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세금으로 왜 동물구조센터가 운영돼야 하느냐고 묻는다면(feat.애피소드 8화)

입력 2020.02.04 (07:00) 수정 2020.02.04 (11:32)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출처 :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출처 :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 실려온 황조롱이의 사진이다. 요즘 같은 겨울철에 더 자주 볼 수 있는 텃새인 황조롱이가 쥐를 잡기 위해(?) 놓아둔 끈끈이에 이른바 2차 피해를 당한 모습이다.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인간에 의해 다치고 병든 야생동물을 구조하고 연구하는 일을 수 년간 담당한 정병길 <도시에서 만난 야생동물 이야기-열두 동물로 살펴보는 도시 생태(철수와 영희)> 저자는 실제로 이렇게 끈끈이에 몸이 붙어 구조센터로 실려오는 경우가 적어도 전체 구조동물의 10% 정도는 됐다고 밝혔다.

지난주 [애피소드 8화] 경자년에는 ‘쥐도 다시 봐야쥐’ 촬영을 위해 만난 정 작가는 인터뷰 도중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구조센터에서 일할 때 이런 생각을 자주 했어요. 우리가 일부 세금을 받아서 동물들을 돌보고 구조하고 그래야 하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뭐라고 답을 할 수 있을까요? 생태계에 기여한다? 실제로 기여를 하기는 하겠죠, 다친 동물을 구조해 돌려보내면 그 아이가 번식을 하고 자연히 유전적 다양성이 많아지겠죠. 교육적 효과? 시민 교육을 한다는 측면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고 홍보를 한다는 측면도 물론 있을 수 있고요, 연구의 기능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저는 이런 것들이 다 일리는 있는데 좀 미미하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결국은 '인간다움'을 지키는 것 같아요. '측은지심'을 느끼잖아요. 다쳐서 퍼덕거리는 새를 보거나 다친 동물을 보거나 하면은요. 그렇지 않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커서도 등에 점무늬가 있는 사슴과 달리 위 사진에서처럼 새끼 때만 등에 점박이 무늬가 있는 고라니의 눈만 봐도 슬퍼질 수 있는 게 사람이기 때문에 정병길 작가는 어느 순간부터는 '절대로 동물은 눈을 쳐다보지 않는다'는 격언을 마음에 자주 새겨야만 했다고도 털어놓았다. 조금이라도 마음을 주게 되면 이별의 순간 너무나도 힘이 들기 때문이다.

그는 또 야생동물 구조활동을 하면서 동물들도 희로애락이 있고 사람과 마찬가지로 생로병사를 겪어야만 하는 존재들이라는 사실이 정말로 마음에 와 닿았다고 말했다.

특히 우리나라에 로드킬 사고가 많은데 "우리나라 면적 대비 도로의 총면적을 산술적으로 계산해보면 평균적으로 동물들이 100m를 갈 때마다 도로 하나를 만나게 된다"며 "동물들이 길을 건너는 게 아니고 길이 동물들의 땅을 가로지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라니의 경우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달리 숲보다는 습지를 더 좋아하고 몸을 숨길 때만 숲에 들어가는데, 습지의 경우는 개발의 여파로 남아 있는 곳이 거의 없는 실정이라고 안타까워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육지의 야생동물구조센터에 실려오는 동물의 절반 가량이 고라니인 거라는 설명과 함께…….


정 작가는 그러면서 꼭 한 가지를 당부했다. 대개 새끼 야생동물들이 어미 없이 발견되는 경우 곧장 구조를 요청하는데 그럴 때는 성급하게 '측은지심'을 발동하지 말고 주변에 어미가 있는지 숨어서 살펴보거나 피치 못하게 치료가 필요한 경우라면 치료를 마친 즉시 원래 자리로 되돌려놓아달라는 부탁이었다.

어미 없이 새끼만 발견되는 경우, 정말 어미를 잃어버렸다기보다는 사람 때문에 어미가 새끼 곁으로 다가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적어도 반나절 정도는 그 자리에 두고 지켜보라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측은지심'의 발로가 의도치 않은 '납치'로 이어지는 원치 않은 결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한다.

정병길 작가는 또 [애피소드] 녹화를 위해 쥐와 관련한 자료를 찾아보면서 2009년에 개봉했던 영화 <바스터즈:거친 녀석들>을 다시 떠올리게 됐다며 "영화에서 나치 독일이 유대인을 쥐에 비유했듯이 우리 삶에서도 소수자나 약자를 집단 혐오하는 비합리적인 풍토가 확산되고 있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동물들을 통해 시각의 전환을 시도해볼 수 있는 다음 책을 준비 중"이라는 정 작가는 현재 제주도에 산다.

야생으로 돌아가 살다 총에 맞아 죽은 말레이곰과 진도에서 태어났지만 규격에 맞지 않아 식용견으로 팔려 간 진돗개(?), 그리고 바다로 되돌아갔지만 무리에 받아들여지지 못해 결국 죽음을 맞이한 쇼장의 돌고래 등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한 동물들의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라고.

[애피소드] 경자년에는 ‘쥐도 다시 봐야쥐’(feat. 정병길 작가)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취재후] 세금으로 왜 동물구조센터가 운영돼야 하느냐고 묻는다면(feat.애피소드 8화)
    • 입력 2020-02-04 07:00:20
    • 수정2020-02-04 11:32:46
    취재후·사건후

출처 :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 실려온 황조롱이의 사진이다. 요즘 같은 겨울철에 더 자주 볼 수 있는 텃새인 황조롱이가 쥐를 잡기 위해(?) 놓아둔 끈끈이에 이른바 2차 피해를 당한 모습이다.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인간에 의해 다치고 병든 야생동물을 구조하고 연구하는 일을 수 년간 담당한 정병길 <도시에서 만난 야생동물 이야기-열두 동물로 살펴보는 도시 생태(철수와 영희)> 저자는 실제로 이렇게 끈끈이에 몸이 붙어 구조센터로 실려오는 경우가 적어도 전체 구조동물의 10% 정도는 됐다고 밝혔다.

지난주 [애피소드 8화] 경자년에는 ‘쥐도 다시 봐야쥐’ 촬영을 위해 만난 정 작가는 인터뷰 도중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구조센터에서 일할 때 이런 생각을 자주 했어요. 우리가 일부 세금을 받아서 동물들을 돌보고 구조하고 그래야 하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뭐라고 답을 할 수 있을까요? 생태계에 기여한다? 실제로 기여를 하기는 하겠죠, 다친 동물을 구조해 돌려보내면 그 아이가 번식을 하고 자연히 유전적 다양성이 많아지겠죠. 교육적 효과? 시민 교육을 한다는 측면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고 홍보를 한다는 측면도 물론 있을 수 있고요, 연구의 기능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저는 이런 것들이 다 일리는 있는데 좀 미미하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결국은 '인간다움'을 지키는 것 같아요. '측은지심'을 느끼잖아요. 다쳐서 퍼덕거리는 새를 보거나 다친 동물을 보거나 하면은요. 그렇지 않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커서도 등에 점무늬가 있는 사슴과 달리 위 사진에서처럼 새끼 때만 등에 점박이 무늬가 있는 고라니의 눈만 봐도 슬퍼질 수 있는 게 사람이기 때문에 정병길 작가는 어느 순간부터는 '절대로 동물은 눈을 쳐다보지 않는다'는 격언을 마음에 자주 새겨야만 했다고도 털어놓았다. 조금이라도 마음을 주게 되면 이별의 순간 너무나도 힘이 들기 때문이다.

그는 또 야생동물 구조활동을 하면서 동물들도 희로애락이 있고 사람과 마찬가지로 생로병사를 겪어야만 하는 존재들이라는 사실이 정말로 마음에 와 닿았다고 말했다.

특히 우리나라에 로드킬 사고가 많은데 "우리나라 면적 대비 도로의 총면적을 산술적으로 계산해보면 평균적으로 동물들이 100m를 갈 때마다 도로 하나를 만나게 된다"며 "동물들이 길을 건너는 게 아니고 길이 동물들의 땅을 가로지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라니의 경우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달리 숲보다는 습지를 더 좋아하고 몸을 숨길 때만 숲에 들어가는데, 습지의 경우는 개발의 여파로 남아 있는 곳이 거의 없는 실정이라고 안타까워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육지의 야생동물구조센터에 실려오는 동물의 절반 가량이 고라니인 거라는 설명과 함께…….


정 작가는 그러면서 꼭 한 가지를 당부했다. 대개 새끼 야생동물들이 어미 없이 발견되는 경우 곧장 구조를 요청하는데 그럴 때는 성급하게 '측은지심'을 발동하지 말고 주변에 어미가 있는지 숨어서 살펴보거나 피치 못하게 치료가 필요한 경우라면 치료를 마친 즉시 원래 자리로 되돌려놓아달라는 부탁이었다.

어미 없이 새끼만 발견되는 경우, 정말 어미를 잃어버렸다기보다는 사람 때문에 어미가 새끼 곁으로 다가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적어도 반나절 정도는 그 자리에 두고 지켜보라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측은지심'의 발로가 의도치 않은 '납치'로 이어지는 원치 않은 결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한다.

정병길 작가는 또 [애피소드] 녹화를 위해 쥐와 관련한 자료를 찾아보면서 2009년에 개봉했던 영화 <바스터즈:거친 녀석들>을 다시 떠올리게 됐다며 "영화에서 나치 독일이 유대인을 쥐에 비유했듯이 우리 삶에서도 소수자나 약자를 집단 혐오하는 비합리적인 풍토가 확산되고 있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동물들을 통해 시각의 전환을 시도해볼 수 있는 다음 책을 준비 중"이라는 정 작가는 현재 제주도에 산다.

야생으로 돌아가 살다 총에 맞아 죽은 말레이곰과 진도에서 태어났지만 규격에 맞지 않아 식용견으로 팔려 간 진돗개(?), 그리고 바다로 되돌아갔지만 무리에 받아들여지지 못해 결국 죽음을 맞이한 쇼장의 돌고래 등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한 동물들의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라고.

[애피소드] 경자년에는 ‘쥐도 다시 봐야쥐’(feat. 정병길 작가)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