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떳떳한 기록 남기고 싶어” 스크린에 담긴 217일 투쟁

입력 2020.08.15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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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그 질의 차이인 거지, 이 사람이 열심히 안 살고 열심히 살고의 문제가 아니거든요. 그런데 이 사람은 판단을 해버리는 거죠. 이 사람은 A 등급, 이 사람은 B 등급…. 저는 뭐 D 등급이 아니거든요. 저 자신은 D 등급이 아니고, 사회에서 세금 열심히 냈던, 성실한 사람이었어요."

한국도로공사 김천 본사에서 농성을 하는 동료들을 카메라로 담던 민주노총 톨게이트 노조 소속 김승화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D 등급'이 아닌 성실한 시민이었을 뿐이라고. 그리고 질문합니다. 왜 어떤 노동은 정규직이고, 어떤 노동은 비정규직이어야 하는 거냐고.


■ '노동자이자 감독으로'…직접 스크린에 담아낸 217일간의 투쟁기


지난해 7월,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 1,500명은 한국도로공사의 자회사 고용을 거부해 해고됐습니다. 그날부터 이들의 투쟁은 시작됐습니다. 길 위에서, 때로는 요금소 지붕 위에서 이어진 217일 동안의 투쟁은 영화 <보라보라>로 재탄생했습니다.

영화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재학 중인 김도준 감독과 톨게이트 노동자 김승화·김옥경 감독이 공동 연출에 참여했습니다. 투쟁에 참여한 조합원들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연출에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김승화 감독은 '기록을 남기기 위해' 직접 카메라를 잡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김승화 감독은 "기사를 보면 댓글에 '떼쓴다'라는 표현이 많다."라면서 "저희가 떼를 쓰는 게 아니고, 간접고용이라는 것이 옳지 않기 때문에 '옳은 일'(직접고용을 위한 투쟁)을 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라고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김도준 감독은 지난해 8월, 우연히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집회를 보고 이들의 투쟁을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는 영화 제목 <보라보라>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노조원들의 율동패 이름에서 따오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우선 그냥 보시라. 보면 알게 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 '경찰 눈 피해'…캐노피에 올려보내는 생필품 틈에 숨긴 카메라


하지만 촬영은 쉽지 않았습니다. 조합원들이 투쟁 중이던 서울요금소 지붕과 한국도로공사 김천 본사는 경찰이 겹겹이 둘러싸 경비가 삼엄했기 때문입니다. 김도준 감독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찾아가 촬영을 하기도, 조합원에게 카메라를 건네주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김도준 감독은 조합원에게 전달되는 식사나 생필품 틈에 카메라를 숨겨 함께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촬영된 영상이 담긴 저장장치는 조합원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빨랫감을 농성장 밖으로 전달할 때 함께 전달받았습니다.

이렇게 전달받은 영상 속에는 조합원들의 이야기가 생생히 담겼습니다. 요금수납원으로 일하기 전의 삶, 장기화한 투쟁을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 투쟁 현장에서의 외침 등 촬영 기간 6개월 동안의 기록은 2시간 30분의 영화로 제작됐습니다.


■ "비정규직이라 해도 해고·불이익 당연한 건 아냐"


7개월이 넘는 투쟁 끝에, 조합원들은 '전원 직접고용'을 쟁취했습니다. 이들은 지난 5월, 해고 314일 만에 정규직으로 다시 출근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금수납 업무로 돌아가지는 못했습니다. 도로공사 측이 이미 요금수납 업무를 자회사로 이관했기 때문입니다. 대신 일터로 돌아간 조합원들은 청소와 잡초 뽑기 등의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원래 하던 일로 복직을 하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그래도 정규직 전환을 이뤄낸 이들은 아직도 길 위에서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잃지 말고, 힘을 내 싸우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비정규직이라고 참고 사는 게 비정규직의 삶이 아니고 이걸 개선해나가는 게, 그게 본인들이 해나가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말고도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걸 깨기 위해서 나서야 하고, 자신감을 가지고 싸우셔야 한다고 봅니다."

톨게이트 조합원의 투쟁이 담긴 영화 '보라보라'는 지난 8일 개봉했고, 오늘(15일) 오후 6시와 오는 21일 오후 4시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에서 상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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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떳떳한 기록 남기고 싶어” 스크린에 담긴 217일 투쟁
    • 입력 2020-08-15 07:01:03
    취재K
"일의, 그 질의 차이인 거지, 이 사람이 열심히 안 살고 열심히 살고의 문제가 아니거든요. 그런데 이 사람은 판단을 해버리는 거죠. 이 사람은 A 등급, 이 사람은 B 등급…. 저는 뭐 D 등급이 아니거든요. 저 자신은 D 등급이 아니고, 사회에서 세금 열심히 냈던, 성실한 사람이었어요."

한국도로공사 김천 본사에서 농성을 하는 동료들을 카메라로 담던 민주노총 톨게이트 노조 소속 김승화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D 등급'이 아닌 성실한 시민이었을 뿐이라고. 그리고 질문합니다. 왜 어떤 노동은 정규직이고, 어떤 노동은 비정규직이어야 하는 거냐고.


■ '노동자이자 감독으로'…직접 스크린에 담아낸 217일간의 투쟁기


지난해 7월,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 1,500명은 한국도로공사의 자회사 고용을 거부해 해고됐습니다. 그날부터 이들의 투쟁은 시작됐습니다. 길 위에서, 때로는 요금소 지붕 위에서 이어진 217일 동안의 투쟁은 영화 <보라보라>로 재탄생했습니다.

영화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재학 중인 김도준 감독과 톨게이트 노동자 김승화·김옥경 감독이 공동 연출에 참여했습니다. 투쟁에 참여한 조합원들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연출에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김승화 감독은 '기록을 남기기 위해' 직접 카메라를 잡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김승화 감독은 "기사를 보면 댓글에 '떼쓴다'라는 표현이 많다."라면서 "저희가 떼를 쓰는 게 아니고, 간접고용이라는 것이 옳지 않기 때문에 '옳은 일'(직접고용을 위한 투쟁)을 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라고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김도준 감독은 지난해 8월, 우연히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집회를 보고 이들의 투쟁을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는 영화 제목 <보라보라>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노조원들의 율동패 이름에서 따오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우선 그냥 보시라. 보면 알게 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 '경찰 눈 피해'…캐노피에 올려보내는 생필품 틈에 숨긴 카메라


하지만 촬영은 쉽지 않았습니다. 조합원들이 투쟁 중이던 서울요금소 지붕과 한국도로공사 김천 본사는 경찰이 겹겹이 둘러싸 경비가 삼엄했기 때문입니다. 김도준 감독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찾아가 촬영을 하기도, 조합원에게 카메라를 건네주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김도준 감독은 조합원에게 전달되는 식사나 생필품 틈에 카메라를 숨겨 함께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촬영된 영상이 담긴 저장장치는 조합원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빨랫감을 농성장 밖으로 전달할 때 함께 전달받았습니다.

이렇게 전달받은 영상 속에는 조합원들의 이야기가 생생히 담겼습니다. 요금수납원으로 일하기 전의 삶, 장기화한 투쟁을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 투쟁 현장에서의 외침 등 촬영 기간 6개월 동안의 기록은 2시간 30분의 영화로 제작됐습니다.


■ "비정규직이라 해도 해고·불이익 당연한 건 아냐"


7개월이 넘는 투쟁 끝에, 조합원들은 '전원 직접고용'을 쟁취했습니다. 이들은 지난 5월, 해고 314일 만에 정규직으로 다시 출근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금수납 업무로 돌아가지는 못했습니다. 도로공사 측이 이미 요금수납 업무를 자회사로 이관했기 때문입니다. 대신 일터로 돌아간 조합원들은 청소와 잡초 뽑기 등의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원래 하던 일로 복직을 하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그래도 정규직 전환을 이뤄낸 이들은 아직도 길 위에서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잃지 말고, 힘을 내 싸우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비정규직이라고 참고 사는 게 비정규직의 삶이 아니고 이걸 개선해나가는 게, 그게 본인들이 해나가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말고도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걸 깨기 위해서 나서야 하고, 자신감을 가지고 싸우셔야 한다고 봅니다."

톨게이트 조합원의 투쟁이 담긴 영화 '보라보라'는 지난 8일 개봉했고, 오늘(15일) 오후 6시와 오는 21일 오후 4시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에서 상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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