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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셋” 주장했지만…30대 가장 10년 만에 미국에 인도
입력 2020.06.29 (15:12) 취재K
“아이가 셋” 주장했지만…30대 가장 10년 만에 미국에 인도
"주문. 범죄인을 청구국인 미합중국에 인도할 것을 허가한다."

어린아이를 품에 안고, 차마 앉지도 못한 채 재판을 지켜보던 아내는 결국 오열했습니다. "안 돼요, 안 돼. 우린 이제 어떻게 살라고…"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느냐는 재판부의 질문에 남편은 끝내 입을 떼지 못했습니다.

법정 경위의 안내를 받아 구치감으로 들어가기 전, 아내와 남편은 마지막으로 손을 잡고 서로를 바라봤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 통곡하는 아내에게 남편은 "잘 있어, 다녀올게. 알겠지?"라는 말만 남긴 채 뒤돌아섰습니다.

남편과 아내, 아이 셋. 단란했던 이 가족의 갑작스러운 생이별은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 미국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벌어졌습니다.

■ 미국서 '음주 뺑소니' 재판받다 도피…10년 만에 법정에 선 남성

2010년 6월 12일, 당시 21살이던 이 모 씨는 혈중알코올농도 0.09%의 만취 상태에서 시속 100km로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고속도로를 운전했습니다. 그러던 중 오토바이를 들이받았고, 피해자는 뇌출혈과 갈비뼈 골절 등의 상해를 입었는데요.

이 씨는 이때 구호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고 도주한 이른바 '뺑소니' 혐의로, 같은 해 8월 23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법원에 기소됐습니다. 이듬해 3월 3일 재판에 출석한 이 씨는 음주운전으로 교통사고를 일으켜 피해자에게 상해를 입힌 사실을 모두 인정했죠.

그런데 이 씨는 4월 15일 판결선고기일을 나흘 앞두고 미국을 떠나 우리나라로 도피한 뒤, 영영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캘리포니아주 법원은 곧바로 이 씨에 대한 보석을 취소하고 구속영장을 발부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미국은 2017년 11월, 이 씨에 대한 범죄인 인도를 요청했고 서울고등검찰청은 지난 5월 26일 법원에 정식으로 심사를 청구했습니다. 결국 이 씨는 지난 15일 한국에서 10년 만에 법정에 서게 됐습니다.

그리고 서울고등법원 형사20부(재판장 강영수)가 오늘(29일), 이 씨에 대해 범죄인 인도 허가 결정을 내린 겁니다. 올해 우리나라에서 외국으로의 범죄인 인도가 결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 "저는 10년 전과 똑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지난 15일 열린 1차 심문에서 이 씨는 해당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한국 7년, 미국 3년)가 이미 완성된 데다 국내에서도 비일비재하게 벌어질 만큼 상대적으로 중한 범죄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비록 죄를 저지르긴 했지만, 10년 뒤 미국에 다시 보낼 만한 범죄는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또 미국에서 수사와 재판을 받을 당시 인종차별적 대우를 받았고,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면 부당한 처벌을 받을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도 내놨습니다. 무엇보다 이 씨가 한국에 돌아와 군대를 다녀오고 결혼도 해 쌍둥이와 갓난아이 등 3명의 자녀를 뒀는데, 이 중 한 명이 발달지연 상태에 있어 이 씨가 미국으로 떠나면 아내 혼자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한국에 와서 많은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여자친구도 만나고 가족도 생기고 쌍둥이도 생긴 다음에 한 달 전 셋째도 생겼습니다. 그때는 철도 없었고 저 혼자밖에 생각을 안 했는데 한국에 와서 이렇게 행복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도 있으니 좋은 아빠가 되고 싶은데...아내는 혼자 아이 셋을 돌보며 일을 해야 합니다. 돌아오면 저는 한국에서 아무것도 안 남을 겁니다. 애들을 지킬 수 있고 같이 옆에서 올바르게 키울 기회를 주면 좋겠습니다. 저는 10년 전과 똑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검찰은 반발했습니다. 개별적으로는 누구나 다 사정이 있겠지만, 정당한 사법절차를 멈출 수는 없다는 겁니다. 그게 여러 국가와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한 취지이기도 하고, 엄연한 '약속'인 만큼 지켜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 법원 "특별한 사유 있더라도 약속 지켜야…반대 경우도 마찬가지"

재판부는 이 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우선 법 집행을 피하려고 도피한 기간은 공소시효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조약상 규정 등을 근거로 공소시효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이 씨가 일부 사실관계를 다투고는 있지만, 해당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은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재판부는 아울러 이 씨가 현재 세 아이의 아버지이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더라도, 범죄인 인도 조약의 취지와 미국에서 이미 사법절차가 진행되고 있었던 사정 등을 종합하면 이 씨를 미국으로 인도하는 게 적정하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특히, 만약 미국인이 우리나라에서 범죄인 인도 대상이 되는 범죄를 저질러 기소된 뒤 재판을 받다가 미국으로 도피했다면, 우리나라도 당연히 미국이 범죄인 인도에 응할 것을 기대할 거라고 설명했습니다. 반대의 경우를 생각하면, 특별한 사정이 있더라도 모두 고려해줄 수는 없다는 판단입니다.

다음 달 6일, 법원은 '다크웹'에서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수천 개를 배포한 혐의를 받는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24살 손 모 씨에 대해서도 범죄인 인도 여부 결정을 내립니다. 손 씨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중형을 받더라도 한국에서 처벌받고 싶다고 밝혀왔는데요. 범죄인 인도조약의 취지를 강조했던 법원이 이번에는 어떤 결정을 내릴지 지켜봐야겠습니다.
  • “아이가 셋” 주장했지만…30대 가장 10년 만에 미국에 인도
    • 입력 2020.06.29 (15:12)
    취재K
“아이가 셋” 주장했지만…30대 가장 10년 만에 미국에 인도
"주문. 범죄인을 청구국인 미합중국에 인도할 것을 허가한다."

어린아이를 품에 안고, 차마 앉지도 못한 채 재판을 지켜보던 아내는 결국 오열했습니다. "안 돼요, 안 돼. 우린 이제 어떻게 살라고…"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느냐는 재판부의 질문에 남편은 끝내 입을 떼지 못했습니다.

법정 경위의 안내를 받아 구치감으로 들어가기 전, 아내와 남편은 마지막으로 손을 잡고 서로를 바라봤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 통곡하는 아내에게 남편은 "잘 있어, 다녀올게. 알겠지?"라는 말만 남긴 채 뒤돌아섰습니다.

남편과 아내, 아이 셋. 단란했던 이 가족의 갑작스러운 생이별은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 미국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벌어졌습니다.

■ 미국서 '음주 뺑소니' 재판받다 도피…10년 만에 법정에 선 남성

2010년 6월 12일, 당시 21살이던 이 모 씨는 혈중알코올농도 0.09%의 만취 상태에서 시속 100km로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고속도로를 운전했습니다. 그러던 중 오토바이를 들이받았고, 피해자는 뇌출혈과 갈비뼈 골절 등의 상해를 입었는데요.

이 씨는 이때 구호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고 도주한 이른바 '뺑소니' 혐의로, 같은 해 8월 23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법원에 기소됐습니다. 이듬해 3월 3일 재판에 출석한 이 씨는 음주운전으로 교통사고를 일으켜 피해자에게 상해를 입힌 사실을 모두 인정했죠.

그런데 이 씨는 4월 15일 판결선고기일을 나흘 앞두고 미국을 떠나 우리나라로 도피한 뒤, 영영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캘리포니아주 법원은 곧바로 이 씨에 대한 보석을 취소하고 구속영장을 발부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미국은 2017년 11월, 이 씨에 대한 범죄인 인도를 요청했고 서울고등검찰청은 지난 5월 26일 법원에 정식으로 심사를 청구했습니다. 결국 이 씨는 지난 15일 한국에서 10년 만에 법정에 서게 됐습니다.

그리고 서울고등법원 형사20부(재판장 강영수)가 오늘(29일), 이 씨에 대해 범죄인 인도 허가 결정을 내린 겁니다. 올해 우리나라에서 외국으로의 범죄인 인도가 결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 "저는 10년 전과 똑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지난 15일 열린 1차 심문에서 이 씨는 해당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한국 7년, 미국 3년)가 이미 완성된 데다 국내에서도 비일비재하게 벌어질 만큼 상대적으로 중한 범죄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비록 죄를 저지르긴 했지만, 10년 뒤 미국에 다시 보낼 만한 범죄는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또 미국에서 수사와 재판을 받을 당시 인종차별적 대우를 받았고,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면 부당한 처벌을 받을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도 내놨습니다. 무엇보다 이 씨가 한국에 돌아와 군대를 다녀오고 결혼도 해 쌍둥이와 갓난아이 등 3명의 자녀를 뒀는데, 이 중 한 명이 발달지연 상태에 있어 이 씨가 미국으로 떠나면 아내 혼자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한국에 와서 많은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여자친구도 만나고 가족도 생기고 쌍둥이도 생긴 다음에 한 달 전 셋째도 생겼습니다. 그때는 철도 없었고 저 혼자밖에 생각을 안 했는데 한국에 와서 이렇게 행복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도 있으니 좋은 아빠가 되고 싶은데...아내는 혼자 아이 셋을 돌보며 일을 해야 합니다. 돌아오면 저는 한국에서 아무것도 안 남을 겁니다. 애들을 지킬 수 있고 같이 옆에서 올바르게 키울 기회를 주면 좋겠습니다. 저는 10년 전과 똑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검찰은 반발했습니다. 개별적으로는 누구나 다 사정이 있겠지만, 정당한 사법절차를 멈출 수는 없다는 겁니다. 그게 여러 국가와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한 취지이기도 하고, 엄연한 '약속'인 만큼 지켜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 법원 "특별한 사유 있더라도 약속 지켜야…반대 경우도 마찬가지"

재판부는 이 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우선 법 집행을 피하려고 도피한 기간은 공소시효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조약상 규정 등을 근거로 공소시효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이 씨가 일부 사실관계를 다투고는 있지만, 해당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은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재판부는 아울러 이 씨가 현재 세 아이의 아버지이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더라도, 범죄인 인도 조약의 취지와 미국에서 이미 사법절차가 진행되고 있었던 사정 등을 종합하면 이 씨를 미국으로 인도하는 게 적정하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특히, 만약 미국인이 우리나라에서 범죄인 인도 대상이 되는 범죄를 저질러 기소된 뒤 재판을 받다가 미국으로 도피했다면, 우리나라도 당연히 미국이 범죄인 인도에 응할 것을 기대할 거라고 설명했습니다. 반대의 경우를 생각하면, 특별한 사정이 있더라도 모두 고려해줄 수는 없다는 판단입니다.

다음 달 6일, 법원은 '다크웹'에서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수천 개를 배포한 혐의를 받는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24살 손 모 씨에 대해서도 범죄인 인도 여부 결정을 내립니다. 손 씨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중형을 받더라도 한국에서 처벌받고 싶다고 밝혀왔는데요. 범죄인 인도조약의 취지를 강조했던 법원이 이번에는 어떤 결정을 내릴지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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