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20만원 내면 15배 복지 혜택”…중소기업 울린 복지 서비스의 실체는?

입력 2020.07.08 (08:01) 수정 2020.07.08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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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상황에서 잘 해보자고 도입한 사내복지 때문에 피해 기업들은 돈도 떼이고…"

얼마 전 저희 KBS로 접수된 제보 내용 중 일부입니다. 제보자는 서울에서 작은 출판사를 운영한다는 임재균 씨였습니다. 임 씨는 지난해 직원복지를 위해서 복지 서비스를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던 중 적은 비용으로도 높은 수준의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한 업체에 가입했습니다. 하지만 임 씨가 받은 건 책 2권뿐이고, 올해가 될 때까지 어떤 서비스도 받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업체가 약속한 290만 원 상당의 복지 서비스업체가 약속한 290만 원 상당의 복지 서비스

■ "연 20만 원으로 290만 원 혜택 준다더니"…먹통 된 서비스

임 씨가 가입한 서비스는 '토닥토닥 e복지'. 서비스 구축 비용과 함께 1인당 20만 원만 내면 1년 동안 건강검진과 도서 배달 등 290만 원에 달하는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설명에, 임 씨는 직원 4명 몫으로 88만 원을 입금했습니다. 지난해 10월부터 서비스를 받기로 했지만, 지난 10개월 동안 임씨가 받은 서비스는 동화책 2권뿐이었습니다.

임 씨는 서비스를 받기로 한 10월부터 복지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애플리케이션이 제대로 작동하다, 작동되지 않다를 반복했다는 겁니다. 서비스 제공 업체 측에 이런 상황을 문의했을 때, 해당 업체는 "전산상의 오류가 있어 그렇다."는 취지로 답변했습니다. 하지만 전산상 오류는 해를 넘겨도 해결되지 않았고, 문제의 애플리케이션은 아예 먹통이 됐습니다.

업체가 모객하면서 배부한 팸플릿업체가 모객하면서 배부한 팸플릿

■ "정부 인가 받았다더니"…고용부 "그런 사실 없다"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임 씨는 본인과 같은 피해를 본 중소기업이 더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복지서비스에 가입한 곳도 같았습니다. 임 씨를 비롯한 피해 기업들이 가입한 복지 서비스를 소개하고 가입 심사를 했던 곳은 '중소기업복지지원단'이라는 곳이었습니다.

임 씨가 지난해 해당 업체에 서비스 가입 의사를 밝히자 해당 업체 직원은 "가입에 앞서 기업 실사를 하겠다."라며 임 씨의 사무실을 찾았습니다. 그러면서 "중소기업복지지원단은 고용노동부의 인가를 받은 단체고, 중앙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민간 기업의 지원을 받아 운영된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공공기관과 연관이 있을 법한 이름에, 사무실로 찾아온 직원의 목에 걸린 '공인' 기업복지지도사 자격증이 "정부 인가를 받았다"는 말을 한층 더 그럴싸하게 만들었다고 임 씨는 회상했습니다.

하지만 정부 인가를 받았고, 정부 지원을 받는다는 직원의 말, 전부 거짓이었습니다. '중소기업복지지원단'은 '한국기업복지'라는 기업에서 만든 또 다른 법인일 뿐이고 정부 단체와는 전혀 관련이 없었습니다. 인가를 내줬다는 고용노동부 측에도 사실 확인을 요청했습니다. 노동부 측은 "한국기업복지와 중소기업복지지원단 등 단체에 인가를 내준 바가 없으며, 해당 단체들과 연계해 어떤 사업도 진행한 적이 없다."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업체 직원들이 발급받았다는 ‘공인’ 자격증업체 직원들이 발급받았다는 ‘공인’ 자격증

■ "서비스 제공 어려울 것 알면서도 모객"…내부 직원 증언

이뿐만이 아닙니다. 업체 측이 고객사에 약속했던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려울 것이란 사실을 알면서도 고객 모집을 계속했다는 주장도 제기됐습니다. 중소기업복지지원단에서 근무했다던 A 씨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이 같은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정부나 지자체, 민간 기업의 지원 없이 실제로는 고객사가 지불한 인당 20만 원의 가입비로만 기업이 운영되다 보니, 건강검진이나 도서 배달 등 복지 서비스를 실제로 제공한 병원 등에 업체가 대금을 지불하지 못해 서비스가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고객을 모집했다는 겁니다.

A 씨는 "(복지 서비스) 5.0 버전일 때 문제가 불거졌는데, 그 이후에도 서비스 6.0을 만들어서 배포했다."라며 "(서비스가) 안되는데도 일부러 현금을 수급하기 위해 그 행위를 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해당 기업이 "정부와 연계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직원들이 가지고 있는 공인 자격증도 사실은 민간 자격증이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영업하지 않은 지 1년이 넘었다는 업체 사무실 영업하지 않은 지 1년이 넘었다는 업체 사무실

■ "열심히 일해서 피해금액 갚겠다더니"…잠적한 대표님

사정이 이렇다 보니 돈을 주고도 서비스를 받지 못한 피해 기업들은 한국기업복지 측에 환불을 요구했습니다. 피해 기업들이 추산하는 피해 금액은 400억 원 이상입니다. 하지만 환불 요구에 대한 한국기업복지의 이 모 회장의 반응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이 회장은 피해자들에게 "열심히 일해서 피해 금액을 갚겠다."라는 뜻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400억이 넘는 돈을 어떻게 일해서 갚겠다는 거냐는 질문에는 제대로 답을 주지 않은 채, 이 회장은 연락이 끊겼습니다. 취재진도 이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홈페이지에 소개된 사무실 주소로도 찾아가 봤지만, 이 회장을 만날 수는 없었습니다. 사무실 내부는 불이 꺼진 채, 아무도 근무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상가 관계자들은 취재진에게 "해당 사무실에 사람들이 근무하지 않은 지 1년도 넘었다."라는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피해자들은 결국 이 회장 등을 상대로 집단 소송에 나섰습니다. 소송에 참여한 기업은 200여 곳, 피해액만 18억 2천만 원에 달합니다. 피해자들은 이번 주안에 서울동부지법에 부당이득반환 소송을 제기할 계획입니다. 이와 함께 사기 혐의로도 고소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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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7-08 08:01:18
    • 수정2020-07-08 08:01:27
    취재후·사건후
"어려운 상황에서 잘 해보자고 도입한 사내복지 때문에 피해 기업들은 돈도 떼이고…"

얼마 전 저희 KBS로 접수된 제보 내용 중 일부입니다. 제보자는 서울에서 작은 출판사를 운영한다는 임재균 씨였습니다. 임 씨는 지난해 직원복지를 위해서 복지 서비스를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던 중 적은 비용으로도 높은 수준의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한 업체에 가입했습니다. 하지만 임 씨가 받은 건 책 2권뿐이고, 올해가 될 때까지 어떤 서비스도 받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업체가 약속한 290만 원 상당의 복지 서비스
■ "연 20만 원으로 290만 원 혜택 준다더니"…먹통 된 서비스

임 씨가 가입한 서비스는 '토닥토닥 e복지'. 서비스 구축 비용과 함께 1인당 20만 원만 내면 1년 동안 건강검진과 도서 배달 등 290만 원에 달하는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설명에, 임 씨는 직원 4명 몫으로 88만 원을 입금했습니다. 지난해 10월부터 서비스를 받기로 했지만, 지난 10개월 동안 임씨가 받은 서비스는 동화책 2권뿐이었습니다.

임 씨는 서비스를 받기로 한 10월부터 복지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애플리케이션이 제대로 작동하다, 작동되지 않다를 반복했다는 겁니다. 서비스 제공 업체 측에 이런 상황을 문의했을 때, 해당 업체는 "전산상의 오류가 있어 그렇다."는 취지로 답변했습니다. 하지만 전산상 오류는 해를 넘겨도 해결되지 않았고, 문제의 애플리케이션은 아예 먹통이 됐습니다.

업체가 모객하면서 배부한 팸플릿
■ "정부 인가 받았다더니"…고용부 "그런 사실 없다"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임 씨는 본인과 같은 피해를 본 중소기업이 더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복지서비스에 가입한 곳도 같았습니다. 임 씨를 비롯한 피해 기업들이 가입한 복지 서비스를 소개하고 가입 심사를 했던 곳은 '중소기업복지지원단'이라는 곳이었습니다.

임 씨가 지난해 해당 업체에 서비스 가입 의사를 밝히자 해당 업체 직원은 "가입에 앞서 기업 실사를 하겠다."라며 임 씨의 사무실을 찾았습니다. 그러면서 "중소기업복지지원단은 고용노동부의 인가를 받은 단체고, 중앙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민간 기업의 지원을 받아 운영된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공공기관과 연관이 있을 법한 이름에, 사무실로 찾아온 직원의 목에 걸린 '공인' 기업복지지도사 자격증이 "정부 인가를 받았다"는 말을 한층 더 그럴싸하게 만들었다고 임 씨는 회상했습니다.

하지만 정부 인가를 받았고, 정부 지원을 받는다는 직원의 말, 전부 거짓이었습니다. '중소기업복지지원단'은 '한국기업복지'라는 기업에서 만든 또 다른 법인일 뿐이고 정부 단체와는 전혀 관련이 없었습니다. 인가를 내줬다는 고용노동부 측에도 사실 확인을 요청했습니다. 노동부 측은 "한국기업복지와 중소기업복지지원단 등 단체에 인가를 내준 바가 없으며, 해당 단체들과 연계해 어떤 사업도 진행한 적이 없다."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업체 직원들이 발급받았다는 ‘공인’ 자격증
■ "서비스 제공 어려울 것 알면서도 모객"…내부 직원 증언

이뿐만이 아닙니다. 업체 측이 고객사에 약속했던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려울 것이란 사실을 알면서도 고객 모집을 계속했다는 주장도 제기됐습니다. 중소기업복지지원단에서 근무했다던 A 씨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이 같은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정부나 지자체, 민간 기업의 지원 없이 실제로는 고객사가 지불한 인당 20만 원의 가입비로만 기업이 운영되다 보니, 건강검진이나 도서 배달 등 복지 서비스를 실제로 제공한 병원 등에 업체가 대금을 지불하지 못해 서비스가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고객을 모집했다는 겁니다.

A 씨는 "(복지 서비스) 5.0 버전일 때 문제가 불거졌는데, 그 이후에도 서비스 6.0을 만들어서 배포했다."라며 "(서비스가) 안되는데도 일부러 현금을 수급하기 위해 그 행위를 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해당 기업이 "정부와 연계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직원들이 가지고 있는 공인 자격증도 사실은 민간 자격증이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영업하지 않은 지 1년이 넘었다는 업체 사무실
■ "열심히 일해서 피해금액 갚겠다더니"…잠적한 대표님

사정이 이렇다 보니 돈을 주고도 서비스를 받지 못한 피해 기업들은 한국기업복지 측에 환불을 요구했습니다. 피해 기업들이 추산하는 피해 금액은 400억 원 이상입니다. 하지만 환불 요구에 대한 한국기업복지의 이 모 회장의 반응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이 회장은 피해자들에게 "열심히 일해서 피해 금액을 갚겠다."라는 뜻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400억이 넘는 돈을 어떻게 일해서 갚겠다는 거냐는 질문에는 제대로 답을 주지 않은 채, 이 회장은 연락이 끊겼습니다. 취재진도 이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홈페이지에 소개된 사무실 주소로도 찾아가 봤지만, 이 회장을 만날 수는 없었습니다. 사무실 내부는 불이 꺼진 채, 아무도 근무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상가 관계자들은 취재진에게 "해당 사무실에 사람들이 근무하지 않은 지 1년도 넘었다."라는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피해자들은 결국 이 회장 등을 상대로 집단 소송에 나섰습니다. 소송에 참여한 기업은 200여 곳, 피해액만 18억 2천만 원에 달합니다. 피해자들은 이번 주안에 서울동부지법에 부당이득반환 소송을 제기할 계획입니다. 이와 함께 사기 혐의로도 고소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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