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법’ 시행 1년…업무는 늘고 재임용 심사도 못 받아

입력 2020.08.01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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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교육법 개정안', 이른바 '강사법'이 시행된 지 오늘(1일)로 정확히 1년 지났습니다. 강사법은 전화 한 통 없이 일방적으로 해고되는 시간강사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마련된 법입니다.

도입 이후 강사들은 변화를 체감하고 있을까요?

10년 동안 강의료 2천 원 상승...강사 대량 해고로 업무량은 급증

10년째 러시아어를 가르치는 A 씨가 현재 수도권의 한 사립대학교에서 받는 강의료는 시간당 5만 6,400원입니다. 이 강사는 두 과목(6학점)을 가르치는데 보험 등을 제하고 나면 손에 쥐는 돈은 매달 110만~120만 원 정도입니다.

취재진이 A 씨와 인터뷰하고 있다.취재진이 A 씨와 인터뷰하고 있다.

시간당 5만 원대의 강의료는 다른 노동에 비해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수업 준비와 과제 평가 등으로 사실상 몇 배나 많은 시간을 별도로 투자해야 합니다. 다른 직업과 병행하는 강사는 거의 없고, 대부분 전업입니다.

전국 대학 강사 평균 강의료 현황전국 대학 강사 평균 강의료 현황

2020년 1학기 전국 대학 강사의 시간당 평균 강의료는 지난해보다 7.5% 오른 6만 6,000원입니다. 그런데 국·공립대는 지난해보다 16.7% 오른 8만 6,200원, 사립대는 3% 상승한 5만 5,900원입니다. 국·공립대와 사립대 간 강의료 격차는 지난해 1만 9,600원에서 올해는 3만 291원으로 더 벌어졌습니다. 사실상 사립대는 제자리걸음인 건데 3%도 평균 수치일 뿐, 아예 오르지 않는 곳도 많습니다.

A 씨는 "10년 전보다 강의료가 2천 원 오른 것 같다. 그나마 국·공립대는 조금씩 오르지만, 사실상 사립대는 강의료가 변하지 않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강의료는 변함없지만, 수업 여건은 더욱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강사법 통과 이후 강사에게 교원 지위가 부여돼 부담이 커진 대학들이 강사를 대거 해고했기 때문입니다. 강의 수가 줄어든 만큼, 과목 정원 수는 대폭 늘어났습니다.

A 씨는 "강사법 통과 이후 학교에서 강의를 대규모로 없애, 마땅히 수강할 강의가 없어진 학생들이 자연스레 남은 강의에 몰릴 수밖에 없다"며 "임금은 변함없지만, 결국 강사의 업무량은 대폭 증가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해당 대학 출신 강사 우선 채용"...재임용 포기 요청서 강요하기도

강사법의 주요 골자는 기존 학기마다 체결하던 계약을 1년 단위로 연장하고, 재임용 기회도 3년간 의무적으로 보장해 고용 안정을 이루는 데 있습니다.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으면 재임용하자는 취지입니다. 또 그간 학교마다 알음알음 강사를 뽑았는데, 강사법 시행 이후에는 모든 학교가 전면 공개 채용 방식을 도입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해당 학교 출신 위주로 뽑거나, 사실상 내정자를 정해두고 공개 채용만 진행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취재진이 B씨와 인터뷰하고 있다.취재진이 B씨와 인터뷰하고 있다.

14년째 대학에서 성악을 가르친 B 씨는 옮겨 다닌 학교만 10곳이 넘습니다. 2019년 2학기에는 23곳의 대학에 지원서를 넣었는데 통과된 곳은 단 한 곳에 불과했습니다.

B 씨는 "박사 학위도 있고, 경력도 충분한데 이렇다 할 설명 없이 서류에서 탈락했다"며 "나중에 합격한 사람들을 보니 대부분 해당 학교 출신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뿐 아니라 강사법에서 보장하는 재임용 절차를 피하기 위해 '교과과정 개편'이란 명목으로 과목 이름을 교묘하게 바꾸는 예도 있습니다.

사실상 비슷한 내용인데도 강의가 바뀌었다며, 재임용 기회를 보장하지 않는 겁니다. 또, 아예 해당 학교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지원서를 넣지 못하도록 압박한 곳도 있습니다.

C 씨는 1학기가 끝나갈 즈음, 다음 학기 강의에서 배제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대학을 졸업한 강사들에게 우선 강의를 배정한다는 이유였습니다. 심지어 해당 학과는 C 씨에게 다음 학기 강의배정을 포기한다는 내용의 각서, '재임용 포기 요청서'를 쓸 것을 요구했습니다.

C 씨는 "자신들의 부당한 행위가 혹여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해 아예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였다"고 토로했습니다.

강사 만오천여 명 해고...'신분 안정됐다고 못 느낀다' 설문서 46.3%

2010년 한 시간강사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뒤, 우여곡절 끝에 8년 만에 강사법이 통과됐습니다. 조금이나마 처우가 개선될 것이란 기대와 달리 대학은 비용 증가를 이유로 강사들을 대량 해고하고 있습니다.

‘강사법 시행 1년’ 설문조사‘강사법 시행 1년’ 설문조사

이를 반증하듯 한국 비정규교수 노동조합이 지난달 소속 조합원 4백 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강사법 시행 이후 기존보다 신분이 안정됐다고 체감하는지 묻는 말에 '매우 아니다'라는 응답이 80명(20%), '별로 아니다'라는 응답이 105명(26.3%)으로 절반 가까이 부정적인 답변을 내놨습니다.

한국 비정규교수 노동조합 김진균 부위원장은 "강사법의 취지는 재임용 절차를 3년간 보장해줘서 고용안정을 이루는 데 있다"며 "재임용을 보장하지 않기 위해 교과과정을 개편하는 방식의 불법 혹은 탈법 행위에 대해 교육부가 적극적으로 감시하고, 이에 따라 제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강사법 시행 전후로 지금까지 해고된 강사는 만 5천여 명으로 추정됩니다. 비용 부담을 외치고 있는 대학들의 주장과 달리 지난해 한국노동연구원에서 분석한 자료를 보면, 전국 315개 사립대학 연간 재정 중 시간강사의 급여가 차지하는 비율은 2.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현재 2학기를 앞두고 대부분 대학은 재임용 심사를 진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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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사법’ 시행 1년…업무는 늘고 재임용 심사도 못 받아
    • 입력 2020-08-01 07:02:24
    취재K
'고등교육법 개정안', 이른바 '강사법'이 시행된 지 오늘(1일)로 정확히 1년 지났습니다. 강사법은 전화 한 통 없이 일방적으로 해고되는 시간강사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마련된 법입니다.

도입 이후 강사들은 변화를 체감하고 있을까요?

10년 동안 강의료 2천 원 상승...강사 대량 해고로 업무량은 급증

10년째 러시아어를 가르치는 A 씨가 현재 수도권의 한 사립대학교에서 받는 강의료는 시간당 5만 6,400원입니다. 이 강사는 두 과목(6학점)을 가르치는데 보험 등을 제하고 나면 손에 쥐는 돈은 매달 110만~120만 원 정도입니다.

취재진이 A 씨와 인터뷰하고 있다.
시간당 5만 원대의 강의료는 다른 노동에 비해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수업 준비와 과제 평가 등으로 사실상 몇 배나 많은 시간을 별도로 투자해야 합니다. 다른 직업과 병행하는 강사는 거의 없고, 대부분 전업입니다.

전국 대학 강사 평균 강의료 현황
2020년 1학기 전국 대학 강사의 시간당 평균 강의료는 지난해보다 7.5% 오른 6만 6,000원입니다. 그런데 국·공립대는 지난해보다 16.7% 오른 8만 6,200원, 사립대는 3% 상승한 5만 5,900원입니다. 국·공립대와 사립대 간 강의료 격차는 지난해 1만 9,600원에서 올해는 3만 291원으로 더 벌어졌습니다. 사실상 사립대는 제자리걸음인 건데 3%도 평균 수치일 뿐, 아예 오르지 않는 곳도 많습니다.

A 씨는 "10년 전보다 강의료가 2천 원 오른 것 같다. 그나마 국·공립대는 조금씩 오르지만, 사실상 사립대는 강의료가 변하지 않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강의료는 변함없지만, 수업 여건은 더욱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강사법 통과 이후 강사에게 교원 지위가 부여돼 부담이 커진 대학들이 강사를 대거 해고했기 때문입니다. 강의 수가 줄어든 만큼, 과목 정원 수는 대폭 늘어났습니다.

A 씨는 "강사법 통과 이후 학교에서 강의를 대규모로 없애, 마땅히 수강할 강의가 없어진 학생들이 자연스레 남은 강의에 몰릴 수밖에 없다"며 "임금은 변함없지만, 결국 강사의 업무량은 대폭 증가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해당 대학 출신 강사 우선 채용"...재임용 포기 요청서 강요하기도

강사법의 주요 골자는 기존 학기마다 체결하던 계약을 1년 단위로 연장하고, 재임용 기회도 3년간 의무적으로 보장해 고용 안정을 이루는 데 있습니다.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으면 재임용하자는 취지입니다. 또 그간 학교마다 알음알음 강사를 뽑았는데, 강사법 시행 이후에는 모든 학교가 전면 공개 채용 방식을 도입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해당 학교 출신 위주로 뽑거나, 사실상 내정자를 정해두고 공개 채용만 진행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취재진이 B씨와 인터뷰하고 있다.
14년째 대학에서 성악을 가르친 B 씨는 옮겨 다닌 학교만 10곳이 넘습니다. 2019년 2학기에는 23곳의 대학에 지원서를 넣었는데 통과된 곳은 단 한 곳에 불과했습니다.

B 씨는 "박사 학위도 있고, 경력도 충분한데 이렇다 할 설명 없이 서류에서 탈락했다"며 "나중에 합격한 사람들을 보니 대부분 해당 학교 출신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뿐 아니라 강사법에서 보장하는 재임용 절차를 피하기 위해 '교과과정 개편'이란 명목으로 과목 이름을 교묘하게 바꾸는 예도 있습니다.

사실상 비슷한 내용인데도 강의가 바뀌었다며, 재임용 기회를 보장하지 않는 겁니다. 또, 아예 해당 학교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지원서를 넣지 못하도록 압박한 곳도 있습니다.

C 씨는 1학기가 끝나갈 즈음, 다음 학기 강의에서 배제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대학을 졸업한 강사들에게 우선 강의를 배정한다는 이유였습니다. 심지어 해당 학과는 C 씨에게 다음 학기 강의배정을 포기한다는 내용의 각서, '재임용 포기 요청서'를 쓸 것을 요구했습니다.

C 씨는 "자신들의 부당한 행위가 혹여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해 아예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였다"고 토로했습니다.

강사 만오천여 명 해고...'신분 안정됐다고 못 느낀다' 설문서 46.3%

2010년 한 시간강사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뒤, 우여곡절 끝에 8년 만에 강사법이 통과됐습니다. 조금이나마 처우가 개선될 것이란 기대와 달리 대학은 비용 증가를 이유로 강사들을 대량 해고하고 있습니다.

‘강사법 시행 1년’ 설문조사
이를 반증하듯 한국 비정규교수 노동조합이 지난달 소속 조합원 4백 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강사법 시행 이후 기존보다 신분이 안정됐다고 체감하는지 묻는 말에 '매우 아니다'라는 응답이 80명(20%), '별로 아니다'라는 응답이 105명(26.3%)으로 절반 가까이 부정적인 답변을 내놨습니다.

한국 비정규교수 노동조합 김진균 부위원장은 "강사법의 취지는 재임용 절차를 3년간 보장해줘서 고용안정을 이루는 데 있다"며 "재임용을 보장하지 않기 위해 교과과정을 개편하는 방식의 불법 혹은 탈법 행위에 대해 교육부가 적극적으로 감시하고, 이에 따라 제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강사법 시행 전후로 지금까지 해고된 강사는 만 5천여 명으로 추정됩니다. 비용 부담을 외치고 있는 대학들의 주장과 달리 지난해 한국노동연구원에서 분석한 자료를 보면, 전국 315개 사립대학 연간 재정 중 시간강사의 급여가 차지하는 비율은 2.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현재 2학기를 앞두고 대부분 대학은 재임용 심사를 진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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