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독일 ‘코로나 핫스팟’ 도축장·난민수용소…“비좁고 과밀”

입력 2020.05.23 (07:00) 수정 2020.05.23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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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피해가 심각한 유럽에서 독일은 그나마 상대적으로 방역에 성공한 나라로 꼽힌다. 누적 확진자가 17만 8천여 명이 나왔는데 이 가운데 사망자(8천 2백여 명)와 완치자(15만 8천여 명)를 뺀 21일 현재 실제 감염자수는 만 2천 2백여 명이다. 하루 신규 확진자 천 명 이하, 신규 사망자 백 명 이하 추세가 열흘 이상 계속되고 있다. 하루 신규 확진자가 한 명도 안 나오는 연방주도 있다는 뉴스도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독일은 강력한 공공생활 제한 조치를 서서히 완화하고 있다. 지난달 말 상점을 시작으로 이달 들어 식당과 호텔이 문을 열기 시작했고, 학생들도 다시 등교하고 있다. 하지만 독일 보건당국을 다시 긴장시키는 사건이 있으니, 바로 도축장과 난민수용소에서의 집단 감염이다.

'코로나 핫스팟' 도축장·난민수용소


지난달 29일 독일 남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한 도축장에서 코로나19 감염자 300명이 나왔다. 전 직원 1,100명에 대한 검사 결과였다. 이후 확진자는 400여 명으로 증가했다.

이 달 9일에는 북부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 도축장 2곳에서 확진자 150여 명이 나왔다. 감염은 대형 회사로도 번졌다. 서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에 있는 베스트 플라이쉬 도축장에서도 감염자가 나오기 시작하더니 270여 명으로 증가했다. 베스트 플라이쉬는 독일에서 세 번째로 큰 육가공 업체인데, 니더작센 주에 있는 자회사에서도 90여 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또 남부 바이에른 주의 도축장에서도 80명 이상이 감염됐다. 현재까지의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독일 5개 주에서 모두 천 명 이상의 확진자가 나온 것으로 파악된다.


독일 곳곳에 분산돼 있는 난민수용소도 코로나19의 '핫스팟'(감염자 대량 발생구역)이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본 인근에 있는 장트 아우구스틴의 난민수용소. 17일부터 감염자 발생 소식이 전해지기 시작해 난민 300여 명 중 152명, 그리고 직원 13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으로 집계됐다.

난민수용소의 집단 감염은 이미 지난달부터 시작됐다. 한 수용소에서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수백 명의 확진자가 속출하고 있다. 보건당국이 집단 감염이 발생한 수용소 가운데 현재 7개 주 23개 수용소에서 검사를 진행 중인데, 난민 6,083명 중 1,367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다섯 명 중 한 명꼴이다. 조사가 진행될수록 감염시설과 확진자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비좁고 과밀"…위생 규정 준수 힘들어

도축장과 난민수용소, 두 곳의 공통점은 비좁은 시설에 너무 많은 인원이 몰려 있다는 점이다.

도축장 노동자들은 대부분 루마니아, 불가리아, 폴란드 등 동유럽 출신 노동자들이다. 도축장 일은 컨베이어 벨트 앞에 오랫동안 선 채로 소나 돼지 등 육중한 고기를 해체해야 하기 때문에 독일에서는 기피 직업으로 통한다. 하지만 동유럽 출신 노동자들에게는 기회의 직업이다. 일례로 루마니아 노동자들의 경우 고국에서 받는 월급의 4배를 독일 도축장에서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묵고 있는 숙소 상황이 너무 열악하다는 데 있다. 노동자들은 보통 합숙소에서 집단생활을 하는데, 이 숙소는 과거 군대 막사나 버려진 식당 등을 개조한 곳이 많다. 독일 방송에 나오는 숙소 화면을 보면, 비좁은 방에 여러 명이 함께 생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회사는 도축업체가 아니라 하청 인력업체들인데, 이 업체들이 노동자들에게 저렴하게 숙소를 제공한다. 오래돼 낡은 집에 많은 인원이 모여 살고 있지만, 이들을 고용한 인력업체는 주거 환경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작업 환경도 위생 규칙을 적용하기 어렵다. 육가공 컨베이어 벨트와 탈의실 등에서 1.5m 거리 유지가 불가능하다. 직원들이 마스크를 거꾸로 쓰는 등 잘못 착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더욱 문제인 것은 한 도축장에서 수백 명의 감염자가 나왔는데도, 일부 업체들은 감염자들을 따로 격리시키지 않고 비좁은 숙소에 그대로 머무르며 외출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난민수용소도 상황이 열악하긴 마찬가지다. 학교나 빈 건물을 개조하거나 컨테이너로 만든 수용소도 있다. 한 가족이 아닌 여러 사람이 좁은 공간에서 생활한다. 화장실과 샤워실을 공유하고, 음식 조리도 여러 가족이 같은 공간에서 하기 때문에 감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외국인 노동자·난민의 눈물…'대책 마련' 촉구

집단 감염이 잇따르자 독일 내에선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단기적으론 현재의 열악한 주거 환경을 개선하고, 장기적으로 이들의 정착 여건에 대한 제도적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 정부는 도축장 노동자 보호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우선 내년 1월부터 파견 근로자 도급 계약을 금지해, 해당 도축업체가 직접 고용한 사람이 아니면 일을 할 수 없도록 했다.

세관과 노동자 보호기관, 지역 보건소 등에게는 도축장 노동자 보호기준, 감염 방지기준, 보건 기준 준수 여부를 감시할 추가 조치를 마련하도록 했다. 이 같은 조치를 위반할 경우의 범칙금을 현재 만 5천 유로에서 3만 유로로 두 배 인상했다.

난민수용소에 대해서도 사전 예방적이고 광범위한 코로나19 진단 검사를 실시하고, 단일 객실형이나 분산형 숙소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난민 신청자에 대한 심사 절차를 신속히 진행해, 가능한 한 빨리 지방으로 할당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외국인 노동자와 난민. 경제적·정치적 사정으로 고국을 떠나 왔고, 독일 사회에서 취약한 환경에 노출돼 있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 이들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다. 집단 시설에서 위생규칙 준수가 안 될 뿐 아니라 감염된 이후의 보호 조치도 미흡하다. 문제를 인식한 독일 정부가 얼마나 빨리 움직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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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5-23 07:00:30
    • 수정2020-05-23 07: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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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피해가 심각한 유럽에서 독일은 그나마 상대적으로 방역에 성공한 나라로 꼽힌다. 누적 확진자가 17만 8천여 명이 나왔는데 이 가운데 사망자(8천 2백여 명)와 완치자(15만 8천여 명)를 뺀 21일 현재 실제 감염자수는 만 2천 2백여 명이다. 하루 신규 확진자 천 명 이하, 신규 사망자 백 명 이하 추세가 열흘 이상 계속되고 있다. 하루 신규 확진자가 한 명도 안 나오는 연방주도 있다는 뉴스도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독일은 강력한 공공생활 제한 조치를 서서히 완화하고 있다. 지난달 말 상점을 시작으로 이달 들어 식당과 호텔이 문을 열기 시작했고, 학생들도 다시 등교하고 있다. 하지만 독일 보건당국을 다시 긴장시키는 사건이 있으니, 바로 도축장과 난민수용소에서의 집단 감염이다.

'코로나 핫스팟' 도축장·난민수용소


지난달 29일 독일 남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한 도축장에서 코로나19 감염자 300명이 나왔다. 전 직원 1,100명에 대한 검사 결과였다. 이후 확진자는 400여 명으로 증가했다.

이 달 9일에는 북부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 도축장 2곳에서 확진자 150여 명이 나왔다. 감염은 대형 회사로도 번졌다. 서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에 있는 베스트 플라이쉬 도축장에서도 감염자가 나오기 시작하더니 270여 명으로 증가했다. 베스트 플라이쉬는 독일에서 세 번째로 큰 육가공 업체인데, 니더작센 주에 있는 자회사에서도 90여 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또 남부 바이에른 주의 도축장에서도 80명 이상이 감염됐다. 현재까지의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독일 5개 주에서 모두 천 명 이상의 확진자가 나온 것으로 파악된다.


독일 곳곳에 분산돼 있는 난민수용소도 코로나19의 '핫스팟'(감염자 대량 발생구역)이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본 인근에 있는 장트 아우구스틴의 난민수용소. 17일부터 감염자 발생 소식이 전해지기 시작해 난민 300여 명 중 152명, 그리고 직원 13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으로 집계됐다.

난민수용소의 집단 감염은 이미 지난달부터 시작됐다. 한 수용소에서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수백 명의 확진자가 속출하고 있다. 보건당국이 집단 감염이 발생한 수용소 가운데 현재 7개 주 23개 수용소에서 검사를 진행 중인데, 난민 6,083명 중 1,367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다섯 명 중 한 명꼴이다. 조사가 진행될수록 감염시설과 확진자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비좁고 과밀"…위생 규정 준수 힘들어

도축장과 난민수용소, 두 곳의 공통점은 비좁은 시설에 너무 많은 인원이 몰려 있다는 점이다.

도축장 노동자들은 대부분 루마니아, 불가리아, 폴란드 등 동유럽 출신 노동자들이다. 도축장 일은 컨베이어 벨트 앞에 오랫동안 선 채로 소나 돼지 등 육중한 고기를 해체해야 하기 때문에 독일에서는 기피 직업으로 통한다. 하지만 동유럽 출신 노동자들에게는 기회의 직업이다. 일례로 루마니아 노동자들의 경우 고국에서 받는 월급의 4배를 독일 도축장에서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묵고 있는 숙소 상황이 너무 열악하다는 데 있다. 노동자들은 보통 합숙소에서 집단생활을 하는데, 이 숙소는 과거 군대 막사나 버려진 식당 등을 개조한 곳이 많다. 독일 방송에 나오는 숙소 화면을 보면, 비좁은 방에 여러 명이 함께 생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회사는 도축업체가 아니라 하청 인력업체들인데, 이 업체들이 노동자들에게 저렴하게 숙소를 제공한다. 오래돼 낡은 집에 많은 인원이 모여 살고 있지만, 이들을 고용한 인력업체는 주거 환경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작업 환경도 위생 규칙을 적용하기 어렵다. 육가공 컨베이어 벨트와 탈의실 등에서 1.5m 거리 유지가 불가능하다. 직원들이 마스크를 거꾸로 쓰는 등 잘못 착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더욱 문제인 것은 한 도축장에서 수백 명의 감염자가 나왔는데도, 일부 업체들은 감염자들을 따로 격리시키지 않고 비좁은 숙소에 그대로 머무르며 외출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난민수용소도 상황이 열악하긴 마찬가지다. 학교나 빈 건물을 개조하거나 컨테이너로 만든 수용소도 있다. 한 가족이 아닌 여러 사람이 좁은 공간에서 생활한다. 화장실과 샤워실을 공유하고, 음식 조리도 여러 가족이 같은 공간에서 하기 때문에 감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외국인 노동자·난민의 눈물…'대책 마련' 촉구

집단 감염이 잇따르자 독일 내에선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단기적으론 현재의 열악한 주거 환경을 개선하고, 장기적으로 이들의 정착 여건에 대한 제도적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 정부는 도축장 노동자 보호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우선 내년 1월부터 파견 근로자 도급 계약을 금지해, 해당 도축업체가 직접 고용한 사람이 아니면 일을 할 수 없도록 했다.

세관과 노동자 보호기관, 지역 보건소 등에게는 도축장 노동자 보호기준, 감염 방지기준, 보건 기준 준수 여부를 감시할 추가 조치를 마련하도록 했다. 이 같은 조치를 위반할 경우의 범칙금을 현재 만 5천 유로에서 3만 유로로 두 배 인상했다.

난민수용소에 대해서도 사전 예방적이고 광범위한 코로나19 진단 검사를 실시하고, 단일 객실형이나 분산형 숙소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난민 신청자에 대한 심사 절차를 신속히 진행해, 가능한 한 빨리 지방으로 할당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외국인 노동자와 난민. 경제적·정치적 사정으로 고국을 떠나 왔고, 독일 사회에서 취약한 환경에 노출돼 있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 이들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다. 집단 시설에서 위생규칙 준수가 안 될 뿐 아니라 감염된 이후의 보호 조치도 미흡하다. 문제를 인식한 독일 정부가 얼마나 빨리 움직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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