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딸이 상무에 최대주주라고요?” 이스타항공 취재, 남겨진 의문들

입력 2020.06.27 (14:40) 수정 2020.06.27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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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직 의원 딸이 이스타항공 상무라고요?"
"네. 서른 한살인가, 두 살인가...연봉이 1억이 넘어요"

이스타항공의 임금 체불 문제를 알아본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스타항공의 한 직원과 통화하다 들은 내용입니다. 취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계기이기도 합니다. 민주당 이상직 의원의 딸인 이수지 이스타항공 마케팅본부장에 대한 얘깁니다.

만 26살에 이스타항공의 사외이사가 되고, 2년 뒤에는 마케팅 본부장을 맡게 된 이수지 상무. 여기까지는 그냥 '드라마 속 재벌 2세'의 얘기 같습니다. 하지만 그 드라마 속 주인공의 회사 직원들이 다섯 달 동안이나 월급을 받지 못했다면, 그래서 생계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돈을 빌리러 다니고, 집을 팔고 있는 중이라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이야기의 장르가 트렌디 드라마에서 사회비판 정극으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상직 의원 "경영 관여 안 한 지 7년째"…딸은 이스타항공 임원, 석연치 않은 승계 과정


그렇게 본격적으로 시작된 취재, 창업주인 민주당 이상직 의원부터 찾아갔습니다. 국회에서 어렵게 만난 이 의원은 "경영에 관여하지 않은 지 7년째"라고 했습니다. 딸이 20대 때 이스타항공의 등기임원이자 이사회 일원이 됐는데 아버지인 이 의원이 관여하지 않는 게 가능할까?

이 의원은 "제주항공이 해결하기로 한 문제"라는 말도 했습니다. 이스타항공은 현재 제주항공과의 인수합병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스타항공의 지분 51%가량을 제주항공에 넘기고 그 대가로 540여억 원을 받게 되는데, 이 매각대금도 역시 대부분은 이 의원 일가에게 돌아갑니다.

이스타항공의 지주회사이자 제주항공과의 인수합병을 주도하고 있는 이스타홀딩스라는 회사가 딸 이수지 씨와 그 남동생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딸이 현 경영진이고, 수백억의 막대한 매각대금도 이 의원 일가에게 돌아가는데, 임금 체불에 대해서는 자기 책임이 아니라고 선을 그은 겁니다.

이 의원의 자녀들이 이스타항공의 실소유주가 된 과정도 석연치 않았습니다. 이 의원은 2012년 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이스타항공의 경영권을 자신의 형인 이경일 전 KIC 그룹 회장에게 넘겼고, 2013년 초에는 나라에이스홀딩스라는 회사로 경영권이 넘어갔습니다. 이후 이스타항공의 지분을 두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회사들이 나타나 복잡한 거래들을 이어갑니다. 그러다 2015년, 갑자기 이스타홀딩스라는 회사가 등장합니다. 이 의원의 두 자녀가 자본금 3천만 원으로 세운 회삽니다. 이 이스타홀딩스는 설립 1년도 채 안 돼 이스타항공의 지분 68%를 보유하며 최대주주로 올라서게 됩니다. 알 수 없는 회사들을 돌고 돈 끝에 이스타항공은 어느새 이상직 의원에게서 그 자녀들에게로 넘어가게 된 겁니다.

자녀 소유 '이스타홀딩스'는 소재지는 고급 레지던스… 딸 이수지 씨는 투자천재?

이스타홀딩스라는 곳은 대체 어떤 회사일까. 일단 이수지 씨가 대표로 있는 이스타홀딩스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등기부등본에 나온 주소대로 찾아가 보니, 여의도의 고급 주거용 레지던스가 나왔습니다. 시세를 확인해보니 한 달 월세가 300만 원이 넘는 곳이었습니다. 물론 업무상 꼭 필요하다면 월세 비싼 곳에 사무실을 잡았다는 게 비판받을 문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스타홀딩스의 직원은 단 한 명, 이수지 씨 뿐이었습니다. 손익계산서를 확인해보니 영업이익 부분이 아예 없었습니다. '영업이익'을 낼 수 있는 수익활동이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무실은 사실상 이수지 씨의 주거 용도로 이용되는 곳으로 파악됐습니다.


경제민주주의21의 대표 김경율 회계사와 함께 들여다본 이스타홀딩스의 재무상태는 더욱 이상한 점 투성이였습니다. 이스타항공의 주식을 매입하는 데는 최소 100억 원 가량이 들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물론 이 액수도 '헐값'이라는 게 업계의 전반적인 평가입니다. 2015년 이스타항공의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자산이 천억 원 가량인 회사인데, 아무리 부채가 많아 자본잠식 상태였다 하더라도 100억 원에 경영권을 획득하는 건 어려운 일이라는 겁니다. 이스타항공의 재무상태가 매우 악화한 지금도 지분 51%가 500억 원으로 매각가가 형성된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별다른 경력이 없는 만 25살 청년이 세운 자본금 3천만 원짜리 회사가, 수익사업도 따로 없는 이 회사가 무슨 수로 100억 원(추정치)에 달하는 자금을 끌어모을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100억 원으로 어떻게 자산 천억 원대의 회사를 손에 넣었을까요? 그 과정을 살펴보기 위해 당시의 감사보고서를 확인해 봤지만 결과는 '의견 거절'. 재무제표도, 손익계산서도, 현금흐름표도...아무것도 제시하지 않아 회계감사를 도저히 할 수 없었다는 의미였습니다. 김 회계사도 수차례 놀라움의 탄식(?)을 했습니다.

김경율 회계사
"회사 입장에서 의견 거절이 나와버리면 금융기관과의 거래가 불가능해요. 사실 이런 경우는 어떤 경우냐면 완전히 망한 회사, 없어질 회사라면 '너희한테 돈 주면서 천만 원 이천만 원 주면서 감사받느니 안 받겠다'고 하는 건데 이 회사는 항공사의 지주회사란 말입니다. 실소유주가 우리나라의 국회의원이고 계속 공직 생활을 해오시는 분인데 이렇게 재무제표를 미제출하고 이렇게 해서 의견거절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사례가 드물다 어쩐다를 떠나서 저는 개인적으로 처음 보는 일이고 상식에도 부합하지 않죠"

이스타항공 측 "제주항공에 매각해도 남는 돈 없어"…정말일까?

KBS 취재진은 수차례 이 의원과 이수지 대표에게 자금 출처와 이스타항공 주식 매입 과정을 물었지만 대답은 없었습니다. 대신, 이스타항공 측이 25일 입장을 냈는데요.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이스타홀딩스의 설립과 이스타항공 주식 취득은 사모펀드를 통해 지극히 합법적이고 공개적 방식으로 진행됐다. 어떠한 불법이나 편법도 없었고, 모든 세금도 성실히 납부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계약서를 증거로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모펀드, 대여인이 누군지도, 회사 이름이 무엇인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자금 출처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있는 겁니다.

또 2016년도 감사보고서가 왜 의견거절을 당했는지에 대해서도 해명하지 않았습니다.

이스타항공은 "이스타홀딩스가 제주항공과 추진 중인 인수합병결과 막대한 차익을 얻을 것이란 보도는 사실관계를 철저히 외면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매각대금 중 410억 원 가량이 이스타홀딩스 측으로 돌아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후 소송과 과징금, 우발채무를 위한 담보 제공, 주식 매각에 따른 세금과 부채 상환 등을 부담해야 해 남는 돈이 없다는 겁니다.

정말일까요?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우선 제주항공과의 인수 계약이 어떤 형태로 이뤄졌는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타항공 지분 51%에 대한 매각 대금은 540억 원 가량입니다. 이 돈이 전부 다 이스타홀딩스로 돌아가지는 않습니다. 이스타홀딩스는 최대주주 지위 확보 뒤 지분을 계속 팔았기 때문에 지금 남은 지분은 38% 정도이고, 매각 대금에서는 410억 원 정도에 해당됩니다. 사측은 이 중 110억 원 가량은 부실채권을 정리하는 데 사용해야 하고, 70억 원 가량은 세금으로 빠져나간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실이라 해도 대략 230억 원 정도가 이스타홀딩스에 남습니다.

여기서부터가 좀 복잡합니다. 이 230억 원 가량 중 200억 원은 현금이 아닌 전환사채, 즉 CB로 보유하기로 했다는 겁니다. 이스타항공 CB가 100억 원, 제주항공 CB가 100억 원 가량입니다. CB란 미리 정해놓은 가격으로 나중에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를 주는 채권인데, 이스타홀딩스가 현금 200억 원이 아닌 CB 200억 원 어치를 가지게 된 사연은 이렇습니다.


우선 이스타홀딩스는 제주항공에서 계약금으로 받은 100억 원 가량을 스스로 이스타항공 CB 매입에 사용했습니다. 유동성 공급 명목입니다. 어려운 말 같아 보이지만 간단합니다. 이스타홀딩스가 제주항공에서 계약금 100억 원을 받았는데 이스타항공의 자금난이 심각하니, 이 돈을 일단 이스타항공에 빌려주고 나중에 경영이 정상화되면 이스타항공의 주식으로 돌려받겠다는 겁니다.

제주항공에서 100억을 CB로 주기로 한 이유도 현금을 아끼기 위해섭니다. 코로나19로 항공업계 모두 자금이 풍족하지 않은 상황인데, CB로 주면 당장 100억 원을 현금은 아낄 수 있으니 제주항공 입장에서는 그렇게 나쁜 거래가 아닙니다.

이제 이스타홀딩스에 남은 돈은 약 30억 정도입니다. 이건 이스타홀딩스의 채무를 갚는 데에 사용된다고 사측 관계자는 전했습니다. 그럼 이제 정말 홀딩스에 남는 돈이 없게 되는 걸까요?

의원 임기 뒤 항공업계 복귀 발판 마련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아까 CB는 정해진 가격으로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라고 설명했는데요, 현금이 아닐 뿐이지 이 CB는 고스란히 남습니다. 인수계약이 모두 마무리되고 이스타항공의 경영이 어느 정도 안정화 된 다음에는 CB를 주식으로 바꿀수도 있고 현금화도 가능합니다. 다시 이스타항공과 제주항공의 대주주 지위를 획득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제주항공 CB의 기한은 2025년 3월. 이 의원 국회의원 임기가 끝난 뒤에도 이 의원 일가가 다시 항공업계로 돌아올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셈입니다.

게다가 이번 인수합병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비디인터내셔널'은 등기부등본상 이상직 의원의 친형인 이경일 씨가 대표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즉 매각대금 540억 원 중 이스타홀딩스가 가져가는 410억 원 말고도, 나머지 금액의 상당 부분이 이상직 의원 일가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는 얘깁니다.


취재진의 계속된 질문에도 묵묵부답이었던 이스타항공 측은, 21일부터 KBS의 보도가 시작되고 의혹이 증폭되자 25일 입장문을 내고 "체불임금 110억 원을 이스타홀딩스가 부담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전체 체불 임금은 250억 원 가량이지만, 일부라도 이스타항공 측이 직접 부담하겠다고 공식화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전까지는 인수 상대자인 제주항공이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습니다. 이스타항공조종사노조가 "이 의원 일가가 매각대금 일부라도 챙겨 나가기 위해 체불임금 해결을 후순위로 미룬 것 아니냐"고 항의하는 이윱니다.

제주항공과의 인수합병 계약 종료일은 29일로 알려져 있지만 업계에서는 29일에 인수합병이 마무리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이스타항공의 직원들은 여전히 임금을 받지 못한 채 경영 정상화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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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딸이 상무에 최대주주라고요?” 이스타항공 취재, 남겨진 의문들
    • 입력 2020-06-27 14:40:19
    • 수정2020-06-27 14:41:47
    취재후·사건후
"이상직 의원 딸이 이스타항공 상무라고요?"
"네. 서른 한살인가, 두 살인가...연봉이 1억이 넘어요"

이스타항공의 임금 체불 문제를 알아본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스타항공의 한 직원과 통화하다 들은 내용입니다. 취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계기이기도 합니다. 민주당 이상직 의원의 딸인 이수지 이스타항공 마케팅본부장에 대한 얘깁니다.

만 26살에 이스타항공의 사외이사가 되고, 2년 뒤에는 마케팅 본부장을 맡게 된 이수지 상무. 여기까지는 그냥 '드라마 속 재벌 2세'의 얘기 같습니다. 하지만 그 드라마 속 주인공의 회사 직원들이 다섯 달 동안이나 월급을 받지 못했다면, 그래서 생계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돈을 빌리러 다니고, 집을 팔고 있는 중이라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이야기의 장르가 트렌디 드라마에서 사회비판 정극으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상직 의원 "경영 관여 안 한 지 7년째"…딸은 이스타항공 임원, 석연치 않은 승계 과정


그렇게 본격적으로 시작된 취재, 창업주인 민주당 이상직 의원부터 찾아갔습니다. 국회에서 어렵게 만난 이 의원은 "경영에 관여하지 않은 지 7년째"라고 했습니다. 딸이 20대 때 이스타항공의 등기임원이자 이사회 일원이 됐는데 아버지인 이 의원이 관여하지 않는 게 가능할까?

이 의원은 "제주항공이 해결하기로 한 문제"라는 말도 했습니다. 이스타항공은 현재 제주항공과의 인수합병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스타항공의 지분 51%가량을 제주항공에 넘기고 그 대가로 540여억 원을 받게 되는데, 이 매각대금도 역시 대부분은 이 의원 일가에게 돌아갑니다.

이스타항공의 지주회사이자 제주항공과의 인수합병을 주도하고 있는 이스타홀딩스라는 회사가 딸 이수지 씨와 그 남동생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딸이 현 경영진이고, 수백억의 막대한 매각대금도 이 의원 일가에게 돌아가는데, 임금 체불에 대해서는 자기 책임이 아니라고 선을 그은 겁니다.

이 의원의 자녀들이 이스타항공의 실소유주가 된 과정도 석연치 않았습니다. 이 의원은 2012년 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이스타항공의 경영권을 자신의 형인 이경일 전 KIC 그룹 회장에게 넘겼고, 2013년 초에는 나라에이스홀딩스라는 회사로 경영권이 넘어갔습니다. 이후 이스타항공의 지분을 두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회사들이 나타나 복잡한 거래들을 이어갑니다. 그러다 2015년, 갑자기 이스타홀딩스라는 회사가 등장합니다. 이 의원의 두 자녀가 자본금 3천만 원으로 세운 회삽니다. 이 이스타홀딩스는 설립 1년도 채 안 돼 이스타항공의 지분 68%를 보유하며 최대주주로 올라서게 됩니다. 알 수 없는 회사들을 돌고 돈 끝에 이스타항공은 어느새 이상직 의원에게서 그 자녀들에게로 넘어가게 된 겁니다.

자녀 소유 '이스타홀딩스'는 소재지는 고급 레지던스… 딸 이수지 씨는 투자천재?

이스타홀딩스라는 곳은 대체 어떤 회사일까. 일단 이수지 씨가 대표로 있는 이스타홀딩스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등기부등본에 나온 주소대로 찾아가 보니, 여의도의 고급 주거용 레지던스가 나왔습니다. 시세를 확인해보니 한 달 월세가 300만 원이 넘는 곳이었습니다. 물론 업무상 꼭 필요하다면 월세 비싼 곳에 사무실을 잡았다는 게 비판받을 문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스타홀딩스의 직원은 단 한 명, 이수지 씨 뿐이었습니다. 손익계산서를 확인해보니 영업이익 부분이 아예 없었습니다. '영업이익'을 낼 수 있는 수익활동이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무실은 사실상 이수지 씨의 주거 용도로 이용되는 곳으로 파악됐습니다.


경제민주주의21의 대표 김경율 회계사와 함께 들여다본 이스타홀딩스의 재무상태는 더욱 이상한 점 투성이였습니다. 이스타항공의 주식을 매입하는 데는 최소 100억 원 가량이 들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물론 이 액수도 '헐값'이라는 게 업계의 전반적인 평가입니다. 2015년 이스타항공의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자산이 천억 원 가량인 회사인데, 아무리 부채가 많아 자본잠식 상태였다 하더라도 100억 원에 경영권을 획득하는 건 어려운 일이라는 겁니다. 이스타항공의 재무상태가 매우 악화한 지금도 지분 51%가 500억 원으로 매각가가 형성된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별다른 경력이 없는 만 25살 청년이 세운 자본금 3천만 원짜리 회사가, 수익사업도 따로 없는 이 회사가 무슨 수로 100억 원(추정치)에 달하는 자금을 끌어모을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100억 원으로 어떻게 자산 천억 원대의 회사를 손에 넣었을까요? 그 과정을 살펴보기 위해 당시의 감사보고서를 확인해 봤지만 결과는 '의견 거절'. 재무제표도, 손익계산서도, 현금흐름표도...아무것도 제시하지 않아 회계감사를 도저히 할 수 없었다는 의미였습니다. 김 회계사도 수차례 놀라움의 탄식(?)을 했습니다.

김경율 회계사
"회사 입장에서 의견 거절이 나와버리면 금융기관과의 거래가 불가능해요. 사실 이런 경우는 어떤 경우냐면 완전히 망한 회사, 없어질 회사라면 '너희한테 돈 주면서 천만 원 이천만 원 주면서 감사받느니 안 받겠다'고 하는 건데 이 회사는 항공사의 지주회사란 말입니다. 실소유주가 우리나라의 국회의원이고 계속 공직 생활을 해오시는 분인데 이렇게 재무제표를 미제출하고 이렇게 해서 의견거절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사례가 드물다 어쩐다를 떠나서 저는 개인적으로 처음 보는 일이고 상식에도 부합하지 않죠"

이스타항공 측 "제주항공에 매각해도 남는 돈 없어"…정말일까?

KBS 취재진은 수차례 이 의원과 이수지 대표에게 자금 출처와 이스타항공 주식 매입 과정을 물었지만 대답은 없었습니다. 대신, 이스타항공 측이 25일 입장을 냈는데요.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이스타홀딩스의 설립과 이스타항공 주식 취득은 사모펀드를 통해 지극히 합법적이고 공개적 방식으로 진행됐다. 어떠한 불법이나 편법도 없었고, 모든 세금도 성실히 납부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계약서를 증거로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모펀드, 대여인이 누군지도, 회사 이름이 무엇인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자금 출처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있는 겁니다.

또 2016년도 감사보고서가 왜 의견거절을 당했는지에 대해서도 해명하지 않았습니다.

이스타항공은 "이스타홀딩스가 제주항공과 추진 중인 인수합병결과 막대한 차익을 얻을 것이란 보도는 사실관계를 철저히 외면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매각대금 중 410억 원 가량이 이스타홀딩스 측으로 돌아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후 소송과 과징금, 우발채무를 위한 담보 제공, 주식 매각에 따른 세금과 부채 상환 등을 부담해야 해 남는 돈이 없다는 겁니다.

정말일까요?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우선 제주항공과의 인수 계약이 어떤 형태로 이뤄졌는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타항공 지분 51%에 대한 매각 대금은 540억 원 가량입니다. 이 돈이 전부 다 이스타홀딩스로 돌아가지는 않습니다. 이스타홀딩스는 최대주주 지위 확보 뒤 지분을 계속 팔았기 때문에 지금 남은 지분은 38% 정도이고, 매각 대금에서는 410억 원 정도에 해당됩니다. 사측은 이 중 110억 원 가량은 부실채권을 정리하는 데 사용해야 하고, 70억 원 가량은 세금으로 빠져나간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실이라 해도 대략 230억 원 정도가 이스타홀딩스에 남습니다.

여기서부터가 좀 복잡합니다. 이 230억 원 가량 중 200억 원은 현금이 아닌 전환사채, 즉 CB로 보유하기로 했다는 겁니다. 이스타항공 CB가 100억 원, 제주항공 CB가 100억 원 가량입니다. CB란 미리 정해놓은 가격으로 나중에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를 주는 채권인데, 이스타홀딩스가 현금 200억 원이 아닌 CB 200억 원 어치를 가지게 된 사연은 이렇습니다.


우선 이스타홀딩스는 제주항공에서 계약금으로 받은 100억 원 가량을 스스로 이스타항공 CB 매입에 사용했습니다. 유동성 공급 명목입니다. 어려운 말 같아 보이지만 간단합니다. 이스타홀딩스가 제주항공에서 계약금 100억 원을 받았는데 이스타항공의 자금난이 심각하니, 이 돈을 일단 이스타항공에 빌려주고 나중에 경영이 정상화되면 이스타항공의 주식으로 돌려받겠다는 겁니다.

제주항공에서 100억을 CB로 주기로 한 이유도 현금을 아끼기 위해섭니다. 코로나19로 항공업계 모두 자금이 풍족하지 않은 상황인데, CB로 주면 당장 100억 원을 현금은 아낄 수 있으니 제주항공 입장에서는 그렇게 나쁜 거래가 아닙니다.

이제 이스타홀딩스에 남은 돈은 약 30억 정도입니다. 이건 이스타홀딩스의 채무를 갚는 데에 사용된다고 사측 관계자는 전했습니다. 그럼 이제 정말 홀딩스에 남는 돈이 없게 되는 걸까요?

의원 임기 뒤 항공업계 복귀 발판 마련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아까 CB는 정해진 가격으로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라고 설명했는데요, 현금이 아닐 뿐이지 이 CB는 고스란히 남습니다. 인수계약이 모두 마무리되고 이스타항공의 경영이 어느 정도 안정화 된 다음에는 CB를 주식으로 바꿀수도 있고 현금화도 가능합니다. 다시 이스타항공과 제주항공의 대주주 지위를 획득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제주항공 CB의 기한은 2025년 3월. 이 의원 국회의원 임기가 끝난 뒤에도 이 의원 일가가 다시 항공업계로 돌아올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셈입니다.

게다가 이번 인수합병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비디인터내셔널'은 등기부등본상 이상직 의원의 친형인 이경일 씨가 대표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즉 매각대금 540억 원 중 이스타홀딩스가 가져가는 410억 원 말고도, 나머지 금액의 상당 부분이 이상직 의원 일가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는 얘깁니다.


취재진의 계속된 질문에도 묵묵부답이었던 이스타항공 측은, 21일부터 KBS의 보도가 시작되고 의혹이 증폭되자 25일 입장문을 내고 "체불임금 110억 원을 이스타홀딩스가 부담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전체 체불 임금은 250억 원 가량이지만, 일부라도 이스타항공 측이 직접 부담하겠다고 공식화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전까지는 인수 상대자인 제주항공이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습니다. 이스타항공조종사노조가 "이 의원 일가가 매각대금 일부라도 챙겨 나가기 위해 체불임금 해결을 후순위로 미룬 것 아니냐"고 항의하는 이윱니다.

제주항공과의 인수합병 계약 종료일은 29일로 알려져 있지만 업계에서는 29일에 인수합병이 마무리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이스타항공의 직원들은 여전히 임금을 받지 못한 채 경영 정상화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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