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20시간 일하고 60만 원 받아요”…다시 불거진 이주 선원 실태

입력 2020.06.09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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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한국인 원양어선에서 작업 중인 이주 선원 모습

한 한국인 원양어선에서 작업 중인 이주 선원 모습

■ "너무 맞아서 일할 수가 없었어요"…이주 선원의 호소

"배를 탄 지 나흘째 되던 날, 한국인 조리장에게 맞았다. 한국말로 뭐라고 했는데 못 알아들었고, 그랬더니 자기가 시키는 대로 안 한다고 생각했는지 때리기 시작했다. 머리채를 잡고, 멱살을 잡고,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고, 한참을 폭행당했다.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맞을 때 옷을 잡아당겨서 옷이 다 찢어졌다. 너무 아파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지난해 한국 원양어선을 탄 베트남 출신 이주 선원의 증언입니다. 이주 선원을 대상으로 한 한국 원양어선의 인권침해 실태, 사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공익법센터 어필, 시민환경연구소, 환경운동연합, 환경정의재단, 선원이주노동자 인권네트워크 등은 2015년부터 이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왔고, 5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크게 바뀐 것이 없다는 이야기겠죠.

이번에도 이주 선원들의 인권침해 실태는 한 마디로 이랬습니다. 많이 일하고 터무니없이 적게 쉬고, 이에 걸맞은 돈은 못 받고, 때로는 돈을 받기는커녕 사실상 뺏기기도 하는 일. 이것도 모자라 폭행과 폭언까지 시달리는 말 그대로 '인권'이라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습니다. 하나씩 볼까요,

열악한 선내 숙소 모습열악한 선내 숙소 모습

■ 하루 18시간 일은 다반사…월급은 60만 원

먼저 '살인적인 노동시간'입니다. 공익법센터 어필과 환경정의재단은 2016~2019년 동안 한국 원양어선 41척에서 일했던 총 54명의 이주어선원과 인터뷰한 결과, 응답자의 다수(96%)가 하루 12시간 이상 고된 육체노동을 했고, 절반 이상(57%)이 하루 18시간 이상을 일해왔다고 밝혔습니다. 하루 20시간 이상 일한 선원들도 네 명 중 1명 이상(26%)이었습니다.

수면 시간을 포함한 휴식시간은 대부분의 선원들(65%)이 6시간 이하라고 증언했습니다. 노동시간을 규제하는 법이 부재한 상황에서 이주어선원들의 평균 하루 노동시간은 16.9시간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렇게 살인적인 노동을 하면서도 급여는 형편없었습니다. 선원 41%는 한 달에 미화 500달러, 한화 약 60만 원에 불과한 급여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심지어 정부가 별도로 정한 외국인 선원 최저임금인 미화 457달러, 한화 약 55만 원도 못 받는 선원들도 전체의 1/4 이상(28%)이나 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니까 결론은 대부분의 이주 선원 임금은 같은 직급의 한국인 선원의 월급 5,162,000원(2018년)의 1/10 수준이었습니다.

또 하나의 문제가 '보합제'로 불리는 일종의 성과급 문제였습니다. 보합제는 선주와 선원들 사이에 어획물 판매 이익을 일정한 비율로 분배하기로 하는 약정이 있는데, 이 보합제가 한국인 선원에게만 돌아가고, 이주 선원은 보합제 대상에서 제외되는 게 태반이라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이주 선원이 장시간 노동하는 대가가 고스란히 한국인 선원에게만 돌아가는 불합리한 구조라고 할 수 있겠죠.

이주 선원들이 조업 후 지상 숙소에서 식사하는 모습이주 선원들이 조업 후 지상 숙소에서 식사하는 모습

■ 인터뷰 도중 한국어 욕 따라 하던 선원들…"20명이 한 화장실 같이 썼다"

살인적으로 일하고, 돈도 제대로 못 받는 것도 억울한데 더 답답한 일이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폭력과 욕설의 '일상화'입니다. 사례를 볼까요,

이주 선원들은 신체적 폭력은 모두 한국인 선장, 부선장, 항해사나 갑판장에 의해 자행되었다고 합니다. 주로 손이나 둔기로 머리를 가격하거나, 따귀를 때리거나 발로 차는 행위들이 예사였다고 합니다. 또 얼마나 선원들이 욕을 많이 들었는지, 인터뷰 도중에 들었던 욕을 따라 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고 합니다. 혹여나 저항이라도 하려고 하면 "월급을 주지 않겠다"고 협박을 당했기 때문에 이런 환경에서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기타 생활 조건도 열악함, 그 자체였습니다. 양이 부족하거나 질이 낮은 식사, 스무 명 넘는 선원이 같이 써야 하는 단 한 개의 비좁은 실외 화장실, 선원이 열 명씩 동시에 씻어야 하는 샤워 시설, 소금기 있고 오염된 식수 제공. 심지어 한국 선원들은 정수기를 거친 물을 마셨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 정부 대책 나왔지만…

이런 증언이 나오자, 해양수산부는 오늘(9일) 부랴부랴 대책 발표에 나섰습니다.

해수부는 외국인 어선원의 인권을 보호하고, 근로환경 개선 등을 위해 외국인 선원 관리체계를 개편해 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주요 송출국과의 협력 강화 및 수협의 통합관리 등을 통해 외국인 선원 도입체계의 공공성 강화 ▲외국인 어선원에 대한 민-관 공동 실태조사 등을 통한 인권보호 ▲외국인 선원의 숙소·식수·급식기준 등 마련을 통한 근로환경 개선 ▲외국인 선원의 체계적 관리를 위한 제도 개선 ▲한국어, 근로고충 교육 등 교육체계 개편 등 그동안 제기되어 왔던 문제점들에 대한 개선방안이 담겨 있습니다.

이 같은 대책에 대해 실태조사를 해 온 한 관계자는 "해수부의 개선책이 나왔지만, 그동안 선원 실태에 대해 외면해 온 것에 대한 사과가 이뤄지지 않아 뜬금없이 발표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해수부의 대책 발표에는 그동안 지적해온 문제들이 큰 틀에서는 들어가 있다, 하지만 선원의 월급을 수협 등 여전히 선주들의 이익을 우선하는 단체에서 정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선주 중심'의 구조는 개선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정부 대책은 나왔지만, 구체성이 적다는 현장의 목소리. 이주 선원들의 열악한 환경은 언제쯤 확실히 개선되는 것일까요. 오늘도 한국 원양어선은 어김없이 출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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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일 20시간 일하고 60만 원 받아요”…다시 불거진 이주 선원 실태
    • 입력 2020-06-09 15:01:07
    취재K

한 한국인 원양어선에서 작업 중인 이주 선원 모습

■ "너무 맞아서 일할 수가 없었어요"…이주 선원의 호소

"배를 탄 지 나흘째 되던 날, 한국인 조리장에게 맞았다. 한국말로 뭐라고 했는데 못 알아들었고, 그랬더니 자기가 시키는 대로 안 한다고 생각했는지 때리기 시작했다. 머리채를 잡고, 멱살을 잡고,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고, 한참을 폭행당했다.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맞을 때 옷을 잡아당겨서 옷이 다 찢어졌다. 너무 아파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지난해 한국 원양어선을 탄 베트남 출신 이주 선원의 증언입니다. 이주 선원을 대상으로 한 한국 원양어선의 인권침해 실태, 사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공익법센터 어필, 시민환경연구소, 환경운동연합, 환경정의재단, 선원이주노동자 인권네트워크 등은 2015년부터 이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왔고, 5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크게 바뀐 것이 없다는 이야기겠죠.

이번에도 이주 선원들의 인권침해 실태는 한 마디로 이랬습니다. 많이 일하고 터무니없이 적게 쉬고, 이에 걸맞은 돈은 못 받고, 때로는 돈을 받기는커녕 사실상 뺏기기도 하는 일. 이것도 모자라 폭행과 폭언까지 시달리는 말 그대로 '인권'이라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습니다. 하나씩 볼까요,

열악한 선내 숙소 모습
■ 하루 18시간 일은 다반사…월급은 60만 원

먼저 '살인적인 노동시간'입니다. 공익법센터 어필과 환경정의재단은 2016~2019년 동안 한국 원양어선 41척에서 일했던 총 54명의 이주어선원과 인터뷰한 결과, 응답자의 다수(96%)가 하루 12시간 이상 고된 육체노동을 했고, 절반 이상(57%)이 하루 18시간 이상을 일해왔다고 밝혔습니다. 하루 20시간 이상 일한 선원들도 네 명 중 1명 이상(26%)이었습니다.

수면 시간을 포함한 휴식시간은 대부분의 선원들(65%)이 6시간 이하라고 증언했습니다. 노동시간을 규제하는 법이 부재한 상황에서 이주어선원들의 평균 하루 노동시간은 16.9시간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렇게 살인적인 노동을 하면서도 급여는 형편없었습니다. 선원 41%는 한 달에 미화 500달러, 한화 약 60만 원에 불과한 급여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심지어 정부가 별도로 정한 외국인 선원 최저임금인 미화 457달러, 한화 약 55만 원도 못 받는 선원들도 전체의 1/4 이상(28%)이나 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니까 결론은 대부분의 이주 선원 임금은 같은 직급의 한국인 선원의 월급 5,162,000원(2018년)의 1/10 수준이었습니다.

또 하나의 문제가 '보합제'로 불리는 일종의 성과급 문제였습니다. 보합제는 선주와 선원들 사이에 어획물 판매 이익을 일정한 비율로 분배하기로 하는 약정이 있는데, 이 보합제가 한국인 선원에게만 돌아가고, 이주 선원은 보합제 대상에서 제외되는 게 태반이라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이주 선원이 장시간 노동하는 대가가 고스란히 한국인 선원에게만 돌아가는 불합리한 구조라고 할 수 있겠죠.

이주 선원들이 조업 후 지상 숙소에서 식사하는 모습
■ 인터뷰 도중 한국어 욕 따라 하던 선원들…"20명이 한 화장실 같이 썼다"

살인적으로 일하고, 돈도 제대로 못 받는 것도 억울한데 더 답답한 일이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폭력과 욕설의 '일상화'입니다. 사례를 볼까요,

이주 선원들은 신체적 폭력은 모두 한국인 선장, 부선장, 항해사나 갑판장에 의해 자행되었다고 합니다. 주로 손이나 둔기로 머리를 가격하거나, 따귀를 때리거나 발로 차는 행위들이 예사였다고 합니다. 또 얼마나 선원들이 욕을 많이 들었는지, 인터뷰 도중에 들었던 욕을 따라 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고 합니다. 혹여나 저항이라도 하려고 하면 "월급을 주지 않겠다"고 협박을 당했기 때문에 이런 환경에서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기타 생활 조건도 열악함, 그 자체였습니다. 양이 부족하거나 질이 낮은 식사, 스무 명 넘는 선원이 같이 써야 하는 단 한 개의 비좁은 실외 화장실, 선원이 열 명씩 동시에 씻어야 하는 샤워 시설, 소금기 있고 오염된 식수 제공. 심지어 한국 선원들은 정수기를 거친 물을 마셨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 정부 대책 나왔지만…

이런 증언이 나오자, 해양수산부는 오늘(9일) 부랴부랴 대책 발표에 나섰습니다.

해수부는 외국인 어선원의 인권을 보호하고, 근로환경 개선 등을 위해 외국인 선원 관리체계를 개편해 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주요 송출국과의 협력 강화 및 수협의 통합관리 등을 통해 외국인 선원 도입체계의 공공성 강화 ▲외국인 어선원에 대한 민-관 공동 실태조사 등을 통한 인권보호 ▲외국인 선원의 숙소·식수·급식기준 등 마련을 통한 근로환경 개선 ▲외국인 선원의 체계적 관리를 위한 제도 개선 ▲한국어, 근로고충 교육 등 교육체계 개편 등 그동안 제기되어 왔던 문제점들에 대한 개선방안이 담겨 있습니다.

이 같은 대책에 대해 실태조사를 해 온 한 관계자는 "해수부의 개선책이 나왔지만, 그동안 선원 실태에 대해 외면해 온 것에 대한 사과가 이뤄지지 않아 뜬금없이 발표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해수부의 대책 발표에는 그동안 지적해온 문제들이 큰 틀에서는 들어가 있다, 하지만 선원의 월급을 수협 등 여전히 선주들의 이익을 우선하는 단체에서 정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선주 중심'의 구조는 개선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정부 대책은 나왔지만, 구체성이 적다는 현장의 목소리. 이주 선원들의 열악한 환경은 언제쯤 확실히 개선되는 것일까요. 오늘도 한국 원양어선은 어김없이 출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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