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배원 잔혹사]① 年 693시간 더 노동…과로사·식물인간 속출

입력 2020.04.27 (16:31) 수정 2020.05.02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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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물인간이 된 집배원 김영수 씨의 눈물


지난 겨울, 취재진이 만난 김영수(49세/전 집배원) 씨는 식물인간 상태였다. 의식이 없고, 외부 자극에도 반응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런 김영수 씨가 갑자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영수 씨의 곁을 지키며 쉴 새 없이 말을 건네던 아내의 "고마워. 미안해."라는 말이 끝난 직후였다.



오늘로 361일째. 김영수 씨는 오늘도 말이 없다. 아내가 휴대전화를 꺼내 보여준 김영수 씨의 사진은 병상에서 만난 영수 씨와 사뭇 달랐다. 인상 좋고, 풍채 좋은 우리 머릿속에 늘 있는 '우체부 아저씨', 바로 그 모습이었다. 건강한 남편이었고, 자상한 아버지였던 그는 왜 식물인간이 된 것일까?

■ 재건축 분쟁지역 우편물 배달 민원 시달리다 뇌출혈


지난해 4월 30일 밤 9시. 모두 퇴근한 서울 서초우체국 4층 화장실에서 큰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순찰을 하던 보안요원이 달려갔을 때, 화장실 안에서 의식을 잃고 신음하고 있는 한 남성이 발견됐다. 김영수 씨였다. 영수 씨는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다. 뇌출혈이었고, 그 날 이후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응급실에 제가 도착해서 저희 신랑을 봤을 때는 아예 의식이 없었어요. 그 모습을 보니까 '정말 우리 부부는 최선을 다해서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왜 나지? 왜 우리지? 정말 신이 있으면 왜 우리한테 이렇게 하지?' 그 생각밖에 안 나더라고요." - 김OO /김영수 씨 아내


김영수 씨는 29년 차 집배원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배원이 됐다. 평생을 현장에서 일했다. 쓰러지기 몇 달 전, 그는 '집배실장'이 됐다. 집배원들의 업무를 조율하고, 집배원과 관련된 민원 업무를 처리했다. 배달 물량이 밀릴 때면 영수 씨는 다시 현장으로 달려가 후배들을 지원했다. 퇴근도 가장 마지막에 했다. 집배실 전체를 돌며 남은 직원이 없는지 확인한 뒤에야 퇴근했다.

그러나 지난해 초 뜻하지 않은 집단 민원에 휩싸였다. 배달 구역 내 재건축 아파트 주민들이었다. 해당 아파트는 재건축 문제를 둘러싸고 주민들 간에 파벌이 갈려 분쟁이 일어난 곳이었다. 엉뚱하게도 집배원의 우편물 배달로 불똥이 튀었다. 나뉘어 있던 한쪽 주민들이 불만사항을 민원으로 제기한 것이다. 민원은 집단 소송 움직임으로 번졌다. 영수 씨는 민원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후배 집배원과 함께 뛰어다니며 주민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이번에 민원이 제대로 좀 터진 부분이 있어요. 그래서 그거 때문에 집배실장님이 심적 부담을 이번에 많이 입었죠." - 김영수 씨 우체국 동료

그즈음 영수 씨에게 이상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던 김 씨는 퇴근 후 곧장 집으로 왔다. 밝고 다정했던 모습도 사라졌다. 방에서 나오지 않았고, 말수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영수 씨는 아내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도 꺼냈다.

"갑자기 죽고 싶다고 했어요, 저한테. 한 번도 그런 얘기한 적이 없거든요. 그러니까 뭐 비관적인 얘기를 한다거나 그런 사람이 아니라 정말 저는 그때 깜짝 놀랐어요. 처음 듣는 말이라. 그래서 제가 '○○아빠 그게 무슨 소리야.' 그랬거든요." - 김OO /김영수 씨 아내

그리고 이틀 뒤, 영수 씨는 식물인간이 돼 퇴근했다.

■ 공무원이니까, 공무원이라서…"집배원은 견뎌야 합니다."


"비 오는 날은 그 비를 다 맞아야 해요. 그리고 겨울에는 정말 여러 겹을 껴입어요. 그래도 피부가 다 터 있고 그다음에 손가락, 발가락 같은 데는 동상을 입어요. 그래도 한 번도 집에 와서 뭐 힘들다. 뭐 이런 얘기를 안 하니까…." - 김OO /김영수 씨 아내

아내는 남편과 결혼하기 전에는 몰랐다고 했다. '공무원이니까.' 하지만 아내가 20년 넘게 지켜본 집배원의 삶은 고되고, 또 혹독했다.

배달 물량이 넘쳤던 날에는 남편은 어김없이 자면서 끙끙 앓았다. 일하다 다쳐도 마음대로 병원을 갈 수도 없었다.

어느 해 겨울인가 영수 씨는 배달 중 다쳐 발목을 다쳤다. 신발을 신을 수 없을 정도로 부었지만 병원에 가지 못했다. 바쁜 시기 결원이 생길 경우, 해당 물량은 고스란히 동료 집배원들이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명절을 앞둔 특별수송기간이었다. 2년 뒤 영수 씨는 또다시 다리를 다쳤다.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고, 의사를 만났다. 의사는 2년 전 다쳤던 부분을 가리키며 금이 간 상태로 뼈가 붙어있다고 했다.


아내는 요즘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치는 집배원들을 보면 드는 생각이 있다고 했다.

"저 사람도 누군가의 남편일 거고 자식일 텐데 나 같은 일 겪으면 안 되는데 그 생각이 제일 많이 들어요. '아, 저렇게까지 막 뛰면서 하지 않아도 되는데….' 집배원들이 조금이라도 편한 걸 바라진 않거든요. 편한 게 아니라 내가 일을 하는데 안전하고 싶은 거죠. 쓰러지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게 너무 안타까워요." - 김OO /김영수 씨 아내

■ 집배원 잔혹사, 끝나지 않았다!


우정사업본부 노·사와 민간전문가 등 10명으로 구성된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은 지난 2017년 기준 집배원의 연간 노동시간을 2,745시간으로 집계했다. 한국 임금노동자 평균보다 693시간, OECD 회원국 평균보다 982시간 길다.

그러나 우정사업본부는 추진단의 자료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우정본부는 근무명령시간만을 적용해 2,493시간(2017년 기준)을 공식 노동시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공무원법에 따라서라는 게 이유다.


긴 인터뷰 도중 20년 가까이 함께 일한 우체국 동료 2명이 문병을 왔다. "얼른 일어나, 소주 한잔 해야지." 식물인간인 영수 씨가 알아들은 것일까? 꿈쩍 않던 얼굴 두 볼을 타고 눈물 두 줄기가 흘러내렸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병실에서 만났던 동료로부터 문자메시지 한 통을 받았다. 김영수 씨가 식물인간이 된 이유를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담듯 써내려간 내용이었다.


KBS탐사보도부는 5월2일(토) 밤 8시 5분 KBS 1TV <시사기획 창> '살인노동2부-죽음의 숫자' 편을 통해 집배원 과로사를 둘러싼 은폐된 진실을 폭로한다.

[연관 기사]
[집배원 잔혹사]① 年 693시간 더 노동…과로사·식물인간 속출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433724
[집배원 잔혹사]② 병가 중 독촉받다 극단적 선택…“사회적 타살”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434386
[집배원 잔혹사]③ 직무 탈진 ‘번아웃 증후군’ 5점 만점에 4.1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435347
[집배원 잔혹사]④ 돌연사 2배·자살 8배 증가…우체국은 ‘쉬쉬’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436275
[집배원 잔혹사]⑤ 46명 사망에 우정본부 “개인 특수 사례”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436922
[집배원 잔혹사]⑥ 사람 잡는 ‘집배부하량시스템·겸배’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437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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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배원 잔혹사]① 年 693시간 더 노동…과로사·식물인간 속출
    • 입력 2020-04-27 16:31:36
    • 수정2020-05-02 09:04:24
    탐사K

■ 식물인간이 된 집배원 김영수 씨의 눈물


지난 겨울, 취재진이 만난 김영수(49세/전 집배원) 씨는 식물인간 상태였다. 의식이 없고, 외부 자극에도 반응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런 김영수 씨가 갑자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영수 씨의 곁을 지키며 쉴 새 없이 말을 건네던 아내의 "고마워. 미안해."라는 말이 끝난 직후였다.



오늘로 361일째. 김영수 씨는 오늘도 말이 없다. 아내가 휴대전화를 꺼내 보여준 김영수 씨의 사진은 병상에서 만난 영수 씨와 사뭇 달랐다. 인상 좋고, 풍채 좋은 우리 머릿속에 늘 있는 '우체부 아저씨', 바로 그 모습이었다. 건강한 남편이었고, 자상한 아버지였던 그는 왜 식물인간이 된 것일까?

■ 재건축 분쟁지역 우편물 배달 민원 시달리다 뇌출혈


지난해 4월 30일 밤 9시. 모두 퇴근한 서울 서초우체국 4층 화장실에서 큰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순찰을 하던 보안요원이 달려갔을 때, 화장실 안에서 의식을 잃고 신음하고 있는 한 남성이 발견됐다. 김영수 씨였다. 영수 씨는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다. 뇌출혈이었고, 그 날 이후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응급실에 제가 도착해서 저희 신랑을 봤을 때는 아예 의식이 없었어요. 그 모습을 보니까 '정말 우리 부부는 최선을 다해서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왜 나지? 왜 우리지? 정말 신이 있으면 왜 우리한테 이렇게 하지?' 그 생각밖에 안 나더라고요." - 김OO /김영수 씨 아내


김영수 씨는 29년 차 집배원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배원이 됐다. 평생을 현장에서 일했다. 쓰러지기 몇 달 전, 그는 '집배실장'이 됐다. 집배원들의 업무를 조율하고, 집배원과 관련된 민원 업무를 처리했다. 배달 물량이 밀릴 때면 영수 씨는 다시 현장으로 달려가 후배들을 지원했다. 퇴근도 가장 마지막에 했다. 집배실 전체를 돌며 남은 직원이 없는지 확인한 뒤에야 퇴근했다.

그러나 지난해 초 뜻하지 않은 집단 민원에 휩싸였다. 배달 구역 내 재건축 아파트 주민들이었다. 해당 아파트는 재건축 문제를 둘러싸고 주민들 간에 파벌이 갈려 분쟁이 일어난 곳이었다. 엉뚱하게도 집배원의 우편물 배달로 불똥이 튀었다. 나뉘어 있던 한쪽 주민들이 불만사항을 민원으로 제기한 것이다. 민원은 집단 소송 움직임으로 번졌다. 영수 씨는 민원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후배 집배원과 함께 뛰어다니며 주민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이번에 민원이 제대로 좀 터진 부분이 있어요. 그래서 그거 때문에 집배실장님이 심적 부담을 이번에 많이 입었죠." - 김영수 씨 우체국 동료

그즈음 영수 씨에게 이상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던 김 씨는 퇴근 후 곧장 집으로 왔다. 밝고 다정했던 모습도 사라졌다. 방에서 나오지 않았고, 말수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영수 씨는 아내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도 꺼냈다.

"갑자기 죽고 싶다고 했어요, 저한테. 한 번도 그런 얘기한 적이 없거든요. 그러니까 뭐 비관적인 얘기를 한다거나 그런 사람이 아니라 정말 저는 그때 깜짝 놀랐어요. 처음 듣는 말이라. 그래서 제가 '○○아빠 그게 무슨 소리야.' 그랬거든요." - 김OO /김영수 씨 아내

그리고 이틀 뒤, 영수 씨는 식물인간이 돼 퇴근했다.

■ 공무원이니까, 공무원이라서…"집배원은 견뎌야 합니다."


"비 오는 날은 그 비를 다 맞아야 해요. 그리고 겨울에는 정말 여러 겹을 껴입어요. 그래도 피부가 다 터 있고 그다음에 손가락, 발가락 같은 데는 동상을 입어요. 그래도 한 번도 집에 와서 뭐 힘들다. 뭐 이런 얘기를 안 하니까…." - 김OO /김영수 씨 아내

아내는 남편과 결혼하기 전에는 몰랐다고 했다. '공무원이니까.' 하지만 아내가 20년 넘게 지켜본 집배원의 삶은 고되고, 또 혹독했다.

배달 물량이 넘쳤던 날에는 남편은 어김없이 자면서 끙끙 앓았다. 일하다 다쳐도 마음대로 병원을 갈 수도 없었다.

어느 해 겨울인가 영수 씨는 배달 중 다쳐 발목을 다쳤다. 신발을 신을 수 없을 정도로 부었지만 병원에 가지 못했다. 바쁜 시기 결원이 생길 경우, 해당 물량은 고스란히 동료 집배원들이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명절을 앞둔 특별수송기간이었다. 2년 뒤 영수 씨는 또다시 다리를 다쳤다.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고, 의사를 만났다. 의사는 2년 전 다쳤던 부분을 가리키며 금이 간 상태로 뼈가 붙어있다고 했다.


아내는 요즘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치는 집배원들을 보면 드는 생각이 있다고 했다.

"저 사람도 누군가의 남편일 거고 자식일 텐데 나 같은 일 겪으면 안 되는데 그 생각이 제일 많이 들어요. '아, 저렇게까지 막 뛰면서 하지 않아도 되는데….' 집배원들이 조금이라도 편한 걸 바라진 않거든요. 편한 게 아니라 내가 일을 하는데 안전하고 싶은 거죠. 쓰러지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게 너무 안타까워요." - 김OO /김영수 씨 아내

■ 집배원 잔혹사, 끝나지 않았다!


우정사업본부 노·사와 민간전문가 등 10명으로 구성된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은 지난 2017년 기준 집배원의 연간 노동시간을 2,745시간으로 집계했다. 한국 임금노동자 평균보다 693시간, OECD 회원국 평균보다 982시간 길다.

그러나 우정사업본부는 추진단의 자료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우정본부는 근무명령시간만을 적용해 2,493시간(2017년 기준)을 공식 노동시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공무원법에 따라서라는 게 이유다.


긴 인터뷰 도중 20년 가까이 함께 일한 우체국 동료 2명이 문병을 왔다. "얼른 일어나, 소주 한잔 해야지." 식물인간인 영수 씨가 알아들은 것일까? 꿈쩍 않던 얼굴 두 볼을 타고 눈물 두 줄기가 흘러내렸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병실에서 만났던 동료로부터 문자메시지 한 통을 받았다. 김영수 씨가 식물인간이 된 이유를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담듯 써내려간 내용이었다.


KBS탐사보도부는 5월2일(토) 밤 8시 5분 KBS 1TV <시사기획 창> '살인노동2부-죽음의 숫자' 편을 통해 집배원 과로사를 둘러싼 은폐된 진실을 폭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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