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걸프전 때보다 많다’ 인도·파키스탄 노동자 ‘철수 대작전’

입력 2020.05.07 (09:31) 수정 2020.05.07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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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에미리트(UAE)에 거주 중인 인도 노동자들을 귀국시키는 대규모 계획이 오늘(7일)부터 실행됩니다.

일단 첫날에는 아랍에미리트 수도 아부다비와 경제중심도시 두바이에서 항공편 1대씩이 출발해 인도로 향합니다. 주아랍에미리트 인도 대사관은 매일 귀국 비행편이 마련될 것이며, 해군 함정 3척도 노동자를 실어나르기 위해 인도에서 아랍에미리트로 향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앞서 파키스탄 역시 지난달 말부터 아랍에미리트 내 자국 노동자들을 귀국시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철수 대작전'이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랍에미리트에서만 귀국을 희망하는 인도 노동자 수가 20만 명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비행기 한 대에 200명씩 탄다고 하면 1,000편이 운항을 해야 모두 나를 수 있습니다.

1990년 걸프전이 발발했을 때 인도 정부가 쿠웨이트에서 자국민 17만 명을 항공편으로 철수시킨 적이 있는데 그때보다 더 많은 숫자입니다. 여기에 귀국 신청을 한 파키스탄 노동자 숫자 6만 명을 더하면 아랍에미리트에서 이뤄질 노동자 철수 작전의 규모는 더 커집니다.

1990년 걸프전 당시 쿠웨이트에서 비행기로 철수하는 인도인들1990년 걸프전 당시 쿠웨이트에서 비행기로 철수하는 인도인들

이처럼 두 나라 노동자들의 귀국을 희망하는 이유는 생활고 때문입니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경우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최근 3주 동안 사실상 24시간 통행금지를 시행했습니다. 라마단이 시작되면서 야간 통행금지로 규정이 완화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직장 출근 인원은 30%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일용직 일자리 중의 상당수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출근을 하지 않으니 회사 주차장에서 세차를 하던 노동자들은 수입이 끊겼습니다. 사무실 청소도 마찬가지입니다. 건설 현장도 상당수 공사가 중단됐습니다. 상업시설도 문을 닫았습니다.

이 때문에 일용직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고 통행금지 때문에 숙소에 머무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노동자들의 숙소는 한 방에 8명씩 생활하는 곳도 있을 만큼 거주 여건이 좋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코로나19에 걸리면 8명이 한꺼번에 감염될 수밖에 없습니다.

UAE의 한 숙소에 모여있는 외국인 노동자들UAE의 한 숙소에 모여있는 외국인 노동자들

이런 상황에서 아랍에미리트는 물론 인도와 파키스탄 정부는 노동자 귀국을 놓고 한동안 신경전을 벌였습니다. 아랍에미리트는 이들 노동자들의 거주지가 코로나19 확산의 진원지가 될 것을 염려했습니다. 두 나라가 왜 노동자들을 귀국시키지 않느냐며, 코로나19가 종식된 이후에도 노동비자 발급을 줄일 수 있다고 압박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인도와 파키스탄은 국내 코로나19 대응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시간을 끌었지만, 결국 자국 노동자들의 철수 작전에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인도 정부는 귀국 항공편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 등은 유지하기 어렵다고 미리 선언했습니다. 파키스탄도 지난달 말 아랍에미리트에서 파키스탄으로 온 여객기 가운데, 승객의 절반 정도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생활고를 피할 것인지, 코로나19 감염 우려를 피할 것인지, 인도와 파키스탄 노동자들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코로나19 검사를 기다리는 UAE 외국인 노동자들코로나19 검사를 기다리는 UAE 외국인 노동자들

아랍에미리트는 인구 천만 명 가운데 약 28%가 인도인, 13%는 파키스탄인입니다. 인구 구성 중 자국민이 차지하는 비중 11%보다 더 높습니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저임금 노동력이 석유 부국으로 유입됐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든 인도와 파키스탄인이 아랍에미리트에서 저임금 노동자로만 생활하는 건 결코 아닙니다. 아랍에미리트 정부와 은행, 기업과 병원 등의 전문 고위직에 종사하는 인도, 파키스탄인도 매우 많습니다. 귀금속 시장 등은 인도인들이 상권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미국식 수업을 하는 국제학교까지 인도 재단 소속인 곳이 많습니다. 고급 주택 단지에 가보면 인도와 파키스탄 사람들이 서양 사람들만큼 많습니다.

이는 과거 아랍에미리트와 인도가 모두 영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고, 영국이 인도의 동인도회사를 통해 아시아와 아랍 지역의 경제를 지배했던 역사적 배경이 작용합니다. 그래서 아랍에미리트 건국 전에는 이 지역에서 인도 화폐가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파키스탄은 영국이 철수한 이후 인도에서 분리 독립했으니 아랍에미리트와의 경제 관계는 인도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무튼 아랍에미리트와 인도, 파키스탄의 경제 협력, 특히 노동력 공급의 관계는 이번 코로나19를 계기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아랍에미리트 자국민들이 저임금 노동자로 일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인도와 파키스탄 두 나라의 노동력 공급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과밀 숙소 문제 등을 해결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면 임금 등은 증가할 수밖에 없으니, 노동자들의 국적 비율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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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5-07 09:31:40
    • 수정2020-05-07 09:33:38
    특파원 리포트
아랍에미리트(UAE)에 거주 중인 인도 노동자들을 귀국시키는 대규모 계획이 오늘(7일)부터 실행됩니다.

일단 첫날에는 아랍에미리트 수도 아부다비와 경제중심도시 두바이에서 항공편 1대씩이 출발해 인도로 향합니다. 주아랍에미리트 인도 대사관은 매일 귀국 비행편이 마련될 것이며, 해군 함정 3척도 노동자를 실어나르기 위해 인도에서 아랍에미리트로 향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앞서 파키스탄 역시 지난달 말부터 아랍에미리트 내 자국 노동자들을 귀국시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철수 대작전'이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랍에미리트에서만 귀국을 희망하는 인도 노동자 수가 20만 명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비행기 한 대에 200명씩 탄다고 하면 1,000편이 운항을 해야 모두 나를 수 있습니다.

1990년 걸프전이 발발했을 때 인도 정부가 쿠웨이트에서 자국민 17만 명을 항공편으로 철수시킨 적이 있는데 그때보다 더 많은 숫자입니다. 여기에 귀국 신청을 한 파키스탄 노동자 숫자 6만 명을 더하면 아랍에미리트에서 이뤄질 노동자 철수 작전의 규모는 더 커집니다.

1990년 걸프전 당시 쿠웨이트에서 비행기로 철수하는 인도인들
이처럼 두 나라 노동자들의 귀국을 희망하는 이유는 생활고 때문입니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경우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최근 3주 동안 사실상 24시간 통행금지를 시행했습니다. 라마단이 시작되면서 야간 통행금지로 규정이 완화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직장 출근 인원은 30%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일용직 일자리 중의 상당수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출근을 하지 않으니 회사 주차장에서 세차를 하던 노동자들은 수입이 끊겼습니다. 사무실 청소도 마찬가지입니다. 건설 현장도 상당수 공사가 중단됐습니다. 상업시설도 문을 닫았습니다.

이 때문에 일용직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고 통행금지 때문에 숙소에 머무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노동자들의 숙소는 한 방에 8명씩 생활하는 곳도 있을 만큼 거주 여건이 좋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코로나19에 걸리면 8명이 한꺼번에 감염될 수밖에 없습니다.

UAE의 한 숙소에 모여있는 외국인 노동자들
이런 상황에서 아랍에미리트는 물론 인도와 파키스탄 정부는 노동자 귀국을 놓고 한동안 신경전을 벌였습니다. 아랍에미리트는 이들 노동자들의 거주지가 코로나19 확산의 진원지가 될 것을 염려했습니다. 두 나라가 왜 노동자들을 귀국시키지 않느냐며, 코로나19가 종식된 이후에도 노동비자 발급을 줄일 수 있다고 압박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인도와 파키스탄은 국내 코로나19 대응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시간을 끌었지만, 결국 자국 노동자들의 철수 작전에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인도 정부는 귀국 항공편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 등은 유지하기 어렵다고 미리 선언했습니다. 파키스탄도 지난달 말 아랍에미리트에서 파키스탄으로 온 여객기 가운데, 승객의 절반 정도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생활고를 피할 것인지, 코로나19 감염 우려를 피할 것인지, 인도와 파키스탄 노동자들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코로나19 검사를 기다리는 UAE 외국인 노동자들
아랍에미리트는 인구 천만 명 가운데 약 28%가 인도인, 13%는 파키스탄인입니다. 인구 구성 중 자국민이 차지하는 비중 11%보다 더 높습니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저임금 노동력이 석유 부국으로 유입됐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든 인도와 파키스탄인이 아랍에미리트에서 저임금 노동자로만 생활하는 건 결코 아닙니다. 아랍에미리트 정부와 은행, 기업과 병원 등의 전문 고위직에 종사하는 인도, 파키스탄인도 매우 많습니다. 귀금속 시장 등은 인도인들이 상권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미국식 수업을 하는 국제학교까지 인도 재단 소속인 곳이 많습니다. 고급 주택 단지에 가보면 인도와 파키스탄 사람들이 서양 사람들만큼 많습니다.

이는 과거 아랍에미리트와 인도가 모두 영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고, 영국이 인도의 동인도회사를 통해 아시아와 아랍 지역의 경제를 지배했던 역사적 배경이 작용합니다. 그래서 아랍에미리트 건국 전에는 이 지역에서 인도 화폐가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파키스탄은 영국이 철수한 이후 인도에서 분리 독립했으니 아랍에미리트와의 경제 관계는 인도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무튼 아랍에미리트와 인도, 파키스탄의 경제 협력, 특히 노동력 공급의 관계는 이번 코로나19를 계기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아랍에미리트 자국민들이 저임금 노동자로 일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인도와 파키스탄 두 나라의 노동력 공급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과밀 숙소 문제 등을 해결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면 임금 등은 증가할 수밖에 없으니, 노동자들의 국적 비율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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