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차별에 맞서야”…독일의 단호함은 어디에서?

입력 2020.06.05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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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장벽공원 벽화

베를린 장벽공원 벽화

현지시간 지난달 31일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 도르트문트와 파더보른의 경기. 1대 0으로 앞선 도르트문트의 흑인 공격수 제이든 산초가 추가 골을 터트린다. 무관중 경기라 관중석은 텅 비었지만, 산초는 유니폼 상의를 벗고 속옷에 적힌 문구를 내보인다. '조지 플로이드를 위한 정의'. 이 골 세리머니는 TV 중계화면으로 시청자에게 전달됐다.

경고와 바꾼 '정의' 세리머니…독일축구협회는 징계 안해

산초는 세리머니 후 심판으로부터 옐로카드를 받았다. 독일축구협회(DFB)가 경기장에서 상의 탈의와 정치적·종교적·개인적 표현을 금지하고, 이를 어길 경우 제재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일축구협회는 산초에 대해 징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협회는 "인종차별 반대라는 가치를 중시하고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경기장에서 추가로 인종차별 반대 행위가 있더라도 징계 절차를 밟지 않겠다고 설명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산초, 하키미, 매케니, 튀랑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산초, 하키미, 매케니, 튀랑

산초의 팀 동료로 같은 경기에서 골을 넣은 뒤 '플로이드를 위한 정의' 문구를 내보인 아슈라프 하키미, 팔에 '정의' 문구가 적힌 밴드를 두른 샬케04의 웨스턴 매케니, 한 쪽 무릎꿇기 골 세리모니를 한 묀헨글라트바흐의 공격수 마르쿠스 튀랑 등에 대해서도 독일축구협회는 징계하지 않았다.

프리츠 켈러 DFB 회장은 "DFB 감독위원회의 멀리 내다보는 결정을 환영하고 매우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독일 정부 "끔찍한 죽음…인종차별에 맞서야"

독일 정부는 미국에서의 이번 흑인 사망 사건에 대해 공식석상에서 분명한 입장을 내놓았다.

슈테펜 자이베르트 정부 대변인은 3일 정례 브리핑에서 "끔찍하고 피할 수 있었던 죽음"이라고 밝혔다. 자이베르트 대변인은 "독일과 전 세계 시민들, 독일 정부에게도 충격을 줬다. 메르켈 총리 입장도 그렇다. 폭력이 끝나길 바란다"고 힘줘 말했다. 또 "독일에도 인종차별이 있다. 독일을 비롯한 모든 사회는 지속해서 인종차별에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날(2일)엔 하이코 마스 외교장관이 미국에서 진행 중인 시위에 대해 평가했다. 마스 장관은 "평화적 인종차별 반대 시위는 이해할 만하고 합법적"이라고 말했다. 마스 장관은 "(플로이드가) 매우 끔찍하고 충격적인 방법으로 목숨을 잃었다"는 점도 지적했다.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앞 시위(5.31)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앞 시위(5.31)

독일 국민들도 백인 경찰관의 폭력적 진압에 대해 분명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주말 이틀 동안(5월 30, 31일) 베를린에는 연인원 4천 명가량이 브란덴부르크 문 옆 미국대사관 앞에 모였다. 피켓에는 '나도 숨을 쉴 수 없다', '플로이드에게 정의를', '검은 피부는 범죄가 아니다', '인종차별적 경찰권 반대' 등의 항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독일 일간 빌트가 '살인 경찰이 미국에 불을 붙였다'는 헤드라인 기사를 싣고, 쥐트도이체차이퉁이 "미국 흑인을 위한 정의는 여전히 멀다"고 전망하는 등 언론도 미국의 인종차별과 사회적 불평등 문제를 비판하고 있다.

"차별과 증오 절대 안돼"…독일 단호함의 원천은?

메르켈 독일 총리 아우슈비츠 수용소 방문(2019.12.6)메르켈 독일 총리 아우슈비츠 수용소 방문(2019.12.6)

지난해 12월 6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폴란드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의 '죽음의 벽' 앞에 섰다. 메르켈 총리는 유대인들이 처형당했던 이곳에 헌화하고 묵념했다.

메르켈 총리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대해 '깊은 부끄러움'을 느낀다며 전쟁 범죄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조했다. 이어 "여전히 인종주의에 대한 우려스러운 현실, 편협과 증오 범죄의 증가를 목도하고 있다"며 차별과 증오를 강력히 경계했다.

2차 세계대전 동안 나치가 학살한 유대인은 6백만 명. 독일은 전쟁 이후 나치 만행에 대해 국가 지도자들이 나서서 지속적으로 사죄하는 한편, 차별에 기반한 범죄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하고 있다.

독일 연방정부의 '차별금지법'은 인종과 출신, 성별, 종교, 장애 등에 대한 일체의 차별을 금지한다. 관청과 기업, 병원, 학교, 일상생활 등에서 차별의 유형을 규정하고, 이를 어길 경우의 처벌 규정도 형법 등에 정해 놓고 있다.

연방정부 대변인이 인정했듯이 독일에서도 반유대주의나 반난민 범죄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독일은 차별과 증오가 인류에 끼친 해악이 얼마나 큰지를 역사로부터 배웠고, 또 이를 되풀이하지 않기로 국민이 합의했기에 일부 시민들의 차별적 행동에 대해서는 사회 전체가 나서서 단호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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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차별에 맞서야”…독일의 단호함은 어디에서?
    • 입력 2020-06-05 10:25:36
    특파원 리포트

베를린 장벽공원 벽화

현지시간 지난달 31일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 도르트문트와 파더보른의 경기. 1대 0으로 앞선 도르트문트의 흑인 공격수 제이든 산초가 추가 골을 터트린다. 무관중 경기라 관중석은 텅 비었지만, 산초는 유니폼 상의를 벗고 속옷에 적힌 문구를 내보인다. '조지 플로이드를 위한 정의'. 이 골 세리머니는 TV 중계화면으로 시청자에게 전달됐다.

경고와 바꾼 '정의' 세리머니…독일축구협회는 징계 안해

산초는 세리머니 후 심판으로부터 옐로카드를 받았다. 독일축구협회(DFB)가 경기장에서 상의 탈의와 정치적·종교적·개인적 표현을 금지하고, 이를 어길 경우 제재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일축구협회는 산초에 대해 징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협회는 "인종차별 반대라는 가치를 중시하고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경기장에서 추가로 인종차별 반대 행위가 있더라도 징계 절차를 밟지 않겠다고 설명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산초, 하키미, 매케니, 튀랑
산초의 팀 동료로 같은 경기에서 골을 넣은 뒤 '플로이드를 위한 정의' 문구를 내보인 아슈라프 하키미, 팔에 '정의' 문구가 적힌 밴드를 두른 샬케04의 웨스턴 매케니, 한 쪽 무릎꿇기 골 세리모니를 한 묀헨글라트바흐의 공격수 마르쿠스 튀랑 등에 대해서도 독일축구협회는 징계하지 않았다.

프리츠 켈러 DFB 회장은 "DFB 감독위원회의 멀리 내다보는 결정을 환영하고 매우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독일 정부 "끔찍한 죽음…인종차별에 맞서야"

독일 정부는 미국에서의 이번 흑인 사망 사건에 대해 공식석상에서 분명한 입장을 내놓았다.

슈테펜 자이베르트 정부 대변인은 3일 정례 브리핑에서 "끔찍하고 피할 수 있었던 죽음"이라고 밝혔다. 자이베르트 대변인은 "독일과 전 세계 시민들, 독일 정부에게도 충격을 줬다. 메르켈 총리 입장도 그렇다. 폭력이 끝나길 바란다"고 힘줘 말했다. 또 "독일에도 인종차별이 있다. 독일을 비롯한 모든 사회는 지속해서 인종차별에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날(2일)엔 하이코 마스 외교장관이 미국에서 진행 중인 시위에 대해 평가했다. 마스 장관은 "평화적 인종차별 반대 시위는 이해할 만하고 합법적"이라고 말했다. 마스 장관은 "(플로이드가) 매우 끔찍하고 충격적인 방법으로 목숨을 잃었다"는 점도 지적했다.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앞 시위(5.31)
독일 국민들도 백인 경찰관의 폭력적 진압에 대해 분명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주말 이틀 동안(5월 30, 31일) 베를린에는 연인원 4천 명가량이 브란덴부르크 문 옆 미국대사관 앞에 모였다. 피켓에는 '나도 숨을 쉴 수 없다', '플로이드에게 정의를', '검은 피부는 범죄가 아니다', '인종차별적 경찰권 반대' 등의 항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독일 일간 빌트가 '살인 경찰이 미국에 불을 붙였다'는 헤드라인 기사를 싣고, 쥐트도이체차이퉁이 "미국 흑인을 위한 정의는 여전히 멀다"고 전망하는 등 언론도 미국의 인종차별과 사회적 불평등 문제를 비판하고 있다.

"차별과 증오 절대 안돼"…독일 단호함의 원천은?

메르켈 독일 총리 아우슈비츠 수용소 방문(2019.12.6)
지난해 12월 6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폴란드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의 '죽음의 벽' 앞에 섰다. 메르켈 총리는 유대인들이 처형당했던 이곳에 헌화하고 묵념했다.

메르켈 총리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대해 '깊은 부끄러움'을 느낀다며 전쟁 범죄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조했다. 이어 "여전히 인종주의에 대한 우려스러운 현실, 편협과 증오 범죄의 증가를 목도하고 있다"며 차별과 증오를 강력히 경계했다.

2차 세계대전 동안 나치가 학살한 유대인은 6백만 명. 독일은 전쟁 이후 나치 만행에 대해 국가 지도자들이 나서서 지속적으로 사죄하는 한편, 차별에 기반한 범죄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하고 있다.

독일 연방정부의 '차별금지법'은 인종과 출신, 성별, 종교, 장애 등에 대한 일체의 차별을 금지한다. 관청과 기업, 병원, 학교, 일상생활 등에서 차별의 유형을 규정하고, 이를 어길 경우의 처벌 규정도 형법 등에 정해 놓고 있다.

연방정부 대변인이 인정했듯이 독일에서도 반유대주의나 반난민 범죄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독일은 차별과 증오가 인류에 끼친 해악이 얼마나 큰지를 역사로부터 배웠고, 또 이를 되풀이하지 않기로 국민이 합의했기에 일부 시민들의 차별적 행동에 대해서는 사회 전체가 나서서 단호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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