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남] 훈련중 섬광탄 쪼개져 발목에 ‘쾅’…법정 간 703발 운명은?

입력 2020.08.01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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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 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죠.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하급심 최신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들을 소개합니다.

멀쩡해 보이던 섬광탄이 훈련 도중 두 조각으로 쪼개졌고, 장병이 발목에 부상을 입었습니다. 국가는 남아 있던 섬광탄 재고를 반환하고 돈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냈는데, 업체 측은 단지 1개 불량이 났을 뿐인데 나머지 섬광탄에 전부 문제가 있다고 보긴 어렵다며 거부했습니다. 정부는 돈을 돌려받을 수 있었을까요. 물건 중 일부가 불량이 난 경우, 특히 국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물건인 경우 계약해제 가부가 쟁점이 된 최신 판례를 소개해 드립니다.

■섬광탄 훈련 중 장병 발목서 '쾅'…국방기술품질원 "하자 때문"

앞서 대한민국 정부는 지난 2013년 6월 A 업체와 섬광폭음탄 1,735개를 7,312여만 원에 공급받는 내용의 물품 공급계약을 체결하고 그해 10월 말 제품을 수령했습니다.

양쪽이 맺은 공급계약엔 A 업체가 검사 및 검수와는 별도로 납품 후 3년간 납품한 물품의 규격과 품질이 계약 내용과 동일함을 보증한다는 문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해군특수전전단이 2016년 2월 A 업체가 공급한 섬광폭음탄을 이용해 투척 훈련을 하던 도중, 안전손잡이와 탄체가 비정상적으로 분리돼 폭음재가 장병의 발에 떨어지는 사고가 벌어졌습니다. 해당 장병은 전치 6주의 상해를 입었습니다.

국방기술품질원은 사고 원인을 두고 "신관 몸통과 폭음탄 몸통을 연결하는 오링이 도면상의 하부 홈이 아닌 상부 홈에 조립되고, 제조 당시 몸통(알루미늄)과 신관 몸통(아세탈수지)의 전둘레 오무림이 미흡했던 하자 때문"이라고 보고했습니다.

정부는 즉시 섬광탄 하자에 대한 조치를 요구했고, A 업체는 정부가 보유한 잔량 703발을 회수한 후 보완·수정해 납품하겠다고 조치계획을 보고했습니다.

■대체납품 2년 지나도 안 돼…정부 "계약 해제" 업체 "전부 다 불량 아냐"

그러나 2년이 지나도 A 업체의 조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자 정부는 2018년 4월 당시까지 보유하고 있던 섬광탄 703개 부분에 대한 계약을 해제한다고 통보하고, 남아 있던 섬광폭음탄 상당 대금 2,963여만 원과 물품 공급 계약상 약정 손해배상금 888만 원을 지급하라고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냈습니다.

정부와 A 업체가 당초 맺은 물품공급계약 제20조 제4항, 5항에는 '공급자의 하자보수 또는 대체납품 요구가 이행되지 않아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경우 계약을 해제하고, 하자발생물품의 약 30%에 해당하는 금액을 청구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정부는 재판 과정에서 "계약은 위 섬광폭음탄의 하자로 인해 계약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되어 적법하게 해제되었다 할 것이므로 피고는 원고에게 △해제된 물품대금 △계약 특수조건에 따라 해제된 계약물건 대금의 30%에 해당하는 약정 손해배상액 △계약이행보증금 731여만 원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A 업체는 "섬광폭음탄 투척 훈련 중 위 1발에서 사고가 발생한 점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 해제 대상 물건 703개 전체에 하자가 존재한다고 단정할 수 없으므로 위 703개에 대한 계약 전체를 해제할 수 없다"고 맞섰습니다.

■법원 "국민 보호하는 정부로선 위험성 불확실해도 투척훈련 계속 불가" 하자 인정

법원은 정부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8단독(판사 이종엽)은 "섬광폭음탄에 설계도면과 다르게 제작된 하자가 있음이 확인됐고, 실제 위 섬광폭음탄 사용 중 투척 장병이 전치 6주의 상해를 입어 그 하자가 장병의 신체와 생명에 대한 직접적인 위험이 된 사실이 인정된다"며 정부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법원은 "설사 피고 주장과 같이 위 섬광폭음탄의 하자로 인한 사고가 단 1회에 그쳤고, 그 하자가 사고로 발현될 위험이 매우 불확실하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위험을 감수하고 이를 사용하여 투척 훈련을 계속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보호의무를 지는 원고로서는 허용될 수 없다고 할 것이므로, 이 사건 나머지 703개의 물건에도 계약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하자가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법원은 "정부가 하자 있는 물품 공급 등을 이유로 내린 입찰참가자격제한 처분을 다투는 행정소송에서 A 업체의 청구를 기각했고,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다. 이는 이를 배척할 합리적 사정이 없는 이 사건에서 확정판결의 사실인정은 이 사건 섬광폭음탄의 하자를 인정할 유력할 증거가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법원은 "잔존하는 섬광폭음탄 703개 부분이 적법하게 해제되었으므로 피고는 원고에게 그 원상회복으로 지급된 물품대금 2,963여만 원의 반환의무가 있다"고 봤습니다.

법원은 다만 정부가 청구한 액수를 모두 인정하진 않았습니다.

약정 손해배상액 부분에 대해선 "위 약정은 하자로 인해 이 사건 계약이 해제되는 경우 발생하는 손해에 관한 손해배상액의 예정"이라면서 "섬광폭음탄 중 하나가 안전손잡이와 탄체가 비정상적으로 분리되는 사고가 발생하기는 하였으나, 납품된 60% 이상이 이미 정상적으로 사용되었고, 나머지 703개에서 그와 같은 하자가 사고로 발현될 위험이 있기는 하나 그 가능성이 크다고는 보기 어려우며, 실제 추가적인 사고가 발생하지도 않은 점, 이 사건 계약의 해제 과정 등에 비추어 그 예정액이 부당하게 과다하다"고 봤습니다. 법원은 약정 손해배상액의 50%를 감액해 업체 측에 444만 원의 배상 책임만을 인정했습니다.

또 계약보증금 부분과 관련해서는 "정부는 계약보증금 지급에 갈음해 피고로부터 교부받은 보증증권상의 권리를 행사해 계약보증금을 자신에게 귀속시킬 수 있을 뿐, 계약상 의무 위반을 이유로 이를 별도로 계약상대방인 피고에게 청구할 수는 없다"며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이 소송은 지난달 말 1심에서 확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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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8-01 09:32:47
    취재K
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 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죠.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하급심 최신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들을 소개합니다.

멀쩡해 보이던 섬광탄이 훈련 도중 두 조각으로 쪼개졌고, 장병이 발목에 부상을 입었습니다. 국가는 남아 있던 섬광탄 재고를 반환하고 돈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냈는데, 업체 측은 단지 1개 불량이 났을 뿐인데 나머지 섬광탄에 전부 문제가 있다고 보긴 어렵다며 거부했습니다. 정부는 돈을 돌려받을 수 있었을까요. 물건 중 일부가 불량이 난 경우, 특히 국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물건인 경우 계약해제 가부가 쟁점이 된 최신 판례를 소개해 드립니다.

■섬광탄 훈련 중 장병 발목서 '쾅'…국방기술품질원 "하자 때문"

앞서 대한민국 정부는 지난 2013년 6월 A 업체와 섬광폭음탄 1,735개를 7,312여만 원에 공급받는 내용의 물품 공급계약을 체결하고 그해 10월 말 제품을 수령했습니다.

양쪽이 맺은 공급계약엔 A 업체가 검사 및 검수와는 별도로 납품 후 3년간 납품한 물품의 규격과 품질이 계약 내용과 동일함을 보증한다는 문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해군특수전전단이 2016년 2월 A 업체가 공급한 섬광폭음탄을 이용해 투척 훈련을 하던 도중, 안전손잡이와 탄체가 비정상적으로 분리돼 폭음재가 장병의 발에 떨어지는 사고가 벌어졌습니다. 해당 장병은 전치 6주의 상해를 입었습니다.

국방기술품질원은 사고 원인을 두고 "신관 몸통과 폭음탄 몸통을 연결하는 오링이 도면상의 하부 홈이 아닌 상부 홈에 조립되고, 제조 당시 몸통(알루미늄)과 신관 몸통(아세탈수지)의 전둘레 오무림이 미흡했던 하자 때문"이라고 보고했습니다.

정부는 즉시 섬광탄 하자에 대한 조치를 요구했고, A 업체는 정부가 보유한 잔량 703발을 회수한 후 보완·수정해 납품하겠다고 조치계획을 보고했습니다.

■대체납품 2년 지나도 안 돼…정부 "계약 해제" 업체 "전부 다 불량 아냐"

그러나 2년이 지나도 A 업체의 조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자 정부는 2018년 4월 당시까지 보유하고 있던 섬광탄 703개 부분에 대한 계약을 해제한다고 통보하고, 남아 있던 섬광폭음탄 상당 대금 2,963여만 원과 물품 공급 계약상 약정 손해배상금 888만 원을 지급하라고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냈습니다.

정부와 A 업체가 당초 맺은 물품공급계약 제20조 제4항, 5항에는 '공급자의 하자보수 또는 대체납품 요구가 이행되지 않아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경우 계약을 해제하고, 하자발생물품의 약 30%에 해당하는 금액을 청구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정부는 재판 과정에서 "계약은 위 섬광폭음탄의 하자로 인해 계약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되어 적법하게 해제되었다 할 것이므로 피고는 원고에게 △해제된 물품대금 △계약 특수조건에 따라 해제된 계약물건 대금의 30%에 해당하는 약정 손해배상액 △계약이행보증금 731여만 원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A 업체는 "섬광폭음탄 투척 훈련 중 위 1발에서 사고가 발생한 점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 해제 대상 물건 703개 전체에 하자가 존재한다고 단정할 수 없으므로 위 703개에 대한 계약 전체를 해제할 수 없다"고 맞섰습니다.

■법원 "국민 보호하는 정부로선 위험성 불확실해도 투척훈련 계속 불가" 하자 인정

법원은 정부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8단독(판사 이종엽)은 "섬광폭음탄에 설계도면과 다르게 제작된 하자가 있음이 확인됐고, 실제 위 섬광폭음탄 사용 중 투척 장병이 전치 6주의 상해를 입어 그 하자가 장병의 신체와 생명에 대한 직접적인 위험이 된 사실이 인정된다"며 정부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법원은 "설사 피고 주장과 같이 위 섬광폭음탄의 하자로 인한 사고가 단 1회에 그쳤고, 그 하자가 사고로 발현될 위험이 매우 불확실하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위험을 감수하고 이를 사용하여 투척 훈련을 계속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보호의무를 지는 원고로서는 허용될 수 없다고 할 것이므로, 이 사건 나머지 703개의 물건에도 계약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하자가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법원은 "정부가 하자 있는 물품 공급 등을 이유로 내린 입찰참가자격제한 처분을 다투는 행정소송에서 A 업체의 청구를 기각했고,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다. 이는 이를 배척할 합리적 사정이 없는 이 사건에서 확정판결의 사실인정은 이 사건 섬광폭음탄의 하자를 인정할 유력할 증거가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법원은 "잔존하는 섬광폭음탄 703개 부분이 적법하게 해제되었으므로 피고는 원고에게 그 원상회복으로 지급된 물품대금 2,963여만 원의 반환의무가 있다"고 봤습니다.

법원은 다만 정부가 청구한 액수를 모두 인정하진 않았습니다.

약정 손해배상액 부분에 대해선 "위 약정은 하자로 인해 이 사건 계약이 해제되는 경우 발생하는 손해에 관한 손해배상액의 예정"이라면서 "섬광폭음탄 중 하나가 안전손잡이와 탄체가 비정상적으로 분리되는 사고가 발생하기는 하였으나, 납품된 60% 이상이 이미 정상적으로 사용되었고, 나머지 703개에서 그와 같은 하자가 사고로 발현될 위험이 있기는 하나 그 가능성이 크다고는 보기 어려우며, 실제 추가적인 사고가 발생하지도 않은 점, 이 사건 계약의 해제 과정 등에 비추어 그 예정액이 부당하게 과다하다"고 봤습니다. 법원은 약정 손해배상액의 50%를 감액해 업체 측에 444만 원의 배상 책임만을 인정했습니다.

또 계약보증금 부분과 관련해서는 "정부는 계약보증금 지급에 갈음해 피고로부터 교부받은 보증증권상의 권리를 행사해 계약보증금을 자신에게 귀속시킬 수 있을 뿐, 계약상 의무 위반을 이유로 이를 별도로 계약상대방인 피고에게 청구할 수는 없다"며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이 소송은 지난달 말 1심에서 확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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