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이국종 교수의 SOS “여기까지가 한계”

입력 2020.01.17 (13:49) 수정 2020.01.17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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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이 교수, 아주대 병원 작심 비판
“그따위 거짓말하나?” 격앙된 반응도
쌓였던 ‘10년 갈등’ 터져 나온 듯
중증외상 치료체계 발전 고민해야

"때려치워, 이 XX야. 꺼져. 인간 같지도 않은 XX 말이야. 나랑 한 판 붙을래 너?"
"아닙니다. 그런 거…."

4~5년 전 한 판 붙자며 심한 욕설을 퍼붓는 유희석 아주대 의료원장에게 아니라고 물러섰던 이국종 교수가 이번에 제대로 한 판 붙었다.

이 교수는 일부 언론과 연일 인터뷰를 하면서 외상센터 운영에 대한 아주대 병원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그에 앞서 지난해 12월에는 해군 훈련에 참여해 병원을 한 달가량 비웠다가 지난 15일 귀국했고, 아직 병원에 나오지 않고 있다.

이 교수와 병원의 갈등은 이미 지난해부터 외부에 알려졌다. 이 교수는 지난해 10월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최근 발언들과 비슷한 비판을 작심한 듯 토해냈다.


"정부 추가 지원금, 기존 인력 인건비로 사용"

이 교수가 국정감사에서 비판한 내용은 크게 2가지였다. 먼저 정부 추가 지원금 사용 부분이다.

이 교수는 정부가 아주대 병원에 간호사를 충원하라고 22억 원을 지원했는데, 병원이 이 액수만큼 간호사를 충원하지 않고 일부 금액을 빼서 기존에 채용하고 있던 간호사들의 월급을 줬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여전히 병동 간호사들이 증원이 안 되고 비행할 간호사들이 없어서 괴로움에 많이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지난해 9월 도입한 닥터헬기에 대해서도 병원을 비판했다. 외부에서 헬기 소음 민원을 제기한다는 핑계로 병원에서 닥터헬기 운영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교수는 "기관(병원) 내에서는 헬기 사업을 반납해야 한다는 의견부터 시작해서 조직적으로 공문 같은 것들을 계속 국토부에 보내서 헬기 사업을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에 대해서 질의도 이루어지고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이 교수는 아주대 병원이 혈세를 지원받고도 중증외상 환자를 살리는 중요한 일을 제대로 해내고 있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선 의료기관에서 핵심 가치를 이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든지 해 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는데 요즘에는 여기까지가 한계라고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 교수는 국감에서 내놓은 2가지 비판에 이어 최근에는 병상 협조와 관련한 비판도 추가했다. 외상센터 병동(100개)이 다 차서 병원에 있는 다른 병동을 요구했을 때 병원에서 병동이 있으면서도 잘 내주지 않았다는 주장이었다.


병원 측 "문제없다." 해명에 이 교수 재반박

아주대 병원 측은 간호사 인건비에 대해서는 병원이 이미 법적 기준보다 많은 인력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정부의 추가 지원금을 기존 인력 인건비로 써도 문제가 없고, 보건복지부에서도 지적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쉽게 풀면 예를 들어 외상센터 간호사의 법적 정원이 10명이었다고 하면 아주대 병원이 그동안에 20명을 쓰고 있었다는 설명이다. 10명 인건비는 정부 지원금, 나머지 10명 월급은 병원 돈으로 주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번에 20명을 더 뽑으라고 돈이 내려왔길래 10명만 더 뽑고, 나머지 돈은 병원 돈으로 월급을 주던 기존 간호사들 월급을 줬다는 얘기다.

병원 측은 병상 비협조는 지난해 일부 병상 리모델링 때문에 잠시 있었던 일이고, 닥터헬기는 민원이 많아서 관련 회의 때 딱 한 번 언급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해명을 접한 이 교수는 "그따위 거짓말을 하느냐"며 일부 언론을 통해 격앙된 반응을 나타냈다. 이 교수는 병원에서 병상을 협조해주지 않은 건 리모델링 때문이 아니라 오래된 일이라며, 간호사 채용도 잘못된 일을 복지부에서 면죄부를 준 것이라고 다시 반박했다.


'10년 갈등' 쌓이고 쌓여 폭발한 듯
이번 사태는 유희석 원장이 이 교수에게 욕설을 한 것에 큰 관심이 쏠려있지만, 본질은 외상센터 운영을 둘러싸고 10년 가까이 쌓여온 갈등이다.

이 교수가 사회의 주목을 받게 된 건 2011년 초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됐다가 구출되는 과정에서 총상을 입은 석해균 선장을 살려내면서부터다. 이 교수는 그전부터 아주대 외상 외과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석 선장 사건을 계기로 국민적 관심을 받게 됐다. 이때 유희석 의료원장은 아주대 병원장이었다.

이 교수는 이 관심을 자신의 명예를 드높이는 데 쓰지 않고, 우리나라의 열악한 중증외상환자 치료 시스템을 알리는 데 적극 활용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이국종법'이 만들어져 정부에서는 2012년 정부 예산을 지원할 권역외상센터를 선정했는데, 예상과 달리 아주대 병원은 탈락했고, 우여곡절 끝에 2013년 지정됐다.

그 이후에도 외상 환자 치료체계에 대한 이 교수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가 있었고, 2017년 북한 귀순 병사 치료 등을 계기로 정부 지원은 계속 늘었다.

지난 10년 동안 아주대 병원은 외상센터의 대명사가 됐고, 병원의 명성은 날로 높아졌다. 아주대 의대 교수회는 어제(16일) 유 의료원장의 욕설에 대한 규탄 성명서에서 "아주대학교 병원은 작년에는 뉴스위크지가 선정한 세계 100대 병원에 선정되었고 이번 달에는 국가고객만족도 업종 공동 4위에 올라섰다. 병원의 평판도가 상승하는 데에는 이국종 교수가 크게 기여했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사정들을 종합해보면 이 교수는 좀 더 많은 중증외상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걸 최우선으로 두고 외상센터를 이끌어 왔고, 이 과정에서 수익 등을 고려하는 병원을 대표하는 의료원장에게 욕설까지 들어가며 버티고 또 버텼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갈등을 삭이며 10년을 버티는 동안 정부 지원금은 늘어가고 병원 명성도 높아졌는데, 여전히 환자를 살리는 게 최우선이 아닌 병원의 모습에 한계를 느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교수의 'SOS'에 응답해야 할 때

병원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이 교수에 대해 일각에서는 병원에 외상센터만 있는 게 아니라 수십 개의 진료과목이 있고 거기에도 위급한 환자들이 많은데 외상센터 환자만 생각하느냐는 비판도 나온다. 이 교수 말이 맞지만, 너무 이상적인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허허벌판이던 우리나라 중증외상 치료체계가 이만큼 갖춰진 건 이 교수의 '불굴의 이상'이 해낸 일이라는 걸 부인할 수는 없다. 이 교수가 시쳇말로 멱살 잡고 끌고 왔는데도 중증외상 치료체계가 갈 길은 아직 멀다.

이 교수는 그동안 공사판, 공장, 고속도로 등 삶의 현장에서 중증 외상 환자들이 보낸 SOS를 자신의 육체와 정신, 인생을 갈아 넣어 해결했다.

이번 사태는 어쩌면 평생을 'SOS 해결사'로 살아온 이 교수가 우리 사회에 보내는 SOS다. 아주대 병원 비판의 너머에는 돈 없고 백 없는 사람들을 구하는 '사회 안전망'인 중증외상 치료체계를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 것인지 고민해달라는 요청이 담겨있다. 이 교수의 SOS에 답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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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이국종 교수의 SOS “여기까지가 한계”
    • 입력 2020-01-17 13:49:53
    • 수정2020-01-17 13:50:37
    취재후·사건후
이 교수, 아주대 병원 작심 비판<br />“그따위 거짓말하나?” 격앙된 반응도<br />쌓였던 ‘10년 갈등’ 터져 나온 듯<br />중증외상 치료체계 발전 고민해야
"때려치워, 이 XX야. 꺼져. 인간 같지도 않은 XX 말이야. 나랑 한 판 붙을래 너?"
"아닙니다. 그런 거…."

4~5년 전 한 판 붙자며 심한 욕설을 퍼붓는 유희석 아주대 의료원장에게 아니라고 물러섰던 이국종 교수가 이번에 제대로 한 판 붙었다.

이 교수는 일부 언론과 연일 인터뷰를 하면서 외상센터 운영에 대한 아주대 병원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그에 앞서 지난해 12월에는 해군 훈련에 참여해 병원을 한 달가량 비웠다가 지난 15일 귀국했고, 아직 병원에 나오지 않고 있다.

이 교수와 병원의 갈등은 이미 지난해부터 외부에 알려졌다. 이 교수는 지난해 10월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최근 발언들과 비슷한 비판을 작심한 듯 토해냈다.


"정부 추가 지원금, 기존 인력 인건비로 사용"

이 교수가 국정감사에서 비판한 내용은 크게 2가지였다. 먼저 정부 추가 지원금 사용 부분이다.

이 교수는 정부가 아주대 병원에 간호사를 충원하라고 22억 원을 지원했는데, 병원이 이 액수만큼 간호사를 충원하지 않고 일부 금액을 빼서 기존에 채용하고 있던 간호사들의 월급을 줬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여전히 병동 간호사들이 증원이 안 되고 비행할 간호사들이 없어서 괴로움에 많이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지난해 9월 도입한 닥터헬기에 대해서도 병원을 비판했다. 외부에서 헬기 소음 민원을 제기한다는 핑계로 병원에서 닥터헬기 운영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교수는 "기관(병원) 내에서는 헬기 사업을 반납해야 한다는 의견부터 시작해서 조직적으로 공문 같은 것들을 계속 국토부에 보내서 헬기 사업을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에 대해서 질의도 이루어지고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이 교수는 아주대 병원이 혈세를 지원받고도 중증외상 환자를 살리는 중요한 일을 제대로 해내고 있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선 의료기관에서 핵심 가치를 이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든지 해 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는데 요즘에는 여기까지가 한계라고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 교수는 국감에서 내놓은 2가지 비판에 이어 최근에는 병상 협조와 관련한 비판도 추가했다. 외상센터 병동(100개)이 다 차서 병원에 있는 다른 병동을 요구했을 때 병원에서 병동이 있으면서도 잘 내주지 않았다는 주장이었다.


병원 측 "문제없다." 해명에 이 교수 재반박

아주대 병원 측은 간호사 인건비에 대해서는 병원이 이미 법적 기준보다 많은 인력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정부의 추가 지원금을 기존 인력 인건비로 써도 문제가 없고, 보건복지부에서도 지적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쉽게 풀면 예를 들어 외상센터 간호사의 법적 정원이 10명이었다고 하면 아주대 병원이 그동안에 20명을 쓰고 있었다는 설명이다. 10명 인건비는 정부 지원금, 나머지 10명 월급은 병원 돈으로 주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번에 20명을 더 뽑으라고 돈이 내려왔길래 10명만 더 뽑고, 나머지 돈은 병원 돈으로 월급을 주던 기존 간호사들 월급을 줬다는 얘기다.

병원 측은 병상 비협조는 지난해 일부 병상 리모델링 때문에 잠시 있었던 일이고, 닥터헬기는 민원이 많아서 관련 회의 때 딱 한 번 언급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해명을 접한 이 교수는 "그따위 거짓말을 하느냐"며 일부 언론을 통해 격앙된 반응을 나타냈다. 이 교수는 병원에서 병상을 협조해주지 않은 건 리모델링 때문이 아니라 오래된 일이라며, 간호사 채용도 잘못된 일을 복지부에서 면죄부를 준 것이라고 다시 반박했다.


'10년 갈등' 쌓이고 쌓여 폭발한 듯
이번 사태는 유희석 원장이 이 교수에게 욕설을 한 것에 큰 관심이 쏠려있지만, 본질은 외상센터 운영을 둘러싸고 10년 가까이 쌓여온 갈등이다.

이 교수가 사회의 주목을 받게 된 건 2011년 초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됐다가 구출되는 과정에서 총상을 입은 석해균 선장을 살려내면서부터다. 이 교수는 그전부터 아주대 외상 외과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석 선장 사건을 계기로 국민적 관심을 받게 됐다. 이때 유희석 의료원장은 아주대 병원장이었다.

이 교수는 이 관심을 자신의 명예를 드높이는 데 쓰지 않고, 우리나라의 열악한 중증외상환자 치료 시스템을 알리는 데 적극 활용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이국종법'이 만들어져 정부에서는 2012년 정부 예산을 지원할 권역외상센터를 선정했는데, 예상과 달리 아주대 병원은 탈락했고, 우여곡절 끝에 2013년 지정됐다.

그 이후에도 외상 환자 치료체계에 대한 이 교수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가 있었고, 2017년 북한 귀순 병사 치료 등을 계기로 정부 지원은 계속 늘었다.

지난 10년 동안 아주대 병원은 외상센터의 대명사가 됐고, 병원의 명성은 날로 높아졌다. 아주대 의대 교수회는 어제(16일) 유 의료원장의 욕설에 대한 규탄 성명서에서 "아주대학교 병원은 작년에는 뉴스위크지가 선정한 세계 100대 병원에 선정되었고 이번 달에는 국가고객만족도 업종 공동 4위에 올라섰다. 병원의 평판도가 상승하는 데에는 이국종 교수가 크게 기여했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사정들을 종합해보면 이 교수는 좀 더 많은 중증외상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걸 최우선으로 두고 외상센터를 이끌어 왔고, 이 과정에서 수익 등을 고려하는 병원을 대표하는 의료원장에게 욕설까지 들어가며 버티고 또 버텼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갈등을 삭이며 10년을 버티는 동안 정부 지원금은 늘어가고 병원 명성도 높아졌는데, 여전히 환자를 살리는 게 최우선이 아닌 병원의 모습에 한계를 느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교수의 'SOS'에 응답해야 할 때

병원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이 교수에 대해 일각에서는 병원에 외상센터만 있는 게 아니라 수십 개의 진료과목이 있고 거기에도 위급한 환자들이 많은데 외상센터 환자만 생각하느냐는 비판도 나온다. 이 교수 말이 맞지만, 너무 이상적인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허허벌판이던 우리나라 중증외상 치료체계가 이만큼 갖춰진 건 이 교수의 '불굴의 이상'이 해낸 일이라는 걸 부인할 수는 없다. 이 교수가 시쳇말로 멱살 잡고 끌고 왔는데도 중증외상 치료체계가 갈 길은 아직 멀다.

이 교수는 그동안 공사판, 공장, 고속도로 등 삶의 현장에서 중증 외상 환자들이 보낸 SOS를 자신의 육체와 정신, 인생을 갈아 넣어 해결했다.

이번 사태는 어쩌면 평생을 'SOS 해결사'로 살아온 이 교수가 우리 사회에 보내는 SOS다. 아주대 병원 비판의 너머에는 돈 없고 백 없는 사람들을 구하는 '사회 안전망'인 중증외상 치료체계를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 것인지 고민해달라는 요청이 담겨있다. 이 교수의 SOS에 답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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