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안전한 대한민국] 지하철 실내, 불타는 광고가 있다고?

입력 2020.01.23 (16:03) 수정 2020.01.23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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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실내가 광고로 뒤덮였다...비싸지만 효과 만점 '래핑 광고'

최근 지하철을 타면 종종 만날 수 있는 광고입니다.

지하철 실내 전체가 사진이나 광고 문구 등으로 통째로 도배된 건데, 전체를 감싸듯 광고한다고 해서 '래핑 광고'라고 부릅니다.

광고 가격은 지하철 2호선의 경우 한 량당 천여만 원 정도로 일반 광고의 2~3배 수준.

하지만 지하철에 타는 순간, 눈에 확 띈다는 장점 때문에 광고효과가 높다고 알려지면서 자주 쓰이고 있습니다.

특히 '아이돌' 가수나 신작 영화 홍보 등에 아주 인기라고 합니다. 어떤 연예 기획사의 경우 무려 지하철 5량에 통째로 소속 연예인 래핑 광고를 하기도 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김민기 의원실의 도움을 받아 서울교통공사로부터 최근 2년여간 래핑 광고가 얼마나 쓰였는지 확인해봤습니다.

17년 9월부터 최근까지 지하철 1~8호선 전체에 설치된 래핑 광고는 모두 68건, 금액으로는 17억여 원정도였습니다. 광고 수익은 서울교통공사와 광고대행사가 5대 5로 나눠 가져갑니다.

불타는 지하철 래핑 광고? 대구 참사 잊었나?

그런데 지하철 전체를 감싸고 있는 이 래핑 광고가 정작 화재에 취약하다면 어떻게 될까요?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지하철 실내는 불에 타지 않는 방염제품으로 사용하게 돼 있습니다. 지하철 의자도 딱딱한 금속 소재로 모두 바뀌었을 정돕니다.

래핑 광고도 당연히 규정상 방염제품을 쓰게 돼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래핑 광고가 설치된 지하철을 찾아 확인해봤습니다.

일단 방염제품에 붙인다는 스티커나 방염 표시는 광고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비전문가가 육안으로만 판단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정확한 판단을 위해 전문 기관에 실험을 의뢰하기로 했습니다.


지하철에 실제 붙어 있는 래핑 광고에서 표본을 구해서 한국소방산업기술원에 방염 성능 인증 방식 그대로 실험을 의뢰했습니다.

실제 상황을 가정해 불에 가장 잘 타는 45도 각도로 버너를 켜서 표본에 불을 붙였습니다.

방염 성능 기준에 맞추려면 불이 붙은 뒤 잔염 시간, 즉 불이 꺼지는 데 걸리는 시간이 3초를 넘기면 안 됩니다. 하지만 실험 결과 3초를 넘어 무려 26초나 타들어 갔습니다. 같은 실험을 3번 반복했는데 모두 비슷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다만, 실험의 한계는 있습니다. 방염 성능 인증서를 공식적으로 받기 위해서는 실험 표본이 A4 종이 정도 크기여야 하지만 취재진이 의뢰한 표본은 그보다는 작았습니다. 또 실제 지하철에 붙어 있는 표본이기 때문에 앞뒷면이 이물질로 오염됐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술원 측은 그런 사실을 고려해도 방염성능이 의심된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불붙여도 저절로 꺼지는 방염제품...그렇다면 비 방염제품은?

방염제품과 비 방염제품은 성능에서 큰 차이를 보입니다.

방염제품은 불을 붙여도 3초 이내에 스스로 불이 꺼지지만, 비 방염제품은 불이 붙자마자 맹렬히 타들어 갑니다.

더 큰 차이는 유독가스입니다.

방염제품은 불이 꺼지면서 연기도 사라졌지만, 비 방염제품에서는 검은 연기와 검댕이 엄청나게 쏟아졌습니다.

만약 실제 지하철 화재 상황이라면 실내 승객들이 큰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기는 겁니다.

그렇다면 성능 차이가 이렇게 큰 데 왜 비 방염 제품을 사용할까요? 광고에 책임을 진 광고대행사를 찾아가서 물어봤습니다.

광고대행사 측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광고할 때마다 실제 작업을 하는 업체로부터 방염성능 성적서와 방염제품 납품 확인서를 받고, 현장 작업할 때 감독도 꾸준히 나간다고 반박했습니다.

그러나 광고 현장 관계자들의 말은 달랐습니다.

"방염과 비 방염 가격 차이 최대 3배...수익 높이려 비 방염 사용"

가격 차이와 재고 관리 등의 이유로 비 방염제품을 사용하는 때도 있다고 했습니다.

방염제품과 비 방염제품 간 가격 차이는 최대 3배 정도라고 합니다. 비 방염제품을 쓰면 업체 입장에서는 남는 게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다 값비싼 방염 제품을 늘 재고로 가지고 있지 않은데 갑자기 광고 설치 요구가 들어오면 우선 가지고 있는 비 방염제품을 사용하게 된다는 겁니다.


매번 확인한다는 방염성적서도 맹점이 있었습니다. 성적서를 발급받는데 많게는 수십만 원이 들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광고물을 설치할 때마다 방염 성적서를 발급받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1년에 한두 번 발급받은 뒤 적당히 복사해서 사용한다고 털어놨습니다.

현장 감독 역시 꼼꼼히 진행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서울교통공사와 광고대행사에서 감독을 나오긴 하는데, 서류 확인이나 실제 방염제품 사용 여부를 일일이 확인하지 않는 겁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개선책 약속했지만 공염불

지하철 광고가 화재에 취약하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2017년 정부 합동 안전점검에서도 지하철 내부 래핑 광고가 화재에 취약하다는 점이 적발됐습니다. 당시 국민안전처는 대책을 내놓겠다고 약속했지만, 개선되지 않아 공염불에 그친 겁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지난해에만 서울교통공사에 관련 민원이 두 차례나 접수된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그런데도 서울교통공사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만 밝혔을 뿐 아무런 개선책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서울교통공사 "불시 점검...문제 확인 시 계약 해지 등 강력 대응"

서울교통공사는 실험 결과를 듣고 나서 지하철 안전을 위해 노력했지만, 미처 놓친 부분이 있는 것 같다며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불시에 점검해서 비 방염제품 사용 확인이 되면 계약 해지 등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취재가 끝날 무렵, 서울교통공사와 광고대행사가 지하철 내 광고 업체들에 모든 광고물을 다 방염으로 하라는 강력한 지시를 내렸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지시, 2017년 정부 합동 점검 이후에도 당연히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엔 문제가 여전했습니다. 이런 도돌이표 현상 이번에는 바뀔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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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안전한 대한민국] 지하철 실내, 불타는 광고가 있다고?
    • 입력 2020-01-23 16:03:35
    • 수정2020-01-23 18:01:34
    취재K
지하철 실내가 광고로 뒤덮였다...비싸지만 효과 만점 '래핑 광고'

최근 지하철을 타면 종종 만날 수 있는 광고입니다.

지하철 실내 전체가 사진이나 광고 문구 등으로 통째로 도배된 건데, 전체를 감싸듯 광고한다고 해서 '래핑 광고'라고 부릅니다.

광고 가격은 지하철 2호선의 경우 한 량당 천여만 원 정도로 일반 광고의 2~3배 수준.

하지만 지하철에 타는 순간, 눈에 확 띈다는 장점 때문에 광고효과가 높다고 알려지면서 자주 쓰이고 있습니다.

특히 '아이돌' 가수나 신작 영화 홍보 등에 아주 인기라고 합니다. 어떤 연예 기획사의 경우 무려 지하철 5량에 통째로 소속 연예인 래핑 광고를 하기도 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김민기 의원실의 도움을 받아 서울교통공사로부터 최근 2년여간 래핑 광고가 얼마나 쓰였는지 확인해봤습니다.

17년 9월부터 최근까지 지하철 1~8호선 전체에 설치된 래핑 광고는 모두 68건, 금액으로는 17억여 원정도였습니다. 광고 수익은 서울교통공사와 광고대행사가 5대 5로 나눠 가져갑니다.

불타는 지하철 래핑 광고? 대구 참사 잊었나?

그런데 지하철 전체를 감싸고 있는 이 래핑 광고가 정작 화재에 취약하다면 어떻게 될까요?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지하철 실내는 불에 타지 않는 방염제품으로 사용하게 돼 있습니다. 지하철 의자도 딱딱한 금속 소재로 모두 바뀌었을 정돕니다.

래핑 광고도 당연히 규정상 방염제품을 쓰게 돼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래핑 광고가 설치된 지하철을 찾아 확인해봤습니다.

일단 방염제품에 붙인다는 스티커나 방염 표시는 광고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비전문가가 육안으로만 판단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정확한 판단을 위해 전문 기관에 실험을 의뢰하기로 했습니다.


지하철에 실제 붙어 있는 래핑 광고에서 표본을 구해서 한국소방산업기술원에 방염 성능 인증 방식 그대로 실험을 의뢰했습니다.

실제 상황을 가정해 불에 가장 잘 타는 45도 각도로 버너를 켜서 표본에 불을 붙였습니다.

방염 성능 기준에 맞추려면 불이 붙은 뒤 잔염 시간, 즉 불이 꺼지는 데 걸리는 시간이 3초를 넘기면 안 됩니다. 하지만 실험 결과 3초를 넘어 무려 26초나 타들어 갔습니다. 같은 실험을 3번 반복했는데 모두 비슷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다만, 실험의 한계는 있습니다. 방염 성능 인증서를 공식적으로 받기 위해서는 실험 표본이 A4 종이 정도 크기여야 하지만 취재진이 의뢰한 표본은 그보다는 작았습니다. 또 실제 지하철에 붙어 있는 표본이기 때문에 앞뒷면이 이물질로 오염됐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술원 측은 그런 사실을 고려해도 방염성능이 의심된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불붙여도 저절로 꺼지는 방염제품...그렇다면 비 방염제품은?

방염제품과 비 방염제품은 성능에서 큰 차이를 보입니다.

방염제품은 불을 붙여도 3초 이내에 스스로 불이 꺼지지만, 비 방염제품은 불이 붙자마자 맹렬히 타들어 갑니다.

더 큰 차이는 유독가스입니다.

방염제품은 불이 꺼지면서 연기도 사라졌지만, 비 방염제품에서는 검은 연기와 검댕이 엄청나게 쏟아졌습니다.

만약 실제 지하철 화재 상황이라면 실내 승객들이 큰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기는 겁니다.

그렇다면 성능 차이가 이렇게 큰 데 왜 비 방염 제품을 사용할까요? 광고에 책임을 진 광고대행사를 찾아가서 물어봤습니다.

광고대행사 측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광고할 때마다 실제 작업을 하는 업체로부터 방염성능 성적서와 방염제품 납품 확인서를 받고, 현장 작업할 때 감독도 꾸준히 나간다고 반박했습니다.

그러나 광고 현장 관계자들의 말은 달랐습니다.

"방염과 비 방염 가격 차이 최대 3배...수익 높이려 비 방염 사용"

가격 차이와 재고 관리 등의 이유로 비 방염제품을 사용하는 때도 있다고 했습니다.

방염제품과 비 방염제품 간 가격 차이는 최대 3배 정도라고 합니다. 비 방염제품을 쓰면 업체 입장에서는 남는 게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다 값비싼 방염 제품을 늘 재고로 가지고 있지 않은데 갑자기 광고 설치 요구가 들어오면 우선 가지고 있는 비 방염제품을 사용하게 된다는 겁니다.


매번 확인한다는 방염성적서도 맹점이 있었습니다. 성적서를 발급받는데 많게는 수십만 원이 들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광고물을 설치할 때마다 방염 성적서를 발급받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1년에 한두 번 발급받은 뒤 적당히 복사해서 사용한다고 털어놨습니다.

현장 감독 역시 꼼꼼히 진행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서울교통공사와 광고대행사에서 감독을 나오긴 하는데, 서류 확인이나 실제 방염제품 사용 여부를 일일이 확인하지 않는 겁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개선책 약속했지만 공염불

지하철 광고가 화재에 취약하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2017년 정부 합동 안전점검에서도 지하철 내부 래핑 광고가 화재에 취약하다는 점이 적발됐습니다. 당시 국민안전처는 대책을 내놓겠다고 약속했지만, 개선되지 않아 공염불에 그친 겁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지난해에만 서울교통공사에 관련 민원이 두 차례나 접수된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그런데도 서울교통공사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만 밝혔을 뿐 아무런 개선책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서울교통공사 "불시 점검...문제 확인 시 계약 해지 등 강력 대응"

서울교통공사는 실험 결과를 듣고 나서 지하철 안전을 위해 노력했지만, 미처 놓친 부분이 있는 것 같다며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불시에 점검해서 비 방염제품 사용 확인이 되면 계약 해지 등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취재가 끝날 무렵, 서울교통공사와 광고대행사가 지하철 내 광고 업체들에 모든 광고물을 다 방염으로 하라는 강력한 지시를 내렸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지시, 2017년 정부 합동 점검 이후에도 당연히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엔 문제가 여전했습니다. 이런 도돌이표 현상 이번에는 바뀔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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