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와 두 개의 양심]⑲ ‘법관 인사불이익’ 작업한 판사…모든 판사는 동등하다?

입력 2020.01.20 (07:00) 수정 2020.01.20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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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대한민국 헌법 103조)

선서서에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라고 기재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 157조 2항)

양심에 따라 재판 업무를 수행하는 판사들. 최근 또 다른 이유로 양심을 갖춰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해야 할, ‘증인’으로서의 양심이 필요해졌습니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 최대 100명이 넘는 판사들이 증인으로 나오게 됐기 때문입니다. 법대에서 이젠 증언대로 내려와 양심을 발휘해야 하는 판사들. 이 이례적인 법정에서 나온 ‘양심적 증언’과, 대화의 요모조모를 기록해보려 합니다.

열아홉 번째 순서로, 2019년 11월 20일과 27일 두 차례에 걸쳐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노재호 판사(사법연수원 33기·前 법원행정처 인사제1·2심의관)의 증언을 살펴봅니다.

노 판사는 2015년 2월부터 2년 동안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실(인사실)에서 일했습니다. 인사권을 가진 대법원장을 보좌해, 인사에 참고할 만한 자료를 보고하고 판사 배치표를 작성하는 등 인사 실무를 수행했습니다. ‘사법농단’ 의혹과 함께 사람들의 뇌리에 꽂힌 “판사 블랙리스트”. 이 문제가 바로 법원행정처 인사실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노 판사는 이 인사실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양 전 대법원장 재판에서 증언했습니다.


#1. ‘물의야기’와 인사

지난번 김세윤 전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의 증언에서 나온 '물의야기 법관' 이야기,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법원장에게 경고를 받거나 징계가 청구된 판사, 언론에 오르내려 사법 신뢰에 해를 끼친 판사 등을 망라하는 개념인데요. 증인이 작성한 인사실 문건에서도 이 생소한 단어가 발견됩니다. 이른바 ‘물의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 문건. 특정 판사들에 대한 인사불이익 사항을 담고 있어 판사 블랙리스트라는 의심도 받았죠.

증인은 처음 행정처 발령 후 처음 이 문건을 봤을 때 ‘법원이 이런 것까지 하는구나’하고 놀라긴 했다고 검찰 조사에서 진술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양 전 대법원장 시절 전에도 생산돼 오던 통상적 문건이었다고 증언했습니다.

- 검사: (물의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 문건을) 작성하시게 된 경위가 어떻게 됩니까?
- 증인: […] 매년 정기인사에 앞서서 당해 연도에 징계나 경고 등을 받거나, 근무평정이나 '인사관리상황보고'에 문제 사항이 기재된 법관분들에 대해서 정기인사에 반영할지 말지, 반영하면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에 대해 정책 결정을 받아왔는데, 인사실에서 정례적으로 해왔던 그런 업무이기도 합니다.

※ 판사 근무평정: 우수-전체의 약 20%, 보통-약 70%, 노력 필요-약 10%, 미흡까지 총 4단계로 나눠진 수치화된 등급 평정과 서술형 평정으로 구성. 각급 법원장이 최종 작성해 대법원에 전달함.
※ 인사관리상황보고: 각급 법원장이 소속 법원의 소위 ‘문제 법관’들에 대해 근무평정표에는 없는 내용을 정리한 문건. 매년 초 대법원장 신년인사를 위해 법원장들이 대법원에 방문할 때 제출된다고 알려져 있음.

2015년 12월 열린 전국법원장회의2015년 12월 열린 전국법원장회의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인사조치를 검토한다는 걸까요?

증인에 따르면 법원에는 별도의 인사 지침·기준이 존재하지 않고, 인사실에서는 “기존의 인사 원칙과 관행을 공부해 그 전례에 따라 실무작업을 준비”합니다. 이에 따라 전보인사를 할 때는 10년차 미만의 판사의 경우 임관 성적이 높은 사람부터 희망지에 배치하고, 10년차 이상은 법관 사회의 형평을 고려하기 위해 만든 ‘형평 순위’가 높은 사람부터 희망지에 배치합니다. 형평 순위란 종전 근무지 이력을 고려한 일종의 마일리지 개념인데요. 지역 법원에 오래 근무하면 형평 순위가 높아져 다음 인사 때 서울권에 전보될 확률이 높고, 반대로 서울에 근무했다면 형평 순위가 낮아져 지역 발령이 날 가능성이 높아지는 식입니다.

하지만 이런 통상적 인사 원칙에서 물의야기 법관은 예외가 됩니다. 기존 형평 순위와 상관없이 대법원장의 별도 ‘정책 결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 검사: 여기(인사조치 검토 문건)서 말하는 인사조치라는 건, 인사원칙·관행에서 벗어나 인사적 불이익을 주는 걸 말하는 게 맞습니까?
- 증인: 네.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 검사: […] 큰 틀에서 인사 패턴을 따르더라도 비선호 법원으로 전보시키거나, 해당 법관이 희망하는 임지를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인사상 불이익에 관한 인사조치에 해당하는 게 맞습니까?
- 증인: 네. 인사조치로는.

검찰은 이처럼 물의야기 법관으로 분류된 판사들에 대해 인사불이익을 검토하도록 양 전 대법원장이 인사실 심의관들에게 위법·부당한 지시를 했다며,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2. 그때 그 판사들

그럼 인사불이익을 받은 판사들의 예를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증인이 작성한 “물의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2016년 정기인사 정책결정” 문건에 포함된 문유석 판사 관련 내용의 일부. 법정 스크린에 띄워진 것을 기자가 받아쳐 재구성했다증인이 작성한 “물의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2016년 정기인사 정책결정” 문건에 포함된 문유석 판사 관련 내용의 일부. 법정 스크린에 띄워진 것을 기자가 받아쳐 재구성했다

책 ‘개인주의자 선언’, ‘미스 함무라비’ 저자로 잘 알려진 문유석 판사. 증인이 작성해 대법원장에게 보고한 물의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 문건에, 문 판사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대해 “부적절한 글”을 언론에 기고해 법원장 구두 경고를 받았다는 것이 물의야기 내용이었습니다. 증인은 문 판사에 대한 인사조치 방안을 검토해, “가장 약한 형태의 조치”였다는 1순위 희망 임지 배제를 첫 번째 안으로 올렸습니다.

- 박병대 피고인 변호인(박 변): 인사실에서 문 판사를 물의야기 법관으로 선정한 이유는, 공명심이 있는 걸로 보여서 사회적으로도 주요 사건이 많은 행정법원에서 재판하는 게 부적절하다고 봤기 때문인가요?
- 증인: 그건 물의야기 검토 사유가 아니고요. 언론 기고문으로 법원장 구두 경고 받았다는 게 물의야기 사유였고, 인사조치 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판단에 있어서는 인사 희망과 대비해서 결국 결정하게 되는데, 그 당시 문 부장님의 평정을 보면 공명심 관련된 그런 지적들이 구체적으로 돼 있어서. 중요 재판이 많은 행정법원 배치는 그런 면에서 부적절하지 않겠느냐 그렇게 생각해서 1안을 그렇게 올린 걸로 기억합니다.

대법원장은 1안을 그대로 채택했고, 이에 따라 인사실은 2016년도 문 판사의 임지를 결정할 때 그의 1지망이었던 행정법원을 후보지에서 아예 배제했습니다.

이에 대해 증인은 “문 부장님이 경인권에서 서울로 진입할 당시 행정법원을 1지망으로 하셨던 분들은 굉장히 많았다” “어차피 문 부장님 기수에서는 (행정법원) 공석 자체가 없었다”는 등 다른 배경을 언급하면서, 행정법원 발령 배제를 “실제로 인사불이익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인과관계를 장담할 순 없다는 것입니다.


증인은 2015년 법원 내부망인 코트넷에 ‘전국 법관 설문조사를 통해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의 거취를 결정하도록 하자’는 취지의 글을 올린 송승용 판사에 대한 인사조치도 검토했습니다.

- 검사: […] 실제로 설문조사를 실시하면서 뭔가 집단 행위를 한 것도 아닌데, 단지 설문조사 후 거취를 결정하도록 하자는 의견을 표명한 것 그 자체를 물의야기로 본 겁니까?
- 증인: 보고서의 근무평정란에 보시면 중간에 “사회적 민감 이슈에 대한 의견을 여과 없이 표현함으로써 판사로서의 균형감, 정치적 중립성 등에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므로 좀더 신중한 언행이 요구됨”이라고 돼 있는데, 그걸 기초로 물의야기 내용에 포함된 것으로 기억합니다.

개별 판사의 근무평정을 “법원장의 전인격적 판단”에 따른 결과로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증인. 그렇게 부정적 근무평정을 받은 송승용 판사에 대해 행정처는 ‘2016년 정기인사 대상이 아닌데도 전보할 경우 박상옥 대법관 제청 과정에서의 논란이 재현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2017년도까지 인사조치를 보류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인사 때, 송 판사가 희망원에 1지망으로 적어 낸 안양지원을 임지에서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인사조치를 했습니다.

#3. 원하는 대로~?

송 판사가 겪은 인사조치는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2014년에도 코트넷에 “부적절한” 글을 게시했다는 이유로 물의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 대상에 올랐습니다.

- 검사: 배치안에 의하면 송승용 판사는 초임 지법부장 배치에 있어 원래 형평점수 총점 3점으로 (형평 순위가) A그룹이었지만 물의야기로 G그룹으로 강등됐고, 배치에 있어 본인이 희망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지방권 중 가장 격오지인 통영지원으로 배치됐는데 맞습니까?
- 증인: 문서상으로는 맞는데 (행정처 근무 전이라) 구체적 과정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2014년 인사1심의관이었던 이흥주 판사가 2심의관에게 남긴‘2015년 정기인사 후기 문건’에서 특이한 기록이 발견됩니다.

“송승용 부장의 통영 배치는 인사실에서는 반대했습니다만, 인사권자의 뜻이 강하여 이를 막지는 못했습니다. 본인은 물론 주변에서도 각종 글 게시에 대한 문책성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인사권자는 법원행정처 차장, 처장, 그리고 최종적으론 대법원장을 의미합니다.

- 검사: 당시 인사실에서 반대한 이유가 뭔지는 알고 있었습니까?
- 증인: 이제 견해의 차이일 수는 있겠습니다만, 송승용 부장님에 대한 물의야기 사유가 과연 판사들이 가장 선호하지 않는 지원인 통영지원까지 배치할 정도에 해당하는 것인가에 대해, 실무자로서는 다른 생각을 가졌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실무자가 반대하더라도 판사 인사는 결국 인사권자 마음대로고, 그렇게 해도 문제가 없는 것일까요? 인사권자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는 또 있습니다.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의 사퇴를 촉구하는 글을 코트넷 게시했다는 등의 이유로, 물의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 대상이 된 박노수 판사. 2015년 박 판사의 근무평정에는 “지원장 등 사법행정 보직에 보함에 신중할 필요 있음”이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2017년 정기인사를 앞두고 작성된 인사실 보고서에는 그 내용이 그대로 담겼습니다. “지원장 보임을 강력하게 희망하고 있으나 사법행정라인 보직은 부적절할 수 있다”. 이를 보고받은 대법원장은 박 판사를 지원장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합니다.

하지만 실제 2017년 정기인사에서 박 판사는 전주지방법원 남원지원장으로 발령이 납니다. 이미 결정된 줄 알았던 인사가 뒤집힌 것입니다.

- 검사: 박 모 판사가 물의야기 법관으로 분류돼 지원장 배제라는 인사조치안에 대해 대법원장 결재까지 받았음에도, 결국 남원지원장에 보임하게 된 경위는 어떻게 되나요?
- 증인: […] 저는 그 과정은 모르지만 어쨌든 중간 단계에서 그냥 희망대로 지원장을 승낙하는 것으로 됐다는 결정만 (김연학 인사총괄심의관에게) 전해 듣고 그에 따라서 지원장 배치 작업이 이뤄졌습니다.

증인은 결재받은 내용과 실제 배치가 180도 뒤바뀐 사례는 박 판사 건 외에는 본 적도, 경험한 적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부정적 근무평정을 가지고 지원장 발령을 낼 것인지 말 것인지는 “인사결정권자가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는지에 달린 것”이라고 말했는데요.

결국 인사권자가 통상적 인사 원칙과 다르게. ‘원하는 대로’ 판사를 인사 내는 행위가 어디까지 허용되는 것인지, 어디까지가 재량권인지가 이 재판의 주요 쟁점이 됩니다.


#4. 법관 ‘동등’의 법칙?

증인 생각은 어떨까요. 그는 일부 법관에 대한 인사불이익이 검토되거나 실행됐던 건 맞지만, 그걸 잘못됐다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 박 변: 증인은 물의야기 법관 관련 검토 문건이 위법하거나 부적절하다, 또는 잘못 이용되고 있다는 우려를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작성한다는 생각한 적이 있습니까?
- 증인: 그런 생각한 적 없습니다.

- 검사: 그럼 증인께서는 소위 말하는 ‘좌천성 인사’가 가능한 것이라는 겁니까?
- 증인: 결국은 그 인사가 인사권자 재량권을 벗어난 것이냐 아니냐의 관점이지, 이른바 좌천성 인사가 원천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는 것입니다. 개개의 인사에 있어서 인사권자가 고려한 사유가 정말 자의적이고 불합리한 사유에 의해 그런 인사조치에 이른 것이냐는 게 검토돼야지, 정말 거기에 합당한 사유가 있어서 그걸 반영해 불이익을 주는 것은 대법원장 인사권 재량의 범위에 포함될 수 있다는 게 저의 의견이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증인은 검찰의 의심도 사실과 다르다고 했습니다. 인사권자들이 특정 법관을 물의야기 법관에 포함시켜 검토하라고 인사실에 지시한 적이 없고, 실제 물의야기 법관 중 인사조치가 되는 경우는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적다는 것입니다. 특히 ‘비판세력 탄압’을 목적으로 인사조치를 검토한 적은 없었다고 적극 부인했습니다.

- 박 변: 이 사건 공소장에는 대법원장과 처장, 차장이 사법행정에 부담을 주는 판사들에 대한 변칙적 징계 및 문책 수단으로 활용할 목적으로 물의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 문건을 작성하라고 지시했다고 돼 있습니다. 이 문건을 그런 목적으로 작성하신 건가요?
- 증인: 그 평가에 동의하지 않고, 물의야기 법관을 선별하는 과정에서 단순히 대법원장이나 행정처 정책에 비판적이다, 반대한다, 대법원 판례에 배치되는 튀는 판결했다는 단순히 그러한 이유만으로 물의야기 법관 검토 대상에 포함시키지는 않았기 때문에, 말씀 주신 그런 평가에는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습니다.


검찰은 판사 ‘인사불이익’을 두고 대한민국 헌법을 언급합니다.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하며, 징계처분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정직ㆍ감봉 기타 불리한 처분을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106조를 볼 때, 인사원칙과 판사의 희망에 반(反)한 인사는 헌법상 “불리한 처분”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증인은 이 역시 동의할 수 없다면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 증인: 법관의 직(職)은 그 직이나 보직, 근무지역과 상관없이 모두 다 똑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전보인사에 있어 본인 희망과 달리 보직이나 임지가 주어졌다고 해서, 그것이 헌법상 불리한 처분이다 라고 할 수는 없는 거 아닌가, 저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증인이 지난해 정기인사에서 다른 동기들과 달리 지방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하지 못한 이유를 묻는 양 전 대법원장 변호인의 질문에도 이렇게 답했습니다.

- 증인: […] 작년에 제가 징계절차 회부돼서 불문, 무혐의 결정을 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 점을 인사에 있어서 대법원장께서 고려하신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요. […] 법관의 직은 보직, 근무 지역 등과 관계없이 다 똑같은 직위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저 개인적으로는 지금 근무하는 곳에서도 성실히, 열심히 근무하고 있습니다.

‘개인적’ 견해라면서도 ‘모든 판사는 동등하다’고 계속 강조한 증인.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심리를 보여주는 한 판사의 글이 여기 있습니다. 2015년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한 이범균 판사가 당시 자신의 인사권자인 수석부장판사에게 보낸 이메일입니다.

“존경하는 임성근 수석부장님께. 그동안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수석부장님께서 세심하게 배려해주시고 따듯하게 격려하며 이끌어주신 덕분에 제가 큰 영광을 받았습니다. 부족하지만 더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알고 내려가겠습니다. 술 줄이고 조금 날씬해진 모습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2015.2.10. 이범균)


인사실 판사 배치표에서, 판사들은 1등부터 꼴등까지 석차가 매겨져 있습니다. 학창시절 성적표에서나 보던‘백분위’성적도 옆에 달려 있습니다. 그렇게 치열한 경쟁을 뚫고 승진에 성공한 판사의 감사 인사, 그야말로 ‘감격’입니다. 이런 판사들의 마음을 이용해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는 인사권을 부적절하게 남용한 것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그 행위를 형사 처벌할 수 있을까요? 처벌할 수 없다면 아무 문제가 없게 되는 것일까요? 앞으로 나오게 될 인사실 판사들의 증언을 들으며 생각할 거리가 참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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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사와 두 개의 양심]⑲ ‘법관 인사불이익’ 작업한 판사…모든 판사는 동등하다?
    • 입력 2020-01-20 07:00:42
    • 수정2020-01-20 07:10:09
    취재K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대한민국 헌법 103조)

선서서에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라고 기재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 157조 2항)

양심에 따라 재판 업무를 수행하는 판사들. 최근 또 다른 이유로 양심을 갖춰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해야 할, ‘증인’으로서의 양심이 필요해졌습니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 최대 100명이 넘는 판사들이 증인으로 나오게 됐기 때문입니다. 법대에서 이젠 증언대로 내려와 양심을 발휘해야 하는 판사들. 이 이례적인 법정에서 나온 ‘양심적 증언’과, 대화의 요모조모를 기록해보려 합니다.

열아홉 번째 순서로, 2019년 11월 20일과 27일 두 차례에 걸쳐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노재호 판사(사법연수원 33기·前 법원행정처 인사제1·2심의관)의 증언을 살펴봅니다.

노 판사는 2015년 2월부터 2년 동안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실(인사실)에서 일했습니다. 인사권을 가진 대법원장을 보좌해, 인사에 참고할 만한 자료를 보고하고 판사 배치표를 작성하는 등 인사 실무를 수행했습니다. ‘사법농단’ 의혹과 함께 사람들의 뇌리에 꽂힌 “판사 블랙리스트”. 이 문제가 바로 법원행정처 인사실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노 판사는 이 인사실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양 전 대법원장 재판에서 증언했습니다.


#1. ‘물의야기’와 인사

지난번 김세윤 전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의 증언에서 나온 '물의야기 법관' 이야기,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법원장에게 경고를 받거나 징계가 청구된 판사, 언론에 오르내려 사법 신뢰에 해를 끼친 판사 등을 망라하는 개념인데요. 증인이 작성한 인사실 문건에서도 이 생소한 단어가 발견됩니다. 이른바 ‘물의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 문건. 특정 판사들에 대한 인사불이익 사항을 담고 있어 판사 블랙리스트라는 의심도 받았죠.

증인은 처음 행정처 발령 후 처음 이 문건을 봤을 때 ‘법원이 이런 것까지 하는구나’하고 놀라긴 했다고 검찰 조사에서 진술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양 전 대법원장 시절 전에도 생산돼 오던 통상적 문건이었다고 증언했습니다.

- 검사: (물의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 문건을) 작성하시게 된 경위가 어떻게 됩니까?
- 증인: […] 매년 정기인사에 앞서서 당해 연도에 징계나 경고 등을 받거나, 근무평정이나 '인사관리상황보고'에 문제 사항이 기재된 법관분들에 대해서 정기인사에 반영할지 말지, 반영하면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에 대해 정책 결정을 받아왔는데, 인사실에서 정례적으로 해왔던 그런 업무이기도 합니다.

※ 판사 근무평정: 우수-전체의 약 20%, 보통-약 70%, 노력 필요-약 10%, 미흡까지 총 4단계로 나눠진 수치화된 등급 평정과 서술형 평정으로 구성. 각급 법원장이 최종 작성해 대법원에 전달함.
※ 인사관리상황보고: 각급 법원장이 소속 법원의 소위 ‘문제 법관’들에 대해 근무평정표에는 없는 내용을 정리한 문건. 매년 초 대법원장 신년인사를 위해 법원장들이 대법원에 방문할 때 제출된다고 알려져 있음.

2015년 12월 열린 전국법원장회의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인사조치를 검토한다는 걸까요?

증인에 따르면 법원에는 별도의 인사 지침·기준이 존재하지 않고, 인사실에서는 “기존의 인사 원칙과 관행을 공부해 그 전례에 따라 실무작업을 준비”합니다. 이에 따라 전보인사를 할 때는 10년차 미만의 판사의 경우 임관 성적이 높은 사람부터 희망지에 배치하고, 10년차 이상은 법관 사회의 형평을 고려하기 위해 만든 ‘형평 순위’가 높은 사람부터 희망지에 배치합니다. 형평 순위란 종전 근무지 이력을 고려한 일종의 마일리지 개념인데요. 지역 법원에 오래 근무하면 형평 순위가 높아져 다음 인사 때 서울권에 전보될 확률이 높고, 반대로 서울에 근무했다면 형평 순위가 낮아져 지역 발령이 날 가능성이 높아지는 식입니다.

하지만 이런 통상적 인사 원칙에서 물의야기 법관은 예외가 됩니다. 기존 형평 순위와 상관없이 대법원장의 별도 ‘정책 결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 검사: 여기(인사조치 검토 문건)서 말하는 인사조치라는 건, 인사원칙·관행에서 벗어나 인사적 불이익을 주는 걸 말하는 게 맞습니까?
- 증인: 네.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 검사: […] 큰 틀에서 인사 패턴을 따르더라도 비선호 법원으로 전보시키거나, 해당 법관이 희망하는 임지를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인사상 불이익에 관한 인사조치에 해당하는 게 맞습니까?
- 증인: 네. 인사조치로는.

검찰은 이처럼 물의야기 법관으로 분류된 판사들에 대해 인사불이익을 검토하도록 양 전 대법원장이 인사실 심의관들에게 위법·부당한 지시를 했다며,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2. 그때 그 판사들

그럼 인사불이익을 받은 판사들의 예를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증인이 작성한 “물의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2016년 정기인사 정책결정” 문건에 포함된 문유석 판사 관련 내용의 일부. 법정 스크린에 띄워진 것을 기자가 받아쳐 재구성했다
책 ‘개인주의자 선언’, ‘미스 함무라비’ 저자로 잘 알려진 문유석 판사. 증인이 작성해 대법원장에게 보고한 물의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 문건에, 문 판사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대해 “부적절한 글”을 언론에 기고해 법원장 구두 경고를 받았다는 것이 물의야기 내용이었습니다. 증인은 문 판사에 대한 인사조치 방안을 검토해, “가장 약한 형태의 조치”였다는 1순위 희망 임지 배제를 첫 번째 안으로 올렸습니다.

- 박병대 피고인 변호인(박 변): 인사실에서 문 판사를 물의야기 법관으로 선정한 이유는, 공명심이 있는 걸로 보여서 사회적으로도 주요 사건이 많은 행정법원에서 재판하는 게 부적절하다고 봤기 때문인가요?
- 증인: 그건 물의야기 검토 사유가 아니고요. 언론 기고문으로 법원장 구두 경고 받았다는 게 물의야기 사유였고, 인사조치 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판단에 있어서는 인사 희망과 대비해서 결국 결정하게 되는데, 그 당시 문 부장님의 평정을 보면 공명심 관련된 그런 지적들이 구체적으로 돼 있어서. 중요 재판이 많은 행정법원 배치는 그런 면에서 부적절하지 않겠느냐 그렇게 생각해서 1안을 그렇게 올린 걸로 기억합니다.

대법원장은 1안을 그대로 채택했고, 이에 따라 인사실은 2016년도 문 판사의 임지를 결정할 때 그의 1지망이었던 행정법원을 후보지에서 아예 배제했습니다.

이에 대해 증인은 “문 부장님이 경인권에서 서울로 진입할 당시 행정법원을 1지망으로 하셨던 분들은 굉장히 많았다” “어차피 문 부장님 기수에서는 (행정법원) 공석 자체가 없었다”는 등 다른 배경을 언급하면서, 행정법원 발령 배제를 “실제로 인사불이익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인과관계를 장담할 순 없다는 것입니다.


증인은 2015년 법원 내부망인 코트넷에 ‘전국 법관 설문조사를 통해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의 거취를 결정하도록 하자’는 취지의 글을 올린 송승용 판사에 대한 인사조치도 검토했습니다.

- 검사: […] 실제로 설문조사를 실시하면서 뭔가 집단 행위를 한 것도 아닌데, 단지 설문조사 후 거취를 결정하도록 하자는 의견을 표명한 것 그 자체를 물의야기로 본 겁니까?
- 증인: 보고서의 근무평정란에 보시면 중간에 “사회적 민감 이슈에 대한 의견을 여과 없이 표현함으로써 판사로서의 균형감, 정치적 중립성 등에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므로 좀더 신중한 언행이 요구됨”이라고 돼 있는데, 그걸 기초로 물의야기 내용에 포함된 것으로 기억합니다.

개별 판사의 근무평정을 “법원장의 전인격적 판단”에 따른 결과로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증인. 그렇게 부정적 근무평정을 받은 송승용 판사에 대해 행정처는 ‘2016년 정기인사 대상이 아닌데도 전보할 경우 박상옥 대법관 제청 과정에서의 논란이 재현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2017년도까지 인사조치를 보류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인사 때, 송 판사가 희망원에 1지망으로 적어 낸 안양지원을 임지에서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인사조치를 했습니다.

#3. 원하는 대로~?

송 판사가 겪은 인사조치는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2014년에도 코트넷에 “부적절한” 글을 게시했다는 이유로 물의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 대상에 올랐습니다.

- 검사: 배치안에 의하면 송승용 판사는 초임 지법부장 배치에 있어 원래 형평점수 총점 3점으로 (형평 순위가) A그룹이었지만 물의야기로 G그룹으로 강등됐고, 배치에 있어 본인이 희망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지방권 중 가장 격오지인 통영지원으로 배치됐는데 맞습니까?
- 증인: 문서상으로는 맞는데 (행정처 근무 전이라) 구체적 과정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2014년 인사1심의관이었던 이흥주 판사가 2심의관에게 남긴‘2015년 정기인사 후기 문건’에서 특이한 기록이 발견됩니다.

“송승용 부장의 통영 배치는 인사실에서는 반대했습니다만, 인사권자의 뜻이 강하여 이를 막지는 못했습니다. 본인은 물론 주변에서도 각종 글 게시에 대한 문책성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인사권자는 법원행정처 차장, 처장, 그리고 최종적으론 대법원장을 의미합니다.

- 검사: 당시 인사실에서 반대한 이유가 뭔지는 알고 있었습니까?
- 증인: 이제 견해의 차이일 수는 있겠습니다만, 송승용 부장님에 대한 물의야기 사유가 과연 판사들이 가장 선호하지 않는 지원인 통영지원까지 배치할 정도에 해당하는 것인가에 대해, 실무자로서는 다른 생각을 가졌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실무자가 반대하더라도 판사 인사는 결국 인사권자 마음대로고, 그렇게 해도 문제가 없는 것일까요? 인사권자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는 또 있습니다.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의 사퇴를 촉구하는 글을 코트넷 게시했다는 등의 이유로, 물의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 대상이 된 박노수 판사. 2015년 박 판사의 근무평정에는 “지원장 등 사법행정 보직에 보함에 신중할 필요 있음”이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2017년 정기인사를 앞두고 작성된 인사실 보고서에는 그 내용이 그대로 담겼습니다. “지원장 보임을 강력하게 희망하고 있으나 사법행정라인 보직은 부적절할 수 있다”. 이를 보고받은 대법원장은 박 판사를 지원장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합니다.

하지만 실제 2017년 정기인사에서 박 판사는 전주지방법원 남원지원장으로 발령이 납니다. 이미 결정된 줄 알았던 인사가 뒤집힌 것입니다.

- 검사: 박 모 판사가 물의야기 법관으로 분류돼 지원장 배제라는 인사조치안에 대해 대법원장 결재까지 받았음에도, 결국 남원지원장에 보임하게 된 경위는 어떻게 되나요?
- 증인: […] 저는 그 과정은 모르지만 어쨌든 중간 단계에서 그냥 희망대로 지원장을 승낙하는 것으로 됐다는 결정만 (김연학 인사총괄심의관에게) 전해 듣고 그에 따라서 지원장 배치 작업이 이뤄졌습니다.

증인은 결재받은 내용과 실제 배치가 180도 뒤바뀐 사례는 박 판사 건 외에는 본 적도, 경험한 적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부정적 근무평정을 가지고 지원장 발령을 낼 것인지 말 것인지는 “인사결정권자가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는지에 달린 것”이라고 말했는데요.

결국 인사권자가 통상적 인사 원칙과 다르게. ‘원하는 대로’ 판사를 인사 내는 행위가 어디까지 허용되는 것인지, 어디까지가 재량권인지가 이 재판의 주요 쟁점이 됩니다.


#4. 법관 ‘동등’의 법칙?

증인 생각은 어떨까요. 그는 일부 법관에 대한 인사불이익이 검토되거나 실행됐던 건 맞지만, 그걸 잘못됐다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 박 변: 증인은 물의야기 법관 관련 검토 문건이 위법하거나 부적절하다, 또는 잘못 이용되고 있다는 우려를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작성한다는 생각한 적이 있습니까?
- 증인: 그런 생각한 적 없습니다.

- 검사: 그럼 증인께서는 소위 말하는 ‘좌천성 인사’가 가능한 것이라는 겁니까?
- 증인: 결국은 그 인사가 인사권자 재량권을 벗어난 것이냐 아니냐의 관점이지, 이른바 좌천성 인사가 원천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는 것입니다. 개개의 인사에 있어서 인사권자가 고려한 사유가 정말 자의적이고 불합리한 사유에 의해 그런 인사조치에 이른 것이냐는 게 검토돼야지, 정말 거기에 합당한 사유가 있어서 그걸 반영해 불이익을 주는 것은 대법원장 인사권 재량의 범위에 포함될 수 있다는 게 저의 의견이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증인은 검찰의 의심도 사실과 다르다고 했습니다. 인사권자들이 특정 법관을 물의야기 법관에 포함시켜 검토하라고 인사실에 지시한 적이 없고, 실제 물의야기 법관 중 인사조치가 되는 경우는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적다는 것입니다. 특히 ‘비판세력 탄압’을 목적으로 인사조치를 검토한 적은 없었다고 적극 부인했습니다.

- 박 변: 이 사건 공소장에는 대법원장과 처장, 차장이 사법행정에 부담을 주는 판사들에 대한 변칙적 징계 및 문책 수단으로 활용할 목적으로 물의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 문건을 작성하라고 지시했다고 돼 있습니다. 이 문건을 그런 목적으로 작성하신 건가요?
- 증인: 그 평가에 동의하지 않고, 물의야기 법관을 선별하는 과정에서 단순히 대법원장이나 행정처 정책에 비판적이다, 반대한다, 대법원 판례에 배치되는 튀는 판결했다는 단순히 그러한 이유만으로 물의야기 법관 검토 대상에 포함시키지는 않았기 때문에, 말씀 주신 그런 평가에는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습니다.


검찰은 판사 ‘인사불이익’을 두고 대한민국 헌법을 언급합니다.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하며, 징계처분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정직ㆍ감봉 기타 불리한 처분을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106조를 볼 때, 인사원칙과 판사의 희망에 반(反)한 인사는 헌법상 “불리한 처분”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증인은 이 역시 동의할 수 없다면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 증인: 법관의 직(職)은 그 직이나 보직, 근무지역과 상관없이 모두 다 똑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전보인사에 있어 본인 희망과 달리 보직이나 임지가 주어졌다고 해서, 그것이 헌법상 불리한 처분이다 라고 할 수는 없는 거 아닌가, 저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증인이 지난해 정기인사에서 다른 동기들과 달리 지방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하지 못한 이유를 묻는 양 전 대법원장 변호인의 질문에도 이렇게 답했습니다.

- 증인: […] 작년에 제가 징계절차 회부돼서 불문, 무혐의 결정을 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 점을 인사에 있어서 대법원장께서 고려하신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요. […] 법관의 직은 보직, 근무 지역 등과 관계없이 다 똑같은 직위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저 개인적으로는 지금 근무하는 곳에서도 성실히, 열심히 근무하고 있습니다.

‘개인적’ 견해라면서도 ‘모든 판사는 동등하다’고 계속 강조한 증인.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심리를 보여주는 한 판사의 글이 여기 있습니다. 2015년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한 이범균 판사가 당시 자신의 인사권자인 수석부장판사에게 보낸 이메일입니다.

“존경하는 임성근 수석부장님께. 그동안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수석부장님께서 세심하게 배려해주시고 따듯하게 격려하며 이끌어주신 덕분에 제가 큰 영광을 받았습니다. 부족하지만 더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알고 내려가겠습니다. 술 줄이고 조금 날씬해진 모습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2015.2.10. 이범균)


인사실 판사 배치표에서, 판사들은 1등부터 꼴등까지 석차가 매겨져 있습니다. 학창시절 성적표에서나 보던‘백분위’성적도 옆에 달려 있습니다. 그렇게 치열한 경쟁을 뚫고 승진에 성공한 판사의 감사 인사, 그야말로 ‘감격’입니다. 이런 판사들의 마음을 이용해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는 인사권을 부적절하게 남용한 것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그 행위를 형사 처벌할 수 있을까요? 처벌할 수 없다면 아무 문제가 없게 되는 것일까요? 앞으로 나오게 될 인사실 판사들의 증언을 들으며 생각할 거리가 참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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