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특수경비원의 죽음…“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산재 판정문”

입력 2020.03.05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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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진 고 김 씨의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판정서

숨진 고 김 씨의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판정서


① 바다에 떠오른 아들 주검…"진실 밝혀 달라"
② "산업 재해 아니다." 20대 특수경비원의 죽음, 판정서 근거 의문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이하 판정위)가 지난 1월 제주공항에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숨진 20대 경비원의 죽음이 개인적 요인에 가깝다며 산업재해 불승인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KBS 취재팀은 이 자료들을 분석한 전문가들과 김 씨의 죽음은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결론을 지었다.

직장 내 괴롭힘에도 산업재해 불인정

유족 측은 지난해 근로복지공단에 고 김 씨에 대한 유족급여를 청구했다. 유족급여는 근로자가 업무상 사유로 사망했을 때 유족에게 지급하는 산업재해보상 보험급여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은 업무상 이유로 정신적 이상 상태에 있는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경우 산업재해로 인정하고 있다. 판정은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 내린다.

하지만 판정위는 지난 1월 10일 김 씨(당시 27세)의 죽음이 "업무보다는 개인적 요인이 더 크다"며 불인정 결정을 내린다. 근거로 업무적 괴롭힘이 명확하지 않은 점, 사업장이 조치에 나서고 화해를 유도한 점 등을 들었다.

숨진 고 김 씨에 대한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판정서숨진 고 김 씨에 대한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판정서

"업무적인 괴롭힘 명확치 않아"

판정위는 먼저, 김 씨가 상급자와의 관계에서 업무적으로 괴롭힘을 당했는지 명확지 않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2018년 10월 3일 김 씨가 회사에 제출한 진술서에는 상급자의 욕설과 폭언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김 씨가 회사에 진술서를 제출하기 전 이미 다른 두 대원 역시, 해당 상급자의 폭언 행위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문제를 제기한 A 씨는 "목소리를 잘 안 내거나 다리가 아파 자세가 흐트러지면 욕을 했다. 비일비재했다. 경위서 쓴 사람 말고도 피해자가 더 있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진술서를 제출하고 이틀 뒤인 2018년 10월 5일부터 9차례나 정신건강의학과에 들러 업무상 괴롭힘에 의한 고통을 호소했다. KBS가 입수한 김 씨의 당시 정신진료기록부에는 회사의 미진한 대응에 대한 심정이 기록돼 있었다. 김 씨가 죽은 뒤 집에서 발견된 일기장(2018년 11월 4일~24일)에도 상사의 폭언에 대한 스트레스 등이 자필로 기록돼 있었다.


권동희 노무사는 "산재의 가장 기초가 되는 자료는 의무기록지"라며 "김 군의 정신과 의무기록지를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고, 그로 인해서 굉장한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군이 느꼈을 괴롭힘과 인식 능력 저하가 이미 의무기록지에 충분히 표현돼있고, 자살 판단에서 객관적인 기초가 될 수 있다"며 "정상적인 인식 능력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회사가 교대 순번 조정하고 화해 유도했다"

판정위는 또, 김 씨가 '회사가 같은 시간에 근무하지 않도록 교대 순번을 조정하고, 현장관리자가 지속적으로 화해를 유도한 점'을 불승인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당시 관리자 B 씨는 판정위 근거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B 씨는 "(2018년) 10월 8일 면담을 진행해 본사에 처음 보고서를 작성해 보냈지만, 조치가 없었다"며 "교대 순번 조정은 서로 얼굴을 마주치지 않게 하려고 팀원들이 양해해 순번을 변경한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회사 측 조치가 없어 내부에서 임시방편으로 최소한의 조치를 취했다는 얘기다.

또 다른 동료는 "김 군이 상급자와 나란히 근무만 서지 않았을 뿐, 휴게 시간과 근무지 이동과정에서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특히 김 씨의 진술서는 제출 사흘 뒤 면담 과정에서 가해자인 상급자에게 공개됐고, 심지어 삼자대면까지 이뤄졌다. 피해자 보호 원칙은 애초에 지켜지지 않았다.

사건을 검토한 백신옥 변호사는 "교대 순번이 이뤄졌다고 하나 가해자와의 분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본인이 원하는 반 변경도 이뤄지지 않았고, (해당 상급자에 대한) 징계도 이뤄지지 않았다. 회사에서 적절한 조치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고 김 씨에 대한 사건을 검토한 백신옥 변호사고 김 씨에 대한 사건을 검토한 백신옥 변호사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근로기준법에 마련된 '직장 내 괴롭힘'을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제도'에 따르면 사용자는 괴롭힘 신고를 받으면 즉시 조사에 나서야 하고, 조사 기간 근무 장소를 변경하고 유급휴가 명령 등을 내려야 한다. 괴롭힘이 확인되면 징계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백 변호사는 "직장 내 괴롭힘 규정이 지난해 개정됐기 때문에 2018년 12월에 발생한 이 사건에 직접 적용되지는 않는다"며 "다만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와 사용자가 취해야 할 조치 등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회사가 가해자에게 경고 및 근무지 이동 조치했다"

판정위는 회사 측에서 2018년 10월 30일 가해자에게 경고 및 근무지 이동 조치를 내린 점 또한 불인정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KBS 취재 결과 징계 조치와 근무지 이동 조치는 없었다.

김 씨의 직장 동료 B 씨는 "근무지를 변경할 때 회사에서 운영지원팀장 명의로 업무 연락이 온다. 해당 내용을 게시하고 조치가 이뤄지는데, 당시 제주지사에 내려온 게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상급자 역시 KBS와의 통화에서 '경고를 받은 적 없다'고 말했다. 이를 종합하면, 판정위가 잘못된 재해조사 내용을 근거로 판단을 내렸다고밖에 볼 수 없다.

임자운 변호사는 "근로복지공단이나 역학조사 기관이 재해조사를 했을 때 사실관계가 다른 경우가 있지만, 이에 대해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 조사가 잘못됐을 때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지는 결국 법원에서 다퉈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고 김 씨에 대한 사건을 검토한 임자운 변호사고 김 씨에 대한 사건을 검토한 임자운 변호사

이어 "도로에서 사람이 차에 치이면 차주가 교통신호를 지켰다고 해도 교통사고다. 회사가 예방조치를 했다고 해서 회사 책임이 인정되기 어렵다는 이유는 불승인 사유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 씨의 죽음은 산업재해…"판정서 자체도 문제"

대법원은 지난 2017년 근로자가 극심한 업무상 스트레스로 우울증세가 악화되고, 정상적인 인식 능력 등이 저하돼 자살에 이르게 된 경우 업무와 사망 사이의 상당 관계가 인정될 수 있다고 판시한 바 있다.

서울고등법원 역시 지난 2017년 12월 직장 내 성희롱 사건과 관련해 유족보상금 지급거부 처분 취소 소송에서 피해자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재판부는 "가해자와 한 공간에서 근무하는 것이 피해자의 우울증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는 점, 사건 발생 이후 미흡한 조치 등으로 피해자가 무기력감과 허무감 등을 경험할 수 있고, 이에 정신적으로 더 큰 고통을 받거나 우울증 증세를 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 "피해자가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았고, 다른 동료들에게 어려운 점을 토로한 사실을 고려할 때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은 점을 추론할 수 있는 점, 팀 배정으로 인한 고민 등이 우울증 악화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사료된다"라고 밝혔다.

백신옥 변호사는 판례 등을 근거로 "욕설 등 폭언에 시달렸다는 점이 여러 사람의 증언으로 명백히 입증되는 점, 피해자가 이 사건 이전에 정신적 질병으로 치료받은 적이 없는 점, 가해자와의 분리가 빨리 이루어지지 않은 점, 고발 이후에도 소속반 변경이 아닌 교대 순번 조정에 그친 점, 피해자에 대한 보호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 등이 확인된다"며 "김 씨의 죽음이 산업재해보상법 제37조 2항에 따른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고 김 씨에 대한 사건을 검토한 권동희 노무사고 김 씨에 대한 사건을 검토한 권동희 노무사

권동희 노무사는 판정서 자체에 문제를 제기했다. 권 노무사는 "판정위가 사업장에서 일정 조치가 있었다는 이유로 개인적 요인이 더 크다고 했지만, 개인적 요인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판정위가 인정 사실과 판단 사실을 오인하고 혼동한 나머지 판정의 일관성과 내용의 논리성이 부족한 결론을 도출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서면 답변을 통해 "청구인과 사업장 진술서 등 모든 제출서류와 진료기록부, 유관기관 조사기록 등을 기반으로 업무관련성 여부를 심의했다"고 밝혔다.

유족 "아들 명예 회복 위해 재심 준비할 것"

유족 측은 이번 산재 불인정과 관련해 재심을 준비하고 있다. 고 김 씨의 아버지 김만범씨는 "진실을 밝히고 아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모든 걸 걸겠다"고 말했다.

고 김 씨가 발견된 제주시 애월읍 가문동 포구 해안가. 지난달 17일 부모가 이곳을 찾아 아들의 넋을 달래고 있다.고 김 씨가 발견된 제주시 애월읍 가문동 포구 해안가. 지난달 17일 부모가 이곳을 찾아 아들의 넋을 달래고 있다.

유족은 이와 별개로 가해자와 회사 등을 상대로 민사 소송을 진행 중이다. 재판은 용역업체 본사가 있는 부산지방법원에서 열린다.

방송 다시 보기: 탐사K '인정받지 못한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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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대 특수경비원의 죽음…“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산재 판정문”
    • 입력 2020-03-05 13:20:13
    취재K

숨진 고 김 씨의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판정서


① 바다에 떠오른 아들 주검…"진실 밝혀 달라"
② "산업 재해 아니다." 20대 특수경비원의 죽음, 판정서 근거 의문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이하 판정위)가 지난 1월 제주공항에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숨진 20대 경비원의 죽음이 개인적 요인에 가깝다며 산업재해 불승인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KBS 취재팀은 이 자료들을 분석한 전문가들과 김 씨의 죽음은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결론을 지었다.

직장 내 괴롭힘에도 산업재해 불인정

유족 측은 지난해 근로복지공단에 고 김 씨에 대한 유족급여를 청구했다. 유족급여는 근로자가 업무상 사유로 사망했을 때 유족에게 지급하는 산업재해보상 보험급여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은 업무상 이유로 정신적 이상 상태에 있는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경우 산업재해로 인정하고 있다. 판정은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 내린다.

하지만 판정위는 지난 1월 10일 김 씨(당시 27세)의 죽음이 "업무보다는 개인적 요인이 더 크다"며 불인정 결정을 내린다. 근거로 업무적 괴롭힘이 명확하지 않은 점, 사업장이 조치에 나서고 화해를 유도한 점 등을 들었다.

숨진 고 김 씨에 대한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판정서
"업무적인 괴롭힘 명확치 않아"

판정위는 먼저, 김 씨가 상급자와의 관계에서 업무적으로 괴롭힘을 당했는지 명확지 않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2018년 10월 3일 김 씨가 회사에 제출한 진술서에는 상급자의 욕설과 폭언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김 씨가 회사에 진술서를 제출하기 전 이미 다른 두 대원 역시, 해당 상급자의 폭언 행위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문제를 제기한 A 씨는 "목소리를 잘 안 내거나 다리가 아파 자세가 흐트러지면 욕을 했다. 비일비재했다. 경위서 쓴 사람 말고도 피해자가 더 있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진술서를 제출하고 이틀 뒤인 2018년 10월 5일부터 9차례나 정신건강의학과에 들러 업무상 괴롭힘에 의한 고통을 호소했다. KBS가 입수한 김 씨의 당시 정신진료기록부에는 회사의 미진한 대응에 대한 심정이 기록돼 있었다. 김 씨가 죽은 뒤 집에서 발견된 일기장(2018년 11월 4일~24일)에도 상사의 폭언에 대한 스트레스 등이 자필로 기록돼 있었다.


권동희 노무사는 "산재의 가장 기초가 되는 자료는 의무기록지"라며 "김 군의 정신과 의무기록지를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고, 그로 인해서 굉장한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군이 느꼈을 괴롭힘과 인식 능력 저하가 이미 의무기록지에 충분히 표현돼있고, 자살 판단에서 객관적인 기초가 될 수 있다"며 "정상적인 인식 능력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회사가 교대 순번 조정하고 화해 유도했다"

판정위는 또, 김 씨가 '회사가 같은 시간에 근무하지 않도록 교대 순번을 조정하고, 현장관리자가 지속적으로 화해를 유도한 점'을 불승인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당시 관리자 B 씨는 판정위 근거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B 씨는 "(2018년) 10월 8일 면담을 진행해 본사에 처음 보고서를 작성해 보냈지만, 조치가 없었다"며 "교대 순번 조정은 서로 얼굴을 마주치지 않게 하려고 팀원들이 양해해 순번을 변경한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회사 측 조치가 없어 내부에서 임시방편으로 최소한의 조치를 취했다는 얘기다.

또 다른 동료는 "김 군이 상급자와 나란히 근무만 서지 않았을 뿐, 휴게 시간과 근무지 이동과정에서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특히 김 씨의 진술서는 제출 사흘 뒤 면담 과정에서 가해자인 상급자에게 공개됐고, 심지어 삼자대면까지 이뤄졌다. 피해자 보호 원칙은 애초에 지켜지지 않았다.

사건을 검토한 백신옥 변호사는 "교대 순번이 이뤄졌다고 하나 가해자와의 분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본인이 원하는 반 변경도 이뤄지지 않았고, (해당 상급자에 대한) 징계도 이뤄지지 않았다. 회사에서 적절한 조치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고 김 씨에 대한 사건을 검토한 백신옥 변호사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근로기준법에 마련된 '직장 내 괴롭힘'을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제도'에 따르면 사용자는 괴롭힘 신고를 받으면 즉시 조사에 나서야 하고, 조사 기간 근무 장소를 변경하고 유급휴가 명령 등을 내려야 한다. 괴롭힘이 확인되면 징계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백 변호사는 "직장 내 괴롭힘 규정이 지난해 개정됐기 때문에 2018년 12월에 발생한 이 사건에 직접 적용되지는 않는다"며 "다만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와 사용자가 취해야 할 조치 등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회사가 가해자에게 경고 및 근무지 이동 조치했다"

판정위는 회사 측에서 2018년 10월 30일 가해자에게 경고 및 근무지 이동 조치를 내린 점 또한 불인정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KBS 취재 결과 징계 조치와 근무지 이동 조치는 없었다.

김 씨의 직장 동료 B 씨는 "근무지를 변경할 때 회사에서 운영지원팀장 명의로 업무 연락이 온다. 해당 내용을 게시하고 조치가 이뤄지는데, 당시 제주지사에 내려온 게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상급자 역시 KBS와의 통화에서 '경고를 받은 적 없다'고 말했다. 이를 종합하면, 판정위가 잘못된 재해조사 내용을 근거로 판단을 내렸다고밖에 볼 수 없다.

임자운 변호사는 "근로복지공단이나 역학조사 기관이 재해조사를 했을 때 사실관계가 다른 경우가 있지만, 이에 대해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 조사가 잘못됐을 때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지는 결국 법원에서 다퉈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고 김 씨에 대한 사건을 검토한 임자운 변호사
이어 "도로에서 사람이 차에 치이면 차주가 교통신호를 지켰다고 해도 교통사고다. 회사가 예방조치를 했다고 해서 회사 책임이 인정되기 어렵다는 이유는 불승인 사유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 씨의 죽음은 산업재해…"판정서 자체도 문제"

대법원은 지난 2017년 근로자가 극심한 업무상 스트레스로 우울증세가 악화되고, 정상적인 인식 능력 등이 저하돼 자살에 이르게 된 경우 업무와 사망 사이의 상당 관계가 인정될 수 있다고 판시한 바 있다.

서울고등법원 역시 지난 2017년 12월 직장 내 성희롱 사건과 관련해 유족보상금 지급거부 처분 취소 소송에서 피해자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재판부는 "가해자와 한 공간에서 근무하는 것이 피해자의 우울증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는 점, 사건 발생 이후 미흡한 조치 등으로 피해자가 무기력감과 허무감 등을 경험할 수 있고, 이에 정신적으로 더 큰 고통을 받거나 우울증 증세를 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 "피해자가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았고, 다른 동료들에게 어려운 점을 토로한 사실을 고려할 때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은 점을 추론할 수 있는 점, 팀 배정으로 인한 고민 등이 우울증 악화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사료된다"라고 밝혔다.

백신옥 변호사는 판례 등을 근거로 "욕설 등 폭언에 시달렸다는 점이 여러 사람의 증언으로 명백히 입증되는 점, 피해자가 이 사건 이전에 정신적 질병으로 치료받은 적이 없는 점, 가해자와의 분리가 빨리 이루어지지 않은 점, 고발 이후에도 소속반 변경이 아닌 교대 순번 조정에 그친 점, 피해자에 대한 보호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 등이 확인된다"며 "김 씨의 죽음이 산업재해보상법 제37조 2항에 따른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고 김 씨에 대한 사건을 검토한 권동희 노무사
권동희 노무사는 판정서 자체에 문제를 제기했다. 권 노무사는 "판정위가 사업장에서 일정 조치가 있었다는 이유로 개인적 요인이 더 크다고 했지만, 개인적 요인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판정위가 인정 사실과 판단 사실을 오인하고 혼동한 나머지 판정의 일관성과 내용의 논리성이 부족한 결론을 도출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서면 답변을 통해 "청구인과 사업장 진술서 등 모든 제출서류와 진료기록부, 유관기관 조사기록 등을 기반으로 업무관련성 여부를 심의했다"고 밝혔다.

유족 "아들 명예 회복 위해 재심 준비할 것"

유족 측은 이번 산재 불인정과 관련해 재심을 준비하고 있다. 고 김 씨의 아버지 김만범씨는 "진실을 밝히고 아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모든 걸 걸겠다"고 말했다.

고 김 씨가 발견된 제주시 애월읍 가문동 포구 해안가. 지난달 17일 부모가 이곳을 찾아 아들의 넋을 달래고 있다.
유족은 이와 별개로 가해자와 회사 등을 상대로 민사 소송을 진행 중이다. 재판은 용역업체 본사가 있는 부산지방법원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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