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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훈의 시사본부] 의사된 남수단 제자 “이태석 신부님과 약속 지키려 매일 공부”
입력 2020.02.14 (16:25) 수정 2020.02.14 (16:26) 오태훈의 시사본부
유명일: 10주기 맞아 부산 이태석 신부 생가에 〈이태석 기념관〉 문 열어
-유명일: 왜 의사 버리고 신부 되었냐는 질문에 ‘돌 버리고 다이아몬드 주웠다’ 대답
-유명일: 남수단 톤즈에서 가장 먼저 하신 일은 의사로서 아픈 사람 돌본 것
-유명일: 외에도 수학, 영어 뿐 아니라 삶의 모든 것 음악, 운동, 낚시, 집짓기 등 가르쳐
-존: 이태석 신부님 덕분에 의사 돼, 항상 신부님 생각하고 기억하고 있어
-존: 어릴적 남수단 내전으로 환자 많은 상황 보며 마음 아파, 의사의 꿈 키워
-존: 이태석 신부님께 의사 되겠다고 약속, 이 약속 지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매일 공부
-존: 인턴 끝나면 남수단으로 돌아가 의사생활 할 것 또 후배 의사도 키우고파
-유명일: 대장암 치료로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아프리카로 돌아가고 싶어 해
-유명일: 우리 주위의 어려운 이에게 사랑 보여주는 것, 그것이 이태석으로 사는 길

■ 프로그램명 : 오태훈의 시사본부
■ 코너명 : 시사본부 초대석
■ 방송시간 : 2월 14일(화요일) 12:20~14:00 KBS 1라디오
■ 출연자 : 유명일 신부(이태석 위원회 위원장)
& 존 마옌 루벤(의사, 이태석 신부님 제자)



▷ 오태훈 : 영화 울지마 톤즈의 주인공 고 이태석 신부께서 왜 아프리카까지 갔느냐 이런 질문 받으실 때마다 이렇게 답을 하셨다고 합니다. 가장 보잘것없는 이에게 해준 것이 바로 예수님에게 해준 것과 같더라. 의사 출신의 이태석 신부 남수단에서 아픈 사람들 돌보고 또 그곳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많은 활동을 해주셨죠. 휴가 차 찾은 한국에서 받은 생애 첫 건강검진에서 말기암 진단을 받았고 지난 2010년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올해가 꼭 10주기가 되는 해입니다. 시사본부 금요초대석 오늘 이태석 위원회 위원장 맡고 계시는 유명일 신부님 모시고 이태석 신부님의 10주기 기념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유명일 신부님 인사드리기 전에 고 이태석 신부님의 생전 육성 함께 들어보겠습니다.

〈인서트〉

▷ 오태훈 : 음성으로마나 이태석 신부님을 만나 뵙고 이제 인사를 드리게 됐습니다. 이태석 위원회 위원장 맡고 계시는 유명일 신부 자리 하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 유명일 : 안녕하십니까? 유명일 신부입니다.

▷ 오태훈 : 먼저 이태석 위원회가 언제 만들어졌고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부터 여쭙겠습니다.

▶ 유명일 : 이태석 위원회는 이태석 신부님이 돌아가신 후 1년 후에 만들어졌습니다. 당시에 울지마 톤즈를 통해서 영화를 통해서 이태석 신부님이 굉장히 유명해졌고 그러면서 세상에서 참 많은 요구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요구에 대해서 저희 수도회에서 좀 더 구체적이고 또 효과적으로 요구에 대처하기 위해서 저희 이태석 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 오태훈 : 이태석 신부님의 기일이 1월 14일이라고 들었습니다. 꼭 10주기가 됐는데 뭐 올해 의미 있는 추모행사 같은 것들이 있었는지요.

▶ 유명일 : 시간순으로 몇 가지 알려드리면 올해 초 1월 9일에 우리 KBS 미디어에서 제작한 울지 마 톤즈2 : 슈크란 바바라는 영화가 개봉을 했습니다. 이후에는 이제 이태석 신부님의 기일인 1월 14일쯤에 기일미사를 저희가 12일에 광주에서 기일미사를 지냈고요. 추모미사죠. 그리고 추모미사 후에 이태석 신부님의 묘소가 있는 담양 천주교 묘역에서 추모식을 따로 또 진행을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1월 14일 이태석 신부님이 돌아가신 바로 그날에 부산 서구에서 이태석 신부 기념관이라는 것이 크게 개관을 했습니다. 저희가 저희 수도회가 만든 게 아니고 부산 서구청에서 건립을 하셨고 저희에게 위탁을 하신 건데요. 기념관이 생김으로 해서 이태석 신부님 고향에 아주 기념비적인 큰 공간이 또 여러모로 이렇게 만들어져서 거기에 다른 공원들도 있습니다. 이태석 신부님 문화공원도 있고 이래서 그런 것들이 의미깊게 만들어졌고 또 앞으로 예정된 행사도 몇 가지 있습니다. 이태석 신부님이 세례자 요한이라는 세례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어로 하면 존이죠. 그래서 존디 또 수단 사람들은 쫄리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이분의 세례 축일이 6월 24일인데 그분 세례 축일에 맞춰서 저희가 심포지엄을 준비하고 있고 또 심포지엄 때 사진전과 함께 여러 발자취를 기념하는 작업들을 함께할 겁니다. 이외에 다큐멘터리 영화도 준비를 하고 있고요. 무엇보다 이태석 신부님 전기가 나올 예정입니다. 올해 말쯤에.

▷ 오태훈 : 유명일 신부께서는 어떤 연유로 이태석 위원회를 맡고 계신 거예요?

▶ 유명일 : 개인적인 인연으로는 우선 이태석 신부님이 종신서원이라는 것을 할 때 제가 그때 수도원에 들어왔습니다. 그게 2000년입니다. 그리고 2001년에 이제 이태석 신부님이 사제로 신부님으로 서품되었을 때 제가 그때 성가대에서 생애 처음으로 사제 서품 성가대에서 합창단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그날의 기억이 굉장히 생생하고 그때 김수환 추기경님이 서품을 주셨습니다.

▷ 오태훈 : 그러셨군요. 앞서서 부산에 이태석 신부 기념관 세워졌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거기 가면 어떤 걸 저희가 만날 수 있습니까?

▶ 유명일 : 우선 이태석 신부 기념관은 그분의 생가. 이태석 신부님 태어나고 자랐던 생가에 지어졌고요. 그 생가도 물론 같이 있습니다. 아울러 송도에서도 가장 전망이 좋고 아름다운 곳입니다. 기념관에서 내려다보면 송도해수욕장 파란 바다 위로 이렇게 케이블카가 지나다니는 게 보이고요. 거기에 또 이태석 신부님이 가장 즐겨 가던 송도 본당이 기념관 언덕 위에 자리 잡아서 보는 그런 풍경도 굉장히 아름답고 또 무엇보다 그 안에 담겨 있는 이태석 신부님의 정체성을 기억시키는 많은 것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 오태훈 : 올라프 님께서 “안정적으로 살 수 있었던 의사의 길을 버리고 오롯이로 남을 위해 살다가 암으로 돌아가신 분. 누구보다 존경합니다.”라고 보내주셨는데요. 청취자 분들을 위해서 이태석 신부께서 어떤 일들을 하셨는지 말씀해주셨으면 좋겠다 싶어요.

▶ 유명일 : 우선은 이분이 세 가지의 정체성을 살아내신 분입니다. 첫 번째는 의사였죠. 수도원 오기 전에 이미 의사였고 그리고 신부가 되셨던 분이고 마지막으로는 의사이며 신부이고 또 교사로서 아프리카 수단 특별히 톤즈라는 마을의 친구들을 위해서 헌신하신 분이죠. 의사가 신부인 게 참 한편으로는 특별한 모습이기도 하고 저희 선배들이 그런 질문을 했었어요. 왜 하필 의사면서 수도원에 왔냐. 모든 걸 버리고 왜 수도원에 왔냐라고 했을 때 이태석 신부님이 그런 말을 했습니다. 그 질문을 한 선배가 상윤입니다. “상윤아, 내 손에 돌덩이를 들고 있는데 눈앞에 다이아몬드가 딱 나타나면 너는 어떻게 하겠니. 돌덩이를 버리고 다이아몬드를 잡지 않겠어?” 나는 그래서 수도원에 들어왔어. 세상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사실 수도원 담장 안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는 세상의 가치 그 이상의 가치가 더 크게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 오태훈 : 남수단에서 여러 활동들을 하셨는데 이 남수단이라는 곳이 참 먼 아프리카 그 와중에 내전으로 상당히 혼란스러웠던 곳이었잖아요. 또 이곳을 결정하신 이유도 여쭙고 싶거든요.

▶ 유명일 : 우리 아나운서께서 처음에 말씀하신 것처럼 가장 보잘것없는 이들에게 해준 것이 예수님께 해준 것이다. 이것이 그분 삶의 모토 같은 거였습니다. 그런데 신부가 되기 직전에 그때 이분은 로마에서 유학을 하고 계셨습니다. 신학을 공부하고 계셨는데 그때 이미 선교를 떠날 그런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분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선교의 꿈을 가지고 계셨나 봅니다. 왜냐하면 이분이 중3 때 작곡한 노래가 하나 있어요. 묵상이라는 노래인데 그 노래 가삿말에 보면. 지금 노래가 나오고 있네요.

▷ 오태훈 : 노래 들으면서 말씀 들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유명일 : 제일 중요한 부분은 우선 고통 받는 이들 또 총부리 앞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인가들을 위해서 왜 하나님은 보고 있느냐라고 이렇게 원망하면서도 하지만 모든 고통 그 번민 안에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있을 거고 당신도 예수님도 그런 고통 속에 죽어가면서 타인을 위해서 사랑 때문에 죽어갔기 때문에 이 노래를 만든 이태석 나 자신도 사랑을 위해서 기도하고 또 사랑을 위해서 내 모든 걸 바치겠다. 그러면서 중3의 이태석이 이 노래 마지막 절정 부분에 이런 말을 합니다. 세계평화를 위해서 나는 사랑하리라. 내 모든 걸 바쳐. 이거는 사실 중학생이 만든 노래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위대한 그런 마음이고 또 인간애인데요. 이게 자신의 인생을 결정하고 자신의 먼 훗날을 내다보는 예언적인 노래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 오태훈 : 이태석 신부님께서 중학교 때 작사, 작곡하신 묵상 들어보고 있는데요. 남수단에서 활동하시면서 의사로서 또 아픈 사람을 돌보고 진료하셨고 또 학생들 참 많이 가르치셨다면서요.

▶ 유명일 : 처음에 가서 하신 것은 분명히 아픈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까 당신의 원래 직업이었던 의사로서 그 사람들을 치료했습니다. 그리고 물론 이분은 신부였기 때문에 늘 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그것이 헌신하는 삶을 위한 자양분이 되었고요. 그러면서 아이들이 그 가난을 이겨내고 좀 더 희망찬 미래를 살아가려면 또 내전으로 헐벗은 그 땅에 뭔가 희망을 보이려면 분명히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셔서 모든 것을 다 가르치시려고 했습니다. 단순히 수학, 영어 이런 것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것. 음악, 운동, 미술 심지어는 낚시. 그리고 집 짓는 것도 가르쳤습니다.

▷ 오태훈 : 알겠습니다. 고 이태석 신부님의 10주기 맞아서 금요초대석 이태석 위원회 유명일 위원장과 함께 말씀 나누고 있는데요. 여기서 이태석 신부님의 제자 한 분을 전화로 연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의사의 꿈을 꿨던 청년이었고 이태석 신부님의 모교에서 졸업을 했고 의사 국가 시험에 당당히 합격한 분입니다. 이태석 신부께서 보셨다면 상당히 기뻐하셨을 것 같은데. 의사선생님이십니다. 존 마옌 루벤 님을 연결해보겠습니다. 나와 계십니까?

▶ 존 마옌 루벤 : 나왔습니다.

▷ 오태훈 : 의사 시험 합격하셨다면서요?

▶ 존 마옌 루벤 : 네. 올해 이제 진료 시험에서 합격했네요.

▷ 오태훈 : 축하드리겠습니다. 요즈음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 존 마옌 루벤 : 그러니까 이제 시험 합격하고 그리고 이제 3월부터 인턴 과정 들어가야 해서 그래서 이제 요새 인턴과 관련된 서류 준비하는데 조금 바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 오태훈 : 존 마옌 루벤 씨는 이태석 신부님 어떻게 기억하고 계세요?

▶ 존 마옌 루벤 : 그러니까 이제 뭐 어떻게 보면 사실 지금 제가 올해 의사 된 것도 아마 신부님 덕분에 의사 된 것 같고요. 그래서 이제 시험 합격하고 좀 약간 기분 좋게 생활하면서도 어떻게 보면 신부님 항상 생각하고 기억하고 그런 것 같습니다.

▷ 오태훈 : 그러면 존 마옌 루벤 씨는 언제부터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꾸시게 됐어요?

▶ 존 마옌 루벤 : 그러니까 의사 되고 싶은 게 어떻게 보면 어릴 때부터 꿈이었고요. 그러니까 이제 아마 아시는 분들은 계시지만 남수단 쪽 내전에 있어서. 그래서 그 내전 때문에 이제 여러 가지 부족한 부분들은 많았는데 그중에서 의사는 별로 없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자라면서 주변에 이렇게 환자들이 굉장히 고생도 많이 하고 의사 없이 이렇게 죽어가는 모습을 많이 목격했습니다. 그래서 환자들이 이렇게 힘들게 생활하는 거 보면서 저는 아무래도 앞으로 의사 꼭 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런 거 좀 되게 마음이 많이 아파서 계속 어릴 때부터 의사의 꿈을 가지면서 공부도 하고 좀 그렇습니다.

▷ 오태훈 : 루벤 씨가 한국 생활 하는 거는 상당히 좀 힘들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공부하기도 의대 공부가 참 힘들거든요. 어떻게 잘 견디셨어요?

▶ 존 마옌 루벤 : 그래서 지금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사실 공부하는 것도 웬만하면 매일매일 거의 다 고생이었던 것 같고요. 그런데도 뭐 지금 이렇게 한국과 같은 선진국에 와서 공부하는 거는 정말 여기서 의사 되면 도움이 많이 되잖아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환자들의 생각을 이렇게 떠올리면서 더 열심히 해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해서 더 열심히 해야 한다 이런 생각으로 공부를 했던 것 같고요. 그리고 신부님과 함께 또 생활하고 있을 때 가끔 대화 나누다 보면 신부님 하시는 일들이 되게 마음에 많이 들어서 저는 신부님께 신부님 저도 앞으로 꼭 신부님처럼 의사 되어야 한다는 그런 이야기를 자주 나눴거든요. 그래서 뭐 어떻게 보면 마치 신부님께 약속했던 것처럼 항상 생각을 하면서 꼭 제가 신부님께 말씀드린 것처럼 약속을 지켜야 한다 이런 생각으로 공부를 매일매일 해왔습니다.

▷ 오태훈 : 약속 이루셨네요.

▶ 존 마옌 루벤 : 올해 이제 의사 됐으니까 약속 지켜서 어떻게 보면 신부님께 거짓말 없이지켜서 기분은 좋습니다.

▷ 오태훈 : 기분 좋다고 말씀하셨는데 이태석 신부께서 합격한 모습 보셨다면 뭐라고 하셨을 것으로 생각되세요?

▶ 존 마옌 루벤 : 정말 존 잘했다. 내가 그때 네가 힘든 일이 있어도 할 수 있다. 이야기했잖아. 그 말씀을 하실 것 같고요. 그리고 앞으로도 항상 의사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매일매일 살아가면서 남들을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 말씀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오태훈 : 이제 의사 시험 합격을 했고 또 여러 가지 과정 거치고 나서 이후에는 한국에서 활동하실 계획이십니까? 아니면 남수단으로 다시 돌아가실 계획이십니까?

▶ 존 마옌 루벤 : 우선은 일단 웬만하면 추운 한국 날씨에서 빨리 탈출하고 싶고요. 농담이고요. 어쨌든 여기 한국에 남아서 의사 활동하는 거는 크게 의미는 없을 것 같고요. 그러니까 좀 한국보다 남수단 도움이 많이 더 필요하기 때문에 앞으로 여기 한국에서 수료 마치고 남수단 들어가서 의사 활동 꼭 하고 싶습니다.

▷ 오태훈 : 알겠습니다.

▶ 존 마옌 루벤 : 그래서 물론 이제 의사 활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 교수 활동도 하면서 다른 후배들도 이렇게 조금 더 좋은 의사를 키우는 그런 활동도 같이 함께 하려고 합니다.

▷ 오태훈 : 알겠습니다. 오늘 고맙습니다.

▶ 존 마옌 루벤 : 감사합니다.

▷ 오태훈 : 이태석 신부의 모교인 인제대 의대 졸업하고 최근 의사 시험에 합격을 했습니다. 존 마옌 루벤 씨와 함께 말씀 나눠봤습니다. 육영희 님께서 “방송 들으니 이태석 신부님 그리워집니다. 영화 보면서 참 많이 울었습니다. 쫄리 신부 님 천국에서 행복하시죠?”라고 보내주셨는데 인터뷰 들어보시니까 어떠셨어요?

▶ 유명일 : 울컥울컥한데요. 이렇게 대견하게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의사가 된 우리 존 마롄뿐만 아니라 토마스 너무나 대견하고 고맙습니다.

▷ 오태훈 : 남수단에서 한국으로 온 학생들이 많이 있다면서요?

▶ 유명일 : 우선은 저희 살레시오 수단원인 장학회를 통해서 온 친구들이 3명 있습니다. 이미 돌아간 산티로나는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는 이미 수단에서 건축가로서 성공을 해서 결혼도 하고 또 지역사회를 위해서 많은 공헌을 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우리 토마스와 존은 아직 공부 중이지만 이미 의사가 된 거죠. 그래서 좀 더 전문의로서의 소양을 닦고 다시 톤즈로 돌아가면 수단으로 돌아가면 아까 우리 존 마옌이 말한 것처럼 미래의 또 다른 의사들을 위해서 좋은 기여를 할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 오태훈 : 그리고 울지마 톤즈를 많은 분들이 기억하시는 것 중에 하나가 이태석 신부께서 악기를 아이들에게 쥐어주고 같이 공연도 하고 이런 것 많이 생각이 나거든요. 그러니까 톤즈 브라스 밴드인가요?

▶ 유명일 : 정확하게는 톤즈 돈 보스코 브라스 밴드고요. 별칭으로는 쫄리 밴드였습니다.

▷ 오태훈 : 이 악기들을 다 이태석 신부께서 직접 가르치셨다면서요?

▶ 유명일 : 참 놀라운데요. 이태석 신부님은 처음에는 풍금 그리고 기타를 자기가 혼자서 독학으로 다 깨우친 분입니다. 그리고 의대를 다니던 시절에는 첼로를 또 배우셔서 심취하셨고 수도원 와서는 관악기들을 혼자서 또 배우셨습니다. 그래서 아프리카에 갔을 때는 이미 여러 악기를 다 다루실 수 있었고 무엇보다제가 기억하는 이태석 신부님은 가르치는 데 굉장히 탁월하셨어요. 뭐 부끄럽지만 저도 이태석 신부님으로로부터 클라리넷을 배우고 함께 한국의 존스 밴드를 결성해서 활동을 했었는데요. 저 같이 음악적 소질이 없는 사람도 이태석 신부님이 가르치면 음악을 할 수 있을 만큼 정말 탁월한 그런 지휘자였고 교육자였습니다.

▷ 오태훈 : 중학교 때 작곡까지도 하셨고.

▶ 유명일 : 그렇죠.

▷ 오태훈 : 그리고 여러 다양한 악기를 다루시기도 했고 의사 활동도 하셨고. 하지만 세상을 보는 눈은 남들과는 많이 다르셨던 분이었고. 또 그걸 실천으로 옮기셨고 멀리 남수단까지 가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또 치료까지도 해주셨던 분입니다. 이렇게 훌륭하신 분이 우리 곁을 너무 빨리 떠나셨다는 게 너무나 안타깝고 게다가 그 젊은 나이에 휴가 차 우리나라에 왔다가 건강검진을 우연히 받았는데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던 거예요. 선고 받고 난 이후에 신부님의 삶이 어땠을까 참 그러네요.

▶ 유명일 : 그건 이제 대장암 판정을 받은 그날 물론 본인만이 알고 있었겠죠. 그리고 수도원에 돌아왔을 때 전혀 내색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그다음 날 바로 수단 어린이를 돕는 후원회가 있었고 그 후원회에 참석해서도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고 이렇게 많이 감동을 시키셨는데 후원회 끝나고 나중에 와서야 저희한테 어제 병원에서 대장암이라고 하더라. 이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그래서 저희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고 그러면서도 애써 내색하지 않으려고 그날부터 저희는 돌팔이라고 불렀습니다. 의사가 자기 몸 상태는 모르고 남들만 치료했다면서 돌팔이라고 그렇게 막 놀리기도 했는데 저희 마음은 너무나 아팠죠. 이제 그때가 사실 제가 이태석 신부님과 가장 친해진 1년인데요. 그 1년 동안 투병생활을 할 때 같은 수도원에 살면서 의연하게 자신의 그런 치료 여러 차례 항암치료를 견디시면서도 꼭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가고 싶다는 그 의지를 봤고요. 또 종래에는 너무나 고통스러워하고 그런 모습 그 안에서도 신부로서의 그 거룩함을 지키는 그 모습을 계속 지켜봤습니다.

▷ 오태훈 : 벌써 그러고 나서 1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태석 신부님은 우리가 기리는 것 말고도 신부님 뜻에 따라서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 유명일 : 이태석 신부님의 뜻을 이어받은 많은 단체들이 있습니다. 제가 몇 번 언급한 수단어린이 장학회를 통해서 지난 10년간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여러 선교지로 거의 100억 이상의 후원금이 갔습니다. 그리고 뿐만 아니라 많은 봉사자들이 이태석 신부님과 같이 봉사하겠다고 아프리카로 가셔서 거의 100여 명 이상이 여러 지역에서 봉사를 하셨습니다. 또 저희 수단어린이 장학회 말고도 스마일 톤즈재단이라든가 그리고 이태석 참사랑실천사업회, 부산사람 이태석 이런 단체들을 통해서 후원할 수도 있고요. 그런데 그런 가시적인 거 말고도 그냥 우리 주위에 정말 어려운 이들, 보잘것없는 이들을 위해서 친절하게 또 따뜻하게 사랑을 보여주면 그게 또 다른 이태석으로 사는 길 아닌가라는 생각합니다.

▷ 오태훈 : 알겠습니다. 이태석 신부께서 직접 부르셨던 라나에로스포의 사랑의 집 듣고 계신데요. 오태훈의 시사본부 금요초대석 고 이태석 신부님의 10주기 맞아서 이태석 위원회 위원장 맡고 있는 유명일 신부님과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 유명일 : 고맙습니다.
  • [오태훈의 시사본부] 의사된 남수단 제자 “이태석 신부님과 약속 지키려 매일 공부”
    • 입력 2020-02-14 16:25:17
    • 수정2020-02-14 16:26:52
    오태훈의 시사본부
유명일: 10주기 맞아 부산 이태석 신부 생가에 〈이태석 기념관〉 문 열어
-유명일: 왜 의사 버리고 신부 되었냐는 질문에 ‘돌 버리고 다이아몬드 주웠다’ 대답
-유명일: 남수단 톤즈에서 가장 먼저 하신 일은 의사로서 아픈 사람 돌본 것
-유명일: 외에도 수학, 영어 뿐 아니라 삶의 모든 것 음악, 운동, 낚시, 집짓기 등 가르쳐
-존: 이태석 신부님 덕분에 의사 돼, 항상 신부님 생각하고 기억하고 있어
-존: 어릴적 남수단 내전으로 환자 많은 상황 보며 마음 아파, 의사의 꿈 키워
-존: 이태석 신부님께 의사 되겠다고 약속, 이 약속 지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매일 공부
-존: 인턴 끝나면 남수단으로 돌아가 의사생활 할 것 또 후배 의사도 키우고파
-유명일: 대장암 치료로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아프리카로 돌아가고 싶어 해
-유명일: 우리 주위의 어려운 이에게 사랑 보여주는 것, 그것이 이태석으로 사는 길

■ 프로그램명 : 오태훈의 시사본부
■ 코너명 : 시사본부 초대석
■ 방송시간 : 2월 14일(화요일) 12:20~14:00 KBS 1라디오
■ 출연자 : 유명일 신부(이태석 위원회 위원장)
& 존 마옌 루벤(의사, 이태석 신부님 제자)



▷ 오태훈 : 영화 울지마 톤즈의 주인공 고 이태석 신부께서 왜 아프리카까지 갔느냐 이런 질문 받으실 때마다 이렇게 답을 하셨다고 합니다. 가장 보잘것없는 이에게 해준 것이 바로 예수님에게 해준 것과 같더라. 의사 출신의 이태석 신부 남수단에서 아픈 사람들 돌보고 또 그곳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많은 활동을 해주셨죠. 휴가 차 찾은 한국에서 받은 생애 첫 건강검진에서 말기암 진단을 받았고 지난 2010년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올해가 꼭 10주기가 되는 해입니다. 시사본부 금요초대석 오늘 이태석 위원회 위원장 맡고 계시는 유명일 신부님 모시고 이태석 신부님의 10주기 기념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유명일 신부님 인사드리기 전에 고 이태석 신부님의 생전 육성 함께 들어보겠습니다.

〈인서트〉

▷ 오태훈 : 음성으로마나 이태석 신부님을 만나 뵙고 이제 인사를 드리게 됐습니다. 이태석 위원회 위원장 맡고 계시는 유명일 신부 자리 하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 유명일 : 안녕하십니까? 유명일 신부입니다.

▷ 오태훈 : 먼저 이태석 위원회가 언제 만들어졌고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부터 여쭙겠습니다.

▶ 유명일 : 이태석 위원회는 이태석 신부님이 돌아가신 후 1년 후에 만들어졌습니다. 당시에 울지마 톤즈를 통해서 영화를 통해서 이태석 신부님이 굉장히 유명해졌고 그러면서 세상에서 참 많은 요구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요구에 대해서 저희 수도회에서 좀 더 구체적이고 또 효과적으로 요구에 대처하기 위해서 저희 이태석 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 오태훈 : 이태석 신부님의 기일이 1월 14일이라고 들었습니다. 꼭 10주기가 됐는데 뭐 올해 의미 있는 추모행사 같은 것들이 있었는지요.

▶ 유명일 : 시간순으로 몇 가지 알려드리면 올해 초 1월 9일에 우리 KBS 미디어에서 제작한 울지 마 톤즈2 : 슈크란 바바라는 영화가 개봉을 했습니다. 이후에는 이제 이태석 신부님의 기일인 1월 14일쯤에 기일미사를 저희가 12일에 광주에서 기일미사를 지냈고요. 추모미사죠. 그리고 추모미사 후에 이태석 신부님의 묘소가 있는 담양 천주교 묘역에서 추모식을 따로 또 진행을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1월 14일 이태석 신부님이 돌아가신 바로 그날에 부산 서구에서 이태석 신부 기념관이라는 것이 크게 개관을 했습니다. 저희가 저희 수도회가 만든 게 아니고 부산 서구청에서 건립을 하셨고 저희에게 위탁을 하신 건데요. 기념관이 생김으로 해서 이태석 신부님 고향에 아주 기념비적인 큰 공간이 또 여러모로 이렇게 만들어져서 거기에 다른 공원들도 있습니다. 이태석 신부님 문화공원도 있고 이래서 그런 것들이 의미깊게 만들어졌고 또 앞으로 예정된 행사도 몇 가지 있습니다. 이태석 신부님이 세례자 요한이라는 세례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어로 하면 존이죠. 그래서 존디 또 수단 사람들은 쫄리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이분의 세례 축일이 6월 24일인데 그분 세례 축일에 맞춰서 저희가 심포지엄을 준비하고 있고 또 심포지엄 때 사진전과 함께 여러 발자취를 기념하는 작업들을 함께할 겁니다. 이외에 다큐멘터리 영화도 준비를 하고 있고요. 무엇보다 이태석 신부님 전기가 나올 예정입니다. 올해 말쯤에.

▷ 오태훈 : 유명일 신부께서는 어떤 연유로 이태석 위원회를 맡고 계신 거예요?

▶ 유명일 : 개인적인 인연으로는 우선 이태석 신부님이 종신서원이라는 것을 할 때 제가 그때 수도원에 들어왔습니다. 그게 2000년입니다. 그리고 2001년에 이제 이태석 신부님이 사제로 신부님으로 서품되었을 때 제가 그때 성가대에서 생애 처음으로 사제 서품 성가대에서 합창단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그날의 기억이 굉장히 생생하고 그때 김수환 추기경님이 서품을 주셨습니다.

▷ 오태훈 : 그러셨군요. 앞서서 부산에 이태석 신부 기념관 세워졌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거기 가면 어떤 걸 저희가 만날 수 있습니까?

▶ 유명일 : 우선 이태석 신부 기념관은 그분의 생가. 이태석 신부님 태어나고 자랐던 생가에 지어졌고요. 그 생가도 물론 같이 있습니다. 아울러 송도에서도 가장 전망이 좋고 아름다운 곳입니다. 기념관에서 내려다보면 송도해수욕장 파란 바다 위로 이렇게 케이블카가 지나다니는 게 보이고요. 거기에 또 이태석 신부님이 가장 즐겨 가던 송도 본당이 기념관 언덕 위에 자리 잡아서 보는 그런 풍경도 굉장히 아름답고 또 무엇보다 그 안에 담겨 있는 이태석 신부님의 정체성을 기억시키는 많은 것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 오태훈 : 올라프 님께서 “안정적으로 살 수 있었던 의사의 길을 버리고 오롯이로 남을 위해 살다가 암으로 돌아가신 분. 누구보다 존경합니다.”라고 보내주셨는데요. 청취자 분들을 위해서 이태석 신부께서 어떤 일들을 하셨는지 말씀해주셨으면 좋겠다 싶어요.

▶ 유명일 : 우선은 이분이 세 가지의 정체성을 살아내신 분입니다. 첫 번째는 의사였죠. 수도원 오기 전에 이미 의사였고 그리고 신부가 되셨던 분이고 마지막으로는 의사이며 신부이고 또 교사로서 아프리카 수단 특별히 톤즈라는 마을의 친구들을 위해서 헌신하신 분이죠. 의사가 신부인 게 참 한편으로는 특별한 모습이기도 하고 저희 선배들이 그런 질문을 했었어요. 왜 하필 의사면서 수도원에 왔냐. 모든 걸 버리고 왜 수도원에 왔냐라고 했을 때 이태석 신부님이 그런 말을 했습니다. 그 질문을 한 선배가 상윤입니다. “상윤아, 내 손에 돌덩이를 들고 있는데 눈앞에 다이아몬드가 딱 나타나면 너는 어떻게 하겠니. 돌덩이를 버리고 다이아몬드를 잡지 않겠어?” 나는 그래서 수도원에 들어왔어. 세상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사실 수도원 담장 안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는 세상의 가치 그 이상의 가치가 더 크게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 오태훈 : 남수단에서 여러 활동들을 하셨는데 이 남수단이라는 곳이 참 먼 아프리카 그 와중에 내전으로 상당히 혼란스러웠던 곳이었잖아요. 또 이곳을 결정하신 이유도 여쭙고 싶거든요.

▶ 유명일 : 우리 아나운서께서 처음에 말씀하신 것처럼 가장 보잘것없는 이들에게 해준 것이 예수님께 해준 것이다. 이것이 그분 삶의 모토 같은 거였습니다. 그런데 신부가 되기 직전에 그때 이분은 로마에서 유학을 하고 계셨습니다. 신학을 공부하고 계셨는데 그때 이미 선교를 떠날 그런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분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선교의 꿈을 가지고 계셨나 봅니다. 왜냐하면 이분이 중3 때 작곡한 노래가 하나 있어요. 묵상이라는 노래인데 그 노래 가삿말에 보면. 지금 노래가 나오고 있네요.

▷ 오태훈 : 노래 들으면서 말씀 들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유명일 : 제일 중요한 부분은 우선 고통 받는 이들 또 총부리 앞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인가들을 위해서 왜 하나님은 보고 있느냐라고 이렇게 원망하면서도 하지만 모든 고통 그 번민 안에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있을 거고 당신도 예수님도 그런 고통 속에 죽어가면서 타인을 위해서 사랑 때문에 죽어갔기 때문에 이 노래를 만든 이태석 나 자신도 사랑을 위해서 기도하고 또 사랑을 위해서 내 모든 걸 바치겠다. 그러면서 중3의 이태석이 이 노래 마지막 절정 부분에 이런 말을 합니다. 세계평화를 위해서 나는 사랑하리라. 내 모든 걸 바쳐. 이거는 사실 중학생이 만든 노래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위대한 그런 마음이고 또 인간애인데요. 이게 자신의 인생을 결정하고 자신의 먼 훗날을 내다보는 예언적인 노래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 오태훈 : 이태석 신부님께서 중학교 때 작사, 작곡하신 묵상 들어보고 있는데요. 남수단에서 활동하시면서 의사로서 또 아픈 사람을 돌보고 진료하셨고 또 학생들 참 많이 가르치셨다면서요.

▶ 유명일 : 처음에 가서 하신 것은 분명히 아픈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까 당신의 원래 직업이었던 의사로서 그 사람들을 치료했습니다. 그리고 물론 이분은 신부였기 때문에 늘 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그것이 헌신하는 삶을 위한 자양분이 되었고요. 그러면서 아이들이 그 가난을 이겨내고 좀 더 희망찬 미래를 살아가려면 또 내전으로 헐벗은 그 땅에 뭔가 희망을 보이려면 분명히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셔서 모든 것을 다 가르치시려고 했습니다. 단순히 수학, 영어 이런 것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것. 음악, 운동, 미술 심지어는 낚시. 그리고 집 짓는 것도 가르쳤습니다.

▷ 오태훈 : 알겠습니다. 고 이태석 신부님의 10주기 맞아서 금요초대석 이태석 위원회 유명일 위원장과 함께 말씀 나누고 있는데요. 여기서 이태석 신부님의 제자 한 분을 전화로 연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의사의 꿈을 꿨던 청년이었고 이태석 신부님의 모교에서 졸업을 했고 의사 국가 시험에 당당히 합격한 분입니다. 이태석 신부께서 보셨다면 상당히 기뻐하셨을 것 같은데. 의사선생님이십니다. 존 마옌 루벤 님을 연결해보겠습니다. 나와 계십니까?

▶ 존 마옌 루벤 : 나왔습니다.

▷ 오태훈 : 의사 시험 합격하셨다면서요?

▶ 존 마옌 루벤 : 네. 올해 이제 진료 시험에서 합격했네요.

▷ 오태훈 : 축하드리겠습니다. 요즈음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 존 마옌 루벤 : 그러니까 이제 시험 합격하고 그리고 이제 3월부터 인턴 과정 들어가야 해서 그래서 이제 요새 인턴과 관련된 서류 준비하는데 조금 바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 오태훈 : 존 마옌 루벤 씨는 이태석 신부님 어떻게 기억하고 계세요?

▶ 존 마옌 루벤 : 그러니까 이제 뭐 어떻게 보면 사실 지금 제가 올해 의사 된 것도 아마 신부님 덕분에 의사 된 것 같고요. 그래서 이제 시험 합격하고 좀 약간 기분 좋게 생활하면서도 어떻게 보면 신부님 항상 생각하고 기억하고 그런 것 같습니다.

▷ 오태훈 : 그러면 존 마옌 루벤 씨는 언제부터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꾸시게 됐어요?

▶ 존 마옌 루벤 : 그러니까 의사 되고 싶은 게 어떻게 보면 어릴 때부터 꿈이었고요. 그러니까 이제 아마 아시는 분들은 계시지만 남수단 쪽 내전에 있어서. 그래서 그 내전 때문에 이제 여러 가지 부족한 부분들은 많았는데 그중에서 의사는 별로 없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자라면서 주변에 이렇게 환자들이 굉장히 고생도 많이 하고 의사 없이 이렇게 죽어가는 모습을 많이 목격했습니다. 그래서 환자들이 이렇게 힘들게 생활하는 거 보면서 저는 아무래도 앞으로 의사 꼭 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런 거 좀 되게 마음이 많이 아파서 계속 어릴 때부터 의사의 꿈을 가지면서 공부도 하고 좀 그렇습니다.

▷ 오태훈 : 루벤 씨가 한국 생활 하는 거는 상당히 좀 힘들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공부하기도 의대 공부가 참 힘들거든요. 어떻게 잘 견디셨어요?

▶ 존 마옌 루벤 : 그래서 지금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사실 공부하는 것도 웬만하면 매일매일 거의 다 고생이었던 것 같고요. 그런데도 뭐 지금 이렇게 한국과 같은 선진국에 와서 공부하는 거는 정말 여기서 의사 되면 도움이 많이 되잖아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환자들의 생각을 이렇게 떠올리면서 더 열심히 해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해서 더 열심히 해야 한다 이런 생각으로 공부를 했던 것 같고요. 그리고 신부님과 함께 또 생활하고 있을 때 가끔 대화 나누다 보면 신부님 하시는 일들이 되게 마음에 많이 들어서 저는 신부님께 신부님 저도 앞으로 꼭 신부님처럼 의사 되어야 한다는 그런 이야기를 자주 나눴거든요. 그래서 뭐 어떻게 보면 마치 신부님께 약속했던 것처럼 항상 생각을 하면서 꼭 제가 신부님께 말씀드린 것처럼 약속을 지켜야 한다 이런 생각으로 공부를 매일매일 해왔습니다.

▷ 오태훈 : 약속 이루셨네요.

▶ 존 마옌 루벤 : 올해 이제 의사 됐으니까 약속 지켜서 어떻게 보면 신부님께 거짓말 없이지켜서 기분은 좋습니다.

▷ 오태훈 : 기분 좋다고 말씀하셨는데 이태석 신부께서 합격한 모습 보셨다면 뭐라고 하셨을 것으로 생각되세요?

▶ 존 마옌 루벤 : 정말 존 잘했다. 내가 그때 네가 힘든 일이 있어도 할 수 있다. 이야기했잖아. 그 말씀을 하실 것 같고요. 그리고 앞으로도 항상 의사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매일매일 살아가면서 남들을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 말씀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오태훈 : 이제 의사 시험 합격을 했고 또 여러 가지 과정 거치고 나서 이후에는 한국에서 활동하실 계획이십니까? 아니면 남수단으로 다시 돌아가실 계획이십니까?

▶ 존 마옌 루벤 : 우선은 일단 웬만하면 추운 한국 날씨에서 빨리 탈출하고 싶고요. 농담이고요. 어쨌든 여기 한국에 남아서 의사 활동하는 거는 크게 의미는 없을 것 같고요. 그러니까 좀 한국보다 남수단 도움이 많이 더 필요하기 때문에 앞으로 여기 한국에서 수료 마치고 남수단 들어가서 의사 활동 꼭 하고 싶습니다.

▷ 오태훈 : 알겠습니다.

▶ 존 마옌 루벤 : 그래서 물론 이제 의사 활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 교수 활동도 하면서 다른 후배들도 이렇게 조금 더 좋은 의사를 키우는 그런 활동도 같이 함께 하려고 합니다.

▷ 오태훈 : 알겠습니다. 오늘 고맙습니다.

▶ 존 마옌 루벤 : 감사합니다.

▷ 오태훈 : 이태석 신부의 모교인 인제대 의대 졸업하고 최근 의사 시험에 합격을 했습니다. 존 마옌 루벤 씨와 함께 말씀 나눠봤습니다. 육영희 님께서 “방송 들으니 이태석 신부님 그리워집니다. 영화 보면서 참 많이 울었습니다. 쫄리 신부 님 천국에서 행복하시죠?”라고 보내주셨는데 인터뷰 들어보시니까 어떠셨어요?

▶ 유명일 : 울컥울컥한데요. 이렇게 대견하게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의사가 된 우리 존 마롄뿐만 아니라 토마스 너무나 대견하고 고맙습니다.

▷ 오태훈 : 남수단에서 한국으로 온 학생들이 많이 있다면서요?

▶ 유명일 : 우선은 저희 살레시오 수단원인 장학회를 통해서 온 친구들이 3명 있습니다. 이미 돌아간 산티로나는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는 이미 수단에서 건축가로서 성공을 해서 결혼도 하고 또 지역사회를 위해서 많은 공헌을 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우리 토마스와 존은 아직 공부 중이지만 이미 의사가 된 거죠. 그래서 좀 더 전문의로서의 소양을 닦고 다시 톤즈로 돌아가면 수단으로 돌아가면 아까 우리 존 마옌이 말한 것처럼 미래의 또 다른 의사들을 위해서 좋은 기여를 할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 오태훈 : 그리고 울지마 톤즈를 많은 분들이 기억하시는 것 중에 하나가 이태석 신부께서 악기를 아이들에게 쥐어주고 같이 공연도 하고 이런 것 많이 생각이 나거든요. 그러니까 톤즈 브라스 밴드인가요?

▶ 유명일 : 정확하게는 톤즈 돈 보스코 브라스 밴드고요. 별칭으로는 쫄리 밴드였습니다.

▷ 오태훈 : 이 악기들을 다 이태석 신부께서 직접 가르치셨다면서요?

▶ 유명일 : 참 놀라운데요. 이태석 신부님은 처음에는 풍금 그리고 기타를 자기가 혼자서 독학으로 다 깨우친 분입니다. 그리고 의대를 다니던 시절에는 첼로를 또 배우셔서 심취하셨고 수도원 와서는 관악기들을 혼자서 또 배우셨습니다. 그래서 아프리카에 갔을 때는 이미 여러 악기를 다 다루실 수 있었고 무엇보다제가 기억하는 이태석 신부님은 가르치는 데 굉장히 탁월하셨어요. 뭐 부끄럽지만 저도 이태석 신부님으로로부터 클라리넷을 배우고 함께 한국의 존스 밴드를 결성해서 활동을 했었는데요. 저 같이 음악적 소질이 없는 사람도 이태석 신부님이 가르치면 음악을 할 수 있을 만큼 정말 탁월한 그런 지휘자였고 교육자였습니다.

▷ 오태훈 : 중학교 때 작곡까지도 하셨고.

▶ 유명일 : 그렇죠.

▷ 오태훈 : 그리고 여러 다양한 악기를 다루시기도 했고 의사 활동도 하셨고. 하지만 세상을 보는 눈은 남들과는 많이 다르셨던 분이었고. 또 그걸 실천으로 옮기셨고 멀리 남수단까지 가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또 치료까지도 해주셨던 분입니다. 이렇게 훌륭하신 분이 우리 곁을 너무 빨리 떠나셨다는 게 너무나 안타깝고 게다가 그 젊은 나이에 휴가 차 우리나라에 왔다가 건강검진을 우연히 받았는데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던 거예요. 선고 받고 난 이후에 신부님의 삶이 어땠을까 참 그러네요.

▶ 유명일 : 그건 이제 대장암 판정을 받은 그날 물론 본인만이 알고 있었겠죠. 그리고 수도원에 돌아왔을 때 전혀 내색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그다음 날 바로 수단 어린이를 돕는 후원회가 있었고 그 후원회에 참석해서도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고 이렇게 많이 감동을 시키셨는데 후원회 끝나고 나중에 와서야 저희한테 어제 병원에서 대장암이라고 하더라. 이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그래서 저희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고 그러면서도 애써 내색하지 않으려고 그날부터 저희는 돌팔이라고 불렀습니다. 의사가 자기 몸 상태는 모르고 남들만 치료했다면서 돌팔이라고 그렇게 막 놀리기도 했는데 저희 마음은 너무나 아팠죠. 이제 그때가 사실 제가 이태석 신부님과 가장 친해진 1년인데요. 그 1년 동안 투병생활을 할 때 같은 수도원에 살면서 의연하게 자신의 그런 치료 여러 차례 항암치료를 견디시면서도 꼭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가고 싶다는 그 의지를 봤고요. 또 종래에는 너무나 고통스러워하고 그런 모습 그 안에서도 신부로서의 그 거룩함을 지키는 그 모습을 계속 지켜봤습니다.

▷ 오태훈 : 벌써 그러고 나서 1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태석 신부님은 우리가 기리는 것 말고도 신부님 뜻에 따라서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 유명일 : 이태석 신부님의 뜻을 이어받은 많은 단체들이 있습니다. 제가 몇 번 언급한 수단어린이 장학회를 통해서 지난 10년간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여러 선교지로 거의 100억 이상의 후원금이 갔습니다. 그리고 뿐만 아니라 많은 봉사자들이 이태석 신부님과 같이 봉사하겠다고 아프리카로 가셔서 거의 100여 명 이상이 여러 지역에서 봉사를 하셨습니다. 또 저희 수단어린이 장학회 말고도 스마일 톤즈재단이라든가 그리고 이태석 참사랑실천사업회, 부산사람 이태석 이런 단체들을 통해서 후원할 수도 있고요. 그런데 그런 가시적인 거 말고도 그냥 우리 주위에 정말 어려운 이들, 보잘것없는 이들을 위해서 친절하게 또 따뜻하게 사랑을 보여주면 그게 또 다른 이태석으로 사는 길 아닌가라는 생각합니다.

▷ 오태훈 : 알겠습니다. 이태석 신부께서 직접 부르셨던 라나에로스포의 사랑의 집 듣고 계신데요. 오태훈의 시사본부 금요초대석 고 이태석 신부님의 10주기 맞아서 이태석 위원회 위원장 맡고 있는 유명일 신부님과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 유명일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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