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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공군이 약하니…” 100년 전 미국에서 창설된 항공부대
입력 2020.07.15 (08:01) 취재K
“일본은 공군이 약하니…” 100년 전 미국에서 창설된 항공부대
"노백린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총장(현 국방부장관)은 일본 사관학교 출신이기 때문에 일본의 약점을 알았습니다. 공군이 약하다는 점을 간파하고 공군을 양성해서 일본 천황궁을 공격하자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였습니다."
재미역사학자 차만재 박사는 2013년 공군본부와 가진 인터뷰에서 노백린 장군이 윌로우스 비행학교를 만들게 된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항공력을 이용해 일제와 독립전쟁을 하겠다"

1920년 2월 미국 레드우드 비행학교에서 노백린 임시정부 군무총장(가운데)과 한인 청년들1920년 2월 미국 레드우드 비행학교에서 노백린 임시정부 군무총장(가운데)과 한인 청년들

군용기가 등장한 1차 세계대전을 치르며 서구 열강들이 '항공전력'의 중요성을 인식하던 때, 임시정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1차 대전에 미군으로 참전한 한국인 비행사, 일본과 중국에서 비행술을 배운 청년들의 활약에 고무되면서 1919년 임시정부는 시정방침을 비행기대 편성기획으로 정했습니다. 적은 수의 병력으로 미국과 함께 싸울 때 가장 큰 효과를 얻는 데는 항공기만한 수단이 없다고 본 것입니다. 이어 비행학교 설립의 목표도 갖게 됐습니다. 임시정부가 주목한 곳은 일제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는 미국이었습니다.

미국에서 독립군을 모집하던 노백린 장군은 1920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레드우드(Redwood) 비행학교를 찾았습니다. 비행교관 훈련을 받고 있는 한인 비행사들을 만나 비행학교 설립에 착수했습니다. 미국으로 이주해 쌀농사로 상당한 재산을 모은 독립운동가 김종림 선생이 2만 달러와 매달 3천 달러 등 재정을 지원하기로 하면서 1920년 7월 5일 캘리포니아주 북부의 소도시 윌로우스(Willows)시에 임시정부 한인비행학교가 문을 열었습니다.

16만 제곱미터 터에 활주로도 갖춘 윌로우스 비행학교에서 정식 교육이 시작됐습니다. 교관은 미국인 프랭크 브라이언트와 노백린 장군이 만났던 레드우드 비행학교 출신들이 옮겨 와 맡았습니다. 스탠더드(Standard) J-1 훈련기 2대로 학생 30명에게 비행술을 교육했고, 군사전략과 영어도 가르쳤습니다.

미국 윌로우스 비행학교는 임시정부 항공부대

윌로우스 비행학교 본부로 추정되는 목조건물(퀸트 학교건물)윌로우스 비행학교 본부로 추정되는 목조건물(퀸트 학교건물)

도산 안창호 선생의 아들인 랄프 안은 2013년 공군본부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선조들은 독립의 유일한 희망을 공군에 걸었습니다. 공군력을 향상시키는 일이 독립으로 가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윌로우스 비행학교에서 공부한 것입니다"고 증언했는데요.

윌로우스 비행학교에서 교육받은 박희성과 이용근은 미국국제항공클럽으로부터 국제비행사 면허증을 받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최초의 비행장교인 '비행병 참위(현 소위)'가 됐습니다.

독립운동에 투입될 조종사들이 잇따라 배출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것도 잠시, 재정을 책임지고 있던 김종림의 재정상태가 회복불능 상태가 되면서 비행학교는 결국 문을 닫게 됐습니다. 1921년 4월이었습니다.

윌로우스 비행학교의 역사는 짧았지만, 전문가들은 그 의미가 결코 가볍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후 미국에서 비행사 양성 노력은 중단됐지만, 독립운동에서 항공기가 효과적이라는 수단이라는 인식까지 사라지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김기둥 공군사관학교 역사철학과 교수는 "중국 비행학교에서는 한국인 비행사들이 꾸준히 양성됐고 이들은 광복군 내 독립공군을 위한 노력을 전개했습니다. 해방 후 혼란스러운 정세와 열악한 기반 속에서도 공군의 창군이 빠르게 이뤄질 수 있었던 원동력이 여기에 있었습니다"라고 평가했습니다.

■"항공독립운동의 시작이 대한민국 공군의 뿌리"

국립항공박물관에서 열린 윌로우스 비행학교 기념조형물 제막식(맨 왼쪽이 故 박희성 참위의 증손녀)국립항공박물관에서 열린 윌로우스 비행학교 기념조형물 제막식(맨 왼쪽이 故 박희성 참위의 증손녀)

공군은 윌로우스 비행학교를 대한민국 공군의 뿌리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항공부대이자 항공독립운동의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윌로우스 비행학교 설립 100주년인 올해, 국립항공박물관에 당시 훈련기와 학생비행사들의 모습을 재현한 기념조형물을 세운 것도 이 때문입니다.

14일 공군참모총장 주재로 기념조형물 제막식이 열렸습니다. 노백린 장군과 박희성 참위의 유가족을 비롯해 6.25전쟁 출격 조종사, 역대 공군참모총장이 참석했습니다. 미국에서 온 박희성 참위의 증손녀가 애국가를 선창해 그 의미를 더했습니다.

현재 윌로우스 비행학교 터는 미국인 소유의 농장으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비행학교 건물로 추정되는 목조건물은 폐가 형태로 남아 있습니다. 공군역사기록관리단은 역사가 깃들어 있는 윌로우스 비행학교를 공군 역사유적지로 조성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 “일본은 공군이 약하니…” 100년 전 미국에서 창설된 항공부대
    • 입력 2020.07.15 (08:01)
    취재K
“일본은 공군이 약하니…” 100년 전 미국에서 창설된 항공부대
"노백린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총장(현 국방부장관)은 일본 사관학교 출신이기 때문에 일본의 약점을 알았습니다. 공군이 약하다는 점을 간파하고 공군을 양성해서 일본 천황궁을 공격하자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였습니다."
재미역사학자 차만재 박사는 2013년 공군본부와 가진 인터뷰에서 노백린 장군이 윌로우스 비행학교를 만들게 된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항공력을 이용해 일제와 독립전쟁을 하겠다"

1920년 2월 미국 레드우드 비행학교에서 노백린 임시정부 군무총장(가운데)과 한인 청년들1920년 2월 미국 레드우드 비행학교에서 노백린 임시정부 군무총장(가운데)과 한인 청년들

군용기가 등장한 1차 세계대전을 치르며 서구 열강들이 '항공전력'의 중요성을 인식하던 때, 임시정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1차 대전에 미군으로 참전한 한국인 비행사, 일본과 중국에서 비행술을 배운 청년들의 활약에 고무되면서 1919년 임시정부는 시정방침을 비행기대 편성기획으로 정했습니다. 적은 수의 병력으로 미국과 함께 싸울 때 가장 큰 효과를 얻는 데는 항공기만한 수단이 없다고 본 것입니다. 이어 비행학교 설립의 목표도 갖게 됐습니다. 임시정부가 주목한 곳은 일제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는 미국이었습니다.

미국에서 독립군을 모집하던 노백린 장군은 1920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레드우드(Redwood) 비행학교를 찾았습니다. 비행교관 훈련을 받고 있는 한인 비행사들을 만나 비행학교 설립에 착수했습니다. 미국으로 이주해 쌀농사로 상당한 재산을 모은 독립운동가 김종림 선생이 2만 달러와 매달 3천 달러 등 재정을 지원하기로 하면서 1920년 7월 5일 캘리포니아주 북부의 소도시 윌로우스(Willows)시에 임시정부 한인비행학교가 문을 열었습니다.

16만 제곱미터 터에 활주로도 갖춘 윌로우스 비행학교에서 정식 교육이 시작됐습니다. 교관은 미국인 프랭크 브라이언트와 노백린 장군이 만났던 레드우드 비행학교 출신들이 옮겨 와 맡았습니다. 스탠더드(Standard) J-1 훈련기 2대로 학생 30명에게 비행술을 교육했고, 군사전략과 영어도 가르쳤습니다.

미국 윌로우스 비행학교는 임시정부 항공부대

윌로우스 비행학교 본부로 추정되는 목조건물(퀸트 학교건물)윌로우스 비행학교 본부로 추정되는 목조건물(퀸트 학교건물)

도산 안창호 선생의 아들인 랄프 안은 2013년 공군본부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선조들은 독립의 유일한 희망을 공군에 걸었습니다. 공군력을 향상시키는 일이 독립으로 가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윌로우스 비행학교에서 공부한 것입니다"고 증언했는데요.

윌로우스 비행학교에서 교육받은 박희성과 이용근은 미국국제항공클럽으로부터 국제비행사 면허증을 받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최초의 비행장교인 '비행병 참위(현 소위)'가 됐습니다.

독립운동에 투입될 조종사들이 잇따라 배출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것도 잠시, 재정을 책임지고 있던 김종림의 재정상태가 회복불능 상태가 되면서 비행학교는 결국 문을 닫게 됐습니다. 1921년 4월이었습니다.

윌로우스 비행학교의 역사는 짧았지만, 전문가들은 그 의미가 결코 가볍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후 미국에서 비행사 양성 노력은 중단됐지만, 독립운동에서 항공기가 효과적이라는 수단이라는 인식까지 사라지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김기둥 공군사관학교 역사철학과 교수는 "중국 비행학교에서는 한국인 비행사들이 꾸준히 양성됐고 이들은 광복군 내 독립공군을 위한 노력을 전개했습니다. 해방 후 혼란스러운 정세와 열악한 기반 속에서도 공군의 창군이 빠르게 이뤄질 수 있었던 원동력이 여기에 있었습니다"라고 평가했습니다.

■"항공독립운동의 시작이 대한민국 공군의 뿌리"

국립항공박물관에서 열린 윌로우스 비행학교 기념조형물 제막식(맨 왼쪽이 故 박희성 참위의 증손녀)국립항공박물관에서 열린 윌로우스 비행학교 기념조형물 제막식(맨 왼쪽이 故 박희성 참위의 증손녀)

공군은 윌로우스 비행학교를 대한민국 공군의 뿌리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항공부대이자 항공독립운동의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윌로우스 비행학교 설립 100주년인 올해, 국립항공박물관에 당시 훈련기와 학생비행사들의 모습을 재현한 기념조형물을 세운 것도 이 때문입니다.

14일 공군참모총장 주재로 기념조형물 제막식이 열렸습니다. 노백린 장군과 박희성 참위의 유가족을 비롯해 6.25전쟁 출격 조종사, 역대 공군참모총장이 참석했습니다. 미국에서 온 박희성 참위의 증손녀가 애국가를 선창해 그 의미를 더했습니다.

현재 윌로우스 비행학교 터는 미국인 소유의 농장으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비행학교 건물로 추정되는 목조건물은 폐가 형태로 남아 있습니다. 공군역사기록관리단은 역사가 깃들어 있는 윌로우스 비행학교를 공군 역사유적지로 조성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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