당합니다. 이른바 3불법입니다.

서민은 더 서럽게, 돈은 더 강하게, 수사기관은 더 무소불위로 만드는 이런 법안들은 왜 세상에 출몰하게 된 것일까요? 목줄 풀고, 입가리개 마저 던져버린 맹견을 아이들 사이에 풀어놓는다면 그 의도는 무엇일까요? 단순히 '우리 애는 안 물어요'라고 말하는 순진함과 무책임함이 원인일까요?"

김웅 법무연수원 교수(부장검사)가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사법연수원 29기인 김 부장검사는 형사부 검사 이야기를 다룬 베스트셀러 '검사내전'의 저자로 이름을 날린 인물입니다. 이 책에서 "드라마 속 검사와 실제 검사 사이에는 '항공모함 서너 개는 교행할 수 있을 만한 간격'이 있다"며 명랑형 생활검사를 자처한 김 부장검사는 지난해 대검찰청 형사정책단장을 지내며 검경 수사권 조정 업무를 맡았습니다.

오늘 김 부장검사는 '사직 설명서'라는 제목으로 검찰 내부망에 올린 글에서 글자 그대로 날것의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하지만 사의를 표명한 이유도 분명히 밝혔습니다. 경찰개혁이 함께 가지 않는 검경 수사권 조정은 '거대한 사기극'이라는 겁니다. 김 부장검사는 "수사권조정의 선제조건이라고 스스로 주장했고, 원샷에 함께 처리하겠다고 그토록 선전했던 경찰개혁안은 어디로 사라졌느냐"고 물으며 "혹시 정보경찰의 권력 확대 야욕과 선거에서 경찰의 충성을 맞거래했기 때문은 아니냐"고 반문했습니다.

'검찰 개혁'만 되면 만사 오케이?...경찰 개혁 어디까지 왔나?

'검찰개혁'이 지난해 가장 큰 화두였던 만큼, '경찰 개혁'은 어딘가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경찰 개혁의 움직임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만들어진 경찰개혁위는 여러 차례 개혁안을 내놨습니다. 특히 정보경찰의 폐단에 대한 우려가 컸습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전국의 정보경찰이 이른바 '진박' 당선을 위해 정치인을 사찰해 세평을 수집하고, 맞춤형 공약까지 제언한 사실이 검찰 수사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이 일로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구속까지 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곧 1심 선고가 내려집니다.

이에 대해 경찰개혁위는 2018년 4월 "경찰청 정보국의 기능을 '치안정보의 수집·작성·배포'에서 '공공안녕의 위험성에 대한 예방 및 대응' 기능으로 재편하라"는 권고안을 내놨습니다. 말이 좀 어렵지만, 한마디로 말하면 정보경찰이 '치안정보'라는 이름으로 수집해온 온갖 정보활동을 중단하라는 겁니다.

기업이나 정당, 시민사회단체 등을 상시적으로 출입하며 동향을 상시적으로 파악해온 정보경찰의 업무를 사실상 '사찰 행위'로 규정한 건데요. 개혁위는 이를 모두 중단하고, 경찰의 정보활동에 대해서 구체적인 법령상 근거 규정을 마련하라고도 했습니다.

한 경찰 관계자는 당시 KBS에 "정보경찰 개혁방안이 나왔을 때 개혁위원들이 더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권고안에서는 상당 부분 후퇴했다"고 밝혔습니다. 경찰개혁위는 정보국 폐지까지 논의했는데, 최종 권고안에서는 이런 부분이 담기지 않았다는 겁니다. 한 경찰개혁위 관계자는 "청와대 의견인 걸로 안다"고 전했습니다. 국정원 국내 정보 파트가 폐지됐는데, 정보경찰마저 없어진다면 청와대의 눈과 귀가 없어져 국내 통치가 어려워진다는 겁니다.

지난해 3월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문제가 됐던 '치안정보'의 구체적 범위 등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는 경찰관 직무직행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하지만 이 법은 여전히 행안위에 계류돼 있습니다. 오히려 경찰 정보에 대한 청와대 의존도는 더욱 심해졌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최근 검찰 인사를 앞두고 정보경찰이 검사 간부 세평을 수집한 부분에 대해 자유한국당이 민갑룡 경찰청장 등을 고발하기도 했습니다.

자치경찰제를 도입하는 법안 개정 역시 차일피일 미뤄져 오긴 마찬가집니다. 그동안 자치경찰제는 비대해진 경찰 권력을 쪼개는 경찰개혁안의 핵심으로 지적돼 왔습니다. 청장을 중심으로 조직화 돼 있는 지금의 경찰을 자치경찰과 수사경찰로 쪼개고, 자치경찰은 지자체에 소속돼 교통이나 생활 안전 업무 등을 맡는다는 겁니다. 제주도에서 이미 실시되고 있는 자치경찰제를 전국으로 확산시킨다는 계획입니다. 대신 수사경찰은 신설되는 '국가수사본부', 즉 이른바 '한국형 FBI'에 소속돼 수사 업무만 담당하게 됩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 같은 내용으로 대표 발의한 경찰법 개정안은 지금 어디쯤 와있을까요. 역시 아직 사법개혁 특별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20대 국회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생각하면 시간이 없습니다.

"물론 엊그제부터 경찰개혁도 할 것이라고 설레발 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기죄 전문 검사인 제가 보기에 그것은 말짱 사기입니다. 재작년 6월부터 지금까지 뭐했습니까?

해질녘 다 되어 책가방 찾는 시늉을 한다면 그것은 처음부터 학교 갈 생각이 없었던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철저하게 국민을 속이는 오만함과 후안무치에는 경탄하는 바입니다."

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통과되면서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은 입법이 모두 마무리됐습니다. 하지만 경찰개혁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는다면 '반쪽짜리 개혁'이라는 비판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경찰이든 검찰이든, 한 수사기관의 비대한 권력을 견제할 방법이 없다면 그 피해는 모두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 부장검사의 '사직설명서'를 눈 여겨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 “해질녘 다되어 경찰개혁 시늉”…‘검사내전’ 검사의 사표
    • 입력 2020.01.14 (16:57)
    취재K
“해질녘 다되어 경찰개혁 시늉”…‘검사내전’ 검사의 사표
"이 법안들은 개혁이 아닙니다. 민주화 이후 가장 혐오스러운 음모이자 퇴보입니다. 서민은 불리하고, 국민은 더 불편해지며, 수사기관의 권한은 무한정으로 확대되어 부당합니다. 이른바 3불법입니다.

서민은 더 서럽게, 돈은 더 강하게, 수사기관은 더 무소불위로 만드는 이런 법안들은 왜 세상에 출몰하게 된 것일까요? 목줄 풀고, 입가리개 마저 던져버린 맹견을 아이들 사이에 풀어놓는다면 그 의도는 무엇일까요? 단순히 '우리 애는 안 물어요'라고 말하는 순진함과 무책임함이 원인일까요?"

김웅 법무연수원 교수(부장검사)가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사법연수원 29기인 김 부장검사는 형사부 검사 이야기를 다룬 베스트셀러 '검사내전'의 저자로 이름을 날린 인물입니다. 이 책에서 "드라마 속 검사와 실제 검사 사이에는 '항공모함 서너 개는 교행할 수 있을 만한 간격'이 있다"며 명랑형 생활검사를 자처한 김 부장검사는 지난해 대검찰청 형사정책단장을 지내며 검경 수사권 조정 업무를 맡았습니다.

오늘 김 부장검사는 '사직 설명서'라는 제목으로 검찰 내부망에 올린 글에서 글자 그대로 날것의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하지만 사의를 표명한 이유도 분명히 밝혔습니다. 경찰개혁이 함께 가지 않는 검경 수사권 조정은 '거대한 사기극'이라는 겁니다. 김 부장검사는 "수사권조정의 선제조건이라고 스스로 주장했고, 원샷에 함께 처리하겠다고 그토록 선전했던 경찰개혁안은 어디로 사라졌느냐"고 물으며 "혹시 정보경찰의 권력 확대 야욕과 선거에서 경찰의 충성을 맞거래했기 때문은 아니냐"고 반문했습니다.

'검찰 개혁'만 되면 만사 오케이?...경찰 개혁 어디까지 왔나?

'검찰개혁'이 지난해 가장 큰 화두였던 만큼, '경찰 개혁'은 어딘가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경찰 개혁의 움직임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만들어진 경찰개혁위는 여러 차례 개혁안을 내놨습니다. 특히 정보경찰의 폐단에 대한 우려가 컸습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전국의 정보경찰이 이른바 '진박' 당선을 위해 정치인을 사찰해 세평을 수집하고, 맞춤형 공약까지 제언한 사실이 검찰 수사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이 일로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구속까지 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곧 1심 선고가 내려집니다.

이에 대해 경찰개혁위는 2018년 4월 "경찰청 정보국의 기능을 '치안정보의 수집·작성·배포'에서 '공공안녕의 위험성에 대한 예방 및 대응' 기능으로 재편하라"는 권고안을 내놨습니다. 말이 좀 어렵지만, 한마디로 말하면 정보경찰이 '치안정보'라는 이름으로 수집해온 온갖 정보활동을 중단하라는 겁니다.

기업이나 정당, 시민사회단체 등을 상시적으로 출입하며 동향을 상시적으로 파악해온 정보경찰의 업무를 사실상 '사찰 행위'로 규정한 건데요. 개혁위는 이를 모두 중단하고, 경찰의 정보활동에 대해서 구체적인 법령상 근거 규정을 마련하라고도 했습니다.

한 경찰 관계자는 당시 KBS에 "정보경찰 개혁방안이 나왔을 때 개혁위원들이 더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권고안에서는 상당 부분 후퇴했다"고 밝혔습니다. 경찰개혁위는 정보국 폐지까지 논의했는데, 최종 권고안에서는 이런 부분이 담기지 않았다는 겁니다. 한 경찰개혁위 관계자는 "청와대 의견인 걸로 안다"고 전했습니다. 국정원 국내 정보 파트가 폐지됐는데, 정보경찰마저 없어진다면 청와대의 눈과 귀가 없어져 국내 통치가 어려워진다는 겁니다.

지난해 3월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문제가 됐던 '치안정보'의 구체적 범위 등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는 경찰관 직무직행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하지만 이 법은 여전히 행안위에 계류돼 있습니다. 오히려 경찰 정보에 대한 청와대 의존도는 더욱 심해졌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최근 검찰 인사를 앞두고 정보경찰이 검사 간부 세평을 수집한 부분에 대해 자유한국당이 민갑룡 경찰청장 등을 고발하기도 했습니다.

자치경찰제를 도입하는 법안 개정 역시 차일피일 미뤄져 오긴 마찬가집니다. 그동안 자치경찰제는 비대해진 경찰 권력을 쪼개는 경찰개혁안의 핵심으로 지적돼 왔습니다. 청장을 중심으로 조직화 돼 있는 지금의 경찰을 자치경찰과 수사경찰로 쪼개고, 자치경찰은 지자체에 소속돼 교통이나 생활 안전 업무 등을 맡는다는 겁니다. 제주도에서 이미 실시되고 있는 자치경찰제를 전국으로 확산시킨다는 계획입니다. 대신 수사경찰은 신설되는 '국가수사본부', 즉 이른바 '한국형 FBI'에 소속돼 수사 업무만 담당하게 됩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 같은 내용으로 대표 발의한 경찰법 개정안은 지금 어디쯤 와있을까요. 역시 아직 사법개혁 특별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20대 국회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생각하면 시간이 없습니다.

"물론 엊그제부터 경찰개혁도 할 것이라고 설레발 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기죄 전문 검사인 제가 보기에 그것은 말짱 사기입니다. 재작년 6월부터 지금까지 뭐했습니까?

해질녘 다 되어 책가방 찾는 시늉을 한다면 그것은 처음부터 학교 갈 생각이 없었던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철저하게 국민을 속이는 오만함과 후안무치에는 경탄하는 바입니다."

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통과되면서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은 입법이 모두 마무리됐습니다. 하지만 경찰개혁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는다면 '반쪽짜리 개혁'이라는 비판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경찰이든 검찰이든, 한 수사기관의 비대한 권력을 견제할 방법이 없다면 그 피해는 모두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 부장검사의 '사직설명서'를 눈 여겨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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