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짚어봐야 할 ‘방위비 분담금’ 코멘터리

입력 2020.02.15 (08:01) 수정 2020.02.16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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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의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단독 기사'가 될 만한, 그러니까 이목을 끌 만한 내용은 단연 '금액'과 '합의 조건'입니다. 애초 미국이 요구한 50억 달러(5조 8천억 원)에서 얼마로 좁혀지고 있는지, 전략자산 전개 등 추가 지원을 요구하는 항목 중에 어떤 것이 반영됐는지... 그러나 협상 테이블 위에 드러난 액수와 조건만을 논하다 보면, 분담의 원칙과 예산 감시 등 근본 문제는 간과하기 쉽습니다.

처음 미군이 주둔했을 때부터 우리가 방위비 분담금을 낸 건 아닙니다. 1966년 맺어진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에는 "한국이 제공하는 시설과 구역을 제외한 미군 주둔비용은 모두 미국이 부담한다"고 돼 있는데, 1991년 예외협정을 맺어 한국이 주한미군 방위비를 '일부 부담'하게 됐습니다.

첫 협정 당시 1,073억 원이던 분담금은 지난해 1조 389억 원으로 10배 가까이 뛰었습니다. 이제는 무려 6조 원 가까운 액수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미국의 증액 요구. 30년 동안 협상 테이블 아래 잠겨 있었던 문제를 '방위비 분담금 코멘터리'에 담아 봤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돈은 없었다…'미국 돈'인가 '한국 돈'인가

먼저, 방위비 분담금의 '국적' 문제입니다.

방위비 분담금을 놓고 한미 양국의 일부 당국자들은 서로 '네 돈'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 것만 챙기기도 바쁜 세상에 1조 원 가까운 돈을 놓고 서로 상대방의 것이라니... '의좋은 형제'가 울고 갈 것만 같은 우애(?)입니다.

분명히 우리 국민의 세금, '원화'로 지급되는 돈인데 왜 이런 '국적 논란'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자국 우선주의' 측면에서 미국의 입장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탄핵 변론에서까지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하는 등 미국 납세자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한국 돈'을 끌어온다는 점을 성과로 내세웁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건 우리 정부의 어정쩡한 태도인데요. 방위비 분담금에 대해 '미국에 지급한 이상 미국 돈'이란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겁니다. 주로 회계 감시의 필요성 등 방위비 분담금 관련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일부 정부 당국자들은 이 논리를 내세우며 "어쩔 수 없다" 말하고 있습니다.

원인철 공군참모총장원인철 공군참모총장

지난해 10월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이런 인식에 기반한 '황당한 답변'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미 공군 탄약 저장비를 우리 방위비 분담금으로 내주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원인철 공군참모총장은 이런 답을 내놓습니다.

"지금 저희들이 저장관리에 대한 비용을 미국 측으로부터 받고 있습니다. 그 비용을 저희가 방위비분담금으로 상계를 해서 저희 비용은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말씀드립니다."

우리 비용은 들어가지 않는다면서, 방위비분담금으로 상계한다? 당시 질의를 했던 김중로 의원은 이 답변을 듣고 개탄스러웠다고 했습니다. 당시엔 시간이 부족해 추가 질의를 못 했는데, 이런 말을 꼭 하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김중로 의원 (국회 국방위원회)김중로 의원 (국회 국방위원회)

"방위비 분담금은 우리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미군이 우리에게 받아간 방위비 분담금으로 탄약 저장비를 다시 지급하는 것을 두고 오히려 미국에게 돈을 받는다는 식으로 호도해선 안 됩니다."


또 하나, 문제가 된 미 공군 탄약은 바로 열화우라늄탄인데요. 걸프전 당시 전차도 폭파하는 위력을 보였지만 방사능 오염 부작용이 보고되면서 UN에서 사용금지 권고를 내렸습니다.

미군은 이런 열화우라늄탄 133만 발을 경기도 수원의 군 공항 지하 탄약고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열화우라늄탄 등 미 공군 탄약 저장비로 연간 72억 원의 방위비 분담금이 쓰이고 있습니다.

'4조 7천억 원' 쓰고, 보고서는 29페이지?


운영비가 모자란다며 매번 증액을 요구해 온 주한미군. 그러나 받아놓고도 다 쓰지 못한 미집행액과 불용액 등이 1조 3천억 원에 이릅니다.

방위비 분담금 항목을 살펴보면, 주한미군에서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의 인건비는 현금으로 지급되고, 훈련에 필요한 군사건설비와 탄약 보관 등 군사지원비는 현물로 지급되는데요.

애초엔 전액 현금으로 지급되다가 방위비 분담금으로 주한미군이 이자수익을 얻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군사건설비 등이 현물 지원으로 바뀌기도 했습니다.

현물, 그러니까 주한미군 측이 필요한 시설 등을 우리 국방부가 지어주면서 방위비 분담금 사용 내역을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내역이 베일에 가려져 있습니다.

2016년 주한미군이 국방부에 보고하는 방위비 분담금 집행내역서. 9,441억 원을 집행한 내역이 3장에 불과해 상세내역 확인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6년 주한미군이 국방부에 보고하는 방위비 분담금 집행내역서. 9,441억 원을 집행한 내역이 3장에 불과해 상세내역 확인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4년부터 주한미군은 우리 국방부에 해마다 방위비 분담금 집행내역서를 보고하는데요. 1조 원 가까이 쓰는 1년 치 보고서가 달랑 서너 장에 불과했습니다.

총액만 정해지면 그 중 인건비와 군사건설비, 군사시설비를 어떻게 배분할지는 주한미군이 정하게 되는데, 보고서엔 세 가지 항목에 얼마를 배정했는지만 나와 있을 뿐 상세 사업내역은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 (국회 외교통상위원회)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 (국회 외교통상위원회)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은 "국민 세금 4조 7천억 원, 매년 약 1조 규모로 5년 동안 집행된 내역이 총 보고된 서류 페이지가 29쪽에 불과하다는 것은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면서 "국정원 특수활동비도 이 정도는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송 의원은 "기본적인 국민의 예산회계권의 침범이고 예산 회계 집행의 국가 주권의 침범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월세'보다 받기 쉬운 '공돈'

집행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등 끊임없는 지적에도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 비준동의안은 매번 국회를 무사통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트럼프 미 대통령은 "브루클린의 임대아파트에서 (월세) 114.13달러를 받는 것보다 한국에서 10억 달러를 받는 게 더 쉬웠다"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월세'보다 받기 쉬운 돈에 대해 오히려 미국 의회에서 제동을 걸기도 했는데요. 2013년 미 상원 군사위원회는 해외미군 주둔비용 보고서를 통해 "주한미군이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을 의심스러운 가치나 경제적이지 않은 사업에 쓰고 있다"면서 "프리 머니(Free Money)" 즉 '공돈' 취급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대표적 사례로 주한미군이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 1,040만 달러를 들여 짓기로 한·미 제2사단 박물관을 예로 들었는데요. 취재 결과, 의회의 지적 때문인지 지난해 완공된 이 박물관은 방위비 분담금이 아닌 미 국방부 예산으로 지어졌는데 들어간 돈은 240만 달러, 28억 원가량이었습니다.

'한국 돈'으로 짓겠다고 했을 때에 비해 4분의 1 정도 절약된 금액인데요. 이에 대해 한국의 방위비분담금을 허투루 쓰려던 것 아니었냐고 주한미군 측에 물었지만 답변하지 않았습니다.

"인건비로 장난쳐선 안 돼"…'넘지 말아야 할 선'은?

외교부는 곧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재개할 계획입니다. 미국은 압박 수위를 높이면서 지난달 말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에 4월 1일부터 무급휴직을 예고했습니다.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인건비를 줄 돈이 없다는 건데요. 이에 대해 한국인 노동자들은 "어떻게 인건비를 갖고 장난을 칠 수 있느냐"며 협상 때마다 볼모가 되어야 하는 처지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손지오 주한미군한국인노조 사무국장은 "조속한 타결을 바라지만, 지금은 금액 차가 너무 크지 않느냐"면서 "우리는 잘 견뎌볼 테니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협상을 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2018년 국방백서를 보면, 한국이 주한미군에 지원하는 직간접 비용은 2015년 이미 5조 4,563억 원에 이릅니다. 방위비 분담금 외에 토지임대료, 기지 주변 정비, 카투사 비용, 각종 세금 면제 등을 합쳐 나온 금액입니다.

이미 미국이 요구하는 5조 8천억 원에 육박하는 부담을 지고 있는 만큼, 방위비 분담금을 여기서 더 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유영재 평화통일연구소 연구위원은 "방위비 분담금을 소폭 올리는 대신, 국방 예산으로 무기를 구매한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꼼수 타결'이 이뤄질까 봐 우려된다"면서 "우리의 국격이 높아진 만큼 당당한 협상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전시작전권이 미군에 있고, 북핵 위협이 현존하는 상황에서 증액은 불가피하다는 입장도 있습니다.

국민대 정치대학원 박휘락 교수는 "감정에만 치우칠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의 냉엄한 현실을 봐야 된다"면서 "(미군 복지라든지) 새로운 항목, 우리한테 크게 부담되지 않으면서 미군한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을 개발해 먼저 제안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청구서를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는 데는 양쪽 모두 이견이 없습니다.

외국어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기생충〉에는 넘지 말아야 할 '선'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로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의미하는데요. 그런 점에서 선을 넘은 건 기택(송강호)의 반지하 냄새가 아니라 박 사장(이선균)의 표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미국이 넘지 말아야 할, 지켜야 할 선은 무엇일까요?

* 덧붙임
오늘(15일) 밤 8시 5분, KBS1 TV에서는 <시사기획 창> '방위비 분담금-동맹비용 청구서' 편이 방송됩니다. 미국이 요구하는 전략자산 전개 비용. 가족지원 항목 등을 살펴보고 방위비 분담금 청구서에서 반드시 따져봐야 할 것은 무엇인지 짚어봤습니다.

1+1, 아울러 KBS의 유일한 영화전문기자이자 영화평론가인 송형국 기자의 시선으로 봉준호 감독의 작품 세계를 분석한 '장르:봉준호'도 함께 방송됩니다.

[시사기획 창] 방위비 분담금 동맹 비용 청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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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꼭 짚어봐야 할 ‘방위비 분담금’ 코멘터리
    • 입력 2020-02-15 08:01:53
    • 수정2020-02-16 00:27:11
    취재K
미국과의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단독 기사'가 될 만한, 그러니까 이목을 끌 만한 내용은 단연 '금액'과 '합의 조건'입니다. 애초 미국이 요구한 50억 달러(5조 8천억 원)에서 얼마로 좁혀지고 있는지, 전략자산 전개 등 추가 지원을 요구하는 항목 중에 어떤 것이 반영됐는지... 그러나 협상 테이블 위에 드러난 액수와 조건만을 논하다 보면, 분담의 원칙과 예산 감시 등 근본 문제는 간과하기 쉽습니다.

처음 미군이 주둔했을 때부터 우리가 방위비 분담금을 낸 건 아닙니다. 1966년 맺어진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에는 "한국이 제공하는 시설과 구역을 제외한 미군 주둔비용은 모두 미국이 부담한다"고 돼 있는데, 1991년 예외협정을 맺어 한국이 주한미군 방위비를 '일부 부담'하게 됐습니다.

첫 협정 당시 1,073억 원이던 분담금은 지난해 1조 389억 원으로 10배 가까이 뛰었습니다. 이제는 무려 6조 원 가까운 액수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미국의 증액 요구. 30년 동안 협상 테이블 아래 잠겨 있었던 문제를 '방위비 분담금 코멘터리'에 담아 봤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돈은 없었다…'미국 돈'인가 '한국 돈'인가

먼저, 방위비 분담금의 '국적' 문제입니다.

방위비 분담금을 놓고 한미 양국의 일부 당국자들은 서로 '네 돈'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 것만 챙기기도 바쁜 세상에 1조 원 가까운 돈을 놓고 서로 상대방의 것이라니... '의좋은 형제'가 울고 갈 것만 같은 우애(?)입니다.

분명히 우리 국민의 세금, '원화'로 지급되는 돈인데 왜 이런 '국적 논란'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자국 우선주의' 측면에서 미국의 입장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탄핵 변론에서까지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하는 등 미국 납세자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한국 돈'을 끌어온다는 점을 성과로 내세웁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건 우리 정부의 어정쩡한 태도인데요. 방위비 분담금에 대해 '미국에 지급한 이상 미국 돈'이란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겁니다. 주로 회계 감시의 필요성 등 방위비 분담금 관련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일부 정부 당국자들은 이 논리를 내세우며 "어쩔 수 없다" 말하고 있습니다.

원인철 공군참모총장
지난해 10월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이런 인식에 기반한 '황당한 답변'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미 공군 탄약 저장비를 우리 방위비 분담금으로 내주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원인철 공군참모총장은 이런 답을 내놓습니다.

"지금 저희들이 저장관리에 대한 비용을 미국 측으로부터 받고 있습니다. 그 비용을 저희가 방위비분담금으로 상계를 해서 저희 비용은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말씀드립니다."

우리 비용은 들어가지 않는다면서, 방위비분담금으로 상계한다? 당시 질의를 했던 김중로 의원은 이 답변을 듣고 개탄스러웠다고 했습니다. 당시엔 시간이 부족해 추가 질의를 못 했는데, 이런 말을 꼭 하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김중로 의원 (국회 국방위원회)
"방위비 분담금은 우리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미군이 우리에게 받아간 방위비 분담금으로 탄약 저장비를 다시 지급하는 것을 두고 오히려 미국에게 돈을 받는다는 식으로 호도해선 안 됩니다."


또 하나, 문제가 된 미 공군 탄약은 바로 열화우라늄탄인데요. 걸프전 당시 전차도 폭파하는 위력을 보였지만 방사능 오염 부작용이 보고되면서 UN에서 사용금지 권고를 내렸습니다.

미군은 이런 열화우라늄탄 133만 발을 경기도 수원의 군 공항 지하 탄약고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열화우라늄탄 등 미 공군 탄약 저장비로 연간 72억 원의 방위비 분담금이 쓰이고 있습니다.

'4조 7천억 원' 쓰고, 보고서는 29페이지?


운영비가 모자란다며 매번 증액을 요구해 온 주한미군. 그러나 받아놓고도 다 쓰지 못한 미집행액과 불용액 등이 1조 3천억 원에 이릅니다.

방위비 분담금 항목을 살펴보면, 주한미군에서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의 인건비는 현금으로 지급되고, 훈련에 필요한 군사건설비와 탄약 보관 등 군사지원비는 현물로 지급되는데요.

애초엔 전액 현금으로 지급되다가 방위비 분담금으로 주한미군이 이자수익을 얻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군사건설비 등이 현물 지원으로 바뀌기도 했습니다.

현물, 그러니까 주한미군 측이 필요한 시설 등을 우리 국방부가 지어주면서 방위비 분담금 사용 내역을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내역이 베일에 가려져 있습니다.

2016년 주한미군이 국방부에 보고하는 방위비 분담금 집행내역서. 9,441억 원을 집행한 내역이 3장에 불과해 상세내역 확인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4년부터 주한미군은 우리 국방부에 해마다 방위비 분담금 집행내역서를 보고하는데요. 1조 원 가까이 쓰는 1년 치 보고서가 달랑 서너 장에 불과했습니다.

총액만 정해지면 그 중 인건비와 군사건설비, 군사시설비를 어떻게 배분할지는 주한미군이 정하게 되는데, 보고서엔 세 가지 항목에 얼마를 배정했는지만 나와 있을 뿐 상세 사업내역은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 (국회 외교통상위원회)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은 "국민 세금 4조 7천억 원, 매년 약 1조 규모로 5년 동안 집행된 내역이 총 보고된 서류 페이지가 29쪽에 불과하다는 것은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면서 "국정원 특수활동비도 이 정도는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송 의원은 "기본적인 국민의 예산회계권의 침범이고 예산 회계 집행의 국가 주권의 침범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월세'보다 받기 쉬운 '공돈'

집행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등 끊임없는 지적에도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 비준동의안은 매번 국회를 무사통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트럼프 미 대통령은 "브루클린의 임대아파트에서 (월세) 114.13달러를 받는 것보다 한국에서 10억 달러를 받는 게 더 쉬웠다"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월세'보다 받기 쉬운 돈에 대해 오히려 미국 의회에서 제동을 걸기도 했는데요. 2013년 미 상원 군사위원회는 해외미군 주둔비용 보고서를 통해 "주한미군이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을 의심스러운 가치나 경제적이지 않은 사업에 쓰고 있다"면서 "프리 머니(Free Money)" 즉 '공돈' 취급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대표적 사례로 주한미군이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 1,040만 달러를 들여 짓기로 한·미 제2사단 박물관을 예로 들었는데요. 취재 결과, 의회의 지적 때문인지 지난해 완공된 이 박물관은 방위비 분담금이 아닌 미 국방부 예산으로 지어졌는데 들어간 돈은 240만 달러, 28억 원가량이었습니다.

'한국 돈'으로 짓겠다고 했을 때에 비해 4분의 1 정도 절약된 금액인데요. 이에 대해 한국의 방위비분담금을 허투루 쓰려던 것 아니었냐고 주한미군 측에 물었지만 답변하지 않았습니다.

"인건비로 장난쳐선 안 돼"…'넘지 말아야 할 선'은?

외교부는 곧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재개할 계획입니다. 미국은 압박 수위를 높이면서 지난달 말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에 4월 1일부터 무급휴직을 예고했습니다.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인건비를 줄 돈이 없다는 건데요. 이에 대해 한국인 노동자들은 "어떻게 인건비를 갖고 장난을 칠 수 있느냐"며 협상 때마다 볼모가 되어야 하는 처지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손지오 주한미군한국인노조 사무국장은 "조속한 타결을 바라지만, 지금은 금액 차가 너무 크지 않느냐"면서 "우리는 잘 견뎌볼 테니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협상을 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2018년 국방백서를 보면, 한국이 주한미군에 지원하는 직간접 비용은 2015년 이미 5조 4,563억 원에 이릅니다. 방위비 분담금 외에 토지임대료, 기지 주변 정비, 카투사 비용, 각종 세금 면제 등을 합쳐 나온 금액입니다.

이미 미국이 요구하는 5조 8천억 원에 육박하는 부담을 지고 있는 만큼, 방위비 분담금을 여기서 더 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유영재 평화통일연구소 연구위원은 "방위비 분담금을 소폭 올리는 대신, 국방 예산으로 무기를 구매한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꼼수 타결'이 이뤄질까 봐 우려된다"면서 "우리의 국격이 높아진 만큼 당당한 협상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전시작전권이 미군에 있고, 북핵 위협이 현존하는 상황에서 증액은 불가피하다는 입장도 있습니다.

국민대 정치대학원 박휘락 교수는 "감정에만 치우칠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의 냉엄한 현실을 봐야 된다"면서 "(미군 복지라든지) 새로운 항목, 우리한테 크게 부담되지 않으면서 미군한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을 개발해 먼저 제안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청구서를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는 데는 양쪽 모두 이견이 없습니다.

외국어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기생충〉에는 넘지 말아야 할 '선'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로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의미하는데요. 그런 점에서 선을 넘은 건 기택(송강호)의 반지하 냄새가 아니라 박 사장(이선균)의 표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미국이 넘지 말아야 할, 지켜야 할 선은 무엇일까요?

* 덧붙임
오늘(15일) 밤 8시 5분, KBS1 TV에서는 <시사기획 창> '방위비 분담금-동맹비용 청구서' 편이 방송됩니다. 미국이 요구하는 전략자산 전개 비용. 가족지원 항목 등을 살펴보고 방위비 분담금 청구서에서 반드시 따져봐야 할 것은 무엇인지 짚어봤습니다.

1+1, 아울러 KBS의 유일한 영화전문기자이자 영화평론가인 송형국 기자의 시선으로 봉준호 감독의 작품 세계를 분석한 '장르:봉준호'도 함께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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