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음압병동에서 택배도 받을 수 있나요?’

입력 2020.02.08 (09:02) 수정 2020.02.13 (14:17)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고프로를 폐기하고 나와야 한다고요?"

지난 4일, 신종 코로나 환자들을 돌보는 의료진을 취재하기 위해 서울의료원을 찾은 취재팀은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의료진의 몸에 소형 카메라 '고프로'를 부착해도 되는 지 물었는데요. '병실 안에 들어간 물건은 절대로 밖으로 가지고 나올 수 없으니, 촬영해도 카메라를 폐기해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감염 관리를 매우 엄격하게 하고 있다는 게 실감났습니다.

사실, 병동에 들어가는 것도 간단치 않았습니다. 취재팀 같은 외부인 뿐 아니라 의료진도 방문 목적과 이름, 연락처를 쓰고 체온을 잰 뒤에 입장할 수 있었는데요.

매일 '몇 번째 확진 환자는 어느 병원 음압병동에 머물고 있다'고 말은 하지만, 음압병동에 대해 실제로 아는 건 얼마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오늘은 보도에서 소개하지 못한 내용과 취재 뒷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연관 기사] '잠 못 자고 말 못해도, 마지막 한 사람까지'…음압병동 24시

■ "병실 안에 들어간 물건은 모두 폐기"…뭐 하고 지낼까?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들은 이처럼 전문병동 음압병실에 격리돼 따로 치료를 받습니다. 외부와 기압차를 둬서 바이러스가 외부로 나가지 못하도록 만든 병실입니다. 바이러스만 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건 아닙니다.

김서연 간호사가 환자들의 식사와 택배를 ‘패스 박스’에 넣고 있다.김서연 간호사가 환자들의 식사와 택배를 ‘패스 박스’에 넣고 있다.

설명한 대로, 병실에서 쓴 물건은 밖으로 가지고 나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 안으로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건 '쓰고 버려도 되는 것'들이지요.

가장 궁금한 건 '휴대전화도 버리고 나와야 할까?' 였습니다. 다행히, '오케이'입니다. 서울의료원 측은 "환자가 일정기간 격리 후 실시하는 검사에서 음성으로 나왔을 때에만 격리 해제하기 때문에, 퇴원할 때에는 바이러스가 살아있지 않아서 소독만 하고 들고 집으로 돌아간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환자들의 일과는 약을 먹고, 의료진과 면담하고, 가래 등을 채취해 검사 받고, 체온과 혈압을 재는 등 지극히 단순합니다. TV도 보고 휴대전화도 쓰지만 외부와 차단된 공간에서,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니 답답하겠지요.

의료진은 환자들의 감정적인 문제도 해결하려고 노력합니다. 김서연 간호사는 "지금 환자분들이 입원한 지 6~7일 됐는데 커뮤니케이션 할 사람이 의료진 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환자들이 우울감을 호소하면 정신의학과 의료진도 협진하고 있습니다.

서울의료원 읍압병동 구조서울의료원 읍압병동 구조

쓰고 버려도 된다면, 필요한 물건은 택배로 받을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전달할까요? 서울의료원 음압병동의 경우, 간호사실과 음압병실 사이에 '패스 박스(Pass Box)'라는 공간이 있습니다. 환자들의 식사나 개인적인 택배를 빠르게 안으로 전달하기 위해 마련한 건데요. 간호사실에서 물건을 넣으면, 의료진이 방호복을 입고 안쪽으로 들어가 문을 열고 물건을 전달해 줍니다. 양쪽을 동시에 열 수는 없습니다.

이 패스 박스를 이용하는 건 병실 출입과 환자와의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입니다. 전달해야 할 물건이 있을 때마다 방호복을 입고 들어가면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 뿐 아니라, 감염 위험성도 커지기 때문입니다.

■ '방호복' 입어봤더니…"답답하고 의사소통 불편"

의료진은 하루에 최소 2~3번 병실에 들어갑니다. 이때 바이러스를 외부로 옮기지 않도록, 또 스스로의 보호를 위해 방호복을 착용합니다. 이게 또 하나의 어려움인데요.

장갑은 두 겹이 기본, N95 마스크에 후드(모자)를 씁니다. 저도 입어봤는데요, 입는 데만 10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마스크까지는 괜찮았는데, 후드까지 쓰니 숨이 턱 막혔습니다. '이러고 일을 한다고?' 눈이 핑 돌았습니다.


마침 환자의 식사 준비를 위해 방호복으로 갈아입는 정혜진 간호사에게 '어떠냐'고 물어봤습니다.

"더워요, 엄청. 다른 환자의 병실에 갈 때마다 앞치마랑 장갑을 다시 교환해야 하는데 제가 땀이 많으니까 시간도 오래 걸리고요. 입고 벗는 데 평균 10~15분 정도 걸리는 것 같아요. 보통 이렇게 하고 1시간 좀 넘게 들어가 있습니다."

어려움은 또 있습니다. 마스크에 후드를 쓴다고 했죠? 보통 병실 안팎의 의료진은 인터폰으로 의사소통을 하는데, 이중으로 얼굴을 가려 놓으니 소리가 잘 안들리는 문제였습니다.

"아, 그래서 유리창에 글씨를 쓰는 거지요?"
"맞아요. 아무래도 잘 안 들리거든요. 더 빨리 하려다 보니까, 그냥 창에 쓰는 게 편하더라고요."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은 빠른 의사소통을 위해 창문에 글씨를 써서 하고픈 말을 전한다.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은 빠른 의사소통을 위해 창문에 글씨를 써서 하고픈 말을 전한다.

음압병동이 가동된 건 지난달 29일입니다. 일주일이 훌쩍 넘어가면서, 의료진도 나름 요령을 터득해 가고 있습니다.

■ 자원해 모였지만 '가족에겐 비밀'

안미영 감염내과 과장은 초기에는 48시간 깨어있고 2시간 자는 생활을 했습니다. "지금은 조금 더 잔다"곤 하지만, '하루 권장 수면시간' 8시간은 꿈도 못 꾸죠. 그럼에도 취재 내내 새로운 논문을 공부하던 안 과장은 저희 취재진의 어깨를 두드리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습니다.

"자원해주신 의사, 간호사, 환경 미화원분들께 꼭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염내과와 호흡기내과 의사, 간호사와 환경 미화원까지... 모두 30여 명이 병원이 근무를 '배정'하기 전 '자원'해 모였습니다.

음압병동에 모인 의료진 모두, 근무를 자원한 사람들이다.음압병동에 모인 의료진 모두, 근무를 자원한 사람들이다.

안 과장은 "전염병이라는 건 사실 인류 역사상 계속 있어 왔고, 그럴 때마다 누군가는 일선에서 뛰어줘야 안심을 하게 된다"며 "누군가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본인 걱정보단 가족 걱정에, 근무를 제대로 알리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원래 신경계 중환자실에서 일했다는 남희은 간호사는 "부모님은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다가, 확진 환자들이 많이 나타나면서 걱정을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네가 환자들을 위해 그런 일을 하고 있구나' 지지해주고 계세요" 남 간호사가 웃으면서 덧붙인 말입니다.

의료진은 오늘도 꿋꿋하게 진료 중입니다. 잠도 못 자고, 어려움도 속 시원히 얘기 못 하는데 보람이 무엇일까요?

"좀 더 많이 잘 수 있으면 보람이라는 뜻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라며 운을 뗀 안 과장, 이렇게 말을 맺었습니다. "마지막 환자 분까지 완쾌해서 퇴원하시는 것, 가장 행복한 일 아닐까 싶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취재후] ‘음압병동에서 택배도 받을 수 있나요?’
    • 입력 2020-02-08 09:02:23
    • 수정2020-02-13 14:17:38
    취재후·사건후
"고프로를 폐기하고 나와야 한다고요?"

지난 4일, 신종 코로나 환자들을 돌보는 의료진을 취재하기 위해 서울의료원을 찾은 취재팀은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의료진의 몸에 소형 카메라 '고프로'를 부착해도 되는 지 물었는데요. '병실 안에 들어간 물건은 절대로 밖으로 가지고 나올 수 없으니, 촬영해도 카메라를 폐기해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감염 관리를 매우 엄격하게 하고 있다는 게 실감났습니다.

사실, 병동에 들어가는 것도 간단치 않았습니다. 취재팀 같은 외부인 뿐 아니라 의료진도 방문 목적과 이름, 연락처를 쓰고 체온을 잰 뒤에 입장할 수 있었는데요.

매일 '몇 번째 확진 환자는 어느 병원 음압병동에 머물고 있다'고 말은 하지만, 음압병동에 대해 실제로 아는 건 얼마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오늘은 보도에서 소개하지 못한 내용과 취재 뒷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연관 기사] '잠 못 자고 말 못해도, 마지막 한 사람까지'…음압병동 24시

■ "병실 안에 들어간 물건은 모두 폐기"…뭐 하고 지낼까?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들은 이처럼 전문병동 음압병실에 격리돼 따로 치료를 받습니다. 외부와 기압차를 둬서 바이러스가 외부로 나가지 못하도록 만든 병실입니다. 바이러스만 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건 아닙니다.

김서연 간호사가 환자들의 식사와 택배를 ‘패스 박스’에 넣고 있다.
설명한 대로, 병실에서 쓴 물건은 밖으로 가지고 나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 안으로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건 '쓰고 버려도 되는 것'들이지요.

가장 궁금한 건 '휴대전화도 버리고 나와야 할까?' 였습니다. 다행히, '오케이'입니다. 서울의료원 측은 "환자가 일정기간 격리 후 실시하는 검사에서 음성으로 나왔을 때에만 격리 해제하기 때문에, 퇴원할 때에는 바이러스가 살아있지 않아서 소독만 하고 들고 집으로 돌아간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환자들의 일과는 약을 먹고, 의료진과 면담하고, 가래 등을 채취해 검사 받고, 체온과 혈압을 재는 등 지극히 단순합니다. TV도 보고 휴대전화도 쓰지만 외부와 차단된 공간에서,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니 답답하겠지요.

의료진은 환자들의 감정적인 문제도 해결하려고 노력합니다. 김서연 간호사는 "지금 환자분들이 입원한 지 6~7일 됐는데 커뮤니케이션 할 사람이 의료진 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환자들이 우울감을 호소하면 정신의학과 의료진도 협진하고 있습니다.

서울의료원 읍압병동 구조
쓰고 버려도 된다면, 필요한 물건은 택배로 받을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전달할까요? 서울의료원 음압병동의 경우, 간호사실과 음압병실 사이에 '패스 박스(Pass Box)'라는 공간이 있습니다. 환자들의 식사나 개인적인 택배를 빠르게 안으로 전달하기 위해 마련한 건데요. 간호사실에서 물건을 넣으면, 의료진이 방호복을 입고 안쪽으로 들어가 문을 열고 물건을 전달해 줍니다. 양쪽을 동시에 열 수는 없습니다.

이 패스 박스를 이용하는 건 병실 출입과 환자와의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입니다. 전달해야 할 물건이 있을 때마다 방호복을 입고 들어가면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 뿐 아니라, 감염 위험성도 커지기 때문입니다.

■ '방호복' 입어봤더니…"답답하고 의사소통 불편"

의료진은 하루에 최소 2~3번 병실에 들어갑니다. 이때 바이러스를 외부로 옮기지 않도록, 또 스스로의 보호를 위해 방호복을 착용합니다. 이게 또 하나의 어려움인데요.

장갑은 두 겹이 기본, N95 마스크에 후드(모자)를 씁니다. 저도 입어봤는데요, 입는 데만 10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마스크까지는 괜찮았는데, 후드까지 쓰니 숨이 턱 막혔습니다. '이러고 일을 한다고?' 눈이 핑 돌았습니다.


마침 환자의 식사 준비를 위해 방호복으로 갈아입는 정혜진 간호사에게 '어떠냐'고 물어봤습니다.

"더워요, 엄청. 다른 환자의 병실에 갈 때마다 앞치마랑 장갑을 다시 교환해야 하는데 제가 땀이 많으니까 시간도 오래 걸리고요. 입고 벗는 데 평균 10~15분 정도 걸리는 것 같아요. 보통 이렇게 하고 1시간 좀 넘게 들어가 있습니다."

어려움은 또 있습니다. 마스크에 후드를 쓴다고 했죠? 보통 병실 안팎의 의료진은 인터폰으로 의사소통을 하는데, 이중으로 얼굴을 가려 놓으니 소리가 잘 안들리는 문제였습니다.

"아, 그래서 유리창에 글씨를 쓰는 거지요?"
"맞아요. 아무래도 잘 안 들리거든요. 더 빨리 하려다 보니까, 그냥 창에 쓰는 게 편하더라고요."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은 빠른 의사소통을 위해 창문에 글씨를 써서 하고픈 말을 전한다.
음압병동이 가동된 건 지난달 29일입니다. 일주일이 훌쩍 넘어가면서, 의료진도 나름 요령을 터득해 가고 있습니다.

■ 자원해 모였지만 '가족에겐 비밀'

안미영 감염내과 과장은 초기에는 48시간 깨어있고 2시간 자는 생활을 했습니다. "지금은 조금 더 잔다"곤 하지만, '하루 권장 수면시간' 8시간은 꿈도 못 꾸죠. 그럼에도 취재 내내 새로운 논문을 공부하던 안 과장은 저희 취재진의 어깨를 두드리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습니다.

"자원해주신 의사, 간호사, 환경 미화원분들께 꼭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염내과와 호흡기내과 의사, 간호사와 환경 미화원까지... 모두 30여 명이 병원이 근무를 '배정'하기 전 '자원'해 모였습니다.

음압병동에 모인 의료진 모두, 근무를 자원한 사람들이다.
안 과장은 "전염병이라는 건 사실 인류 역사상 계속 있어 왔고, 그럴 때마다 누군가는 일선에서 뛰어줘야 안심을 하게 된다"며 "누군가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본인 걱정보단 가족 걱정에, 근무를 제대로 알리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원래 신경계 중환자실에서 일했다는 남희은 간호사는 "부모님은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다가, 확진 환자들이 많이 나타나면서 걱정을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네가 환자들을 위해 그런 일을 하고 있구나' 지지해주고 계세요" 남 간호사가 웃으면서 덧붙인 말입니다.

의료진은 오늘도 꿋꿋하게 진료 중입니다. 잠도 못 자고, 어려움도 속 시원히 얘기 못 하는데 보람이 무엇일까요?

"좀 더 많이 잘 수 있으면 보람이라는 뜻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라며 운을 뗀 안 과장, 이렇게 말을 맺었습니다. "마지막 환자 분까지 완쾌해서 퇴원하시는 것, 가장 행복한 일 아닐까 싶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